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idnight In Paris – Woody Allen (Mediapro 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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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영화에 관한 글을 하나 썼다. 원고지 서른 여섯 장 분량의 글이다. 그 글의 대략적인 내용을 정리해 본다. 재즈를 중심으로.

재즈를 듣다 보면 가끔은 1950,60년대로 건너가고픈 생각을 하게 되곤 한다. 그런 생각을 하게 되는 것의 이면에는 지난 시대의 재즈가 훨씬 더 매력적이었다는 생각이 있기 때문이다. 실제 마일스 데이비스, 존 콜트레인, 델로니어스 몽크 등의 연주를 직접 들으면 얼마나 짜릿하겠는가? 하지만 그럴 수는 없는 법. 그리고 재즈의 기본이 진보라면 과거보다 지금이 훨씬 더 짜릿할 수 있지 않을까?

이 영화는 바로 그런 생각을 수정하게 한다. 그렇다고 재즈를 직접 적으로 거론한다는 것은 아니다. 예술 전체의 차원에서 말한다.

(여기서부터 스포일)

영화는 1920년대의 파리, 그것도 비 오는 파리가 가장 낭만적이라 생각하는 미국 출신의 초보 작가 질이 파리에 약혼자 가족과 함께 여행을 오는 것으로 시작한다. 그리고 혼자 밤 길을 걷다가 자정에 일군의 무리들이 찬 오래된 푸조 자동차에 합류한다. 그런데 그 사람들이 1920년대를 빛냈던 예술가들이 아닌가? 그가 만난 사람들은 거트루드 스타인, 스콧 핏제랄드, 어네스트 헤밍웨이, 파블로 피카소, 조세핀 베이커, 살바도르 달리, 콜 포터 등이다. 그가 흠모하던 예술가들을 만나 그들과 예술을 이야기할 수 있다니 얼마나 짜릿한가? (특히 헤밍웨이의 진실한 문학에 관한 이야기를 듣는 장면은 평범하지만 내겐 흥미로웠다. 스콧 핏제랄드의 방탕한 삶도 사실적이었고.) 그런 집단에서 그는 피카소의 애인인 아드리아나를 만나 호감을 느낀다. 그런데 그녀는 질이 그토록 흠모하던 1920년대를 답답해 하고 1차 대전 직전의 벨 에포크(Belle Epoque 아름다운 시절) 혹은 황금 시대(L’age D’or)를 좋아한다. 그런 중에 두 사람은 우연히 자정에 한 마차를 타고 아드리아나가 바라던 1890년대로 가게 된다. 아뿔싸. 그곳에서 만난 툴르즈 로트렉, 폴 고갱 등의 예술가들은 르네상스를 그리워 하지 않던가? 여기서 질의 깨달음이 시작된다.

이쯤 되면 영화가 말하고자 하는 바가 이해될 것이다. 영화는 현재가 최고의 시대일 수도 있음을 말한다. 하지만 감독이 묘사한 1920년대가 너무나 낭만적이라서 이러한 사실이 믿겨지지 않는다. 하지만 감독이 묘사한 1920년대의 환상을 다시 생각하면 감독이 의도와 다르게 시대를 미화했다고 생각되지는 않는다. 예로 파리를 묘사함에도 많은 미국인 작가들이 등장하는데 그들은 바로 잃어버린 세대(Lost Generation)을 대표하는 사람들이었다. 즉, 1차 대전 이후 미국의 실업 사회에 환멸을 느껴 파리로 도피한 사람들이라는 것. 실제 역사적으로 이들 작가들은 거트루드 스타인의 살롱을 중심으로 파리에 모였었다. 아무튼 그들의 삶은 낭만적으로 보이긴 하지만 사실은 자기 소비적이었다. 낭만보다는 데카당스에 가까운.

이런 상황에서 재즈는 영화 곳곳에 흐른다. 그런데 그 음악이 프랑스를 배경으로 한 만큼 집시 스윙이 주를 이룬다. 하지만 이 음악들은 영화 속 현재에만 흐를 뿐이다. 과거에는 흐르지 않는다. 왜냐하면 미국의 재즈가 프랑스에 들어와 열광과 환호의 시기를 거쳐 프랑스적인 재즈, 집시 재즈를 만들게 된 것이 그 이후인 1930년대였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냥 프랑스적인 것을 강조하기 위해 현실에서만 이 집시 스윙이 등장한다. 한편 영화의 타이틀 음악으로 사용된 시드니 베세의 ‘Si Tu Vois Ma Mere 내 엄마를 보면’도 인상적이다. 특히 영화가 시작된 이후 약 3분간 파리의 아침-점심-저녁-밤을 보여주는 멋진 화면 아래로 흐를 때는 그 자체로 프랑스의 낭만을 느끼게 된다. 그런데 시드니 베세의 음악이 사용된 것은 그 또한 프랑스와 관련이 있기 때문이다. 그는 1920년대 프랑스에서 공연을 펼친 적이 있고 그 중에 흑인 연주자에 대한 프랑스인의 환대에 감동해 1950년대엔 아예 파리에서 살며 활동을 했다. 그래서 많은 프랑스어 제목의 곡들을 만들었는데 그 중 하나가 ‘내 엄마를 보면’이었다.

그렇다면 1920년대에는 어떤 음악이 흐를까? 현 프랑스 재즈의 자양분이 되는 아코데온 음악, 오페레트 같은 음악들이 흐른다. 그 가운데 주목해야 할 것은 콜 포터의 노래다. 영화는 콜 포터가 클럽에서 피아노를 연주하며 직접 ‘Let’s Do It’을 노래하는 장면이 나온다. 콜 포터 역시 브로드웨이에서 성공하기 전인 1920년대에 파리에서 머물렀었다. 그러다가 1928년 한 뮤지컬 음악을 담당하면서 브로드웨이에 입성했는데 그 뮤지컬이 바로 <Paris>였고 그 중 한 곡이 ‘Let’s Do It’이었다. 이 곡은 현실에서도 sp 음반에 담겨 흐르며 질의 환상과 현재를 연결한다.

아무튼 이 영화를 보면서 현재에 대한 중요성을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되었다. 여전히 마일스 데이비스, 존 콜트레인을 직접 보고픈 마음은 있지만 말이다.

PS: 아! 그리고 영화를 보는 재미 중의 하나는 유명 예술가들의 대역들을 보는 것이다. 감독이 그들을 연구한 듯 그 대역들은 실제와 상당히 비슷하게 나온다. 그러므로 영화를 재미있게 보기 위해서는 그 예술가들을 어느 정도 알고 있어야 할 것이다. 적어도 거트루드 스타인이 파리의 ‘잃어버린 세대’ 집단에서 얼마나 중요한 역할을 했는가 정도는 알아야 할 듯.

그리고 칼라 브뤼니가 미술 가이드로 나온다. 좀 심심하게..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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