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azz Train : GRP 25 Collector’s Ed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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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어 사전에서 레이블(Label)을 검색하면 ‘사람이나 물건의 성격 등을 묘사하는 딱지’라는 정의가 나온다. 재즈에서 레이블은 단순히 앨범을 제작하는 회사의 차원을 넘어 음악적인 의미를 지닌다. 예를 들면 잘 모르는 연주자의 앨범을 만났을 때 그 앨범에 블루 노트(Blue Note) 레이블의 로고가 인쇄되어 있으면 자연스레 하드 밥 계열의 앨범을 먼저 떠올리게 된다. 또 그 앨범에 인쇄된 로고가 임펄스(Impulse!) 레이블의 것이라면 아방가르드 재즈나 프리 재즈 쪽 앨범일 것이라 예상하게 되는 것이다. 이처럼 재즈에서 레이블은 비슷한 성향의 연주자와 그 앨범들을 모으고 정리한 분류 항목으로서의 의미가 강하다. 물론 버브(Verve) 레이블처럼 비교적 넓은 음악적 스펙트럼을 보이는 레이블도 있다. (현재의 시점에서 보면 이것은 블루 노트 레이블에도 해당된다.) 그러나 이것은 시간의 흐름 속에서 버브 레이블이 여러 다양한 성향의 작은 레이블을 통합 했기 때문이었지 처음부터 그랬던 것은 아니었다.

그렇다면 레이블의 음악적 성향은 어떻게 결정되는 것일까? 여기에는 레이블 설립자의 취향이 절대적인 영향을 미친다. 대부분의 재즈 레이블은 한 재즈 애호가가 단순한 감상자의 차원에서 벗어나 자신이 직접 듣고 싶은 앨범을 제작해보겠다는 마음에 의해 설립되었다. 그래서 대부분의 레이블들은 개인적인 성향이 강했고 그 이유로 독립 레이블의 모습을 끝까지 유지하곤 했다. 만약 기대 이상의 성공을 거두게 되면 그 때부터 레이블은 음악적 개성을 잃고 평범한 음반 제작 회사가 되어 버리곤 했다. GRP 레이블이 그랬다. 

데이브 그루신과 래리 로젠

GRP 레이블은 1978년 피아노 연주자이자 영화 음악 작곡가인 데이브 그루신과 드럼 연주자이자 녹음 엔지니어인 래리 로젠이 의기투합하면서 그 역사를 시작했다.

두 사람은 1959년 스탠더드 팝 보컬로 인기를 구가하던 앤디 윌리엄스의 피아노 반주자로 데이브 그루신이 기용되고 다시 데이브 그루신이 공연에 함께 할 드럼 연주자로 레리 로젠을 선택하면서 인연을 맺었다. 밴드라고는 하지만 멤버는 두 사람이 전부였다. 나머지 멤버는 공연을 할 때마다 충원했기에 자연스럽게 두 사람은 이후 더욱 깊어질 우정을 맺을 수 있었다.

앤디 윌리엄스 밴드에서의 활동이 끝나자 두 사람은 1964년 데이브 그루신의 앨범 <Kaleidoscope>에서 함께 하기도 했지만 각자의 활동에 전념했다. 그 사이 데이브 그루신은 피아노 연주, 영화음악 작, 편곡자로서의 입지를 차근차근 다져나갔고 래리 로젠은 드럼 연주보다는 스튜디오 녹음과 앨범 제작 쪽에 더 많은 관심을 가졌다. 이것이 두 연주자를 다시 만나게 했다. 1972년 래리 로젠이 남성 보컬 존 루시엔의 앨범 <Rashida>을 제작하면서 데이브 그루신에게 스트링 섹션의 편곡을 맡긴 것이다. 데이브 그루신은 래리 로젠의 요청을 수락하고 스트링 섹션의 편곡은 물론 피아노 연주자로 앨범 제작에 참여했다. 그 결과 앨범 <Rashida>는 그래미상 후보에 오를 정도로 성공을 거두었다. 그래서 두 사람은 데이브 그루신이 편곡하고 래리 로젠이 제작을 담당하는 방식으로 존 루시앙의 다음 두 앨범에서도 함께 했다.

한 사람은 편곡하고 한 사람은 앨범 제작을 담당하는 관계가 공동 제작의 관계로 바뀌게 된 것은 1976년 기타 연주자 얼 클루의 데뷔 앨범 <Earl Klugh>을 제작하면서부터였다. 그무렵 데이브 그루신은 단순히 감독이 원하는 스타일로 영화 음악을 만드는 것에 다소 싫증을 느끼고 있었다. 그러면서 자신의 의지가 반영된 앨범을 제작하는 것을 꿈꾸며 이것을 래리 로젠과 공유했다. 그러던 차에 블루 노트 레이블의 제작책임자 조지 버틀러가 막 발굴한 얼 클루의 앨범을 제작하기 위해 데이브 그루신에게 편곡을 의뢰했다. 하지만 데이브 그루신은 이를 수락하는 대신 자신과 래리 로젠이 앨범을 제작하는 것을 제안했다. 조지 버틀러는 두 사람이 존 루시앙의 앨범을 성공적으로 제작했던 것을 알고 있었다. 그래서 기꺼이 이 제안을 수락했다. 그렇게 해서 데이브 그루신-래리 로젠의 첫 번째 제작 활동이 시작되었다.

두 사람은 단순히 제작과정 전체를 조정, 관리하는 차원을 넘어 악기의 구성부터 연주 스타일까지 직접 살피면서 앨범을 제작했다. 그 결과 펑키한 리듬 위로 어쿠스틱 기타 연주가 흐르는 산뜻한 사운드를 만들어 낼 수 있었다. 이 사운드는 이후 GRP 레이블 사운드의 원형이라 할 수 있는 것이었다.

얼 클루의 앨범 제작이 긍정적인 결과를 만들어 내자 블루 노트, RCA, 엘렉트라, CTI 등의 레이블이 두 사람에게 앨범제작을 의뢰하기 시작했다. 이에 따라 그루신-로젠 프로덕션은 바이올린 연주자 노엘 포인터, 기타 연주자 리 릿나워, 보컬 패티 오스틴, 플루트 연주자 데이브 발렌틴 등의 앨범을 제작하며 제작자로서의 인지도를 높여나갔다. 그런 중에 현재는 유니버셜 레코드 산하로 흡수된 폴리돌 레이블에서 두 사람에게 석장의 앨범 제작을 의뢰했다. 이 의뢰에 두 사람은 먼저 데이브 그루신의 앨범을 모처럼 제작하기로 결정했다. 그렇게 해서 데이브 그루신이 피아노를 연주하고 그로버 워싱턴 주니어(색소폰), 론 카터(베이스), 앤서니 잭슨(일렉트릭 베이스), 스티브 갯(드럼) 등이 함께 한 앨범 <One Of A Kind>가 제작되었다. 이 앨범은 평단의 높은 지지를 받았지만 폴리돌 레이블의 홍보 부족으로 기대한 만큼의 대중적 인기는 얻지 못했다. 그러나 1974년에 설립된 아리스타 레이블의 사장 클라이브 데이비스가 이 앨범에 관심을 보였다. 클라이브 데이비스는 두 사람에게 이후 아리스타 레이블에서 발매될 재즈 앨범들의 제작을 의뢰했다. 데이브 그루신과 래리 로젠은 이 제안에 흥미를 느꼈지만 한편으로는 제작자로서 보다 폭넓은 자유를 보장받고 싶었다. 그래서 클라이브 데이비스와의 협상 끝에 아리스타 레이블의 소속이 아니라 협력 관계에 있는 산하 레이블의 형태로 앨범을 제작하기로 합의했다. 그렇게 해서 Arista/GRP 레이블이 만들어졌다. 이 때가 바로 1978년이었다.

Arista/GRP: 아리스타 레이블과의 협력관계를 맺다

아리스타 레이블과 협력 속에 그들만의 레이블을 만들기로 했을 때 GRP로 단번에 레이블의 이름이 결정된 것은 아니었다. 두 사람은 처음에 스펙트럼(Spectrum)으로 레이블의 이름을 정하고 로고까지 만들었다. 그러나 이 이름을 사용하는데 법적으로 문제가 생겨 사용할 수 없게 되자 시간이 급해진 두 사람은 자신들의 성의 앞 글자를 따서 GRP(Grusin Rosen Production)로 레이블의 이름을 정했다.

클라이브 데이비스는 데이브 그루신과 래리 로젠이 새로운 연주자들을 발굴하고 그들의 앨범을 제작하기를 바랬다. 그래서 두 사람은 먼저 가능성 있는 연주자들의 발굴에 집중했다. 사실 이것은 그들에게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이전에 앨범을 제작하며 알았던 연주자들이 다른 실력 있는 연주자를 소개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얼 클루, 안젤라 보필, 데이브 발렌틴, 톰 브라운, 버나드 라이트, 바비 브룸 등이 소개에 소개를 거쳐 GRP 레이블의 연주자 명단에 이름을 올렸다. 이러한 소개 외에도 두 제작자는 직접 여러 공연 현장을 돌며 가능성 있는 신예들을 발굴해 나갔다.

그렇게 모인 연주자들의 음악적 성향은 전반적으로 재즈의 전통, 그러니까 스윙과 비밥을 거쳐 내려오는 전통과는 다소 거리가 있었다. 이것은 처음부터 두 제작자가 의도한 것은 아니었다. 다만 색다른 성향의 연주자를 찾으면서 생긴 우연적 결과였다. 재즈의 중심에서 벗어난 듯한 음악적 성향은 레이블의 불안 요소가 아닌 성공 요소로 작용했다. 여기에는 당시 아리스타 레이블이 GRP 레이블 외에 사보이(Savoy)와 노부스(Novus) 레이블을 흡수 운영했던 것도 한 몫 했다. 즉, 사보이 레이블이 흔히 말하는 정통 재즈 앨범 제작에 집중하고 노부스 레이블이 아방가르드 재즈를 포용하면서 GRP 레이블이 자연스럽게 이 두 레이블에 포함되지 못하는 재즈-전통과는 거리가 있으면서 듣기에 어렵지 않은 재즈를 다루는 분위기가 형성되었던 것이다. 이것은 단번에 GRP 레이블을 다른 레이블과 구별되는 특별한 개성을 지닌 레이블로 평가 받게 만들었다. 그리고 나아가 상업적 성공을 거두는 요인으로 작용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색다른 음악적 성향, 가능성을 지닌 연주자들이 자신의 장점을 효과적으로 반영한 앨범을 만드는 것이었다. 데이브 그루신과 래리 로젠은 연주자로서의 경험을 반영하여 연주자의 자유를 적극 보장하고자 했다. 그런데 두 사람이 찾아낸 가능성 있는 신예들 대부분은 앨범 제작 경험이 전혀 없었다. 그러니까 어떤 식으로 자신의 음악을 발전시키고 효과적으로 현실화할 수 있는지 잘 알지 못했다는 것이다. 제작자의 능력은 바로 이런 부분에서 드러난다. 연주자의 자유를 보장하겠다고 녹음 내내 그저 스튜디오 속 상황을 지켜보기만 한다면 좋은 결과가 얻을 수 없다. 연주자의 현재를 잘 파악하고 어떻게 하면 지금보다 더 발전된 음악을 만들 수 있는지 방향을 제시할 수 있어야 한다. 그래서 데이브 그루신과 래리 로젠은 연주자의 자유를 존중하면서도 악기의 결정부터 믹싱까지 앨범의 방향 설정에 관여했다. 그리고 필요에 따라서는 직접 편곡을 하기도 했다. 그리고 앨범이 시장에서 어떤 감상자를 대상으로 할 것인지, 연주자가 어떤 이미지로 비추어질 것인지에 이르기까지 제작 외에 유통과 판매에 관련된 부분까지 고려했다.

한편 여러 연주자들의 앨범을 제작하는 중에도 데이브 그루신은 GRP 레이블에서의 첫 리더 앨범 <Mountain Dance>를 제작했다. 이 앨범을 그는 클래식을 제외한 장르에서는 거의 처음으로 디지털 방식으로 녹음했다. 당시의 디지털 녹음이 아직은 멀티 트랙 녹음을 허용하지 않았기에 라이브 형식으로 녹음한 이 앨범은 이후 레이블이 디지털 녹음의 선구자 중 하나로 자리잡게 했다.

완전한 독립 GRP, Grusin Rosen Production

1982년 아리스타와의 계약이 끝나자 데이브 그루신과 래리 로젠은 계약을 갱신하는 것, 더 좋은 조건을 제시하는 다른 대형 음반사를 찾아 새로 계약하는 것, 그리고 독자적으로 레이블을 운영하는 것 사이에서 고민을 거듭했다. 결국 독자적으로 레이블을 운영하기로 마음 먹었다. 사실 이런 결정을 내리기는 쉽지 않았다. 독자적으로 레이블을 운영한다는 것은 앨범 제작 외에 재정적인 측면까지 두 사람이 모두 책임지는 것임을 의미했기 때문이다. 어쩌면 스튜디오에서 연주자들과 상의하는 것보다 더 많은 시간을 경제적인 문제와 씨름해야 할 지도 몰랐다. 하지만 데이브 그루신과 래리 로젠은 보다 더 많은 음악적 자유속에서 자신들이 원하는 앨범을 제작하고 싶었다. 그리고 나아가 GRP의 사운드를 보다 한 단계 발전시키고 싶었다. 그래서 과감하게 디지털 녹음과 CD 제작을 시도했다.

1979년에 녹음된 데이브 그루신의 앨범 <Mountain Dance>의 제작에서 알 수 있듯이 평소 두 사람은 새롭게 등장하는 전자 악기와 녹음 기술에 큰 관심을 갖고 있었다. 이 들은 팝 음악이 새로운 환경에 따라 앨범을 녹음하고 제작하는 것에 반해 재즈는 여전히 새로운 흐름에 적응하지 못하고 기존의 제작 방식을 고수하고 있는 불만을 느끼고 있었다. 그리고 디지털 녹음을 LP로 발매하는 것은 어울리지 않는 것이라 생각했다. 그래서 아리스타로부터 독립해 온전한 GRP레이블을 출범하면서 두 사람은 디지털 방식으로 녹음하고 CD로 앨범을 발매하기로 결정했다. 이 결정은 아리스타로부터 독립하는 것보다 더 큰 결정이었다. CD가 음반의 미래로 인정받는 것은 분명했지만 그 미래가 언제 현재가 될지는 아직 모호했기 때문이다. 1982년은 아직까지 LP가 대세였다. 그런 상황에서 아직 규모가 크지 않은 독립 레이블이 미국에서는 거의 처음으로 CD로 앨범을 제작할 것을 결심한 것이다.

CD의 우수한 음질을 알리기 위해 두 제작자는 특별한 앨범을 기획했다. 그것은 바로 글렌 밀러 오케스트라의 <In The Digital Mood>였다. 빅 밴드의 거대한 사운드가 LP에 비해 한층 향상된 CD의 다이나믹 레인지를 쉽게 느낄 수 있으리라 판단했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글렌 밀러 오케스트라의 음악은 세계에 널리 알려졌다는 장점도 있었다. 이 계획은 성공적이었다. 앨범은 높은 판매고를 이룩하며 GRP 레이블에게 세련된 사운드만큼이나 시대를 선도하는 레이블이라는 평가를 가져다 주었다. 그리고 이 무렵 제작된 앨범들의 표지 하단에 적힌‘The Digital Master’라는 문구는 레이블의 또 다른 상징으로 자리잡았다.

한편 데이브 그루신과 래리 로젠이 글렌 밀러 오케스트라의 앨범을 제작한 것에는 음악적인 이유도 작용했다. 당시 GRP는 퓨전 재즈를 전문으로 하는 레이블의 이미지를 굳힌 상태였다. 하지만 두 제작자는 이에 만족하지 않고 레이블의 음악적 스펙트럼을 보다 확장하고자 했다. 그래서 글렌 밀러 오케스트라의 앨범 외에 제리 멀리건, 디지 길레스피 같은 전통적인 재즈를 연주하는 거장들의 앨범을 제작하기 시작했다. 이것은 10년 뒤, 아르투로 산도발, 랜디 브레커, 에릭 마리엔탈, 넬슨 랜겔, 밥 민처, 어니 와츠, 게리 버튼, 리 릿나워, 에디 다니엘스, 러셀 페런트, 데이빗 베노잇 등 GRP 레이블의 주요 연주자들이 레이블의 독립 10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올 스타 빅 밴드를 결성하여 하드 밥 시대의 명곡들을 연주한 앨범 <GRP All Star Big Band>를 녹음하는 것으로 이어지게 된다.

퓨전 재즈 전문 레이블의 이미지에서 탈피하려는 중에도 케빈 유뱅크스, 스페셜 EFX, 빌리 코브햄 등 퓨전 재즈 쪽 연주자들의 영입도 꾸준히 진행되었다. 특히 1970년대부터 음악적으로 데이브 그루신과 긴밀한 관계를 유지했던 기타 연주자 리 릿나워의 영입은 레이블에게 음악적으로나 상업적으로 절정을 맛보게 했다. 그러면서 데이빗 베노잇, 에릭 마리엔탈, 칙 코리아, 게리 버튼, 탐 스콧 등 다양한 개성을 지닌 연주자들과 그룹의 앨범을 제작하면서 레이블은 명실 상부한 재즈의 주요 레이블의 하나로 자리잡게 되었다.

MCA-GRP, 그리고 현재

레이블이 성장하게 되면서 데이브 그루신과 래리 로젠의 손길을 기다리는 앨범도 증가했다. 그러자 두 사람은 이제 매일 스튜디오에 앉아서 편곡과 악기 구성 등 세세한 부분에 연주자와 이야기를 나누면서 앨범을 제작할 수 없음을 깨달았다. 그래서 두 제작자는 연주자들에게 직접 앨범의 제작을 맡기기 시작했다. 그리고 스튜디오에는 직접 들어가지 앉는 대신 어떤 연주자와 함께 연주할 것이며 또 사용할 악기는 무엇인지 녹음 전에 연주자와 의논을 나누는 것에 주력하기로 했다. 그리고 첫 녹음을 마치면 그 결과를 들어보고 연주자에게 이런저런 조언을 하고 필요하면 믹싱 작업에만 참여하기로 했다.

레이블의 책임자로서 두 사람이 해야 할 일은 이뿐만이 아니었다. 앨범의 홍보와 유통 등 경영 전반의 문제를 해결해 나가야 했다. 그 결과 갈수록 음악 외적으로 해야 하는 일들이 많아져 갔다. 레이블이 성장하는 것은 두 제작자에게도 좋은 일이었지만 보다 좋은 환경에서 자신들의 음악을 만들고 또 가능성 있는 연주자들의 앨범을 제작하겠다는 초창기의 바람을 계속 유지하기란 쉽지 않았다.

이런 상황 속에서 1990년 데이브 그루신은 자신의 삶과 음악을 새롭게 정리해야 할 필요성을 느꼈다. 그래서 다른 연주자의 앨범에 참여하거나 음악을 편곡하는 것부터 줄여나가기로 했다. 그리고 기존의 전자 악기 중심의 퓨전 재즈에서 벗어나 다시 어쿠스틱 피아노가 중심이 된 음악을 해보기로 마음 먹었다. 그러자 더 이상 직접 GRP 레이블을 운영하는 것은 무리라는 판단이 들었다. 그래서 래리 로젠과 상의 한 끝에 두 사람은 레이블을 지금의 유니버설 뮤직 그룹으로 이름을 바꾸게 될 MCA사에 매각하기로 결정했다. 당시 MCA사는 1987년부터 GRP 레이블의 앨범을 유럽에 유통하고 있었다.

MCA사에 매각하고 나서 두 제작자가 곧바로 레이블을 떠난 것은 아니었다. 데이브 그루신은 계획대로 <Homage To Duke>처럼 어쿠스틱 피아노가 중심이 자신의 앨범을 제작했다. 그 외에 GRP 레이블의 독립 10주년을 기념하는 빅 밴드 재즈 앨범 <GRP All Star Big Band>를 1992년에 제작하는 등 경영자가 아닌 제작자로서의 활동을 계속했다. 한편 래리 로젠은 레이블의 사장 자리에 머무르면서 기존에 MCA사가 제작한 재즈 앨범들을 GRP 레이블의 카탈로그에 편입하고 나아가 과거 임펄스 레이블에서 제작된 명반들을 GRP 레이블의 앨범으로 재발매 해나갔다. 그렇게 해서 어쿠스틱 알케미, 스파이로 자이라, 옐로우자켓, 마이클 브레커 등 기존 MCA사 소속이었던 연주자들이 GRP 레이블과 새로운 계약을 맺고 앨범 활동을 하게 되었으며 그들의 이전 앨범들 또한 GRP 레이블의 로고를 달고 재발매되었다.

데이브 그루신과 래리 로젠이 GRP 레이블을 완전히 떠난 것은 1995년이었다. 두 사람이 떠나자 유니버셜 뮤직 그룹은 두 제작자만큼이나 퓨전 재즈 계열의 앨범 제작에 정통한 토미 리푸마에게 GRP 레이블을 맡겼다. 그리고1998년 유니버셜 뮤직 그룹이 폴리그램사를 합병하게 되면서 당시 폴리그램사의 산하에 있던 버브 레이블의 방계 레이블로 편입되었다. 그래서 현재는 새로운 앨범 제작보다는 지난 앨범들을 재발매 하는 레이블로 모습을 유지하고 있다.

한편 데이브 그루신과 래리 로젠은 GRP 레이블을 떠난 후 각자의 길을 가는 대신 1997년 팝 쪽의 명 제작자 필 레이먼까지 참여시켜 N2K Encoded Music이라는 레이블을 새로 만들었다. 이 레이블은 스무드 재즈를 중심으로 다양한 장르의 신인들을 발굴하고 그들의 음악을 CD로 제작하고 온라인으로 판매하는 것을 목적으로 삼았다. 그렇게 해서 폴 테일러, 조나단 버틀러, 캔디 덜퍼, 보나 파이드 그리고 데이브 그루신 본인의 앨범들이 N2K 의 로고를 부착하고 발매되었다. 그러나 GRP 레이블 시절처럼 큰 성공은 거두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GRP 레이블의 대표 앨범 25선

GRP 레이블의 역사는 레이블이 사라지지 않은 만큼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현재처럼 지난 앨범의 재발매가 아닌 직접 새로운 앨범을 제작하는 창조적인 기간만을 두고 본다면 넓게 잡아 약 20년이 GRP 레이블의 진정한 역사였다고 볼 수 있겠다. (갑자기 유니버셜 뮤직 그룹의 정책이 바뀌어 다시 새로운 앨범을 제작하게 된다면 모르겠지만.) 그 20년 동안 GRP 레이블은 참으로 많은 앨범을 제작했다. 그렇기에 그 앨범들 가운데 25장의 앨범을 고르기란 쉽지 않았다. 여기 모인 25장의 앨범은 앨범 자체의 음악적 완성도나 한 연주자의 이력 가운데 차지하는 위치 등을 고려하기 전에 GRP 레이블의 역사와 음악적 특성을 잘 반영하는가를 먼저 고려한 끝에 선정되었다. 예를 들어 데이브 발렌틴의 <Live At The Blue Note> 앨범은 연주자와 레이블의 깊은 인연 때문에 선정되었다. 그리고 데이브 그루신의 앨범 <Mountain Dace>는 레이블의 녹음방식의 역사에서 의미를 지니기에 선정되었으며 아르투로 산도발의 앨범 <I Remember Clifford>는 레이블이 퓨전 재즈를 넘어 보다 폭 넓은 재즈를 아우르고자 했음을 보여주기 위해 선정되었다. 또한 스파이로 자이라의 <Road Scholoar>는 레이블의 설립자 데이브 그루신과 래리 로젠이 떠난 이후를 보여주기 위해 선정되었다.

이렇게 고민 속에서 레이블과의 상관 관계에 따라 25장의 앨범을 선정했음에도 분명 포함되어야 할 앨범이 선정되지 못했다는 불만, 불평이 나올 수 있다. 예를 들면 GRP 레이블에서 제작되지 않은, MCA사와 합병과정에서 로고를 바꾸어 재발매된 어쿠스틱 알케미의 앨범<Natural Elements>가 수록된 것을 두고 잘못된 선택이라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선정된 앨범들을 하나씩 차근차근 감상하고 나면 25장의 앨범이 모여 GRP 레이블의 역사와 음악적 개성을 입체적으로 그려내고 있음을 알게 될 것이다. 그리고 기왕이면 이 25장의 앨범으로 GRP 레이블의 모든 것을 알았다 생각하지 말고 레이블의 다른 앨범들로 감상을 넓혀나가길 바란다. 이 박스 세트는 GRP 레이블이라는 세계로 들어가는 안내자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들어야 할 앨범들은 아직 많다.

CD1  Acoustic Alchemy : Natural Elements (1988)

1990년에 GRP 레이블을 흡수한 MCA 레이블은 기존 자사의 재즈 카탈로그의 상당수를 GRP 레이블로 옮겼다. 그리고 소속 연주자들 또한 GRP 레이블과 새로 계약을 맺게 했다. 그 가운데에는 어쿠스틱 알케미도 포함되어 있었다. 영국 출신의 기타 듀오 닉 웹과 그레고리 카마이클로 이루어진 어쿠스틱 알케미는 1980년대 중반부터 MCA 레이블 소속으로 앨범을 발표하고 있었다. 그러다가 1990년부터 GRP 레이블 소속으로 앨범을 녹음하게 되었다. 그런데 이들의 두 번째 앨범 <Natural Elements>는 1988년에 MCA 레이블 소속을 발표된 것이다. 1990년 이후 MCA의 정책에 맞춰 GRP 레이블의 로고를 달고 재발매 되었다. 따라서 이 앨범은 순수한 의미에서 GRP 레이블에서 제작된 앨범은 아니다. 그러나 그 음악만큼은 기존 GRP 사운드와 잘 어울린다.

어쿠스틱 알케미는 영국의 버진 항공사의 기내 음악을 만들면서 지명도를 얻기 시작했다. 그만큼 듀오의 연주는 일상의 부담 없는 배경 음악의 성격이 강했다. 또 재즈적인 요소도 적었다. 그래서 경우에 따라 이들의 음악은 뉴 에이지로 분류되기도 한다. 이 앨범에 담긴 두 어쿠스틱 기타의 어울림이 중심이 된 목가적이고 평화로운 사운드에서도 재즈적인 요소는 극히 일부분이다. 그나마 그룹 연주가 강조된‘Casino’나 ‘Evil The weasel’ 정도가 GRP 식 퓨전 재즈에 가깝다고 할 수 있을까? 그러나 어쿠스틱 알케미의 음악에 담긴 편안한 분위기는 분명 갈수록 세련된 편안함을 찾는 기존 퓨전 재즈 애호가들에게 다가가는 매력이 있었다. 이렇게 재즈적인 요소가 덜한 팝 성향의 연주 앨범들이 퓨전 재즈의 영역으로 편입되면서 퓨전 재즈는 서서히 보다 더 편하고 부드러운 정서를 추구하는 스무드 재즈로 이행하게 된다.

CD2  Arturo Sandoval: I Remember Clifford (1992)

트럼펫 연주자 아르투로 산도발은 쿠바 출신으로 1970년대부터 주목을 받았다. 그런데 쿠바의 카스트로 정권의 문화적 제약하에서는 자신만의 재즈를 펼치는데 어려움이 많았다. 그래서 1990년 미국으로 망명했다. 그리고 곧바로 GRP와 계약했다. 이 앨범은 망명 후 GRP에서의 두 번째 앨범이다. 첫 앨범이 라틴, 쿠반 재즈를 바탕으로 한 그의 자유로운 연주를 담고 있었다면 이번 앨범에서는 이른 나이에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난 클리포드 브라운을 화두로 삼고 있어 흥미롭다. 왜냐하면 아르투로 산도발의 디지 길레스피였기 때문이다. 실제 그의 아프로 쿠반 스타일의 트럼펫 연주는 디지 길레스피의 영향을 강하게 드러내곤 했었다. 그러나 한참 후의 일이지만 <Trumpet Evolution>앨범을 통해 역대 트럼펫 명인들의 연주를 완벽히 재현했던 것을 생각하면 클리포드 브라운에 대한 애정도 일시적인 것은 아니었다고 본다. 아무튼 어니 와츠, 데이빗 산체스, 에드 칼레 등의 색소폰 연주자들과 케니 커크랜드(피아노), 케니 워싱턴(드럼) 등이 함께 한 이 앨범에서는 클리포드 브라운처럼 직선적인 가운데 유려한 맛이 돋보이는 연주를 들려준다. 산뜻한 ‘Joy Spring’이나 속도감 넘치는 ‘Cherokee’같은 곡이 대표적. 그리고 베니 골슨이 클리포드 브라운을 그리며 작곡했던 ‘I Remember Clifford’와 아르투로 산도발 본인이 직접 쓴 ‘I Left This Space For You’같은 발라드 연주는 가슴 뭉클한 감동을 이끌어 낸다. 이렇게 아르투로 산도발이 클리포드 브라운을 라틴 색채없이 정통적으로 탐구한 것은 순수하게 재즈의 관점에서 자신의 정체성을 드러내려 한 것이라 할 수 있다. 재즈의 나라 미국에 있음을 확인하는 절차였다고나 할까?

CD3  The Benoit/Freeman Project (1994)

재즈는 다른 어느 장르보다 연주자들이 만나고 헤어지는 과정에서 새로운 음악을 만들어 내곤 한다. GRP 레이블에서도 이런 일은 종종 일어났다. 그 중에는 리핑톤스의 리더이자 기타 연주자인 러스 프리맨과 피아노 연주자 데이빗 베노잇의 만남도 있었다. 이들은 1987년 피아노 연주자가 리핑톤스의 첫 앨범 <Moonlighting>에 참여하고 기타 연주자가 데이빗 베노잇의 <Freedom At Midnight>에 참여하면서 인연을 맺었다. 이 프로젝트 앨범의 첫 곡이 ‘Reunion’인 것도 7년 만에 두 연주자가 함께 했기 때문이었다.

이 앨범은 여러 모로 1985년 데이브 그루신과 리 릿나워가 함께 한 앨범 <Harlequin>을 연상시킨다. 실제 기타와 피아노의 부드러운 호흡과 보사노바 등 브라질적인 요소의 도입 그리고 케니 로긴스, 필 페리 같은 게스트 보컬의 기용 등은 이 프로젝트가 <Harlequin>의 성공 요인을 충실히 따르고 있음을 생각하게 한다. 그러나 ‘Reunion’이나 ‘Swept Away’등의 역동적인 사운드는 두 연주자가 각자의 개성을 드러내는 가운데 서로의 음악적 매력을 하나로 결합하려 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그리고 필 페리가 노래한 어스 윈드 앤 파이어(Earth Wind & Fire)의 ‘After Love Has Gone’의 리메이크 곡에서는 당시 퓨전 재즈가 보다 팝적인 스무드 재즈로 이행 중인 당시의 상황을 엿보게 한다.

이 앨범의 달콤하고 편안한 사운드는 대중의 적지 않은 호응을 얻어냈다. 그래서 두 연주자는10년 뒤에 다시 한번 앨범을 녹음하기도 했다.

CD4  Chick Corea: Chick Corea Akoustic Band (1989)

칙 코리아는 허비 행콕, 키스 자렛과 함께 빌 에반스 이후 재즈피아노를 대표하는 3 인방 가운데 한 명이다. 그는 전통적인 하드 밥부터, 아방가르드 재즈, 퓨전 재즈에 이르기까지 재즈의 다양한 사조를 가로지르는 활동을 펼쳤다. 그 가운데 그가 이끌었던 퓨전 재즈 그룹 리턴 투 포에버는 라틴적인 색채와 록적인 색채가 잘 어우러진 사운드로 70년대 퓨전 재즈를 대표하는 그룹으로 기억되고 있다. 이후 다양한 어쿠스틱 중심의 앨범 작업을 이어간 칙 코리아는 1986년 GRP와 계약하면서 존 패티투치, 에릭 마리엔탈, 프랑크 갬벨, 데이브 웨클 등 당시 막 부상하고 있던 신예들-지금은 명실상부한 리더가 되었지만-을 불러 일렉트릭 밴드를 결성하고 퓨전 재즈의 세계로 돌아왔다. 그리고 다시 존 패티투치와 데이브 웨클과 함께 어쿠스틱 트리오를 결성하여 이 앨범 <Chick Corea’s Akoustic Band>을 녹음했다.

칙 코리아가 잘 나가던 일렉트릭 밴드 활동 중에 어쿠스틱 밴드를 따로 결성하게 된 것은 일렉트릭 밴드가 너무나 기교 중심의 연주를 추구한다는 평가를 의식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그 결과는 상당히 만족스러운 것이었다.‘My One & Only Love’, ‘Autumn Leaves’ 등의 스탠더드 곡들과 ‘Spain’을 위시한 칙 코리아의 자작곡을 연주하면서 칙 코리아와 두 멤버는 자신들이 뛰어난 스윙감을 지녔음을 보여준다. 또 솔로 연주에 있어서도 기교만큼의 깊은 정서를 지니고 있음을 상상력을 지녔음을 드러낸다. 반면 빠른 템포의 연주에서는 예의 화려한 기교를 적절히 사용하고 있는데 그것이 일렉트릭 밴드 때의 느낌을 주기도 한다.

어쩌면 GRP에서의 칙코리아의 활동을 이야기하기 위해서는 이 앨범보다는 일렉트릭 밴드의 앨범을 듣는 것이 더 좋을 지도 모른다. 그러나 기교를 넘어서는 산뜻하고 세련된 정서가 GRP 레이블의 특징이었다면 일렉트릭 밴드보다는 어쿠스틱 밴드의 연주가 이에 더 근접하지 않았었나 싶다.

CD5  Dave Grusin- Mountain Dance (1980)

데이브 그루신의 앨범 <Mountain Dance>는 GRP 레이블의 역사에서 몇 가지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평소 데이브 그루신은 나날이 발전하는 신디사이저에 관심을 갖고 있었다. 그래서 신디사이저를 비롯한 전자 악기가 중심이 된 앨범을 기획했다. 그것이 바로 이 앨범 <Mountain Dance>인데 그는 이 앨범을 당시로서는 일반화되지 않은 디지털 방식으로 녹음했다. 하지만 당시의 디지털 환경은 아직 멀티트랙 녹음을 허용하지 않았다. 그래서 라이브 형식으로 녹음해야 했는데 자신이 원하는 소리를 즉석에서 만들기 위해 그는 여러 대의 신디사이저를 준비하고 두 명의 연주자를 추가로 기용해야 했다. 그렇게 해서 만들어진 앨범의 사운드는 당시로서는 놀라운 것이었다. 높은 비용 문제로 한동안 같은 방식의 앨범 제작을 할 수 없었지만 이후 GRP 레이블은 이 경험을 바탕으로 디지털 녹음의 선두 주자가 될 수 있었다.

한편 이 앨범은 데이브 그루신이 GRP 레이블에서 녹음한 첫 앨범이었다. 이 앨범에서 그는 마커스 밀러, 하비 메이슨 등의 연주자가 만들어 내는 펑키한 리듬을 부드럽게 신디사이저로 다채로운 음들을 만들어 나갔다. 그러면서 GRP 레이블의 전형이 되는 도시적인 정서를 표현했다. 특히‘Rag Bag’, ‘Friends & Strangers’는 다음 앨범 <Night Lines>를 통해 보다 더 구체화 될 GRP 사운드의 예고편이었다. 또한 타이틀 곡 ‘Mountain Dance’는 이후 데이브 그루신의 대표곡 가운데 하나가 되어 지금까지 꾸준한 사랑 속에 연주되는 곡이 되었다.

CD6  Dave Grusin: Night-Lines (1983)

데이브 그루신이 GRP 레이블을 래리 로젠과 함게 설립하게 된 것은 연주자가 자유로운 환경 속에서 자신의 음악적 의지를 실현시킬 수 있는 환경을 만들기 위해서였다. 이러한 의도를 그는 무엇보다 자신의 앨범을 통해 보여주었다. 특히 1980년대 초반 그는 디지털로 바뀌는 제작 환경을 인식하고 그에 맞는 앨범을 만들려고 노력했다. <Night Lines>의 경우 연주자들이 한 자리에 모여 동시에 연주를 진행하는 것이 아니라 리듬을 먼저 녹음하고 그 위에 솔로 연주나 보컬 트랙을 하나씩 덧입히는 방식으로 녹음했다. 그리고 신디사이저와 드럼 프로그래밍을 보다 적극 사용하여 80년대의 도시적 정서를 반영하고자 했다. 특히 신디사이저를 중심으로 전자적인 질감을 전면에 내세운 타이틀 곡‘Night Lines’와 첫 곡 ‘Power Wave’는 갈수록 첨단화 되어가는 80년대 도시의 낙관적인 풍경을 그리고자 했던 앨범의 의도에 잘 부합되는 곡이다. 또한 앨범의 마지막을 장식하는 신비한 분위기의‘Bossa Baroque’는 신디사이저가 지닌 음악적 매력을 가장 효과적으로 표현한 곡이다.

한편 랜디 구드럼의 부드러운 보컬이 가세한 ‘Haunting Me’과 ‘Tik Tok’그리고 V 미니시리즈의 주제 음악이었던 ‘St. Elsewhere’같은 곡은 보다 적극적으로 R&B와 팝 음악의 정서를 수용한 데이브 그루신의 변화가 반영된 곡이다. 사실 곳곳에 내재된 대중적인 정서만큼이나 앨범은 상업적인 앨범이라는 부정적 평가를 받기도 했다. 한국만 해도 여러 곡이 방송과 광고에 사용되기도 했다. 그러나 이것은 어느정도 사실이지만 동시에 새로운 시대로 넘어가는 퓨전 재즈의 모습을 그대로 반영한 것이기도 했다.

CD7  Dave Valentin: Live At The Blue Note (1988)

데이브 발렌틴은 푸에르토 리코 혈통의 플루트 연주자이다. 원래 타악기를 연주했던 그는 허버트 로우에게 플루트를 배웠고 선생의 조언에 따라 다른 플루트 연주자들처럼 색소폰을 함께 연주하지 않고 오로지 플루트만을 연주하고 있다. 그는 1978년에 래리 로젠과 인연을 맺어 GRP 레이블과 처음으로 계약한 연주자가 되었다. 공연 실황을 담은 이 앨범도 그를‘GRP 레코딩 아티스트’라고 소개하는 멘트로 시작된다.

그는 GRP 레이블을 통해 라틴 재즈를 바탕으로 부드러운 팝적인 성향의 연주부터, 펑키 사운드, 그리고 전통적인 비밥 성향의 재즈를 결합한 음악을 들려주었다. 그 가운데 1988년 5월 31일과 6월 1일 블루 노트 클럽에서의 공연을 정리한 이 앨범은 다양한 성향의 음악을 자기식으로 만드는 그의 능력을 확인하게 하는 것이었다. 공연에서 그가 연주한 곡은 밀튼 내시멘토의 ‘Cinnamon and Clove’를 시작으로 데이브 그루신의 ‘Marcosinho’, 비틀즈의 ‘Black Bird’, 웨인 쇼터의 ‘Footprints’, 그리고 몽고 산타마리아의 ‘Afro Blue’까지 다양한 스타일을 아우른다. 그러나 그 다양성에도 불구하고 데이브 발렌틴은 아프로 쿠반 드럼 연주자 로비 아민, 콩가 연주자 죠바니 히달고가 제공하는 화려한 라틴 리듬과 펑크 리듬을 적절히 사용하면서 각 곡마다 그만의 개성을 불어넣었다. 그리고 산뜻한 톤을 유지하면서 화려한 플루트 솔로 연주로 감상자를 사로잡았다. 특히 ‘Black Bird’에서의 속주와 풍부한 표현력은 발군이다.

CD8  David Benoit: Freedom At Midnight (1987)

데이빗 베노잇은 데이브 그루신, 리 릿나워 외에 GRP 레이블의 쟁쟁한 연주자들 가운데 가장 높은 인기를 얻었던 연주자이다. 그것은 지금까지 유효하다. 그의 음악이 인기를 얻었던 것은 밝고 산뜻한 피아노를 중심으로 낙관적이고 긍정적인 삶의 정서를 풀어냈기 때문이었다. 이것은 GRP 레이블에서의 첫 앨범이자 단번에 그를 80년대 퓨전 재즈의 스타로 만들어주었던 앨범 <Freedom At Midnight>에서부터 그대로 드러난다.

화사한 리듬이 어우러진 엄텝포의 곡과 그의 피아노를 중심으로 어쿠스틱한 감성을 강조한 발라드 계열의 곡이 적절히 어우러진 이 앨범에서 그는 특유의 싱그러움을 마음껏 표현한다. 특히 그의 피아노 연주를 전면에 내세운 분위기의‘Kei’s Song’, 러스 프리맨의 기타와 호흡을 맞춘 평온한 분위기의‘Pieces Of Time’은 데이빗 베노잇의 피아니즘을 가장 잘 드러낸 곡이다. 그리고 스트링 섹션과 밴드 사운드가 웅장하게 어우러진‘Morning Sojourn’도 밝고 건강한 데이빗 베노잇의 감성을 대변한다.

한편 그의 피아노가 지닌 산뜻함은 빠르고 강렬한 리듬을 만날 때 더욱 배가 된다. 제프 포카로, 레니 카스트로 등이 만들어 경쾌한 리듬 위를 흥겹게 질주하는 타이틀 곡 ‘Freedom At Midnight’과 ‘The Man With The Panama Hat’이 대표적인 경우다. 또한 샘 리니의 알토 색소폰, 그리고 존 패티투치의 베이스와 호흡을 맞춰 전통적인 비밥 스타일을 산뜻하게 풀어나간‘Del Sasser’는 그가 다양한 음악적 성향을 아우르면서도 기본은 재즈에 뿌리를 두고 있음을 생각하게 한다.

CD9  Diane Schuur: Timeless (1986)

다이안 슈어는 GRP 레이블의 여러 아티스트 가운데 거의 유일한 보컬이었다. 그것도 오랜 시간 꾸준하게 활동한 것으로는 그녀가 유일하다. 태어나면서 앞을 보지 못했던 그녀는 다이아나 워싱턴의 음악을 들으며 재즈 보컬의 꿈을 키웠다. 그러던 중 스탄 겟츠의 눈에 띄어 1982년 그와 함께 백악관 무대에 서면서 본격적인 관심을 받았다. 이것이 계기가 되어 GRP 레이블과 계약을 하고 앨범 활동을 시작할 수 있었다. GRP를 통해 앨범 활동을 시작하면서 그녀는 단번에 최정상의 재즈 보컬로 성장했다. 다이안 슈어의 노래가 인기를 얻을 수 있었던 것은 재즈의 전통을 계승하면서도 치열함과 열정의 재즈에서 편안하고 부드러운 재즈로 서서히 취향을 바꾸는 중이었던 당시의 정서를 반영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이것은 GRP레이블의 음악적 방향에 부합되는 것이기도 했다.

앨범 <Timeless>는 그녀의 초기 활동 가운데 가장 빛나는 노래를 담고 있다. 이 앨범으로 그녀는 그래미상 최우수 여성 재즈보컬상을 수상하며 80년대를 대표하는 재즈 보컬로 인정 받을 수 있었다. 앨범은 그 타이틀처럼 세월이 흘러도 변하지 않는 스탠더드 재즈 곡들로 채워져 있다. 이들 곡들을 다이안 슈어는 스트링 오케스트라와 빅 밴드의 지원 속에서 백인이면서도 흑인적인 감성을 적극 반영하여 노래한다. 특히 초기 그녀의 개성으로 자리잡은 매끄럽게 고역으로 상승하는 창법이 상당한 매력으로 다가온다. 한편 그녀는 솔로 앨범을 녹음하면서도 한 동안 스탄 겟츠의 후원을 받았다. 이 앨범에서도 ‘How Long Has This Been Going On?’과 ‘A Time For Love’에서 스탄 겟츠의 풍성하고 부드러운 색소폰이 함께 하고 있다.

CD10  Duke Ellington & His Orchestra: Digital Duke (1987)

1982년 아리스타 레이블과의 관계를 정리하고 진정한 독립 레이블로서의 면모를 갖춘 이후 GRP 레이블은 디지털 녹음과 LP가 아닌 CD발매에 관심을 가졌다. 그리고 이 새로운 기술이 제공하는 향상된 음질을 증명하기 위해 1983년 글렌 밀러 오케스트라의 앨범 <In The Digital Mood>을 CD로 처음 발매해 큰 인기를 얻었다. 이후 데이브 그루신과 래리 로젠은 퓨전 재즈 전문 레이블의 이미지를 벗어나기 위해 유명한 거장들의 앨범을 제작해 나갔다. 그 가운데 이 앨범은 글렌 밀러 오케스트라의 성공에 힘입어 새로운 디지털 환경에서 대규모 빅밴드 사운드가 얼마나 생동감 있게 들리는지, 그리고 레이블이 퓨전 재즈만큼 재즈의 전통에 큰 관심을 갖고 있음을 보여주기 위해 기획되었다.

물론 오케스트라의 리더는 듀크 엘링턴이 아니었다. 그의 아들 머서 엘링턴이 전체를 지휘했다. 대신 듀크 엘링턴 오케스트라의 멤버였던 클락 테리, 루이스 벨슨, 브릿 우드먼 같은 연주자들이 브랜포드 마샬리스, 에디 다니엘스 등과 함께 참여하여 오케스트라의 정통성을 증명하고자 했다. 그렇게 만들어진 오케스트라는 디지털 환경으로 인해 한결 여유로워진 공간속에 과거의 향수를 충실히 재현한다. 그 가운데 브랜포드 마샬리스의 솔로와 브라스 섹션과 피아노가 적절히 어우러진 ‘Cotton Tail’은 스윙 시대의 낭만을 새롭게 음미하게 한다. 그리고 ‘Mood Indigo’, ‘Sophisticated Lady’, ‘Take The ‘A’Train’ 등의 듀크 엘링턴을 대표하는 곡들 또한 재즈가 팝 그 자체였던 스윙 시대를 추억하게 한다. 한편 앨범은 스윙 시대의 낭만으로 가득한 전통적 빅 밴드 사운드가 보다 복잡해지고 속도의 지배를 받는 현재를 위한 배경음악으로도 유효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 그래서 비록 GRP레이블 하면 떠오르는 퓨전 재즈와는 다른 사운드지만 정서적으로는 유사성을 지닌 앨범이라 할 수 있겠다.

CD11  Eddie Daniels: Memos From Paradise (1988)

에디 다니엘스는 1960년대 태드 존스와 멜루이스가 함께 이끌었던 빅 밴드의 색소폰 연주자로 활동을 시작했다. 그러나 태드 존스 멜 루이스 오케스트라의 <Live At The Village Vanguard>앨범에서 펼친 단 한번의 클라리넷 솔로 연주가 호평을 받으면서 13세부터 배웠던 클라리넷을 함께 연주하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서서히 색소폰보다 클라리넷 악기로서의 명성을 얻어나갔다. 그의 클라리넷 연주가 호응을 얻었던 것은 재즈 특유의 화려한 솔로 속에서도 클래식을 연상시키는 우아하고 깔끔한 톤 때문이었다. 그는 1960년대 중반부터 자신의 이름으로 앨범을 녹음했지만 그리 주목을 받지 못했다. 그것이 GRP 레이블과 계약하고 1986년 레이블에서의 첫 앨범 <Breakthrough>를 녹음하면서 인기를 얻을 수 있었다.

그는 찰리 파커의 곡들을 클라리넷으로 연주할 정도로 재즈의 전통을 잘 이해하고 있지만 주로 클래식적 우아함이 돋보이는 크로스오버 성향의 연주에서 강점을 나타내곤 했다. 앨범 <Memos From Paradise>는 재즈의 틀과 클래식적 감성을 효과적으로 결합한 대표적 앨범으로 꼽힌다. 이 앨범에서 그는 작곡과 편곡까지 담당한 건반 연주자 로저 켈러웨이가 이끄는 리듬 섹션과 함께 스트링 쿼텟을 기용하여 크로스오버적인 분위기를 연출했다. 특히 리듬을 절제하고 현대적 울림의 스트링 쿼텟을 적절히 활용한 ‘Impressions From Ancients Dreams’는 클래식적인 맛이 유난히 강하다. 하지만 ‘Spectralight’이나 ‘Homecoming’에서의 산뜻한 톤의 클라리넷 솔로만큼은 에디 다니엘스의 음악이 기본적으로 재즈에 바탕을 두고 있음을 생각하게 된다.

CD12  Eric Marienthal: Crossroads (1990)

색소폰 연주자 에릭 마리엔탈은 칙 코리아가 자신의 일렉트릭 밴드의 멤버로 그를 발탁하기 전까지는 무명에 가까운 클럽 연주자였다. 그러나 칙 코리아의 혜안(慧眼)덕에 일렉트릭 밴드의 멤버가 되고 나아가 80년대 중반 이후 퓨전 재즈의 실력파 연주자로 인정 받을 수 있었다. 다른 일렉트릭 밴드 출신의 동료들처럼 그 또한 기본적으로 도시적이고 편안한 퓨전 재즈를 추구하면서도 비밥에서 출발한 화려한 솔로 연주를 포기하지 않았다.

그는 일렉트릭 밴드 멤버로 활동하는 중에 역시 칙 코리아의 든든한 후원 속에 GRP 레이블에서 리더 앨범을 발표할 수 있었다. 일렉트릭 밴드의 동료 존 패티투치와 함께 직접 제작의 책임을 졌던 그의 세 번째 리더작 <Crossroads>는 지금까지도 그를 대표하는 앨범으로 꼽힌다. 이 앨범에서 에릭 마리엔탈은 당시까지 활발한 활동을 펼치고 있었던 일렉트릭 밴드의 사운드를 자기식으로 반영한 사운드를 펼쳤다. 실제 앨범에는 레셀 페런트, 비니 콜라이우타, 테리 린 캐링턴 등의 일급 세션 연주자들과 함께 존 패피투치, 칙 코리아, 데이브 웨클 등 일렉트릭 밴드의 동료들이 참여하여 색소폰 연주자를 지원했다. 그래서 앨범은 연주자들의 탄탄한 호흡 속에 펼치는 연주의 즐거움이 기본적인 매력으로 다가온다. 그런 이유로 사운드의 질감은 퓨전 재즈의 모습을 하고 있지만 연주의 흐름이나 악기간의 인터플레이 등은 포스트 밥에 더 가깝다고 할 수 있겠다. 특히‘The Sun Was In My Eyes’, ‘Cross Country’ 같은 곡에서의 솔로는 이 색소폰 연주자를 퓨전 재즈 연주자로만 정의하는 것이 부당함을 생각하게 한다.

CD13  The Fabulous Baker Boys OST (1989)

데이브 그루신은 피아노 연주자로서뿐만 아니라 <황금 연못>, <투시>, <구니스>, <졸업> 등 이루 셀수 없을 정도로 많은 영화의 음악을 만든 작곡가로서도 확고한 입지를 구축했다. 그 가운데 제프 브리지스와 보 브리지스 형제, 그리고 미셀 파이퍼가 주연한 영화 <The Fabulous Baker Boys>의 음악은 다른 어느 때보다 재즈적인 색채를 강조했다. 그도 그럴 것이 영화의 내용이 2류 클럽을 돌며 피아노를 연주하는 베이커 형제가 한 여성 재즈 보컬을 두고 갈등하고 화해하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이를 위해 데이브 그루신은 리 릿나워, 어니 와츠 등 GRP 레이블의 스타 연주자와 머서 엘링턴이 이끄는 빅 밴드 등 다양한 성향의 연주자들을 참여시켰다.

그렇게해서 만들어진 사운드트랙은 1989년 당시 GRP 레이블이 지향하는 도시적인 재즈의 전형을 담아낸 것이었다. 어니 와츠의 색소폰이 전통적인 감각 속에 도시의 고독을 표현하는 듯한‘Jack’s Theme’, ‘Suzie & Jack’그리고 리 릿나워의 기타가 전면에 나선 ‘Welcome To The Road’같은 곡이 좋은 예이다. 그러나 가장 흥미로운 부분은 영화에서 재즈 보컬 수지로 열연한 미셀 파이퍼가 배역을 살리기 위해 직접 노래를 했다는 것이다. 사실 그녀의 노래는 어딘가 부족한 듯한 느낌을 주지만 그럼에도 싫어할 수 없는 매력으로 다가온다. 특히 영화에서 붉은 드레스를 입고 피아노 위에서 놰쇄적인 몸짓으로 노래한 ‘Makin’ Whoopee’는 블론디 보컬의 감각적인 면을 잘 살려낸 것이었다. 이 외에 ‘My Funny Valentine’등의 곡이 미셀 파이퍼의 노래로 등장한다.

CD14  Gary Burton: Reunion (1989)

비브라폰 연주자 게리 버튼은 1960년대 등장한 이후 퓨전 재즈, 포스트 밥, 탕고 등 다양한 스타일의 음악을 가로지르는 활동을 펼쳐오고 있다. 그 가운데 그는 부단한 멤버의 교체 속에서 자신의 그룹을 꾸준하게 이끌어왔다. 그러면서 많은 신인 연주자들을 발굴하여 그들의 참신한 역량을 그룹의 음악에 적절히 활용하곤 했다. 특히 기타 연주자를 많이 발굴했는데 그 중에는 팻 메시니도 포함된다. 팻 메시니는 1974년부터 2여 년간 게리 버튼 그룹에 있으면서 솔로 연주자로서의 역량을 키웠다. 그 결과 1975년에는 ECM 레이블에서 첫 앨범을 발표하면서 독자적인 길을 개척할 수 있었다.

1989년 팻 메시니는 게리 버튼 이상으로 인기 있는 스타 연주자로 바쁜 활동을 펼치고 있었다. 하지만 그런 중에 자신에게 기회를 주었던 게리 버튼과 다시 한번 함께하기를 희망했다. 그리하여 녹음된 이 앨범의 타이틀은 바로 팻 메시니와 게리 버튼의 오랜만의 재회를 의미한다. 오랜만에 만났지만 두 연주자의 호흡은 그대로였다. 특히 타이틀 곡 ‘Reunion’이나 ‘Quick & Running’같은 곡은 서로에 대해 공감하고 사이 좋게 같은 길을 가는 두 연주자의 우정을 느끼게 할 정도로 호흡이 좋다. 그런데 과거의 그룹 연주에 비해 전반적으로 게리 버튼의 비중이 다소 줄었다는 인상을 주는데 그것은 팻 메시니의 성장한 만큼 그에게 더 많은 공간을 부여했기 때문이었다. 실제 앨범은 팻 메시니 특유의 목가적인 감성이 곳곳에서 드러난다. 특히 ‘The Chief’같은 곡은 당시 한참 인기를 얻고 있던 팻 메시니 그룹의 여행자적인 정서가 가득한 사운드를 연상시킨다. 하지만 게리 버튼 또한 팻 메시니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면서도 특유의 영롱하고 몽환적인 톤으로 차분하게 자신의 색을 드러낸다.

CD15  Gerry Mulligan: Re-Birth Of The Cool (1992)

1982년 아리스타 레이블에서 독립한 이후 데이브 그루신과 래리 로젠은 퓨전 재즈에 국한된 GRP 레이블의 음악적 폭을 확장하고자 했다. 그래서 재즈의 역사를 체험한 베테랑 연주자들을 영입하기 시작했다. 1950년대 쿨 재즈를 이끌었던 제리 멀리건이 그 대표적인 경우였다. 이 바리톤 색소폰 연주자는 마일스 데이비스가 1949년부터 1950년에 걸쳐 9중주단을 이끌고  <Birth Of Cool>앨범을 녹음할 때 연주는 물론 작, 편곡 등에서 마일스 데이비스에 버금가는 중요한 역할을 했다. 이 역사적인 연주를 그는 1991년에 마일스 데이비스와 다시 한번 재현하고자 했다. 그런데 마일스 데이비스 또한 이 계획에 흥미를 느꼈지만 아쉽게도 앨범 기획 단계에서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그래서 제리 멀리건은 마일스 데이비스를 대신해 왈라스 로니를 부르고 리 코니츠를 대신해 필 우즈를 부르는 한편 원년 멤버인 존 루이스, 빌 바버를 참여시켜 새로운 9중 주단을 만들었다. 그리고 ‘Israel’, ‘Venus De Milo’, ‘Jeru’등 <Birth Of Cool>의 수록곡 12곡을 새로이 연주했다.

그렇게 만들어진‘쿨의 재탄생’은 기본적으로는 과거의 재현적 성격이 강하지만 솔로 연주를 원작보다 더 부각시켰다는 점에서 차이를 보인다. 특히 제리 멀리건의 바리톤 색소폰을 중심으로 트럼펫, 알토 색소폰, 피아노 등이 겹쳤다가 펼쳐지며 솔로 연주를 펼치는 부분이 매우 산뜻하다. 그리고 전체 사운드 또한 다른 관악기들의 참여에도 불구하고 과거 쳇 베이커와 함께 피아노 없는 쿼텟을 결성했던 시절을 연상시킬 정도로 끈적한 습기를 완전히 제거한 듯한 담백한 맛이 일품이다.

CD16  GRP All Star Big Band: GRP All Star Big Band (1992)

1992년은 GRP 레이블이 아리스타 레이블을 떠나 독자적인 길을 걸은지 10년이 되는 해였다. 이를 위해 데이브 그루신과 래리 로젠은 기념 앨범을 제작하기로 마음 먹었다. 이를 위해 두 제작자는 아르투로 산도발, 랜디 브레커, 에릭 마리엔탈, 넬슨 랜겔, 탐 스콧, 밥 민처, 데이브 웨클, 러셀 페런트, 데이빗 베노잇, 데이브 발렌틴, 에디 다니엘스, 리 릿나워 등 당시 레이블에 소속되었던 연주자들을 한 자리에 모았다. 그런데 흥미롭게도 이들과 함께 한 기념 앨범은 GRP 레이블 특유의 퓨전 재즈가 아닌 하드 밥의 전통을 충실하 따르는 빅 밴드 재즈 앨범이었다. 이것은 GRP 레이블을 퓨전 재즈 전문 레이블에 머무르지 않고 재즈의 과거와 현재를 아우르는 보다 폭 넓은 성향의 레이블로 나아가게 하고 싶었던 두 제작자의 의지 때문이었다.

이 앨범이 더욱 놀라웠던 것은 평소 퓨전 재즈 쪽에만 정통한 것으로 여겨졌던 연주자들이 빅 밴드와 하드 밥의 어법들을 훌륭하게 소화했기 때문이었다. 이들은 소니 롤린스의 ‘Airegin’을 시작으로 존 콜트레인의 ‘Blue Train’, 허비 행콕의 ‘Maiden Voyage’, 리 모건의 ‘Sidewinder’, 웨인 쇼터의 ‘Footprints’등을 거쳐 칙 코리아의 ‘Spain’에 이르기까지 하드 밥 시대의 대표 곡들을 빅 밴드의 일체감과 하드 밥의 화려한 솔로를 탁월하게 결합해가며 연주해 나갔다. 그래서 퓨전 재즈의 틀 안에서 이해되었던 이 연주자들도 재즈의 전통을 깊이 이해하고 존중하고 있음을 확인하게 해주었다. 특히 에릭 마리엔탈과 넬슨 랜겔의 알토 색소폰 연주는 상당히 깊은 인상을 남겼다.

이 앨범은 호평 속에서 GRP 레이블의 지난 10년을 다시 보게 만들었다. 그래서 데이브 그루신과 래리 로젠은 이후 앨범 <All Blues>와 <Live!>로 제작을 이어갔다. 그러나 두 제작자가 레이블을 떠나면서 좋은 역사를 만들수 있었던 빅 밴드의 성장도 멈추고 말았다.

CD17  John Patitucci: Another World (1993)

존 패티투치는 현재까지도 최고의 평가를 받는 베이스 연주자이다. 그러나 1990년대야 말로 그의 최전성기가 아니었나 싶다. 그는 1992년부터 1996년까지 <기타 플레이어 매거진>과 <베이스 플레이어 매거진>에서  최 우수 베이스 연주자로 거의 매해 선정되었을 정도로 일렉트릭 베이스와 어쿠스틱 베이스 모두에서 극강의 연주자로 인정받았다. 그는 하드밥, 보사노바, 퓨전 재즈 등 다양한 성향의 연주자들과 활동하면서 실력을 키웠는데 그 가운데 칙 코리아의 일렉트릭 밴드와 어쿠스틱 밴드 활동이 음악적 성장은 물론 명성을 가져다 주었다.

그는 GRP 레이블에서 6장의 앨범을 녹음했다. 그 가운데 이 앨범은 존 패티투치의 탁월한 베이스 연주력과 함께 앨범 타이틀처럼 이국적 공간을 가로지르는 색다른 사운드로 호평을 받았다. 이를 위해 그는 마이클 브레커, 데이브 웨클, 앤디 나렐, 존 비즐리 등의 일급 연주자와 함께 카메룬 출신의 베이스 연주자겸 보컬 아르만드 사발 레코를 참여시켜 앨범 전체에 아프리카적인 색채를 부여했다. 특히 존 패티투치의 기타에 가까운 베이스 솔로 뒤로 이국적인 타악기 리듬과 아만드 사발 레코의 보컬 등장하는 ‘Showtime’은 2000년대에 등장할 리차드 보나의 이국적인 사운드를 예견하는 것이었다. 그렇다고 앨범이 흔히 말하는 에스닉 재즈를 추구했던 것은 아니었다. 역시 이국적인 리듬이 뒤에 자리잡고 있지만 세련된 멜로디가 돋보이는‘My Summer Vacation’같은 곡에서 알 수 있듯이 앨범은 이국적인 공간으로의 여행을 꿈꾸게 하는 것이 목적을 뿐이다.

1990년대 당시 그는 범접할 수 없는 베이스 연주력을 지녔지만 작곡이나 음악적 구성력에 서는 다소 부족하다는 평을 받고 있었다. 그러나 이 앨범을 통해 그가 단순히 빠르고 화려하게 베이스를 연주하는 것에 만족하지 않고 자신만의 상상으로 음악을 만들어 낼 수 있음을 입증했다. 물론 그것은 현재까지도 유효하다.

CD18  Kevin Eubanks: Face To Face (1986)

기타 연주자 케빈 유뱅크스는 상당히 스펙트럼이 넓은 연주자이다. 그는 아트 블레이키 재즈 메신저스의 멤버로 활동하기도 했고 그 외 샘 리버스, 로이 헤인즈 등과 전통적인 스타일의 연주를 하기도 했다. 그리고 1995년부터 약 5년간 브랜포드 마샬리스의 뒤를 이어 제이 레노의 TV 쇼프로그램 ‘The Tonight Show’의 밴드를 이끌기도 했다. 그와 GRP 레이블과의 인연은 1984년부터 시작되었는데 이후 블루노트 레이블로 이적하기 전까지 총 7장의 앨범을 발표하며 레이블의 80년대 전성기를 이끌었다.

그 가운데 이 앨범 <Face To Face>는 전통과 현대를 가로지는 케빈 유뱅크스의 음악적 성향이 잘 반영된 대표작으로 기억되고 있다. 앨범에서 그는 퓨전적인 색채와 전통적인 어법에도 충실한 자신의 모습을 동시에 드러냈다. 이것은 크게 두 종류로 나뉘어진 세션을 통해 드러나는데 마커스 밀러의 탄력적인 베이스와 데이브 그루신의 부드러운 일렉트릭 피아노 가 함께 한‘Face To Face’, ‘Essence 1’, ‘Moments Aren’t Moments’등의 곡이 퓨전 재즈의 역동성을 강조한다면 론 카터의 어쿠스틱 베이스와 듀오로 연주한 ‘Relaxin’ At Camarillo’와 ‘Trick Bag’같은 곡은 비밥으로 대표되는 전통적인 성향을 전면에 내세운다. 특히 Trick Bag’같은 경우 그의 기타가 웨스 몽고메리의 전통을 계승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곡이다. 한편‘That’s What Friends Are For’나‘Wave’같은 곡에서의 멜로디 중심의 연주는 그가 부드러운 팝 성향의 연주에도 능했음을 확인하게 하는 것이었다.

CD19  Lee Ritenour: Portrait (1987)

기타 연주자 리 릿나워는 70년대부터 캡틴 핑거라 불리며 다양한 세션 연주와 솔로 연주를 펼치며 명성을 얻었지만 그의 진정한 음악적 비상은 데이브 그루신과 함께 한 <Harlequin>을 시작으로 GRP에서 활동하면서부터가 아닐까 싶다. 실제 GRP에서 그가 녹음한 앨범들은 모두 GRP는 물론 80년대 퓨전 재즈를 대표하는 앨범들로 기억되고 있다. 70년대에 그는 웨스 몽고메리를 계승한 듯한 톤과 탁월한 리듬감으로 장르를 가로지르는 활동을 펼쳤다. 그러나 GRP, 그리고 데이브 그루신과 손을 잡으면서부터 팝적인 멜로디 감각과 브라질적인 요소를 결합한 연주에 주력했다.  특히 이 앨범 <Portrait>과 그 다음에 발표한 앨범 <Festival>은 뉴욕의 도시적인 정서와 브라질 풍의 이국적인 요소를 효과적으로 결합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그 가운데 앨범 <Portrait>을 통해 그는 타이틀처럼 일렉트릭 기타와 어쿠스틱 기타를 오가며 다양한 상황에서도 자신의 매력을 잃지 않는 자신의 초상을 보여주었다. 먼저 당시 브라질리안 팝(MBP)의 기수였던 쟈반과 함께 한‘Asa’를 비롯하여 안토니오 카를로스 조빔의 곡을 연주한 ‘Children’s Game’은 갈수록 높아지는 브라질 음악에 대한 그의 관심을 반영한다. 그리고 당시 막 인기를 얻기 시작했던 케니지와 함께 한 ‘G Rit’, 러셀 페런트를 비롯한 옐로우자켓 멤버들과 함께 한 ‘White Water’, ‘Runaway’같은 곡들은 리 릿나워식 퓨전 재즈의 역동성을 맛보게 해준다. 한편 서정적인 어쿠스틱 기타 연주 곡 ‘Windmill’에서는 어쿠스틱 기타의 명인 쳇 앳킨스의 영향이 느껴지기도 한다.

CD20  Nelson Rangell: Destiny (1995)

넬슨 랜겔은 GRP 레이블의 90년대를 책임졌던 색소폰 연주자이자 플루트 연주자였다. 사실 재즈를 연주하면서 알토나 테너 색소폰을 주로 연주했지만 어린 시절부터 그가 실력을 뽐냈던 악기는 피콜로 플루트였다. 그는 1980년대 중반부터 전문 연주자로서의 활동을 시작했는데 에릭 마리엔탈, 하이람 불록, 에릭 게일, 자코 파스토리우스 등 퓨전 재즈 내에서도 다소 거칠고 강렬한 질감의 사운드를 선호하는 연주자들과 주로 활동하면서 자신의 색을 만들어 나갔다. 그 가운데 데이빗 샌번 계열의 건조하면서 힘이 넘치는 색소폰 톤을 만들어 냈다. 그는 GRP 레이블에서만 총 7장의 앨범을 녹음했다. 그 중 데이브 그루신과 래리 로젠이 레이블에서 손을 뗄 무렵이었던 1994년 11월부터 1995년 1월 사이에 녹음된 앨범 <Destiny>는 지금까지 그를 대표하는 앨범으로 기억되고 있다.

이 앨범에서 넬슨 랜겔은 첫 곡 ‘The Road Ahead’, ‘Streetwise’그리고 타이틀 곡 ‘Destiny’등을 통해 특유의 활력 넘치는 연주를 유감 없이 드러낸다. 특히 이들 곡처럼 빠른 템포의 곡에서는 테너, 알토, 소프라노 색소폰을 오버더빙을 통해 직접 연주하여 만들어낸 혼섹션으로 사운드에 더욱 강렬한 힘을 불어넣었다. 반면‘Rainbow Shadows’, ‘Joie De Vivre 삶의 기쁨’등의 곡에서는 플루트 연주로 밝고 긍정적인 분위기를 표현했다. 한편 펑키한 분위기의 곡에서도 그렇지만 ‘A House Is Not A Home’의 연주는 유난히 데이빗 샌번을 연상시킨다.

CD21  The Rippingtons: Curves Ahead (1991)

리핑톤스는 기타 연주와 작,편곡 제작까지 도맡아하고 있는 러스 프리맨이 이끄는 그룹이다. 이 그룹은 선글라스를 끼고 웃고 있는 고양이 이미지를 앨범마다 마스코트로 사용하면서 그에 걸맞은 낙관적인 분위기의 퓨전 재즈를 선보여왔다. 현재도 건재한 모습을 보이고 있지만 그래도 그룹의 전성기는 GRP 레이블에서 앨범 활동을 할 때였다. 그 가운데 이 앨범 <Curves Ahead>는 <Tourist In Paradise>와 함께 리핑톤스의 매력을 가장 잘 드러낸 앨범으로 기억된다. 리핑톤즈의 음악은 편안한 사운드를 추구하면서도 활력넘치는 리프와 이국적인 리듬으로 구성되곤 한다. 그리고 여기서 발생된 늘 어딘가를 꿈꾸게 만드는 동경의 정서는 그룹만의 매력이다. 이 앨범을 리핑톤스는 당시 콜로라도에 러스 프리맨이 새롭게 만든 스튜디오에서 녹음했다. 그러면서 흰 눈으로 덮힌 스키장이 많은 그곳의 분위기를 많이 반영했다. 첫 곡이자 타이틀 곡 ‘Curves Ahead’와 ‘Aspen’이 이를 잘 반영한다. 이 외에 앨범은  ‘Santa Fe Trail’, ‘North Star’, ‘Miles Away’같은 곡을 통해 이곳이 아닌 다른 곳을 상상하게 한다. 특히 ‘Nature Of Beast’같은 곡은 감상자를 아프리카로 데려간다. 또한 ‘Take Me With You’나 ‘Morning Song’ 등의 곡들은 리핑톤스의 달콤함을 맛보게 해주는 곡이다. 한편 2년 앞서 녹음된 앨범 <Tourist In Paradise>와 함께 이 앨범을 들어보는 것도 좋다. 이번 앨범의 스키 이미지와 반대로 서핑 이미지를 사용한 앨범 표지부터 곡들의 구성까지 여러 모로 통하는 면이 있다.

CD22  Spyro Gyra: Road Scholars (1998)

스파이로 자이라는 색소폰 연주자 제이 베켄슈타인을 중심으로 1974년에 결성된 이후 많은 멤버의 변화를 거치면서도 지금까지 꾸준한 활동을 펼치고 있는 퓨전 재즈계의 장수 밴드이다. 이 그룹은 초창기부터 MCA 레이블을 통해 앨범을 발표해왔다. 그러다가 1990년 MCA가 GRP 레이블을 인수하고 기존 카탈로그의 일부를 GRP 레이블로 옮기면서 GRP 레이블 소속으로 앨범을 발표하게 되었다. 이렇게 자의 반 타의 반으로 맺은 인연이지만 스파이로 자이라는 GRP 레이블의 90년대를 풍성하게 만드는데 큰 역할을 했다.

1997년 스파이로 자이라는 20번째 앨범 <20/20>을 발매하고 20년의 앨범 활동을 기념하기 위해 순회 공연을 펼쳤다. 그것을 정리한 것이 이 앨범 <Road Scholars>이다. 앨범은 라이브 앨범을 떠나 ‘Morning Song’을 비롯한 그룹의 대표곡들로 앨범을 채워 그룹의 역사를 역동적으로 조망하게 했다. 또한 스파이로 자이라의 음악적인 측면을 다시 보게 만들었다. 그동안 스파이로 자이라는 R&B, 펑크적인 요소와 캐리비언 리듬을 결합한 음악을 펼쳐왔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서 지나치게 팝쪽으로 기운 음악을 펼친다는 평가를 받곤 했었다. 하지만 이 라이브 앨범에서는 스튜디오 앨범에서의 대중적인 성격을 유지하면서도 각 멤버의 탁월한 연주력을 드러내어 평단의 높은 지지를 받을 수 있었다. 특히 10분 이상으로 확장한‘Shaker Song’에서의 화려한 솔로 연주와 숨막히는 호흡은 스파이로 자이라의 진면모를 보여주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한편 이 앨범을 끝으로 스파이로 자이라는 GRP 레이블을 떠나게 된다.

CD23  Tom Scott: Reed My Lips (1994)

색소폰 연주자 탐 스콧은 리더보다 세션 연주자로서의 경력이 더 화려하다. 그는 프랑크 시나트라, 퀸시 존스 같은 재즈계의 인물들은 물론 스틸리 댄, 캐롤킹, 폴매카트니, 휘트니 휴스턴 등 팝, 록쪽의 유명 아티스트들의 앨범에 참여하기도 했으며 ‘스타스키와 허치’같은 TV 시리즈 및 ‘택시 드라이버’, ‘블레이드 런너’등의 수 많은 영화의 사운드트랙에도 참여하며 1급 세션 연주자라는 평가를 받았다.

그는 1987년부터 GRP 레이블과 인연을 맺었다. 그 가운데 그로버 위싱턴 주니어, 로밴 포드, 에릭 게일등과 함께 한 앨범 <Reed My Lips>는 터질듯한 힘으로 강렬하게 연주하는 그의 매력이 가장 효과적으로 잘 드러난 앨범이다. 펑키한 감각이 잘 살아 있는 첫 곡 ‘Upbeat 90’s’나 ‘Walk The Miles’같은 곡이 대표적이다. 반면 제리 로페즈의 보컬이 있는 ‘Sarah Sarah’등 퓨전 재즈에서 R&B와 결합하여 보다 팝적인 스무드 재즈로 나가는 당시의 흐름을 반영한 듯한 어깨에 힘을 뺀 연주를 곡들도 있다. 이 외에 그로버 워싱턴 주니어와 색소폰 배틀을 펼치는 잼 형식의 타이틀 곡 ‘Reed My Lips’, 오버더빙을 통해 모든 음역대의 색소폰을 혼자 연주하여 만들어 낸 ‘Saxappella’같은 곡이 탐 스콧의 연주자적 매력을 느끼게 해준다. 한편 곳곳에 힙합 리듬을 사용하고 ‘Every Day and Every Minute’에서 다운 탬포를 기반으로 영화적 상상력이 느껴지는 우주적인 공간감을 연출한 것은 90년 후반에 널리 퍼질 일렉트로니카 라운지 음악을 예견했다 싶을 정도로 시대를 앞서간 것이었다.

CD24  Urban Knights: Urban Knights 2 (1997)

어반 나잇은 피아노 연주자 램지 루이스가 중심이 된 프로젝트 밴드다. 그런데 그 프로젝트를 위해 모인 연주자들이 그로버 워싱턴 주니어, 내지, 데이브 코즈, 얼 클루 같은 퓨전 재즈계의 스타들이었다는 점에서 더욱 관심을 모았다. 사실 프로젝트의 리더 램지 루이스는 1950년대에 등장해 하드 밥을 거쳐 소울 재즈, 팝 재즈 성향의 연주를 펼쳤다. 그래도 70년대 일렉트릭 피아노를 연주하기도 했지만 기본적으로 어쿠스틱 트리오식의 감각을 유지했었다. 그러므로 60이 되어서 젊은 감각을 필요로 하는 퓨전 재즈를 들고 나온 것은 충분히 가능한 일이었으면서도 의외성이 강했다. 사실 여기에는 1960년대 중반 램지 루이스 트리오의 드럼 연주자이자 R&B 그룹 어스 윈드 앤 파이어의 리더였던 모리스 화이트가 제작을 담당한 탓도 크다.

어반 나잇은 GRP에서 두 장의 앨범을 녹음했다. 그 가운데 이 앨범은 그 두 번째 앨범으로 제랄드 올브라이트, 조나단 버틀러, 내지 등의 유명 연주자들이 함께 했다. 이들은 램지 루이스와 모리스 화이트의 지휘 아래 펑키한 감각과, 브라질이나 아프리카의 이국적인 이미지 그리고 90년대 팝의 주류로 부각되었던 R&B적인 면을 결합하여 도시적인 느낌의 세련된 사운드를 만들어 냈다. 그리고 비교적 단순한 리듬 패턴의 반복과 멜로디 중심의 연주는 이제 퓨전 재즈가 스무드 재즈로 변화를 겪고 있음을 보여주었다.

한편 이 앨범이 발매된 1997년은 데이브 그루신과 래리 로젠이 떠나면서 GRP 레이블의 앨범 제작도 조금씩 힘을 잃던 시기였다. 이 앨범은 서서히 과거 속으로 들어가던 GRP 레이블의 모습, 그리고 스무드 재즈로 넘어간 퓨전 재즈의 상황을 확인하게 한다.

CD25  Yellowjackets: Like A River (1993)

옐로우자켓은 스파이로 자이라와 함께 현재까지 꾸준한 활동을 펼치고 있는 장수 퓨전 재즈 그룹이다. 이 그룹 역시 스파이로 자이라처럼 원래 MCA 레이블 소속이었다가 소속사가 GRP 레이블을 인수하게 되면서 자연스레 GRP 레이블 소속으로 앨범 활동을 하게 되었다.

건반 연주자 러셀 페런트, 베이스 연주자 지미 해슬립 등에 의해 1981년에 결성된 이래 옐로우자켓은 여러 차례 멤버의 교체를 겪으면서 음악 또한 변화를 거듭해왔다. 그 가운데 색소폰 연주자 밥 민처의 가입이 가장 큰 변화를 가져왔는데 그는 R&B적인 색채가 강했던 그룹의 기존 음악을 재즈적인 면이 강조된 방향으로 돌리게 했다. 앨범 <Like A River>는 밥 민처의 가입이 가져온 변화가 가장 효과적으로 반영된 앨범이었다. 이 앨범에서 그룹은 갈수록 퓨전 재즈가 멜로디 중심의 가벼운 연주로 흐르는 것에 역행하겠다는 듯 팽팽한 긴장 속에서 재즈의 전통을 적극 반영한 솔로를 주고 받는다. 또한 펑키한 리듬이 등장함에도 이지적인 분위기로 연주 자체에 집중하게 만든다. 이러한 차분함은 1991년 마일스 데이비스의 사망도 어느정도 관련이 있는 듯하다. 실제 앨범은 트럼펫 연주자 팀 헤이건스와 함께 마일스 데이비스를 향한 헌정 곡‘Dewey’를 연주했는데 이 곡 외에도 여러 곡에서 마일스 데이비스의 그림자가 짙게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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