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르지오 멘데스와 일본의 50년 우정을 기념하는 앨범
국민성이란 한 국가의 국민에게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가치관, 행동 양식, 사고방식, 기질 등의 특성을 의미한다. 이 국민성은 음악에도 그대로 적용될 수 있다. 각 국가 혹은 지역별로 고유한 음악들이 그 좋은 예이다. 그렇다고 전통적인 민속 음악을 이야기하는 것은 아니다. 세계에서 공통적으로 사용되는 악기로 연주하고 노래한 음악도 지역과 국가에 따라 명백한 차이를 드러내곤 한다. 우리의 K-Pop만 해도 시작은 영미 팝 음악을 따르는 것에서 시작한 것이지만 꾸준한 발전 끝에 (전통적인 면과는 상관 없는) 한국적인 무엇을 갖추지 않았는가?
음악적 국민성은 특정 지역 혹은 국가의 취향차이로도 나타난다. 세계적인 인기를 누리는 영미 팝 음악들이 지역과 국가에 따라 그 인기의 정도가 다른 것도 이 때문이다. 때로는 그다지 잘 알려져 있지 않은 곡이 특정 국가에서 유난히 큰 인기를 얻을 때도 있다. 이러한 것 모두 음악적 국민성의 차이 때문이 아닐까?
그 가운데 일본은 일찌감치 대중 음악의 세계적 흐름에 그들만의 취향으로 반응하곤 했다. 그리고 앞선 경제력을 바탕으로 세계적인 음악인들의 공연을 열고, 그들의 입맛에 맞는 앨범을 제작해왔다. 브라질 출신의 세르지오 멘데스도 일본에서 유난히 큰 인기를 얻었다. 물론 그는 1960년대부터 라틴 음악, 보사노바, 재즈, 팝을 아우르는 활동으로 정상의 인기를 누려왔다. 특히 <Sergio Mendes & Brasil ’66 > 앨범에 수록된 곡으로 1966년 빌보드 팝 차트 47위, 빌보드 이지리스닝 차트 4위에 오르며 라틴 음악의 스탠더드가 된‘Mas Que Nada’, 1983년도 앨범 <Sergio Mendes>에 수록된 곡으로 빌보드 팝 차트 4위, 빌보드 어덜트 컨템포러리 차트 1위, 빌보드 R&B 차트 28위에 올랐던 ‘Never Gonna Let You Go’는 팝의 명곡으로 지금까지 꾸준한 인기를 얻고 있다.
하지만 세르지오 멘데스와 일본의 인연은 이러한 인기를 웃도는 것이었다. 이 브라질 출신의 작곡가 겸 키보드 연주자를 일본인들은 음악적 굴곡과 상관 없이 꾸준히 사랑했다. 그래서 미국에 진출하여 본격적인 인기를 얻기 전인 1964년, 한 패션쇼의 음악을 위해 일본을 처음 방문한 이후 세르지오 멘데스는 지금까지 40회 이상 일본을 방문했다. 매번 일본인들의 환대를 받았음은 물론이다. 그래서 그는 일본을 제 2의 고향이라 말한다고 한다.
세르지오 멘데스와 일본의 인연은 올 해로 50년이 되었다. 이 앨범은 이를 기념하기 위해 세르지오 멘데스의 요청에 의해 만들어졌다. 앨범의 제작 방식은 최근 세르지오 멘데스의 2008년도 앨범 <Encanto>나 20010년도 앨범 <Bom Tempo>와 같다. 즉, 세르지오 멘데스가 만든 세련된 도시적 분위기의 곡들마다 다양한 연주자나 보컬이 게스트로 함께 하는 식으로 제작되었다. (사실 이것은 그의 브라질 66 그룹 시절부터 이어진 제작 방식을 확장한 것이다.) 이번 앨범의 경우 질, 나카노 요시에, 수미레, 베니, 줄리아 오키, 민미 등의 일본 보컬에 중국의 카렌 목(막문위)까지 10명의 여성 보컬이 참여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졌다. 이들 보컬은 세르지오 멘데스가 직접 선정했다고 한다. 그리고 실제 제작은 브라질의 리오 데 자네이로와 미국의 캘리포니아에서 사운드를 먼저 녹음하고 일본에서 각 보컬들이 세르지오 멘데스의 지휘 하에 녹음하는 식으로 이루어졌다.
그런데 이번 앨범은 제작 방식에 있어서는 분명 이전 두 장의 앨범과 유사하면서도 여러 차이를 보인다. 이것은 앨범을 위해 세르지오 멘데스가 선택한 곡들의 면모에서부터 드러난다. 자작곡‘Real In Rio’를 비롯하여 토니뇨 오르타의 ‘O Amor É Pra Se Amar 사랑하기를 좋아한다면’, 루이스 본파의 ‘Manhã De Carnaval 카니발의 아침’, 마리아 가두의 ‘Shimbalaiê 퍼지는 행복’등 브라질 음악의 신구 곡들과 ‘Killing Me Softly With His Song’같은 팝 외에 ‘Tasogare No Begin 황혼의 비긴’, ‘Ueo Muite Arukou 위를 보며 걷자’,’Hoshi No Love Letter 별의 사랑편지’를 선곡한 것이다. 일본 곡을 선택한 것은 자신의 일본에 대한 애정을 표현하기 위해서였을 것이다.
이러한 선곡의 다양성은 색다른 질감의 사운드로 이어졌다. 여성 보컬들이 꼭 일본어로 노래해서만은 아니다. 사실 유사한 방식으로 제작된 이전 두 장의 앨범도 그와 유명 팝 아티스트들의 만남이 주는 독특한 화학작용을 보여주긴 했다. 하지만 게스트는 게스트라고나 할까? 어디까지나 앨범의 주인인 세르지오 멘데스의 화려한 색채감은 그대로 유지되었었다. 그런데 이 앨범에서는‘만남’이라는 앨범 타이틀처럼 J-Pop을 보다 존중하면서 세르지오 멘데스만의 것만을 주장하지 않으려 했다.
민미가 노래한 ‘Hoshi No Love Letter 별의 사랑편지’가 좋은 예이다. 이 곡은 이 여성보컬이 추구하는 래게 리듬이 반영되어 있다. 한편 J-Pop의 히트 곡을 영어로 개사해 노래하여 인기를 얻은 질이 노래한 ‘Summer Champion’, 에고 래핑의 보컬 나카노 요시에가 노래한 ‘Ultima Batucada’같은 곡은 시부야케이 음악의 그림자가 보인다.‘Real In Rio’의 경우 화사한 라틴 리듬의 사용으로 세르지오 멘데스의 매력이 잘 드러났다고 할 수 있지만 이 곡을 노래한 마르시아가 브라질에서 태어난 일본인과 브라질인의 혼혈임을 생각하면 이 또한 함께 한 보컬의 음악적 개성을 존중한 결과라 할 수 있겠다. 세르지오 멘데스가 직접 나츠카와 리미와 듀오를 이루어 포르투갈어로만 노래한‘O Amor É Pra Se Amar’도 브라질적인 색채감이 강한데 그 안에서도 평소 일본의 전통 포크를 노래한 나츠카와 리미의 개성이 군데군데서 드러난다.
‘Tasogare No Begin’, ‘Ueo Muite Arukou’,’Hoshi No Love Letter’에서는 일본에 대한 세르지오 멘데스의 존중이 더욱 직접적으로 드러난다. 이들 곡의 편곡은 리듬 부분에서 드러나는 희미한 그의 서명 외에는 전적으로 일본의 엔카나 J-Pop이라 해도 좋을 듯하다.
따라서 이번 앨범은 평소 세르지오 멘데스를 좋아했던 일본인들에게는 아주 좋은 선물이 될 것이다. 각별한 애정을 준 음악인이 특별히 자신들을 위해 앨범을 만들었다는 것은 분명 감동적이다. 그렇다면 이 앨범은 오로지 일본인들만을 위한 것일까? 그 외 지역이나 국가의 사람들은 평소 보아 온 세르지오 멘데스의 개성이 반감된 일본어 중심의 앨범이 낯설고 이상하게 보이기만 할까? 꼭 그렇다고 할 수만은 없을 것 같다. 세르지오 멘데스가 제작한 J-Pop 앨범에 가까운 것은 사실이지만 그 안에 담긴 곡들은 그 자체로 매력을 지녔기 때문이다. 각 곡들에 담긴 평온과 밝음의 정서는 분명 보편적인 공감을 얻을 만 하다. 일본어가 문제지 않을까? 싶은 생각을 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포르투갈어도 우리에겐 여전히 생경한 언어이고 오래 전부터 J-Pop이 국내에 소개된 것을 생각하면 이것은 그리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중요한 것은 음악이 아니던가? 오히려 나는 지금부터 50년 전 당시에는 그리 잘 알려지지 않은 브라질 출신의 젊은 음악인을 처음 알게 되고 이후 그와 그의 음악에 매혹되었던 일본인들처럼 이 앨범이 세르지오 멘데스는 물론 참여한 여성 보컬들을 알게 되는 계기가 되리라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