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 많은 사람들이 생각하는 재즈에는 두 가지 이미지가 있는 것 같다. 하나는 재즈는 분위기 좋은 카페에서 연인과 듣기에 좋은 음악이라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그와는 반대로 재즈는 자유의 음악인데 그만큼 듣기 어렵다는 것이다. 어떻게 재즈는 이리도 상반된 이미지를 지니게 된 것일까? 나는 재즈를 잘 모르는 사람, 잘 들어보지 못한 사람이 재즈에 대해 두 시선 중 하나를 지니게 되었다고 생각한다. 재즈를 좀 들어본 사람은 아마도 이런 답을 내놓을 것이다. 재즈는 어려우면서도 달콤하다고. 이게 무슨 말인가 하면 재즈가 그만큼 다양한 성향을 그 안에 담고 있다는 것이다. 즉, 카페에서 달콤한 재즈를 듣고 관심이 생겨 앨범 몇 장을 사서 들었는데 카페에서와는 다르게 어려움을 느낄 수 있는 것이고, 우연히 갔던 클럽에서 들었던 재즈가 생각 없이 꽥꽥거리는 것만 같아 어렵게 느껴졌는데 다시 우연히 라디오에서 달콤한 음악이 나와 알아봤더니 재즈라서 놀라게 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복합적 경험이 아니라 그냥 한 번의 지나침으로 재즈에 대한 판단을 끝냈을 경우 재즈는 카페의 무드 음악이 되거나 나와는 거리가 먼 마니아용 음악이 된다.
사실 이 가운데 제일 문제가 되는 것은 재즈를 어려워하는 사람이다. 재즈를 달콤하다 생각하는 사람은 한동안은 우호적인 마음으로 재즈 감상을 이어갈 수 있다. 게다가 설령 어려운 재즈를 만나더라도 그간의 경험을 바탕으로 인내하고 끝까지 들을 수 있고 또 그 안에서 새로운 아름다움을 맛볼 확률이 많다. 하지만 재즈가 어렵다 생각하는 사람은 그냥 그 순간 재즈와의 관계를 끊는다. 안타까운 일이다.
그래도 지금 내 글을 읽고 있는 당신은 그런 사람이 아니리라 믿는다. 재즈를 이미 좋아하고 있거나 재즈를 본격적으로 듣고 느끼고 싶어하는 사람일 것이다. 아니면 한 번 듣고 ‘재즈는 어려운 음악이야’ 하고 등을 돌렸다가 ‘그래도 혹시’ 하는 마음으로 자신에게 한번 더 기회를 준 사람일 것이다. 당신이 어떤 경우에 속한 사람이건 재즈 애호가로서 보다 많은 사람들이 재즈를 듣고 그 맛을 느끼기를 바라는 사람으로서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 아울러 참 좋은 선택을 하셨다는 칭찬의 말씀도 드린다.
사실 재즈는 오랜 공을 들여야 하는 음악이다. 워낙 다양한 스타일의 재즈가 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보통의 음악과는 다른 낯선 어법 때문이다. 그래서 반복적으로 들어야 어지럽게 느껴졌던 곡 안에 감춰진 정교 구조, 연주자들간의 호흡, 그리고 이들이 발산하는 아름다움을 발견할 수 있다. 사실 아무리 마음에 들지 않는 사람도 오래 보면 미운 정이라도 들지 않던가?
물론 곡 하나로 재즈에 매료되어 그것이 지속되는 경우도 있다. 그러나 대부분은 호기심에 막연히 재즈를 듣기 시작하거나 노래 하나에 매료되었지만 그렇다고 재즈에 대한 확신을 갖지 못한 채 재즈를 듣기 시작한다. 그런데 안타까운 것은 이 경우 도대체 무엇을 들어야 할 지 막막할 때가 많다는 것이다. 어느 앨범이나 연주곡 혹은 노래 하나가 마음에 들었다고 해도 그 다음엔 어떤 앨범, 어떤 연주, 어떤 노래를 들어야 할 지 알기 힘들다. 또한 오랜 시간 공을 들여야 하는 만큼 경제적 부담도 높다. 들어야 한다고 말하는 명반들이 한 둘이 아닌 것이다. 어쩌면 재즈가 인기가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지 않나 싶다.
그런 즈음에 음반 시장의 침체와 맞물려 몇 해전부터 내용은 알차면서 경제적으로 부담이 덜한 박스 세트 앨범들이 발매되기 시작했다. 사실 나는 이러한 가격 파괴는 음반 시장의 붕괴를 가속시킬 것이라는 생각에 안타까움을 느낀다. 하지만 저렴한 박스 세트의 등장은 감상자 입장에서는 일단은 좋은 일이다. (장기적으로는 어떨지 모르겠다.) 훌륭한 음악을 담은 앨범을 저렴한 가격에 구입해 들을 수 있으니 말이다.
유니버설사도 몇 해 전부터 보유한 재즈 앨범들 가운데 명반을 고르고 골라 <Jazz Train>이라는 이름으로 4개의 박스 세트를 발매했다. 유니버설사 산하에 있는 버브, 콩코드, GRP 등의 재즈 레이블의 대표 앨범을 25장에서 30장씩 정리한 이 박스 세트는 기대 이상의 인기를 얻었다. 재즈의 역사를 빛낸 명반들, 흔히 말하는 필수 앨범들로만 구성되었으니 그럴 만 했다.
당신이 선택한 박스 세트 또한 <Jazz Train> 시리즈의 하나로 기획된 것이다. 사실 <Jazz Train> 시리즈는 애초부터 한꺼번에 기획되었다. 여러 명의 재즈 필자들이 감상자의 입장에서 명반을 레이블 별로 수십 장 선정하고 그 가운데 의견이 공유된 앨범들을 25장에서 30장씩 묶어 박스 세트에 담았다. 그러다 보니 한 명의 아티스트가 중복이 된다는 이유로, 특정 시대의 앨범이 집중된다는 이유로, 특정 스타일의 앨범이 집중된다는 이유로, 나아가 레이블이 다르다는 이유로 제외된 앨범들이 많았다. (여기에 박스 세트 수록이 허락되지 않은 앨범들도 있었다.)
이번 박스 세트는 그렇게 지난 재즈 기차를 타지 못한 앨범들에서 출발했다. 특별 열차라고나 할까? 남겨진 앨범들 가운데 30장을 골라 새로운 기차를 만든 것이다. 그렇다고 대충 아무렇게나 30장의 앨범을 선정하지는 않았다. 아쉽게도 이 과정에서 다시 한 번 기차를 타지 못한 앨범들이 많다.
그렇다면 선정기준이 뭐냐고? 바로 감상의 용이성이다. 되도록이면 재즈의 언어에 익숙하지 못한 사람들이 큰 부담을 느끼지 않을 법한 앨범들을 선정했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마냥 가볍고 대중적인 앨범만 골랐다는 것도 아니다. 보통 대중적인 재즈라 하면 많은 사람들은 1930년대를 풍미했던 스윙 재즈나 거의 R&B와 다름 없는 최근의 스무드 재즈를 떠올리곤 한다. 그런데 사실 이것 또한 편견이다. 재즈가 달콤한 것과 어려운 것이 있다고 했지만 그렇다고 특정 스타일의 재즈가 달콤하거나 어렵다고 말할 수는 없다. 스윙 안에도 달콤한 앨범과 어려운 앨범이 있으며 스무드 재즈에도 달콤한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이 있기 때문이다. 즉, 재즈의 편함과 어려움을 스타일을 단위로 나누면 안되고 앨범 단위로 나누어야 한다는 것이다. 재즈는 오랜 시간 공을 들여야 그 맛을 알 수 있다는 것은 따라서 어려운 앨범을 만났다고 포기하지 않고 나에게 듣기 편한 다른 앨범을 찾기 위한 노력을 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런 이유로 이번 기차에는 듣기에 어려움이 앨범을 기준으로 하는 동시 다양한 스타일을 담으려고 했다. 따라서 이번 한 장 한 장 앨범들을 들으면서 부족하지만 재즈의 역사를 이해할 수 있다. 어떻게 가능한지 한번 일괄해 보자.
재즈의 본격적인 역사는 뉴 올리언즈에서 시작되었다. 이 뉴 올리언즈 재즈는 1920년대에 커다란 인기를 얻었는데 루이 암스트롱은 이 시기를 주도한 스타 연주자 가운데 한 사람이었다. 특히나 그는 뉴 올리언즈 재즈를 떠나 재즈사에 아주 중요한 업적을 남겼다. 팝스(Pops)라 불릴 정도로 큰 인기를 얻었던 이 트럼펫 연주자는 본격적인 솔로 즉흥 연주의 길을 제시했다. 게다가 그의 즉흥 연주는 그 안에 하나의 서사를 지녔다. 또한 그는 특별한 가사 없이 두비두바~하는 식으로 흥얼거리는 스캣 창법을 처음으로 시도했다. 목소리를 악기처럼 사용할 수 있음을 보여준 이 창법은 후에 재즈 보컬의 기본 덕목으로 자리잡았다. 이러한 루이 암스트롱의 음악을 <Satchmo Serenades>에서 살펴볼 수 있다.
한편 스윙 시대를 거쳐-안타깝게 이번 박스 세트에는 스윙 시대의 앨범이 포함되지 않았다. 1940년대에 비밥이 등장했다. 이 비밥은 과감하게 원곡을 해체하고 다시 조립하고 여기에 즉흥적인 솔로 연주를 추가해 연주자의 개성을 드러내는, 이전 시대의 재즈와 비교했을 때 혁명적이기까지 했던 음악을 들려주었다. 그리고 이러한 연주 방식은 이후 쿨 재즈와 하드 밥을 거쳐 재즈의 가장 기본적인 언어로 자리잡았다.
아마도 재즈가 어렵다고 말하는 사람들의 대부분은 비밥과 그 즉흥 연주를 들었을 것이다. 하지만 한번에 알아채지 못해서 그렇지 비밥의 연주에도 테마는 분명히 존재한다. 클리포드 브라운과 막스 로치의 앨범 <Study In Brown>을 들어보자. 클리포드 브라운의 자작곡인 ‘Sandu’를 비롯한 수록곡에 선명한 멜로디를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설령 그 다음 이 테마 멜로디를 바탕으로 펼쳐지는 즉흥 연주가 이해 가지 않는다고 해도 상관 없다. 그저 테마가 마음에 들면 같은 곡의 다른 연주를 찾아 듣다 보면 조금씩 조금씩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외에 레이 브라운의 <Jazz Cello>나 빌리 미첼의 <This Is Billy Mitchell>같은 앨범을 들어보기 바란다.
비밥 시대의 연주자들은 즉흥적으로 만나 잼 세션을 펼치듯 연주하기를 즐겼다. 마치 비보이들의 춤 대결처럼 이들은 정해진 순서에 따라 자신의 기량을 뽐내거나 아예 동시에 연주하면서 서로의 차이를 드러내곤 했다. 그것은 서커스에 버금갈 정도의 짜릿함을 선사하곤 했는데 이것을 디지 길레스피의 <Sonny Side Up>에서 느낄 수 있다. 비밥의 탄생을 주도했던 이 트럼펫 연주자는 소니 롤린스와 소니 스팃, 공교롭게도 이름이 같은 두 명의 후배 색소폰 연주자들을 불러 즉흥적인 대결을 펼치게 했다. 그리고 자신은 심판처럼 이들 사이에서 적절히 긴장을 조율하는 역할을 담당했다. 한번 이를 확인해 보기 바란다. 아! 격렬한 연주가 펼쳐짐에도 각 곡 도입부의 테마를 파악한다면 그리 어렵다는 느낌은 들지 않을 것이다. 만역 어렵게 느껴진다면 결코 실망하지 말라. 박스 세트의 다른 앨범들을 듣고 이 앨범을 마지막에 들으면 된다.
재즈의 즉흥 연주를 조금이나마 편하게 받아들이기 위해서는 즉흥 연주의 출발점이 되는 테마를 잘 알면 좋다. 이 경우 이미 알고 있는 곡의 재즈 연주를 들으면 좋다. 이를 보다 쉽게 경험하고 싶다면 오스카 피터슨 트리오의 <West Side Story>를 들어보기 바란다. 클래식 지휘자로 유명한 레너드 번스타인이 만든 뮤지컬 음악을 연주한 앨범인데 이 원래의 뮤지컬 음악을 듣고 오스카 피터슨의 앨범을 듣는다면 어떻게 테마가 재즈로 바뀌었는지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 테마를 바탕으로 즉흥 연주가 어떻게 흘러가는지 알 수 있을 것이다.
만약 이 모두가 어렵다면 조금은 긴장이 완화된 앨범을 먼저 들어보면 좋겠다. 케니 버렐의 <Guitar Form>, 웨스 몽고메리의 <Tequila> 그리고 존 콜트레인의 <Ballads> 같은 앨범을 추천한다. 이들 앨범은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멜로디를 확실하게 드러내고 있으며 즉흥 연주 또한 그리 과격하지 않다. 그리고 무엇보다 분위기 자체가 어렵지 않다. 특히 존 콜트레인의 연주는 재즈의 달콤한 부분을 가장 이상적으로 들려준다. 흔히 말하는 카페에서 들리는 고급스러운 재즈의 표본이라고 할까?
즉흥 연주만큼이나 재즈의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것으로 블루스가 있다. 보통 블루스 하면 많은 사람들은 느리고 슬픈 음악을 생각하곤 한다. 하지만 실제 블루스 음악은 그렇지 않다. 빠른 템포로 가볍게 진행되는 블루스도 있다. 즉, 슬픈 블루스만큼이나 행복한 블루스도 있다는 것이다. 또한 재즈에서의 블루스는 음악을 진행하는 형식을 의미하기도 한다. 하나의 코드가 있으면 그 코드 다음에 어떤 코드가 나와야 하고 다시 그 다음에는 어떤 코드가 이어져야 한다는 규칙 같은 것이다. 재즈사를 빛낸 히트 곡들의 상당수는 블루스 형식을 따른 곡이 많다. 이를 위해 스윙 시대를 풍미한 빅 밴드의 리더 듀크 엘링턴과 그 밴드의 메인 색소폰 연주자였던 자니 호지스가 함께 한 <Back To Back>을 들어보기 바란다. 전곡이 블루스이기에 듣고 나면 블루스가 어떤 것인지 느낄 수 있을 것이다.
비밥 시대의 과격할 정도로 빠르고 화려한 즉흥 연주와 어려운 곡의 구조는 감상자들뿐만 아니라 연주자들 사이에서도 너무 어렵다는 평을 받았다. 특히 바닷가에 위치한 미국 서해안 쪽에서 활동하던 연주자들이 그랬다. 그래서 이들은 비밥의 방식을 따르지만 리듬을 조금은 순화시키고 즉흥 연주 또한 가벼이 한 재즈를 선보였다. 그것이 바로 쿨 재즈였다. 비밥의 뜨거운 분위기에 비해 서늘하고 나른한 맛을 주었던 이 쿨 재즈는 비밥으로 인해 멀어진 재즈의 인기를 다시 회복하는데 큰 역할을 했다. 특히 트럼펫 연주자이자 보컬이기도 했던 쳇 베이커의 인기가 대단했다. 이를 위해 <Baker’s Holiday>를 들어보기 바란다.
그런데 쿨 재즈를 들을 때 유의해야 할 점이 있다. 쿨 재즈는 비밥에 거북함을 느끼기는 했지만 그렇다고 비밥을 거부하지는 않았다는 것이다. 그래서 여러 연주자들이 쿨 재즈와 비밥을 오가는 연주, 어쩌면 쿨 밥이라 부를 수 있는 연주를 펼쳤다. 앨범도 마찬가지로 쿨 재즈와 비밥이 공존하는 앨범이 많다.
말했듯이 쿨 재즈는 미국의 웨스트 코스트를 중심으로 발전했다. 그래서일까? 스탄 겟츠 같은 색소폰 연주자는 바다 너머에 위치한 브라질의 음악에 관심을 가지고 이를 재즈와 결합시켰다. 그것이 바로 보사노바 재즈다. 보사노바는 삼바의 집단적이고 축제적인 스타일에 싫증을 느끼고 보다 개인적이고 실내적인 느낌의 음악을 원했던 안토니오 카를로스 조빔, 조앙 질베르토, 비니시우스 드 모라에스 등에 의해 1958년에 만들어졌다. 우리 말로 ‘새로운 물결’ 혹은 ‘새로운 파도’로 해석되는 이 보사노바는 브라질 청춘들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았다.
스탄 겟츠는 1963년 안토니오 카를로스 조빔과 조앙 질베르토와 그의 아내 아스트러드 질베르토를 미국으로 불러 <Getz/Gilberto>를 녹음했다. 이 앨범은 정말 새로운 파도가 되어 재즈계를 휩쓸었다. 미국은 물론 세계가 이 부드럽고 달콤한 음악에 매료되었다. 그래서 스탄 겟츠의 앨범에 참여한 아스트러드 질베르토와 안토니오 카를로스 조빔을 비롯하여 오르간 연주자 월터 원덜리, 기타 연주자 볼라 세테, 피아노 연주자 세르지오 멘데스와 그의 그룹 브라질 66등 많은 브라질 출신의 연주자와 보컬들이 미국으로 건너와 활동하며 인기를 얻었다. 이들의 앨범을 하나씩 들어보기 바란다.
재즈는 탄생 때부터 유럽에서도 인기를 얻었다. 유럽인들을 재즈를 통해서 미국의 모던한 삶을 이해하고 동경했다. 그래서 미국에서 온 연주자들에게 커다란 호의를 보이곤 했다. 이 때문에 미국 내에서의 인종차별에 지친 연주자들의 상당수가 유럽에 왔다가 그대로 자리를 잡는 일도 많았다. 그러면서 유럽의 젊은 연주자들과 함께 연주하면서 미국의 재즈를 유럽에 이식하기도 했다. 그 결과 처음에는 감상자의 차원에 머물렀던 유럽도 그들만의 재즈를 만들어 내기 시작했다.
유럽 연주자들은 처음에는 미국 연주자처럼 연주하려고 노력했다. 하지만 미국 문화에 뿌리를 둔 미국 재즈를 흉내는 낼 수 있을 지 몰라도 뛰어넘기는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래서 그들은 자신들이 할 수 있는 재즈를 고민하기 시작했다. 마침 유럽은 그들만의 민속 음악과 유서 깊은 클래식이 있었다. 그 결과 클래식을 재즈와 결합 시킨 신선한 재즈가 등장했다. 프랑스의 피아노 연주자 자끄 루시에가 이끄는 트리오의 <Play Bach No.1>과 역시 프랑스에서 결성된 스윙글 싱어즈의 <Anyone for Mozart, Bach, Handel, Vivaldi> 그 좋은 예이다. 이들의 음악은 미국재즈의 끈끈함과는 다른 깔끔한 사운드가 매력이다.
하드 밥에 이어 등장한 난해한 프리 재즈의 시대를 거쳐 1970년대 재즈는 퓨전 재즈의 시대를 맞았다. 이 퓨전 재즈는 당시 유행하던 록을 수용한 것으로 갈수록 변방으로 밀려나던 재즈에 새로운 인기를 가져다 주었다. 물론 그러면서 재즈가 본질을 잃고 상업적이 되어간다는 불평이 생기기도 했다. 하지만 언급했듯이 스타일 자체를 두고 좋다 나쁘다를 말할 수는 없다. 그 안에서도 대중적이면서도 음악적 진지함을 담보한 재즈가 있다. 기타 연주자이자 보컬인 조지 벤슨의 <The Other Side Of Abbey Road>가 좋은 예이다. 비틀즈의 <Abbey Road>를 퓨전 재즈 스타일로 재해석한 이 앨범을 두고 누가 단순히 상업적이라고만 할 수 있을까?
지금까지 이번 박스 세트를 통해 재즈의 역사를 이해할 수 있음을 피력해 보았다. 하지만 이것은 이 박스 세트를 감상하는 여러 방법 중의 하나일 뿐이다. 사실 재즈를 이해하는데 중요한 것은 현재 내가 좋아하는 음악 스타일에서 출발하는 것이다. 되도록이면 평소 듣던 음악과 커다란 차이가 없는 재즈부터 들어야 거부감, 이질감이 덜하다는 것이다. 이번 박스 세트를 두고 보면 현재 팝의 주류 중 하나를 이루고 있는 R&B 같은 음악을 좋아한다면 조지 벤슨의 <The Other Side Of Abbey Road>부터 시작하는 것이 한 방법일 것이다. 그리고 보사노바를 좋아한다면 여러 보사노바 앨범으로 시작하면 좋을 것이다. 특히 이번 박스 세트에는 재즈 밖에 위치한다고 할 수 있는 브라질의 싱어송라이터 카에타노 벨로주의 <A Foreign Sound>가 포함되었다. 어느 정도 재즈와 관련성이 있기에 고민 끝에 포함 시킨 것인데 만약 당신이 카에타노 벨로주를 위시한 브라질 음악을 좋아한다면 여기서 출발해 보사노바로 감상을 이어간다면 좋을 것이다. 그리고 웨스 몽고메리의 <Tequila>로 이어간다면 재즈 감상의 방향을 잡을 수 있으리라 본다.
루이스 프랑크의 <Viva Cuba>도 재즈가 아닌 순수한 쿠바 음악을 담고 있다. 그래서 마지막까지 이 앨범을 두고 고민을 거듭했다. 하지만 재즈 애호가의 상당수가 월드 뮤직, 특히 라틴 음악을 좋아한다는 것을 고려해 포함시킬 것을 결정했다. 사실 라틴 음악은 재즈사의 초기부터 재즈와 깊은 관련을 맺었다. 특히 비밥 시대의 주연 디지 길레스피는 쿠바 음악을 재즈와 결합한 아프로 쿠반 재즈를 개척하기도 했다. 그래서 재즈를 오래 듣다보면 저절로 쿠바와 브라질을 비롯한 라틴 음악에 관심을 갖게 된다. 따라서 쿠바의 음악적 전통을 계승하는 루이스 프랑크의 앨범도 충분히 호응을 얻으리라 본다. 게다가 쿠바 음악을 비롯한 라틴 음악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이 앨범을 통해 재즈로 들어가는 기회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이를 보완하기 위해 찰리 헤이든의 <Nocturne>을 이번 기차에 함께 실었다. 이 앨범에는 쿠바의 음악 가운데 볼레로를 기초로 한 아름다운 발라드 연주가 담겨 있다. 따라서 루이스 프랑크의 손(Son) 스타일의 노래와 함께 들으면 쿠바 음악과 재즈의 상관 관계를 이해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많은 사람들이 재즈를 어려워하는 이유 중의 하나에는 재즈가 연주 중심의 음악이라는 것도 있다. 그리고 그 연주가 다양한 변주로 가득하다는 것이 재즈를 어렵게 느끼게 한다. 실제 재즈가 아니더라도 가사가 있는 노래가 이해하기에는 더 쉬운 것이 사실이다. 그래서 보컬 재즈부터 듣는 것도 재즈와 친해지는 좋은 방법이다.
이번 박스 세트에도 보컬 앨범이 여럿 수록되었다. 루이 암스트롱의 <Satchmo Serenades>부터 재즈 보컬의 3대 디바(Diva)의 앨범, 그러니까 (루이 암스트롱과) 엘라 핏제랄드의 <Ella & Louis>, 사라 본의 <Sarah Vaughan With Clifford Brown>, 빌리 할리데이의 <Songs for Distingué Lovers>가 담겨 있다. 이들 앨범을 통해 세 여성 보컬의 개성을 살펴보기 바란다. 이 외에 흑인적 감성을 잘 표현했던 니나 사이먼의 <Don’t Let Me Be Misunderstood>, 벨벳 풍의 목소리를 들려주는 백인 여성 보컬 헬렌 메릴의 <Helen Merrill With Clifford Brown>, 팝적인 느낌이 가미된 현대 여성 보컬 로라 피기의 <Bewitched> 등이 재즈 보컬의 기본을 맛보게 해준다. 또한 아스트러드 질베르토의 <The Shadow Of Your Smile>과 세르지오 멘데스와 브라질 66의 <Look Around>는 라틴 보컬의 매력을 느끼게 해준다. 또한 조지 벤슨의 <The Other Side Of Abbey Road>는 팝 쪽에 경도된 보컬의 모습을, 스윙글 싱어즈의 <Anyone for Mozart, Bach, Handel, Vivaldi>는 클래식과 재즈의 중간에 위치한 청량한 아카펠라의 진수를 맛보게 한다.
이들 보컬 앨범에 담긴 곡들의 대부분은 빈번하게 연주되는 곡들이다. 재즈에서는 이를 스탠더드 곡이라 부른다. 오랜 시간에 걸쳐 연주되거나 노래되는 이 곡들은 한 연주자와 다른 연주자들의 차이를 비교하거나 재즈내의 다양한 스타일을 구분하는 기준이 되곤 한다. 따라서 보컬 앨범을 들으며 스탠더드 곡들의 테마를 익힌다면 이후 연주곡을 들을 때 큰 도움을 받을 수 있을 것이다.
다시 말하지만 재즈를 포함하여 그리 익숙하지 않은 장르의 음악을 들을 때는 한 장의 앨범이나 하나의 곡을 들은 후에 그 다음에 들을 앨범과 곡을 찾을 수 있어야 그 장르 안으로 들어갈 수 있다. 이 박스 세트는 다양한 방식으로 하나의 앨범이 아닌 그 다음을 찾을 수 있도록 해준다. 게다가 어려운 맛이 덜해 다음으로 이어가기가 편하다. 따라서 재즈를 잘 모르는 사람이 겉으로 보기에는 특별한 방향 없이 여러 앨범들을 중구난방(衆口難防)으로 실은 것 같은 이 박스 세트를 다 듣고 나면 재즈를 사랑하게 될 것이다. 그래서 앞서 발매된 <Jazz Train> 시리즈로 감상을 이어가리라 확신한다.
CD1 Satchmo Serenades: Louis Armstrong (Decca 1952)
루이 암스트롱은 재즈를 이야기할 때 제일 먼저 언급되어야 하는 인물이다. 1920년대 뉴 올리언즈 재즈 시대부터 인기를 얻기 시작한 이 트럼펫 연주자는 재기 넘치는 즉흥 솔로 연주로 이후 재즈가 나가야 할 길을 제시했다. 또한 특별한 가사 없이 자유로이 흥얼거리는 스캣 창법을 개발하여 목소리 또한 솔로 악기처럼 사용될 수 있음을 보여주었다. 그의 성격만큼이나 낙관적이고 유쾌한 노래 또한 재즈를 넘어서는 큰 사랑을 받았다. 그 결과 그는 ‘팝스(Pops)’라는 별명을 얻기도 했다. 즉, 팝 음악 그 자체라는 것이다. 실제 그는 큰 인기로 세계 곳곳을 돌며 재즈 대사 역할을 하기도 했다. 한국에서도 1963년에 2주간 머물며 공연을 하기도 했다.
그는 팝스라는 별명 외에 큰 입으로 인해 사치모(Satchmo)라는 별명으로도 불리곤 했다. 따라서 이 앨범의 타이틀은 ‘그가 노래하는 세레나데’라는 것인데 그에 걸맞게 미디엄 템포 이하의 낭만적인 발라드가 앨범을 채우고 있다. 그리고 이 곡들은 재즈를 넘어 팝 음악 그 자체로 여겨졌던 루이 암스트롱의 대중적인 매력을 가장 잘 보여준다. 특히 ‘A Kiss To Build A Dream On’, ‘La Vie En Rose’, ‘C’est Si Bon’, ‘Kiss Of Fire’같은 곡들은 영화는 물론 다양한 컴필레이션 앨범에 단골로 수록될 정도로 대중적인 사랑을 받고 있다.
이 앨범은 애초에 1949년부터 1951년 사이에 녹음된 곡들을 모아놓은 것이었다. 하지만 CD로 재 발매되면서 1952년과 1953년 사이에 녹음된 곡들 가운데 오리지널 앨범과 유사한 분위기의 곡들이 추가되었다.
CD2 Ella And Louis : Louis Armstrong & Ella Fitzgerald (Verve 1956)
엘라 핏제랄드는 빌리 할리데이, 사라 본과 함께 재즈 보컬의 3대 디바로 꼽힌다. 1934년 아폴로 극장에서 있었던 아마추어 노래 경연 대회에서 우승하면서 본격적인 재즈 보컬로서의 삶을 시작했던 그녀는 폭 넓은 음역과 루이 암스트롱의 영향을 받은 화려한 스캣 창법, 그리고 빠른 템포에서도 잃지 않는 경쾌한 리듬감과 흐트러짐 없는 음감으로 재즈 보컬이 갖추어야 할 덕목의 표준을 제시했다. 그 결과 재즈계의 ‘퍼스트 레이디’라는 호칭을 얻기도 했다.
그녀는 자신의 실제 삶은 고단했지만 어떠한 노래이건 간에 즐겁고 행복한 분위기로 노래하기를 즐겼다. 이것은 선배 루이 암스트롱의 낙관적인 정서와 통하는 것이었다. 이것은 명 제작자 노먼 그란츠에게도 느껴졌던 모양이다. 그는 1956년 버브 레이블을 설립하면서 당시 데카 레이블에서 활동하고 있었던 엘라 핏제랄드를 영입했다. 그리고 곧바로 루이 암스트롱과의 듀오 앨범을 기획했다.
그 결과는 대성공이었다. 발라드 곡으로 이루어진 이 앨범에서 엘라 핏제랄드의 부드럽고 달콤한 목소리와 루이 암스트롱의 거칠고 구수한 목소리는 서로 상반된 질감에도 불구하고 아름답게 어울렸다. 그것은 때로는 사랑에 빠진 연인들의 모습으로 때로는 사이 좋은 부녀의 모습으로 다가왔다. 한편 오스카 피터슨이 이끄는 쿼텟의 넉넉하고 여유로운 연주도 앨범의 낭만성을 높인다.
이 앨범의 성공에 힘 입어 두 사람은 이듬해 다시 모여 <Ella & Louis Again>과 <Porgy & Bess>를 녹음했다.
CD3. Songs for Distingué Lovers : Billie Holiday (Verve 1957)
재즈 보컬의 3대 디바 가운데 한 명인 빌리 할리데이는 큰 인기만큼 매우 불행한 삶을 살았던 인물이다. 그녀의 삶은 가난했던 어린 시절, 불행한 결혼 생활, 인종 차별, 알코올과 마약 중독으로 채워졌다. 그녀의 삶에서 불행과 상관 없던 부분은 오로지 노래할 때뿐이었다.
1957년 1월 그녀는 벤 웹스터(색소폰), 바니 케셀(기타), 해리 스윗 에디슨(트럼펫) 등의 연주자가 참여한 섹스텟을 이끌고 5일에 걸쳐 앨범 석장 분량의 곡들을 노래했다. 이 곡들은 석 장의 앨범 <Body & Soul>, <Songs for Distingué Lovers>, <All Or Nothing At All>에 나뉘어 1957년과 1958년에 걸쳐 발매되었다.
앨범 <Songs for Distingué Lovers>는 1957년 1월의 녹음 중에서 6곡을 담고 있다. 1957년 당시 빌리 할리데이의 목소리는 이미 마약으로 인해 거칠어진 상태였다. 그렇다고 말기의 <Lady In Satin>처럼 완전히 무너진 것은 아니었다. 목소리는 많이 어두워졌지만 노래 자체는 아직 어두워지지 않았다. 보통의 삶이 경험을 통해 성숙해지듯 그녀의 노래는 40대에 들어선 여인의 넉넉함, 대가의 여유로 가득했다. 지미 로울스(피아노)가 이끄는 리듬 섹션의 연주도 결코 어둠으로 떨어지지 않았다. 마약과 순탄치 않은 결혼 생활로 파국을 향하던 삶이었지만 새해의 첫 달이 주는 막연한 희망의 기운을 그녀 또한 받았던 것일까? 하지만 1년 후 녹음하게 되는 마지막 앨범 <Lady In Satin>에서 그녀는 상실로 가득한 노래를 하게 된다.
한편 이 앨범은 CD에 와서 1957년 녹음 중 다른 앨범에 수록된 6곡을 추가로 넣어 재발매 되었다.
CD4. Sarah Vaughan – Sarah Vaughan With Clifford Brown (Emarcy 1954)
재즈 보컬의 3대 디바 가운데 한 명인 사라 본은 폭 넓은 음역과 깊은 곳에서 나오는 비브라토를 적절히 활용한 노래로 음악적으로나 대중적으로나 높은 사랑을 받았다. 그녀는 1942년 18세의 나이로 재즈계에 뛰어든 이후 10년간 활동하면서 최고의 보컬로 자리잡았다. 이에 힘입어 1953년 머큐리 레이블과 계약을 맺는데 이와 함께 상업적인 색채가 강한 앨범은 머큐리 레이블에서 보다 재즈적인 깊이를 추구한 앨범은 산하에 있던 엠아시 레이블에서 녹음했다.
1954년 트럼펫 연주자 클리포드 브라운과 함께 엠아시 레이블에서 녹음한 이 앨범은 지금까지 사라 본 최고의 앨범으로 평가 받고 있다. 실제 앨범에서 그녀는 ‘Lullaby Of Birdland’, ‘April In Paris’, ‘September Song’등을 노래하면서 완숙의 경지에 이른 깊이와 기교를 들려주는 동시에 젊음의 싱그러움을 느끼게 해준다. 특히 ‘Lullaby Of Birdland’는 이후 그녀를 대표하는 곡이자 재즈 보컬의 결정적인 버전으로 자리잡았다. 앨범 또한 그녀를 이야기할 때 제일 먼저 언급되는 앨범이 되었다.
여기에 클리포드 브라운의 트럼펫 연주에도 귀를 기울일 필요가 있다. 그는 따스하면서도 자신감 넘치는 톤으로 사라 본과 대화를 하거나 그녀의 노래를 부드럽게 감싸는 연주를 들려준다. 그래서 이 앨범은 단지 사라 본의 뛰어난 노래 하나 때문이 아니라 전체 사운드의 훌륭함 때문이라 할 수 있겠다.
한편 앨범은 처음 발매되었을 당시에는 사라 본의 이름으로만 발매되었다. 하지만 앨범을 녹음하던 당시에는 막 주목 받기 시작했던 클리포드 브라운이 13개월 뒤 교통 사고로 세상을 떠나 전설로 남게 되자 재발매 되는 과정에서 앨범 타이틀이 바뀌게 되었다.
CD5. Don’t Let Me Be Misunderstood : Nina Simone (Philips 1989)
니나 사이먼은 재즈 보컬의 역사에서 3대 디바 다음의 자리를 차지할 만한 인물이다. 그녀는 여자로서는 가장 낮은 음악대에 해당하는 콘트랄토 보이스를 지녔다. 그래서 종종 중성적인 느낌을 주기도 한다. 한편 그녀는 재즈는 물론 가스펠, 블루스, 소울을 소화하며 다른 누구보다 흑인적인 정서를 표현할 줄 알았다. 후기에는 팝 성향의 곡들을 노래했는데 그 속에서도 흑인의 깊은 슬픔을 그대로 느낄 수 있다.
또한 그녀는 인종차별적인 이유로 클래식 피아노 연주자의 삶을 포기하게 된 경험을 바탕으로 마틴 루터 킹 목사가 주도했던 흑인 인권 운동에 깊은 관심을 보였고 그래서 1964년 필립스 레이블로 이적한 뒤에는 사회 참여적인 노래를 종종 부르기도 했다. 그리고 70년대에는 베트남 전쟁 반대를 계기로 미국을 떠나 유랑을 하다가 프랑스에서 세상을 떠나야 했다.
이제는 버브 레이블로 통합된 필립스 레이블에서의 활동은 약 3년에 지나지 않았지만 이 기간 동안 그녀는 음악 인생에서 최 전성기였다 싶을 정도로 여러 인기곡을 노래했다. 후에 록 그룹 애니멀스가 다시 불러 인기를 얻게 되는 타이틀 곡을 비롯하여‘Wild Is The Wind’, ‘Love Me or Leave Me’, ‘Strange Fruit’, ‘I Loves You, Porgy’, ‘I Put A Spell On You’, ‘Black Is the Color of My True Love’s Hair’ 등 그녀를 대표하는 곡들 대부분이 이 시기에 발표되었다. 이들 곡들을 그녀는 재즈, 블루스, 가스펠, 소울 등으로 바꾸는 한편 묵직한 저음과 절규하는 듯한 목소리로 흑인의 고난하고 끈끈한 정서를 표현했다.
이 앨범은 1989년에 발매된 것으로 화려했던 필립스 레이블에서의 활동을 정리한 것이다.
CD6. Helen Merrill With Clifford Brown : Helen Merrill (EmArcy 1954)
헬렌 메릴은 부드러우면서도 섬세한 결이 느껴지는 벨벳풍의 따스한 목소리로 사랑을 받았던 백인 여성 보컬이다. 하지만 그는 보통 블론디 보컬이라 불리는 다른 백인 여성 보컬들과는 달리 음악적 모험을 즐겼다. 그녀는 14세의 나이로 브롱크스의 재즈 클럽에서 노래를 하게 되면서 본격적인 재즈 보컬의 삶을 시작했지만 자신의 이름을 건 솔로 앨범을 녹음하기까지엔 그로부터 10년을 기다려야 했다.
1954년 12월 엠아시 레이블과 막 계약을 맺은 그녀는 자신의 첫 앨범 녹음에 들어갔다. 그녀가 노래할 곡은 당시 21세였던 퀸시 존스였는데 그는 그 무렵 트럼펫의 새로운 강자로 부상하던 클리포드 브라운을 세션에 기용했다. 이 트럼펫 연주자는 4일 전에 사라 본의 전설적인 앨범을 녹음한 상태였다. 그렇게 모인 세 명의 젊은이들이 모여 이틀에 걸쳐 녹음한 앨범은 재즈사에 길이 남을 명반이 되었다.
헬렌 메릴은 ‘Don’t Explain’에서 확인할 수 있듯이 빌리 할리데이의 슬픈 정서를 반영한 듯 하면서도 이를 부드럽게 순화하며 그녀만의 개성을 드러냈다. 이러한 신비한 위로의 느낌은 ‘What’s New’, ‘Born To Be Blue’등으로 이어지며 앨범 전체를 지배했다. 그 결과 이 첫 앨범은 지금까지도 그녀를 대표하는 앨범으로 꼽히고 있다.
클리포드 브라운의 트럼펫 연주도 마찬가지였다. 그 또한 보컬만큼이나 둥글고 따스한 톤으로 서정적인 연주에 주력했다. 며칠 전 사라 본과 함께 했을 때와 따스한 톤은 같지만 다른 느낌의 연주였다. 이를 위해서는 이번 박스 세트에 함께 수록된 사라 본의 앨범 <Sarah Vaughan With Clifford Brown>을 비교 감상해 보기 바란다.
CD7. Study In Brown : Clifford Brown & Max Roach (EmArcy 1955)
재즈사에는 요절한 천재적인 연주자들이 많다. 트럼펫 연주자 클리포드 브라운도 그 중 한 명이다. 그는 25세의 나이에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났는데 이 사고만 아니었다면 재즈사가 마일스 데이비스를 중심으로 흐르지 않을 수도 있었다는 가정을 하게 만들 정도로 뛰어난 음악적 능력을 보여주었다. 실제3년 정도의 짧은 시간 동안 남긴 그의 앨범들은 거침 없이 질주하며 내일을 꿈꾸었던 젊은 트럼펫 연주자의 비전을 담고 있다.
그는 드럼 연주자 막스 로치와 함께 활동하곤 했다. 특히 두 사람이 해롤드 랜드(색소폰), 리치 파웰(피아노), 조지 모로우(베이스) 등과 이루었던 퀸텟은 클리포드 브라운 개인의 역량만큼이나 안정적이고 뛰어난 연주를 남겼다. 이 퀸텟은 1954년 8월과 이듬해 2월에 걸쳐 두 번의 스튜디오 세션을 가졌고 이것은 다섯 장의 앨범으로 정리되어 있다. 그 가운데 이 앨범은 1955년 2월에 녹음된 연주를 담고 있는 것으로 만개하기 시작한 트럼펫 연주자의 모습을 보여준다. 실제 따뜻하고 둥근 톤, 빠르고 열정적인 솔로와 돋보이는 멜로디 감각은 당대 최고라 할만한 것이었다. 특히 막스 로치의 긴장 넘치는 드럼 연주로 시작되는‘Cherokee’에서 보여준 과감한 솔로는 지금까지도 재즈사를 빛낸 명연의 하나로 기억되고 있다. 한편 그는 연주력만큼이나 작곡에서도 뛰어난 솜씨를 발휘하곤 했다. 이 앨범에서도 4곡의 자작곡을 선보이고 있는데 하나같이 간결하면서도 귀에 쏙 들어오는 멜로디를 지녔다. 그 가운데‘Sandu’는 지금까지도 여러 연주자들에 의해 연주되는 재즈 스탠더드 곡이 되었다.
CD8. Sonny Side Up – Dizzy Gillespie, Sonny Stitt & Sonny Rollins (Verve 1958)
재즈는 순간을 매우 중요하게 생각한다. 즉흥 연주 때문이다. 특히 재즈의 즉흥성이 가장 멋지게 빛났던 비밥 시대에는 스튜디오 앨범 녹음도 종종 즉흥적인 잼 세션 스타일로 녹음했다. 특히 색소폰 연주자간의 배틀(Battle)은 재즈계의 화제가 되곤 했다.
찰리 파커와 함께 비밥 혁명을 주도했던 트럼펫 연주자 디지 길레스피는 1957년 아직 30도 안된 나이였지만 재즈계의 선배로서 신예 연주자들을 이끄는 위치에 있었다. 이 해 12월 그는 최고의 인기를 얻고 있었던 색소폰 연주자 소니 롤린스와 이제 막 떠오르던 신예 색소폰 연주자 소니 스팃과 각각 퀸텟 편성으로 앨범 <Duets>를 위한 녹음을 한 후, 며칠 뒤 이 두 연주자를 불러 잼 세션 형식의 앨범을 녹음하기로 했다. 그래서 녹음 전에 두 연주자의 경쟁심을 부추긴 후 앨범을 녹음했다. 그 결과 1940년 동갑내기 색소폰 연주자간의 숨막히는 주고 받는 연주가 펼쳐졌다. ‘I Know That You Know’같은 곡이 대표적이다. 그렇다고 그 경쟁이 과한 것은 아니었다. 디지 길레스피의 트럼펫이 중간에서 이들의 열기를 조정하고 때로는 함께 자신의 트럼펫에 대응하도록 했기 때문이다. 특히‘The Eternal Triangle’은 빠른 속주를 펼치는 가운데 긴밀한 호흡을 유지하는 세 연주자의 관계를 상징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연주자들이 한 자리에 모여 부담 없이 자신의 실력을 뽐내는 잼 세션의 형식은 그대로 유지되었다. 서로 넉넉한 솔로를 이어가는‘After Hours’, 후반부에 디지 길레스피의 유쾌한 보컬이 추가된‘On The Side Of The Street’가 그렇다.
CD9. Back To Back : Duke Ellington & Johnny Hodges (Verve 1959)
듀크 엘링턴은 스윙 시대를 대표하는 인물이다. 특히 그의 오케스트라는 재즈가 가장 인기 있었던 1930년대를 넘어 오랜 시간 동안 사랑을 받았다. 여기에는 연주자를 적재적소에 활용하는 그의 편곡이 큰 역할을 했다. 그는 편곡 단계에서부터 특정 솔로 연주자를 상정하곤 했다. 색소폰 연주자 자니 호지스는 바로 듀크 엘링턴이 가장 아꼈던 솔로 연주자였다.
한편 듀크 엘링턴은 빅 밴드를 이끌면서도 종종 소편성 앨범을 녹음하곤 했다. 그 가운데 자니 호지스와는 섹스텟 편성으로 두 장의 앨범을 녹음했다. 그런데 겉으로는 듀크 엘링턴과 자니 호지스의 이름을 걸긴 했지만 실제 연주는 색소폰 연주자가 주인공이고 피아노 연주자는 이를 지원하는 형식을 띠었다. 자니 호지스의 색소폰과의 조화에는 악기 특성상 해리 스윗 에디슨의 트럼펫이 더 큰 역할을 했다. 이 앨범에서도 마찬가지. 한편 이 앨범은‘Play The Blues’라는 앨범의 부제가 말하듯 블루스 곡만 연주되었다는 것이 특이하다.
재즈에서 블루스는 단순히 우울한 정서를 지닌 곡을 의미하지 않는다. 그보다는 특별한 패턴의 코드 진행으로 이루어진 음악적 형식으로서의 의미가 강하다. 따라서 우울한 블루스 외에 밝고 유쾌한 정서의 블루스가 가능하다. 실제 이 앨범에 담긴 듀크 엘링턴과 자니 호지스의 블루스는 낙천적이고 낭만적인 블루스, 여유롭고 편안한 블루스이다. 또한 이 블루스 곡들은 비록 섹스텟으로 축소되었지만 듀크 엘링턴 오케스트라에서 맛볼 수 있었던 밝고 경쾌한 사운드의 연장이기도 하다.
CD10. This Is Billy Mitchell : Billy Mitchell (Verve 1962)
재즈는 늘 새로운 지점을 찾아 앞으로 나아가려 하고 그럴 때마다 불세출의 뛰어난 스타일리스트가 이를 이끌곤 한다. 재즈의 역사에 기록되는 인물들은 주로 이러한 혁신가들이다. 하지만 재즈의 역사가 지속될 수 있었던 것은 평범해 보이는 다수의 연주자들이 재즈의 두께를 두텁게 했음을 기억해야 한다. 색소폰 연주자 빌리 미첼은 재즈사에서 그렇게 주목 받았던 인물은 아니다. 아마도 이번 박스 세트에 담긴 앨범 주인들 가운데 가장 지명도가 낮은 인물이 아닐까 싶다.
캔자스 출신으로 1940년대부터 전문 연주자의 길을 걷기 시작했지만 그 활동은 그렇게 인상적이지 않았다. 디지 길레스피, 우디 허먼, 카운트 베이시 등의 빅 밴드 멤버나 밀트 잭슨, 태드 존스, 토니 베넷 등의 사이드맨으로 활동했을 뿐이다. 그러다가1960년대에 접어들어서야 그는 자신의 리더작을 녹음할 수 있었다. 또한 이 앨범들은 아쉽게도 그리 주목을 받지 못했다. 1962년에 녹음된 이 앨범도 마찬가지.
아직 떠오르기 직전의 신예였던 바비 허처슨(비브라촌)을 비롯하여 데이브 번스(트럼펫), 빌리 왈라스(피아노) 등 그만큼이나 잘 알려지지 않은 연주자들과 함께 한 이 앨범에서 색소폰 연주자는 당시를 지배하고 있던 하드 밥을 따른 사운드를 들려준다. ‘Automation’, ‘Siam’같은 곡이 대표적. 한편 ‘J&b’, ‘Sophisticated Lady’, ‘just Waiting’등 에서는 피아노와 트럼펫을 빼고 슬리피 앤더슨이라는 역시 잘 알려지지 않은 오르간 연주자를 기용한 쿼텟 연주를 들려주는데 이 부분에서는 소울 재즈의 향취가 느껴지기도 한다.
분명 당대에는 평범한 앨범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시간이 흐른 지금 들으면 연주에 담긴 하드 밥 시대의 정신에 향수를 느낄 수 있는 앨범, 그래서 다시 바라보게 되는 앨범이다.
CD11. Jazz Cello : Ray Brown (Verve 1960)
레이 브라운은 베이스 하면 제일 먼저 언급되는 인물이다. 그의 단단하면서도 탄력 넘치는 톤과 안정적인 스윙감은 이후 많은 연주자들의 모범이 되었다. 그만큼 한때 그의 아내이기도 했던 엘라 핏제랄드를 비롯하여 행크 존스, 블로섬 디어리, 프랑크 시나트라, 모던 재즈 쿼텟, 찰리 파커같은 유명 연주자들이 그를 찾았다. 특히 오스카 피터슨 트리오의 멤버로 여러 명반을 녹음했다.
그는 자신의 이름으로도 수 많은 앨범을 녹음했다. 나이가 들수록 오히려 그는 더 많은 앨범을 녹음했다. 그 가운데 이 앨범은 오스카 피터슨 트리오의 멤버로 활동하던 1960년에 녹음된 것이다. 그런데 베이스 연주는 조 몬드라곤에게 맏기고 자신은 첼로를 연주했다는 것이 흥미롭다. 어느 날 먼저 첼로에 관심이 있었던 동료 베이스 연주자 키터 베츠가 그의 집에 놓고 간 첼로를 시험 삼아 연주해 본 것이 계기가 되어 꾸준히 연습한 끝에 첼로 앨범을 녹음하게 되었다고 한다.
그렇게 녹음된 앨범에서 그는 기타의 가장 낮은 음역대와 베이스의 가장 높은 음역대 사이에 자리잡은 첼로의 특성을 적극 활용하여 사운드의 전면에 나서서 솔로를 펼쳤다. 그리고 그 솔로는 베이스보다 높은 음역대에서 이루어진 만큼 산뜻하고 경쾌했다. 또한 기존 베이스 연주에서처럼 피치카토 주법으로 일관했지만 멜로디를 훨씬 더 선명하게 드러냈다. 한편 레이 브라운의 솔로 연주 외에 첼로의 가볍고 경쾌한 움직임에 맞춘 밥 쿠퍼, 폴 혼, 지미 로울스 등이 참여한 빅 밴드의 연주 또한 인상적이다. 러스 가르시아의 편곡에 맞추어 10명의 연주자들이 레이 브라운과 호흡을 맞췄는데 첼로 솔로만큼이나 청량한 질감은 웨스트 코스트 재즈의 매력을 그대로 반영한 것이었다.
CD12. West Side Story : Oscar Peterson (Verve 1962)
오스카 피터슨은 듀크 엘링턴이 재즈 피아노의 제왕이라 불렀을 정도로 재즈 피아노의 한 획을 그었던 중요한 연주자이다. 그는 전광석화(電光石火)만큼이나 빠른 기교와 그럼에도 잃지 않는 스윙감, 그리고 내재된 낭만성으로 대중적 사랑을 받았다. 캐나다 출신인 그는 1949년 몬트리올의 재즈 클럽에서 연주하고 있던 중 명 제작자 노먼 그란츠에 발견되어 미국에 진출할 수 있었다.
1950년대 대부분을 레이 브라운(베이스), 허브 엘리스(기타)가 함께 한 트리오로 활동했던 그는 1958년 허브 엘리스가 떠나자 약간의 방황기를 거쳐 1959년 드럼 연주자 에드 티그펜을 영입해 새로운 트리오를 결성했다. 이 새로운 트리오는 수 많은 명반을 녹음했다. 특히 스탠더드 곡을 정리라도 하려는 듯 작곡가별로 10장의 송북 앨범을 1959년 한 해에 녹음하기도 했다.
이 앨범은 레너드 번스타인이 작곡한 뮤지컬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의 곡들을 연주한 것이다. 트리오가 이 앨범을 녹음하게 된 것은 뮤지컬 보다는 석 달 전에 개봉했던 영화의 인기가 대단했기 때문이었다. 말하자면 상업적인 이유가 작용했다는 것인데 그렇다고 오스카 피터슨은 자신의 스타일을 버리지 않았다. 그 스스로가 당대의 인기 피아노 연주자였던 만큼 레너드 번스타인의 곡들을 그만의 밝고 산뜻한 스타일로 자신 있게 바꾸어 연주했다. 그 결과 ‘Jet Song’이나 ‘I Feel Pretty’는 물고기가 수면 위로 튀어 오르는 듯 싱그럽게 연주되었고 ‘Maria’나 ‘Somewhere’는 사랑스럽게 연주되었다. 그러니까 이 앨범에서만큼은 현대판 로미오와 줄리엣은 비극이 아닌 행복한 이야기가 된 셈이다.
CD13. Baker’s Holiday : Chet Baker (EmArcy 1965)
쳇 베이커는 웨스트 코스트 재즈 혹은 쿨 재즈를 대표했던 트럼펫 연주자이자 보컬이다. 또한 그는 재즈계의 제임스 딘이라 불릴 정도로 수려한 외모와 모성애를 자극하는 듯한 노래와 연주로 큰 인기를 얻었다. 하지만 평생 마약에 빠져 자기 파괴의 길을 걷다가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의 한 호텔에서 원인 불명의 추락으로 세상을 떠난 비운의 인물이기도 하다.
그는 트럼펫 연주에 있어서도 자기만의 개성을 지녔지만 보컬이 더 많은 주목을 받았다. 특히 그 스스로 기획했던 1956년도 앨범 <Chet Baker Sings>는 프랑크 시나트라로 대표되는 중저음의 크루너 보컬과는 다른, 그 누구의 영향도 받지 않은 쳇 베이커만의 담백하고 감성적인 보컬을 담고 있어 큰 인기를 얻었다. 그럼에도 그는 보컬 이전에 트럼펫 연주자로 자신을 자리 매김하고 싶어했다. 노래는 보조적인 것이었다. 따라서 1965년 그가 재즈 보컬의 3대 디바 중 하나였던 빌리 할리데이를 추모하는 앨범을 녹음한 것은 의외였다.
이 앨범은 빌리 할리데이를 주제로 한 만큼 평소 그녀가 즐겨 노래했던 곡들로 이루어졌다. ‘Travellin’ Light’을 시작으로 ‘You’re My Thrill’, ‘Don’t Explain’ 등의 곡들이 쳇 베이커에 의해 새로이 노래되거나 연주되었다. 그런데 빌리 할리데이를 생각했다고 하지만 그 분위기는 그렇게 디바의 슬픈 삶이 묻어나지 않는다. 지미 먼디의 편곡에 기초한 그만의 나른한 보컬과 이 시기에 그가 주로 연주했던 부드러운 플뤼겔혼이 전체를 지배한다. 따라서 빌리 할리데이의 고난했던 삶에 대한 또 다른 어려운 삶을 앞두고 있었던 젊은 연주자의 위로로 이해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
CD14. Guitar Form : Kenny Burrell (Verve 1965)
케니 버렐은 굴곡 없이 꾸준한 모습으로 재즈 기타의 전형을 든든하게 유지한 연주자이다. 그렇다고 개성이 없다는 것은 아니다. 뛰어난 스윙감과 빠른 연주에서도 과장하지 않는 절제미, 담백하고 명료한 톤, 유려한 리듬감은 다른 연주자들과 구분되는 그만의 매력이었다. 또한 솔로 연주만큼이나 다른 연주자들을 빛나게 하는 조연 역할에도 뛰어나 많은 연주자들의 인정을 받았다. 여기에는 필요에 따라 탄력적으로 반응하는 그의 능력 때문이었다.
1954년 12월과 1965년 4월에 녹음된 이 앨범은 케니 버렐이 지닌 다채로운 모습을 보여준다. 이 앨범에서 그는 일렉트릭 기타와 어쿠스틱 기타를 오가며 탁월한 블루스적인 감각을 가미한 재즈 기타의 전형적인 연주부터 클래식, 라틴 스타일의 연주까지 다양한 모습을 보여준다. 앨범 타이틀은 이처럼 스타일을 아우르는 그의 연주력을 의미한다.
이를 위해 그는 마일스 데이비스와의 앨범 편곡으로 유명한 길 에반스에게 편곡과 밴드의 지휘를 맡겼다. 길 에반스는 기타 연주자의 다양한 모습을 부각시키기 위해 그 또한 편곡에 있어 빅 밴드만을 고집하지 않았다. 블루스적 색채가 강한 ‘Downstairs’, 라틴 타악기가 돋보이는‘Breadwinner’처럼 소규모 편성으로 녹음된 곡들이 이를 말한다. 나아가 원래 거쉰이 피아노를 위해 만들었던 ‘Prelude No.2’는 기타 솔로로만 연주하게 했다. 그래도 앨범에서 가장 인상적인 곡이라 한다면 10분여에 이르는 ‘Lotus Land’가 될 것이다. 길 에반스만의 긴장과 나른함을 교차시킨 편곡과 케니 버렐의 클래시컬한 기타의 어울림은 마일스 데이비스의 <Sketch Of Spain>(1960)의 케니 버렐식 답변이라 할만하다.
CD15. Ballads : John Coltrane (Impulse! 1962)
색소폰 연주자 존 콜트레인은 이 시대 대부분의 색소폰 연주자들이 추앙할 정도로 뛰어난 열정과 감성으로 진보적인 연주를 펼쳤다. 특히 1960년의 <Giant Steps>와 1961년의 <My Favorite Things>는 그의 음악이 하드 밥 시대를 마감하고 아방가르드로 이행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었다. 실제 이후 그의 음악은 자유로우며 종교적이다 싶을 정도로 영적인 맛이 느껴지는 방향으로 나아간다.
하지만 임펄스 레이블의 제작자 밤 틸의 생각은 달랐다. 그 또한 존 콜트레인의 진보적인 연주가 대단하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그는 그 이전 앨범마다 한 두 곡에서 보여주었던 아름다운 발라드 연주에 더 관심을 가졌다. 그래서 존 콜트레인과 계약을 맺자마자 팽팽한 긴장은 잠시 뒤로 하고 부드럽고 달콤한 앨범 녹음을 제안했다. 그래서 석 장의 앨범 <Duke Ellington & John Coltrane>, <Ballads>, <John Coltrane & Johnny Hartman>이 녹음되었다.
그 가운데 이 앨범은 존 콜트레인 개인은 물론 재즈사에서 가장 뛰어난 것이라 해도 이의를 제기하기 힘든 아름다운 발라드 연주를 담고 있다. 사실 이 앨범을 위해 존 콜트레인과 쿼텟 멤버는 그다지 특별한 준비를 하지 않았다. 악보상에서 ‘It’s Easy To Remember’를 제외하고는 이전에 연주한 적이 없던 곡들의 악보를 사서 잠깐의 연습 후에 단번에 녹음했다고 한다. 말하자면 잠시 쉬어가듯 녹음을 편안하게 생각했다는 것인데 실제 색소폰 연주자는 멜로디에 그다지 큰 변형을 가하지 않고 담백하게 연주한다. 하지만 그것이 매끄럽고 섬세한 색소폰 톤과 어우러져 신비로울 정도로 아늑하고 낭만적인 분위기를 자아낸다. 힘을 빼고 특별한 장식 없이 연주하는 것이 발라드 연주에서는 대단한 마력을 발휘함을 보여주는 앨범이라 하겠다.
CD16. Tequila : Wes Montgomery (Verve 1966)
기타 연주자 웨스 몽고메리는 재즈 기타의 역사를 이야기할 때 제일 먼저 언급되어야 하는 인물 중의 한 사람이다. 그는 일렉트릭 기타를 피크 대신 엄지 손가락으로 연주하는 엄지 피킹, 한 음을 옥타브 위의 음과 같이 연주하는 옥타브 주법 등으로 재즈 기타 주법을 현대화 시켰다. 이것은 재즈 기타 연주의 교과서가 되어 조지 벤슨, 팻 메시니를 비롯한 많은 연주자들에게 영향을 주었다. 또한 그는 산뜻하게 리듬을 타며 감칠맛 나는 멜로디를 이어나가는 연주로 대중적으로도 팝 스타에 버금가는 인기를 얻었다.
그는 리버사이드 레이블에서 솔로 앨범 활동을 시작했다. 이 때에는 혁신적인 기타 주법으로 하드 밥 시대를 풍미한 여러 연주자들과 순간적인 교감을 나누는 연주를 즐겼다. 또한 그런 중에도 대중적인 매력을 발산했다. 이어 1964년에는 버브 레이블과 계약하고 3년간 활동했는데 이 시기에는 재즈 연주자로서의 기본을 유지하면서 재즈 밖에 있는 사람들도 접근하기 쉬운 대중적인 앨범을 주로 녹음했다.
1966년 론 카터(베이스), 그레디 테이트(드럼), 레이 바레토(콩가)와 콤보를 이루고 여기에 당시 유행이었던 클라우스 오거만 편곡의 스트링 섹션을 기용한 이 앨범은 부드럽고 달콤한 멜로디와 산뜻한 사운드가 매력이다. 타이틀 곡과 ‘Insensatez’같은 라틴 곡부터 1년 전에 막 인기를 얻었던 버트 바카락의 ‘What the World Needs Now Is Love’ 같은 팝을 아우르는 선곡 또한 상당히 대중적이다. 하지만 웨스 몽고메리는 대중성에 무조건 휘말리지 않았다. 옥타브 주법을 사용하고 리듬을 타며 감각적인 솔로를 이어가는 그의 기타 연주는 여전한 그만의 깊이를 들려주었다.
CD17. Play Bach No.1 : Jacques Loussier (Decca 1959)
지금은 클래식을 재즈로 연주하는 것은 아무 것도 아니다. 수많은 연주자들이 스탠더드 재즈 곡들을 연주하듯 클래식의 유명 테마를 자기 식대로 연주하곤 한다. 하지만 지금으로부터 50여년 전에는 상황이 달랐다. 클래식과 재즈는 그 경계가 명확했으며 클래식을 재즈로 연주하는 것은 도전에 가까운 흔치 않은 일이었다. 프랑스 출신의 피아노 연주자 자끄 루시에가 등장하기 전까지는 말이다. 그는 어린 시절부터 바흐에 매료되어 파리 국립 고등 음악원에서 공부할 정도로 정규 클래식 피아노를 꿈꾸던 젊은 이었다. 그런데 수업 외에 재미 삼아 클럽에서 바흐를 재즈 스타일로 연주했는데 그것이 기대 이상으로 인기가 있었다. 그래서 1959년 아예 피에르 미슐로(베이스), 크리스티앙 가로스(드럼)과 트리오를 결성해 바흐의 곡 가운데 ‘Prélude N 1 En Ut Majeur BWV 846’, ‘Toccata Et Fugue BWV 565 En Re Mineur’ 등 평소 그가 좋아했고 즐겨 듣던 곡들을 골라 재즈로 연주한 앨범을 녹음했다. 그리고 그 앨범은 프랑스를 넘어 세계적인 인기를 얻었다. 클래식 애호가들은 원곡의 화성 체계를 그대로 유지하면서도 재즈의 역동적인 측면을 반영한 새로운 바흐에 열광했다. 재즈 애호가들은 원곡의 우아함을 유지하면서도 날렵한 스윙감과 자유로운 즉흥연주로 새로운 옷을 입은 바흐에 열광했다.
현재도 자끄 루시에의 바흐는 여전한 신선함으로 다가온다. 많은 연주자들이 자신만의 관점에서 바흐를 재즈로 연주하고 있지만 자끄 루시에를 뛰어넘지 못했다. 그것은 재즈와 클래식이 완벽한 균형을 이루고 있기 때문이다. 단순히 클래식 테마를 스윙시키는 것으로는 해결할 수 없는 음악이기 때문이다. 이 앨범에 담긴 음악은 그야말로 진정한 크로스오버라 할 수 있겠다.
CD18. Anyone for Mozart, Bach, Handel, Vivaldi : Swingle Singers (Philips 1986)
스윙글 싱어즈는 1962년 프랑스 파리에서 결성된 아카펠라 그룹이다. 베이스, 테너, 알토, 소프라노 각각 두 명씩 총 8명으로 이루어졌던 이 남녀 혼성 그룹은 처음에는 샤를 아즈나부르 같은 샹송 가수들의 코러스 활동으로 시작했다. 그러던 중 1963년 바흐의 ‘평균율 클라비어 곡집’을 아카펠라로 연습하다가 곡 안에 스윙이 내재되어 있음을 발견하고 앨범 <Jazz Sebastien Bach>를 녹음했다. 원래는 주변 사람들에게만 선물하려고 녹음했던 이 앨범은 우연히 라디오 방송에 소개된 이후 선풍적인 인기를 얻었다. 그로 인해 그룹은 클래식을 자신들만의 스타일로 바꿔 노래하는 활동을 이어갔다.
스윙글 싱어즈는 크게 미국인이지만 파리에 거주하던 워드 스윙글을 중심으로 프랑스 멤버들로만 이루어져 1973년까지 활동했던 1기와 이후 워드 스윙글이 영국 런던으로 건너가 결성한 2기로 나뉜다. 그 가운데 이 앨범은 1기 스윙글 싱어즈에 의해 녹음된 것으로 1964년도 앨범 <Going Baroque>의 수록곡 다섯 곡과 1965년도 앨범 <Swinging For Mozart>의 전곡을 모아 놓은 독특한 형태의 모음집이다.
이 앨범에서 그룹은 기 페데르센(베이스), 다니엘 위마이르 혹은 거스 왈레즈(드럼)의 지원 속에 바흐, 모차르트, 헨델, 비발디, 모차르트의 클래식 곡을 정교한 화음과 청량한 스윙감을 뽐내며 노래한다. 특히 스테레오 채널을 적극 활용한 네 성부의 역동적인 모임과 펼쳐짐이 담백한 아카펠라 사운드를 입체적으로 느끼게 한다.
CD19. Bewitched : Laura Fygi (Verve 1993)
네덜란드 출신의 여성 보컬 로라 피기는 1990년대 한국에 갑작스레 재즈가 큰 인기를 얻었을 때 이를 주도했던 인물 중의 한 명이다. 물론 현재도 꾸준한 인기를 얻고 있지만 1990년대에의 인기는 다이아나 크롤을 능가할 정도였다. 하지만 다이아나 크롤과 달리 미국에서 그다지 주목 받지 못해서인지 2000년대에 들어서는 그 인기가 다소 수그러든 편이다. 그녀는 원래 팝 그룹의 멤버로 활동하다가 1991년 솔로로 전향하면서부터 재즈를 노래하게 되었다. 1993년에 발매된 이 두번 째 앨범은 그녀에게 유럽과 일본, 한국을 비롯한 아시아에서 큰 인기를 가져다 주었다.
이 앨범에서 그녀는 백인 여성 보컬을 대표하는 줄리 런던의 계보를 잇는 부드러운 벨벳풍의 목소리로 포근한 노래를 들려준다. 주레 한스트라가 지휘하는 런던 심포니 오케스트라의 연주도 무척 달콤하다. 게스트로 참여한 하모니카 연주자 투스 틸먼스(‘Good Morning Heartache’, ‘Girl Talk’), 플뤼겔혼 연주자 클락 테리(‘It’s Crazy’, ‘The End Of A Love Affair’), 색소폰 연주자 자니 그리핀(‘I Only Have Eyes for You’, ‘I Love You for Sentimental Reasons’, ‘I Wish You Love’) 등 노장의 연주는 재즈의 다양한 측면 가운데 낭만적인 부분을 돋보이게 한다. 이런 부분이 앨범의 인기를 가져다 주었을 것이다.
실제 앨범의 수록 곡들의 상당수가 국내에서 적지 않은 호응을 얻었다. 그 가운데 ‘Let There Be Love’는 영화 <미술관 옆 동물원>에 삽입되기도 했으며 ‘I Love You For Sentimental Reasons’은 광고 음악으로 사용되어 인기를 얻기도 했다.
CD20. The Other Side Of Abbey Road : George Benson (A&M 1970)
조지 벤슨은 웨스 몽고메리의 기타를 계승한 기타 연주자이다. 또한 재즈, R&B, 팝을 넘나드는 탁월한 보컬이기도 하다. 그래서 그의 음악은 재즈와 팝을 아우른다. 1960년대 초반에 등장한 그는 콜럼비아와 버브 레이블을 거쳐 1968년 A&M 레이블과 계약하면서 음악적 꽃을 피우기 시작했다. 1968년 6월 웨스 몽고메리가 세상을 떠나자 A&M 레이블의 제작자 크리드 테일러가 그를 선배 연주자를 대신할 인물로 선택했던 것이다.
이 앨범은 비틀즈의 1969년도 앨범 <Abbey Road>를 조지 벤슨 스타일로 재해석한 연주와 노래를 담고 있다. 제작자 크리드 테일러는 비틀즈의 <Abbey Road>가 미국에서 발매된 지 3주 만에 이 앨범을 기획하고 조지 벤슨에게 앨범 녹음을 맡겼다. 조지 벤슨은 <Abbey Road>의 수록곡들을 필요에 따라 두 곡씩 묶어 녹음했다. 그 결과 곡들의 순서는 다르지만 원작 <Abbey Road>의 분위기를 충실히 반영한 앨범인 동시에 조지 벤슨의 매력이 담뿍 담긴 앨범이 만들어졌다.‘Golden Slumbers’를 원곡의 분위기대로 앞 뒤로 노래하고 중간에 ‘You Never Give Me Your Money’를 기타로 연주한 첫 곡‘Golden Slumbers/You Never Give Me Your Money’가 좋은 예이다. 이 외에 ‘Come Together’나 ‘I Want You’를 펑키하게 연주하고 그 앞에 돈 세베스키가 편곡한 ‘Because’와 ‘Here Comes The Sun’을 배치한 것도 마찬가지.
한편 이 앨범에서 조지 벤슨은 처음으로 노래를 불렀다. 하지만 상당히 매력적이었음에도 불구하고 6년 뒤 워너 레이블로 이적해 <Breezin’>앨범을 녹음할 때까지 그는 다시 노래하지 않았다.
CD21. Getz/Gilberto : Stan Getz & Joao Gilberto (Verve 1963)
보사노바는 브라질에서 외향적이고 축제적인, 그래서 집단적인 성격이 강한 삼바에서 탈피하여 개인적이고 차분한 정서의 음악을 원했던 젊은 연주자들에 의해 1958년 만들어졌다. 하지만 1960년대 초반까지 이 음악은 고향 브라질을 벗어나지 못했다. 그러다가 1963년 스탄 겟츠와 조앙 질베르토가 함께 한 이 앨범의 성공으로 세계인이 사랑하는 음악이 되었다.
1961년 스탄 겟츠는 브라질 공연을 다녀온 기타 연주자 찰리 버드로부터 보사노바에 관한 이야기를 들었다. 그래서 이 기타 연주자와 함께 1962년 앨범 <Jazz Samba>를 녹음했는데 생각 외로 반응이 좋았다. 이에 힘입어 이듬해 그는 보사노바의 창시자인 안토니오 카를로스 조빔과 조앙 질베르토, 아스트러드 질베르토 부부를 미국으로 불러 이 앨범을 녹음했다.
이 앨범으로 스탄 겟츠는 그동안 쿨 재즈, 웨스트 코스트 재즈를 대표하는 연주자에서 보사노바 재즈를 개척한 선구자가 되었다. 실제 그의 연주는 톤, 호흡, 부드러움에서 애초부터 보사노바를 위한 것이었다는 듯 가장 자연스럽게 긴장과 이완을 오가는 리듬에 스며들었다. 한편 조앙 질베르토의 기타와 속삭이는 듯한 노래는 브라질의 이국적인 풍경과 함께 애초부터 사적이고 은밀한 공간을 지향했던 보사노바의 내성적인 우아함을 그대로 전달했다. 또한 그의 아내인 아스트러드 질베르토는 ‘Corcovado’, ‘The Girl From Ipanema’에서의 청순한 노래로 스탄 겟츠에 버금가는 인기를 얻을 수 있었다.
스탄 겟츠는 이후 보사노바 앨범을 지속적으로 녹음하면서 보사노바의 주도권을 놓지 않았고 다른 많은 연주자들도 보사노바에 도취되어 앨범을 녹음했다. 하지만 이 앨범을 뛰어넘는 앨범은 만들어지지 않았다.
CD22. The Shadow Of Your Smile – Astrud Gilberto (Verve 1965)
아스트러드 질베르토는 색소폰 연주자 스탄 겟츠와 그녀의 남편 조앙 질베르토가 함께 했던 <Getz/Gilberto>(1963)에 참여하면서 노래를 시작했다. 그 전까지 그녀는 전문적인 음악 활동을 한 적이 없었다. <Getz/Gilberto> 앨범 녹음에도 남편의 동반자로 따라갔을 뿐이었다. 하지만 녹음 중에 영어 가사를 노래할 여성 보컬이 필요하게 되었다. 그래서 우연히 그녀가 노래를 부르게 된 것인데 그것이 큰 인기를 얻게 되면서 전문적인 보컬의 길을 걷게 되었다. 사실 그녀의 노래는 성량이나 기교의 측면에서 보통의 재즈 보컬과는 거리가 있었다. 하지만 전문성의 부족에서 만들어진 속삭이는 듯한 노래는 소녀처럼 상큼하고 청순한 이미지를 지녔다. 또한 그것은 커다란 굴곡보다는 물 흐르듯 자연스레 흘러가는 보사노바 리듬에 적합한 것이기도 했다.
1964년 스탄 겟츠와 함께 한 앨범의 성공에 힘 입어 그녀는 이듬해에 두 장의 앨범을 발표하며 솔로 활동을 시작했다. 이 두 번째 앨범에서도 그녀는 가벼운 보사노바 리듬과 스트링 오케스트라를 배경으로 영화의 주제 음악이었던 타이틀 곡을 비롯한 스탠더드 곡과 ‘Manhã de Carnival’로 유명한 브라질 출신의 루이스 본파를 비롯한 브라질 작곡가의 곡들을 단순 담백하게 노래했다. 그래서 때묻지 않은 순박한 소녀 같은 자신의 매력은 물론 한적한 여유를 지향하는 음악으로서의 보사노바의 매력을 드러낸다. 특히 이러한 청순함은 ‘O Ganso’같은 브라질 곡들에서 극대화 되어 나타났다. 하지만 ‘Who Can I Turn To’같은 스탠더드 곡에서의 불안한 진행은 아마추어 같은 순수함을 넘어 그녀의 한계를 드러낸 것이기도 했다.
CD23. Wave : Antonio Carlos Jobim (A&M 1967)
안토니오 카를로스 조빔은 보사노바를 이야기할 때 제일 먼저 언급되어야 할 인물이다. 그는 비니시우스 드 모라에스, 조앙 질베르토 등과 함께 1958년 보사노바를 창시하는 한편 이후에도 다수의 보사노바 스탠더드 곡들을 작곡했다.‘Água de Beber’, ‘Corcovado’, ‘The Girl From Ipanema’, ‘One Note Samba’, ‘Wave’ 등 보통 보사노바 앨범에 등장하는 주요 곡들은 거의 모두 그가 작곡한 것이다.
하지만 그는 작곡가 외에 훌륭한 피아노 연주자이자 기타 연주자였으며 경우에 따라서는 직접 노래를 부르기도 하는 싱어송라이터였다. 그래서 그는 연주자와 보컬로서도 수 많은 앨범을 남겼다. 그 가운데 1967년 제작자 크리드 테일러에 의해 제작된 이 앨범은 미국 내에서의 세 번째 앨범에 해당한다. 당시 그의 미국 활동은 애초부터 재즈적인 맛을 담고 있던 보사노바를 보다 재즈적으로 연주하는 것에 관심이 많았다. 이 앨범에서도 이러한 그의 관심이 투영되어 있다. ‘Wave’, ‘Trieste’, ‘Captain Bacardi’등 자작곡 10곡으로 채운 이 앨범에서 그는 앨범을 편곡한 클라우스 오거만이 이끄는 스트링 오케스트라와 론 카터(베이스), 어비 그린, 지미 클리블랜드(트롬본) 등의 재즈 연주자들의 지원 속에 피아노와 기타 그리고 하프시코드로 재즈적인 보사노바를 연주한다. 그리고 ‘Lamento’같은 곡에서는 직접 노래도 했다. 하지만 이 앨범의 매력은 안토니오 카를로스 조빔의 연주와 보컬이 아니라 부드러운 보사노바 리듬과 부드럽게 공간을 스며드는 온화하고 평화로운 사운드 그 자체였다.
CD24. Ride : Antonio Carlos Jobim (A&M 1970)
1967년 안토니오 카를 조빔은 자신의 이름으로 두 장의 앨범 <Wave>와 <A Certain Mr. Jobim>을 녹음했다. 이 앨범의 편곡은 당시 스트링 섹션 편곡으로 이름을 날리고 있었던 클라우스 오거만이 담당했었다. 그와의 작업은 프랑크 시나트라와 함께 했던 <Francis Albert Sinatra & Antonio Carlos Jobim>까지 이어졌다. 클라우스 오거만의 스트링 오케스트라를 사용한 편곡은 확실히 보사노바가 지닌 우아한 맛을 효과적으로 살려내는 힘이 있었다. 하지만 1970년 다시 자신의 이름으로 앨범을 녹음하면서 안토니오 카를로스 조빔은 변화를 꾀하고 싶었다. 그래서 과감하게 당시에는 아직 이름을 알리기 전이었던 브라질 출신의 건반 연주자이자 작, 편곡자 데오다토에게 앨범의 편곡을 의뢰했다. 그래서 한 달 간격으로 두 장의 앨범 <Tide>와 <Stone Flower>를 녹음했다.
그 가운데 이 앨범은 앨범 표지와 타이틀로 인해 1967년도 앨범 <Wave>와 함께 거론되곤 한다. 실제 앨범의 타이틀 곡 ‘Tide’는 ‘Wave’를 새로이 변용하여 만든 것이었다. 그리고 안토니오 카를로스의 피아노나 기타 연주가 중심이 된 사운드 또한 <Wave>와 그렇게 다르지는 않다. 하지만 클라우스 오거만이 보사노바의 부드러운 분위기를 강조하는 편곡을 했다면 데오다토는 ‘The Girl From Ipanema’에서 알 수 있듯이 스트링만큼 혼 섹션을 적극 사용하여 사운드의 양감(量感)을 높이고 이를 통해 재즈적인 색채를 더욱 강조했다. 어찌보면 안토니오 카를로스 조빔이 원했던 재즈적인 보사노바를 잘 표현했다고 하겠다. 하지만 그럼에도 대중의 관심을 끈 것은 여전히 보사노바 특유의 아늑하고 우아한 질감이었다.
CD25. Look Around : Sergio Mendes & Brasil ’66 (A&M 1968)
세르지오 멘데스는 브라질 출신으로 1960년대 보사노바를 중심으로 미국에서 브라질 음악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을 때 주목 받은 연주자들 중 한 명이다. 하지만 그는 다른 동료들이 보사노바나 삼바를 고수했던 것과 달리 브라질 음악의 이국적인 면에 재즈와 펑키 사운드를 결합시킨 음악을 추구했다. 그래서 그의 음악은 재즈 보다는 팝에 더 가깝다.
그는 더 섹스테토 보사 리오, 브라질 65 등 솔로가 아닌 그룹을 결성해 활동하여 인기를 얻었다. 그 가운데 가장 인기를 얻었던 것은 66년에 결성된 브라질 66이었다. 세르지오 멘데스의 피아노를 중심으로 라니 홀, 재니스 한센 등의 여성 보컬이 중심이 된 이 그룹은 3년간 활동하며 첫 앨범에 수록된 ‘Mas Que Nada’로 빌보드 팝 차트에 오르는 등 큰 인기를 얻었다.
하지만 Brasil 66이 발표한 앨범 가운데 가장 큰 성공작은 단연코 1968년에 발매된 이 앨범이었다. 앨범은 평소 세르지오 멘데스가 추구했던 브라질의 이국적 향취에 팝과 재즈를 가미한 곡들로 채워졌다. 한 해 전 영화007시리즈 <Casino Royal>에 사용되어 인기를 얻었던 버트 바카락의 ‘The Look Of Love’등을 통해 당시 유행하던 팝을 세르지오 멘데스 식으로 반영하는 한편 질베르토 질의 ‘Roda’, 조앙 도나토의‘The Frog’, 해롤드 로보의 ‘Tristeza’등 브라질의 삼바 곡들을 노래하여 그룹이 지닌 이국적 정체성을 강조했다. 특히 비틀즈의 ‘With A Little Help From My Friends’를 브라질의 축제적인 스타일로 바꿔 노래한 것은 브라질적 색채가 가미된 팝을 지향했던 세르지오 멘데스 음악의 가장 좋은 예였다.
CD26. Rain Forest : Walter Wanderley (Verve 1966)
1964년에 발매된 스탄 겟츠와 조앙 질베르토 부부의 <Getz/Gilberto>앨범이 기대 이상의 인기를 얻게 되자 이를 계기로 미국에는 보사노바 열풍이 불었다. 많은 사람들은 이 우아하고 부드러운 리듬에 담긴 이국적인 색채를 좋아했다. 그 결과 앨범을 통해 노래를 시작한 아스트러드 질베르토를 시작으로 브라질에서 활동하고 있던 많은 보컬과 연주자들이 미국으로 넘어왔다. 그리고 그들의 상당수는 기대했던 대로 대중적 사랑을 받았다.
오르간 연주자 월터 원덜리도 미국에 불어 닥친 보사노바 열풍을 따라 브라질에서 미국으로 건너간 연주자 중의 하나이다. 1950년대 후반부터 활동을 시작한 그는 조앙 질베르토의 곡을 편곡하면서 브라질에서 주목을 받았다. 이후 브라질 내 최고의 오르간 연주자로 인기를 누리다가 1966년 토니 베넷의 추천으로 버브 레이블과 계약을 맺고 활동하게 되었다.
이 앨범은 그의 미국 활동을 알렸던 첫 앨범이자 가장 큰 성공을 거두었던 앨범이다. 앨범에서 그는 당시 큰 인기를 얻고 있었던 ‘The Girl From Ipanema’, ‘O Grande Amor(The Great Love)’를 비롯하여 ‘Rain’, ‘Beach Samba’, ‘Summer Samba’등의 곡들을 브라질의 열대 우림을 연상시키는 듯한 이국적인 분위기로 연주했다. 미국의 감상자들은 열대의 기운을 담고 있는 그의 오르간 연주에 매료되었다. 특히 ‘So Nice’로 더 많이 알려진‘Summer Samba’는 빌보드 팝 차트에 오를 정도로 인기를 얻었다. 그리고 앨범 또한 꾸준한 인기 속에 발매된 지 4년 후에 백만 장 이상 판매고를 올리기도 했다.
CD27. Bola Sete At The Monterey Jazz Festival : Bola Sete (Verve 1967)
볼라 세테는 브라질 출신의 기타 연주자로 브라질 연주자들이 유행처럼 미국에 진출하던 1960년대부터 미국 재즈계에 모습을 드러냈다. 하지만 그는 보사노바를 중심으로 했던 다른 브라질 연주자들과는 차별화된 활동을 했다. 브라질 연주자들 가운데 거의 유일하게 흑인이었던 그는 브라질에서 활동할 때부터 쟝고 라인하르트, 찰리 크리스찬, 쟝고 라인하르트 등의 영향을 받아 재즈적인 연주를 펼치곤 했다. 그래서 일찍이 유럽에서 활동하기도 했다. 미국에서의 활동도 그의 연주를 지켜본 디지 길레스피가 그를 자신의 밴드에 합류시키면서 시작되었다. 그래서 그의 연주에는 브라질의 이국적인 색채만큼이나 재즈적인 맛이 강하다.
이 앨범은 그 타이틀이 의미하듯 1966년 미국 캘리포니아의 몬트레이 재즈 페스티벌 실황을 담고 있다. 세바스티앙 네토(베이스, 타악기), 파울리뇨 다 코스타(드럼)와 트리오를 이루어 선 무대에서 그는 영화 <흑인 오르페>의 사운드트랙에서 세 곡의 메들리와 ‘Soul Samba’, ‘Flamenco’등의 자작곡을 연주했다. 그런데 그 연주는 분명 브라질의 이국적인 색채를 지녔지만 당시 활동하던 다른 브라질 동료들과 달리 재즈를 중심에 둔 것이었다. 실제 17분여에 이르는 ‘Black Orpheus Medley’나 ‘Soul Samba’에서의 화려한 기교를 바탕으로 한 즉흥 솔로 연주와 파울리뇨 다 코스타와의 긴밀한 인터플레이는 그를 이국적인 보사노바 연주자가 아닌 보통의 재즈 연주자로 바라보게 하기에 충분하다. 또한‘Flamenco’에서의 스페인 색채가 강한 연주는 그가 브라질이라는 공간에만 머무르려 하지 않았음을 생각하게 한다.
CD28. A Foreign Sound : Caetano Veloso (Nonesuch 2004)
브라질 출신의 카에타노 벨로주는 보사노바 이후 브라질 음악에 록 등을 결합한 트로피칼리스모 스타일을 개척한 싱어송라이터이다. 따라서 그는 재즈와는 관계가 없다. 하지만 2004년에 발표한 이 앨범은 조금은 다르게 보아야 한다. 브라질이 아닌 미국 팝 역사의 주요 히트 곡을 노래하면서 재즈를 부분적으로 반영했기 때문이다.
그로서는 최초로 영어로만 노래한 이 앨범을 그는 ‘Love For Sale’, ‘So In Love’, ‘Always’, ‘Summertime’, ‘Smoke Gets In Your Eyes’, ‘Body & Soul’, ‘Cry Me A River’ 등 앨범의 절반 이상을 스탠더드 재즈 곡들로 채웠다. 그리고 폴 앙카, 엘비스 프레슬리, 해리 벨라폰테, 모리스 앨버트 등의 팝 히트 곡들도 노래했으며 나아가 록 그룹 너바나의 ‘Come As You Are’, 토킹 헤즈의 ‘(Nothing But) Flowers’, 아르토 린제이의 ‘Detatched’등 그로서는 상당히 과감하다 싶은 곡들까지 노래했다.
이들 팝 히트 곡들을 그는 냇 킹 콜과 해리 벨라폰테를 섞어 놓은 듯한 스타일로 유연하게 노래했다. 그러면서도 그만의 온화하고 달콤한 낭만성은 그대로 유지했다. 따라서 이 앨범은 브라질 감상자들에게는 팝 곡을 노래한 앨범이 되겠지만 미국 감상자들에게는 이국적인 벨로주를 담고 있는 앨범의 의미를 지닌다. 물론 재즈적인 곡들이 주를 이룬 것이 카에타노 벨로주의 의도였다 볼 수는 없다. 그래도 재즈가 세계의 다양한 음악과 영향을 주고 받음을 확인하는 차원에서 재즈 앨범들과 함께 들어보는 것도 좋으리라 생각한다.
CD29. Nocturne : Charlie Haden (Verve 2001)
베이스 연주자 찰리 헤이든은 1950년대 후반 프리 재즈의 창시자 오넷 콜맨을 비롯하여 폴 블레이, 키스 자렛의 아메리칸 쿼텟 등 진보적이고 난해한 연주자나 그룹에서 활동을 펼쳤다. 또한 70년대에는 사회참여적 색채가 강한 리버레이션 뮤직 오케스트라를 결성하여 활동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러한 진보적인 활동에도 불구하고 그는 기본적으로 서정적인 사운드를 좋아하는 연주자, 아름다운 멜로디를 만들어 내는 작곡자였다. 특히 1987년에 결성한 그룹 쿼텟 웨스트를 통해 그는 1930,40년대의 할리우드 영화에 대한 향수를 담은 아름다운 음악을 들려주었다.
한편 그는 리버레이션 오케스트라 시절에는 쿠바의 혁명가이자 젊은이들의 우상인 체 게바라를 위한 ‘Song For Che’를 만들 정도로 쿠바 음악에 관심이 있었다. 하지만 이런 그의 이국적 관심은 다른 활동에 가려져 있었다. 그러다가 2001년에서야 이 앨범을 통해 빛을 볼 수 있었다. 1986년 그가 쿠바에서 만나 미국에서 활동할 수 있도록 도와주면서 인연을 맺은 곤잘로 루발카바(피아노)를 비롯하여 팻 메시니(기타), 조 로바노(색소폰) 등과 함께 한 이 앨범에서 그는 쿠바 음악 중에서 가장 낭만적인 측면, 특히 볼레로를 탐구했다. 그 결과‘Noche de Ronda 밤의 배회’, ‘Nocturnal’, ‘Moonlight’, ‘Nightfall’같은 곡들이 말하듯 뜨거운 축제의 밤이 아니라 아무도 없는 한적한 하바나의 밤풍경 같은 음악이 만들어졌다. 그렇다고 그는 충실히 쿠바의 전통 스타일을 고수하지는 않았다. 그가 만든 음악은 어디까지나 쿠바의 볼레로를 소재로 한 재즈였다.
CD30. Viva Cuba : Luis Frank Y Su Tradicional Habana (EmArcy 1999)
사실 루이스 프랑크와 그의 전통 하바나 밴드의 음악은 재즈가 아니다. 그래서 이 앨범을 다른 몇 앨범과 함께 이번 박스 세트에 넣는 것에 대해 여러 논의가 있었다. 그러나 재즈가 외연을 확장하는 과정에서 세계의 다양한 음악을 흡수했고, 특히 쿠바 음악은 재즈와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음을 고려하여 넣기로 했다. 실제 이 앨범에 담긴 음악은 재즈 애호가들에게는 그리 낯설게 들리지 않으리라 생각된다.
쿠바의 하바나 태생의 루이스 프랑크는 쿠바의 전통 음악 손(Son)을 충실히 이어가고 있는 보컬이다. 실제 그는 부에나 비스타 소셜 클럽의 멤버 콤파이 세군도, 피오 레이바 등과 함께 활동했으며, 1999년의 <Buena Vista Social Club>에 이어 2004년 빔 벤더스가 새로이 제작했던 다큐멘터리 영화 <Musica Cuba>의 제작에 참여하고 직접 출연할 정도로 쿠바 내에서 부에나 비스타 소셜 클럽 멤버들의 계승자로 인정 받고 있다.
이 앨범은 1999년 그러니까 영화 <부에나 비스타 소셜 클럽>이 세계적인 인기를 얻을 무렵에 녹음되었다. 당시 자신이 이끌고 있었던 그룹‘전통 하바나’와 함께 녹음한 이 앨범에서 루이스 프랑크는 ‘La Bamba’, ‘Besame Mucho’, ‘Guantanamera(관타나모 출신의 여인)’, ‘Hasta Siempre(영원히)’, ‘Viente Anos(20년)’, ‘Lagrimas Negras(검은 눈물)’처럼 세계적으로 널리 알려진 곡들을 비롯하여 ‘Soy Cubano, Soy De Oriente(나는 쿠바인, 나는 아프리카인)’같은 쿠바의 스탠더드 곡들을 전통적인 손 스타일로 노래했다. 그리고 그 노래들은 슬픔을 거부하고 오로지 행복만을 담고 있다. 따라서‘쿠바 만세’라는 타이틀은 바로 이러한 쿠바 음악의 낙천성에 대한 찬가를 의미하는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