인도를 대표하는 음악은 적어도 외국인의 입장에서 본다면 라가(Raga)가 아닐까 싶다. 용어자체는 인도의 특별한 음계를 의미하는 이 음악은 실제로는 그 음계를 반영한 연주가 자아내는 정서적인 면이 더욱 돋보이곤 한다. 이 라가는 인도를 대표하는 현악기인 시타르(Sitar)에 의해 많이 연주되고 있다. 라가를 연주하여 세계적인 명성을 얻은 인도 연주자를 대표하는 인물은 라비 샹카다. 인도 영국, 미국을 오가며 활동한 이 연주자는 인도 음악의 전통을 고수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서양 음악과도 지속적인 교류를 하며 클래식적인 곡을 작곡하기도 했다. 특히 비틀즈의 조지 해리슨에게 시타르 연주법을 전수하고 클래식 바이올린 연주자 예후디 메뉴힌과 협연한 것으로 유명하다.
1920년생인 그는 네 명의 여성과 깊은 관계를 맺었고 그 가운데 두 차례 결혼을 했다. 그 가운데 미국인 공연 기획자 수 존스와 사귀며 노라 존스를 낳았고 이후 인도 여성 수카니아 라잔과 결혼하여 아누슈카 샹카를 낳았다. 2년의 차이를 두고 태어난 두 딸은 이후 세계적으로 유명한 음악인으로 성장했다. 그리고 어머니는 비록 다르지만 좋은 관계를 유지하며 종종 함께 음악을 선보이고 있다. 우리가 지금 듣고 있는 앨범 <Traces Of You>에서도 돈독한 자매의 정을 확인할 수 있다.
하지만 이 자매의 음악적 성향은 자못 다르다. 노라 존스는 우리가 알고 있듯이 재즈를 중심으로 포크와 컨트리를 가로지르는 음악으로 미국을 대표하는 음악인으로 성장했다. 아버지보다는 어머니의 문화적 영향을 더 많이 받았다고 할까? (하지만 그녀의 전체 이름은 누라 존스 샹카다.) 한편 동생 아누슈카 샹카는 아버지로부터 시타르를 배우고 공연을 함께 하면서 실력파 시타르 연주자로 성장했다. 그렇다고 인도 음악의 전통을 고수하는 민속 음악 연주자의 길을 걷고 있지는 않다. 자신의 혈통을 존중하는 음악을 펼치기는 하지만 아버지가 그랬듯이 서양 음악을 수용한 말 그대로의 월드 뮤직을 선보이고 있다. 특히 인도계 미국 뮤지션 카르쉬 칼레와 함께 했던 네 번째 앨범 <Breathing Under Water>에서는 아버지 라비 샹카와 언니 노라 존스, 그리고 스팅과 함께 하는 한편 일렉트로 사운드를 도입하여 세련된 에스닉 라운지 음악을 선보여 호응을 얻었다. 그리고 2013년도 그래미상 최우수 월드 뮤직 앨범 후보에 오르기도 했던-공교롭게도 수상은 2012년 세상을 떠난 그녀의 아버지의 마지막 앨범 <The Living Room Session Part. 1>에 돌아갔다- <Traveller>에서는 스페인의 플라맹코 음악과의 조우를 시도해 그녀의 음악적 관심이 다양함을 생각하게 했다.
이번 앨범은 <Traveler>이후 2년 만에 선보이는 아누슈카 샹카의 신작이다. 이번 앨범은 인도 음악을 다른 텍스트-플라맹코와 전자 음악- 속에 위치시켰던 이전 두 앨범에 비하면 훨씬 더 인도의 전통 음악을 반영했다는 인상을 준다. 근원으로 다가갔다고나 할까? 아버지의 제자였던 비슈와 무한 바트의 음악에서 영감을 얻은 ‘Chasing Shadows’, 연주할 때마다 아버지와 깊이 연결된 느낌을 받곤 했다는 만즈 카마즈의 라가에서 영감을 얻은 ‘Monsoon’, 인도 산스크리트어 문학의 고전인 베다의 한 구절 ‘Maha Mrityunjaya Mantra(죽음을 정복하는 위대한 만트라)’를 가져온 ‘Metamorphosis’-이 곡의 제목 또한 영적이나 물리적인 변화를 가져온다고 여겨지는 단어를 의미하는 만트라에서 가져온 것이다-같은 곡은 특히나 편성과 연주 방식에 있어 명상과 몽환의 세계로 이끄는 인도의 전통 음악을 따른다.
그런데 이러한 인도 음악의 전통에 대한 존중의 자세는 지난 해 12월에 있었던 아버지의 사망 때문이 아닐까 싶기도 하다. 아버지를 그리며 앨범을 녹음하다 보니 보다 전통적인 면이 강조되었다고나 할까? 실제 이 앨범에는 아버지에 대한 아누슈카 샹카의 그리움으로 가득하다. 노라 존스의 노래가 가세한 앨범의 첫 곡 ‘The Sun Won’t Set’이 대표적이다. 이 곡은 아버지의 이름 ‘Ravi’가 인도어로 태양을 의미하는 것에 착안해 만든 곡으로 제목처럼 아버지의 사망을 인정하기 어려운 딸의 마음을 담고 있다. 그래서인지 노라 존스의 노래도 담담함을 유지하고 있지만 그 뒤로 슬픔의 정서가 느껴진다. 아누슈카 샹카의 시타르 연주도 그 늘어지는 듯한 울림이 흐느끼는 듯한 모습으로 다가온다. 한편 ‘Fathers’에서도 그녀는 세상을 떠난 아버지를 그리워한다. (곡 제목이‘아버지’가 아니라 ‘아버지들’인 것은 이 앨범의 제작을 담당하고 이 곡을 공동 작곡한 니틴 소니의 아버지 또한 비슷한 시기에 세상을 떠났기 때문이었다.) 노라 존스가 작곡하고 노래한 ‘Unsaid’또한 아버지의 사망 이후 아누슈카 샹카가 쓴 가사에 기초하고 있다. 그리고 세상을 떠났더라도 사랑했던 사람들은 늘 나와 함께 하며 새로운 탄생을 이끈다는 것을 표현한 앨범 타이틀 곡도 역시 아버지의 사망을 반영하고 있다. 심지어 니틴 소니가 혼자 작곡한 ‘River Pulse’도 라비 샹카의 연주에서 받은 영감을 반영하고 있다. 그리고 ‘Monsoon’, ‘Metamorphosis’도 넓은 의미에서는 라비 샹카와 관련되어 있다.
한편 아버지의 사망에 대한 슬픔과 그리움을 주제로 하면서도 아누슈카 샹카는 사랑을 표현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사랑으로 충만한 상태를 표현한 ‘Maya’, 이제는 그녀의 남편이 된 영국 출신의 영화 감독 조 라이트-<오만과 편견>, <어톤먼트> 등으로 알려진-가 제작까지 이어지지는 못한 영화 <인디언 섬머>를 기획할 무렵에 이루어진 첫 만남을 주제로 한 ‘Indian Summer’가 그 곡들이다.
나아가 그녀는 인도적인 색채를 그리면서 평소 인도에서의 성폭력 근절에 앞장서 온 자신의 사회참여 정신을 드러내기도 했다. 남녀가 평등한 세상을 꿈꾸며 힌두 여신 파르바티의 춤을 그린 ‘Lasya’, 인도의 무자비한 성폭력 사건을 볼 때마다 느끼는 슬픔과 분노를 표현한 ‘In Jyoti’s Name’등의 곡이 그렇다.
이전 앨범에 비해 인도적인 색채가 강하다고는 하지만 어디까지나 이 앨범은 인도 전통 음악이 아닌 세계를 향한 월드 뮤직을 지향한다. 그것은 첼로, 피아노, 기타, 프로그래밍의 사용에서 엿볼 수 있다. 특히 스위스에서 2000년대에 만들어진 타악기 항(Hang)을 연주하는 오스트리아 출신의 마누 델라고의 참여는 아누슈카 샹카의 음악을 보다 넓은 공간으로 안내한다. 앨범의 제작을 담당하며 작곡과 기타 연주, 프로그래밍 등에 직접 참여한 니틴 소니의 존재감도 앨범을 인도를 그리는 동시 인도를 벗어난 가상의 공간을 그리게 한다.
물론 이러한 월드 뮤직적인 성향에도 불구하고 다수의 감상자들에게 이 앨범은 인도 음악으로 다가올 것이다. 그래도 상관 없다. 하지만 그렇다고 이 앨범을 인도 음악을 좋아하는 소수의 감상자를 위한 것으로 생각하지는 않기 바란다. 악기 구성과 그 사운드의 질감이 낯설기는 하지만 그 음악이 추구하는 정서와 분위기는 인도 밖에 위치한 우리에게도 충분히 설득력이 있기 때문이다. 인도라는 선입견을 버린다면 말이다. 특히 ‘The Sun Won’t Set’을 비롯한 노라 존스가 참여한 세 곡의 보컬 곡이나 ‘Indian Summer’, ‘Maya’같은 곡은 정서적 매력과 함께 멜로디의 측면에서도 매우 친근하게 다가올 것이라 생각한다. 따라서 이 앨범은 노라 존스가 참여했다는 사실과 그녀의 동생이 만든 앨범이라는 사실에 호기심이 생겨 앨범을 선택한 사람들-당신?-에게 인도 음악에 대한 선입견을 강화하기 보다는 인도 음악의 새로운 매력을 맛보게 해줄 것이다. 나아가 이국적인 공간감에 빠져 일상이 새로이 환기되는 듯한 느낌에 빠지게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