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Blue Room – Madeleine Peyroux (Universal 2013)

흑백이 만나 회색이 아닌 희망의 파란색이 되는 공간의 음악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다라는 말이 있듯이 우리는 늘 주변 사람들과 이런저런 관계를 맺고 그 안에서 서로 영향을 주고 받으며 살아 갑니다. 그러면서 나만의 개성을 만들곤 하죠. 이것은 음악인들에게도 그대로 적용됩니다. 하늘에서 툭 떨어지듯이 처음부터 완성된 형태로 등장하는 천재적인 음악인들도 있지만 대부분은 부단한 연습과 탐구를 통해 자신만의 개성을 만들어 나가죠. 이 때 선배나 동료 음악인들의 음악을 듣고 이를 따라 하는 것도 큰 도움이 됩니다. 좋아하는 선배나 그의 스타일을 모방하고 흡수하여 자기 것으로 만들어 결국은 이를 뛰어넘을 때 독보적인 자신만의 세계가 완성될 수 있다는 것이죠. (음악의 역사가 여러 획기적인 변화에도 불구하고 연속적인 모습을 보이는 것은 바로 이 때문일 겁니다.)

지금 우리가 듣고 있는 앨범 <The Blue Room>의 주인공 마들렌느 페루도 그렇습니다. 그녀는 초기에는 빌리 할리데이를 연상시키는 목소리로 주목을 받았습니다. 하지만 그녀는 선배 디바의 추억을 자신의 무기로 삼지는 않았습니다. 재즈를 중심으로 포크, 블루스 등을 가로지르는 음악으로 자신만의 색을 갖기 위해 많은 노력을 했습니다. 그 결과 <Bare Bones>(2009)와 <Standing On The Rooftop>(2011)처럼 자신만의 확고한 개성을 지닌 앨범을 선보일 수 있었습니다.

사실 이 두 앨범이 그녀로서는 할 수 있는 최선의 모습을 보여주었다고 생각했기에 저는 그 이후 그녀가 어떤 음악을 들려줄 지 무척 기대를 했습니다. 과연 장점을 지속하면서 새로운 무엇을 보여줄 수 있을까 궁금했습니다. 여기에는 어쩌면 더 이상 뛰어난 앨범은 나오기 힘들 지도 모르겠다는 부정적인 생각이 자리잡고 있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실제 스타일로만 본다면 이번 앨범은 그렇게 새로울 것이 많지 않습니다. 빈스 멘도사가 편곡한 오케스트라의 사용 정도가 새로울까요? 래리 클라인이 제작을 담당하고 딘 파크스(기타), 래리 골딩(건반) 등이 참여한 연주는 그녀의 이전 앨범들, 특히 <Bare Bones>와 상당히 유사합니다.

하지만 그녀는 색다른 소재를 통해 익숙함이 줄 수 있는 자기 복제의 위험에서 벗어납니다. 이것은 이 앨범이 레이 찰스의 1962년도 앨범 <Modern Sounds In Country & Western Music>을 음악적 출발점으로 삼고 있다는 것에서 드러납니다. 이 앨범은 팝 역사상 기념비적인 앨범으로 평가 받고 있는데요. 그것은 R&B, 소울, 가스펠 성향의 음악으로 인기를 얻고 있던 레이 찰스가 앨범 타이틀처럼 컨트리 웨스턴 스타일의 유명 곡들을 노래했기 때문입니다. 물론 그는 이 곡들을 컨트리 웨스턴이 아닌 R&B 소울 스타일로 바꾸어 노래했습니다. 그러면서도 원곡의 그림자는 남겨둠으로써 이질적인 스타일의 교배, 흑백을 가로지르는 음악적 자유에 대한 의지를 확인하게 해주었습니다. 특히 앨범이 녹음될 무렵의 미국 사회가 인종차별과 이를 극복하려는 시민운동으로 혼란스러웠던 것을 생각하면 이러한 시도는 무척이나 과감한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그러한 상황에서도 앨범은 이듬 해에 <Modern Sounds In Country & Western Music Vol.2>까지 발매될 정도로 큰 인기를 얻었습니다.

마들렌느 페루는‘Bye Bye Love’, ‘Born To Lose’, ‘I Can’t Stop Loving You’, ‘You Don’t Know Me’, ‘Take These Chains’ 등을 노래하면서 자신의 이번 새 앨범이 50년 전에 발매된 레이 찰스의 앨범에 빚을 지고 있음을 명확하게 드러냅니다. 여기서 왜 레이 찰스의 앨범에 수록된 전 곡을 노래하지 않았는지 궁금해하는 분도 있을 것 같습니다. 존경의 의미를 표현하는데 의미를 둔다면 전곡을 노래하는 것도 좋을 것 같긴 합니다. 언젠가 카린 앨리슨이 존 콜트레인의 명반 <Ballads>의 전 곡을 노래한 앨범으로 색소폰 연주자에 대한 경의를 표현했던 것처럼 말이죠.

그러나 마들렌느 페루의 목적은 다릅니다. 사실 그녀는 어린 시절부터 레이 찰스의 ‘What I’d Say. ‘Hit The Road Jack’같은 곡들을 좋아하긴 했지만 1962년도 앨범을 제대로 들어본 적이 없다고 합니다. 그럼에도 이 앨범을 모범으로 삼게 된 것은 ‘컨트리 웨스턴 뮤직’의 명곡을 자기 식으로 노래한 레이 찰스의 음악이 평소 재즈를 중심으로 포크, 블루스를 결합했던 그녀의 음악과 통하는 부분이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여기에는 레이 찰스의 앨범을 추천하며 소통 가능성을 설득한 제작자 래리 클라인의 역할이 컸습니다.) 실제 이들 곡들을 들어보면 언급했던 것처럼 마들렌느 페루의 기존 음악과 큰 차이가 느껴지지 않습니다. 그러면서 레이 찰스를 상기하게 하죠.

물론 선후배간의 방향의 차이가 느껴지기도 합니다. 레이 찰스가 백인의 음악에 흑인의 색채를 입히려 했다면 마들렌느 페루는 그 흑인적인 백인 음악에 다시 흰색 칠을 더 하려 했다는 느낌이 강합니다. 결국 이번 앨범은 레이 찰스의 1962년도 앨범을 근간으로 하고 있지만 단순히 그 수록 곡들을 다시 노래하는 것이 아니라 그 가로지름의 정서를 이해하고 이를 바탕으로 자기 식으로 노래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고 있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레이 찰스의 1962년도 앨범 수록 곡 외에 버디 홀리의 록앤롤 ‘Changing All Those Changes’, 글렌 캠벨의 노래로 인기를 얻었던 존 하트포드의 컨트리 ‘Gentle On My Mind’, 그리고 워렌 제본의 ‘Desperadoes Under the Eaves’, 레너드 코헨의 ‘Bird On The Wire’, 랜디 뉴먼의 ‘Guilty’같은 싱어송라이터들의 곡을 노래한 것도 이런 이유에서였습니다. 이 다양한 성향의 곡들을 마들렌느 페루는 블루지하면서도 컨트리나 포크적인 맛이 함께 느껴지는 스타일로 노래하면서 이들 곡들이 음악적으로나 정서적으로나 원래부터 같은 결을 지녔던 것처럼 착각하게 합니다. 레이 찰스의 앨범에서 선택한 다른 다섯 곡들과도 평화로이 어울리는 것은 물론입니다.

요컨대 이 앨범은 레이 찰스를 비롯하여 레너드 코헨, 랜디 뉴먼 등의 곡을 색다르게 노래했다는 것이 아니라 이 다양한 성향의 곡들을 포용하고 아우를 수 있는 마들렌느 페루의 개성을 확인하게 해줍니다. 그녀가 이제 확고한 스타일리스트가 되었음을 깨닫게 한다고 할까요? 그러므로 이 앨범의 진정한 매력은 레퍼토리의 다양성이 아니라 그 다양성에도 불구하고 앨범 전체에 흐르고 있는 고통과 불안을 순화하고 마음을 평화로이 하는 위로의 정서에 있습니다. 실제 레이 찰스니, 레너드 코헨이니 하는 음악적인 부분을 뒤로 하면 흑백이 공존하는 사운드가 마음을 편안하게 해줌을 느끼실 겁니다. 그것이 실제는 이별(Bye Bye Love), 사랑의 아픔(You Don’t Know Me), 상실(Born To Lose)에 관한 노래일지라도 말이죠.

이 앨범의 타이틀이‘파란 방’인 것도 그런 이유입니다. 여기서 말하는 파란 방은 마들렌느 페루의 스모키 보이스라는 필터에 의해 모든 곡들이 평온과 안락의 정서로 채색되는 공간을 의미합니다. 흑백이 만나 회색이 아닌 희망의 파란색이 되는 공간의 음악, 그것이 바로 마들렌느 페루의 음악인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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