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음악을 좋아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여기에는 여러 답이 가능하리라 생각한다. 하지만 결국 모든 답변은 그것이 우리의 기분을 좋게 하기 때문이라는 것으로 모아지지 않을까? 실제 우리는 음악을 통해 기쁨을 배가하고 슬픔을 잊곤 한다. 특히 슬플 때 음악이 우리에게 주는 위로는 대단하다. 당신도 실연의 고통, 이별의 아픔을 완화하기 위해 음악을 들었던 적이 있을 것이다. 이렇게 음악으로 인해 우리 마음이 정화됨을 느낄 때면 뮤직 테라피나 힐링 뮤직 같은 용어를 들먹이지 않아도 음악의 힘이 대단함을 느끼게 된다.
병상에서 음악을 시작하다
혹시 음악의 치유 기능에 대해 확신을 하지 못하겠다는 사람이 있다면 멜로디 가르도의 삶과 음악에 관심을 가져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왜냐하면 그녀가 노래를 시작하게 된 계기가 교통 사고로 인한 후유증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2003년 11월, 18세의 멜로디 가르도는 자전거를 타고 있었다. 그러던 중 적색 신호등을 무시한 지프 자동차가 그녀를 덮쳤다. 이 사고로 그녀는 골반이 부러지고 척추와 머리에 심각한 손상을 입었다. 그래서 약 1년을 병상에 누워 있어야 했다. 병상에 누워 있으면서 그녀는 이를 닦고 걸음을 걷는 등의 기초적인 동작부터 다시 배워야 했다. 하지만 신경 손상으로 인해 망막 이상은 치유할 수 없었다. 그래서 이후 지속적으로 선글라스를 착용해야 했다. 하지만 더욱 심각했던 것은 기억의 이상과 시간감각의 상실이었다. 이로 인해 그녀는 가벼운 대화조차 쉽게 할 수 없었다. 그래서 그녀는 매일 아침 시지프스처럼 에베레스트 산을 다시 오르는 듯한 막막함 속에 눈을 떠야 했다.
이러한 심각한 뇌 신경 이상을 치유하기 위해 시작한 것이 음악을 듣고 직접 곡을 만드는 것이었다. 병상에서 그녀는 의사들의 도움 속에 음악을 조금씩 듣고 만들어 나갔다. 당시 그녀가 만질 수 있었던 악기는 기타. 제대로 앉을 수 없었기에 피아노는 연주할 수 없었다.
그런데 치유를 위해 음악을 만들고 이에 따라 그녀의 뇌와 신경 문제가 치유되면서 그녀는 음악이 자신의 앞으로 나아가야 할 길임을 깨닫게 되었다. 그래서 치유뿐만 아니라 순수한 음악적 즐거움 속에서 곡을 써나갔다. 그리고 이를 간단한 테이프 레코더에 녹음하여 EP <Some Lessons: The Bedroom Sessions>를 제작했다. 물론 이 무렵에도 그녀는 지극히 개인적인 차원에서 만든 음악을 발표하는 것을 망설였다고 한다. 하지만 주변의 권유로 EP를 발매했고 그 수록 곡이 필라델피아의 라디오에서 방송되면서 본격적인 음악인의 길을 시작하게 되었다.
치유를 위해서 음악을 시작했다고 하지만 그렇다고 그 때까지 그녀가 음악적 소양이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니었다. 그녀는 어린 시절부터 피아노를 배웠을뿐더러 16세 무렵에는 클럽에서 마마스 & 파파스, 듀크 엘링턴, 라디오헤드 등의 음악을 연주하고 노래하기도 했다. 그래서 의사가 음악 치료를 권했던 것인지도 모르겠다.
자신을 넘어 감상자를 치유하다
아무튼 새옹지마(塞翁之馬)의 고사처럼 교통사고는 분명 그녀의 인생에 커다란 불행이었지만 이로 인해 전문 음악인의 길을 걷게 된 것은 그녀에게 행운이었다. 게다가 그 행운은 계속 이어졌다. EP가 유니버설 뮤직의 관계자의 마음에 들었던 것이다. 그 결과 그녀는 2008년 2월 첫 번째 앨범 <Worrisome Heart>을 녹음할 수 있었다. 이 첫 앨범에서 그녀는 EP에서와 마찬가지로 개인적인 경험과 감정이 반영된 음악을 선보였다. 그래서 지금처럼 재즈로 분류하기 어려운 곡들, 재즈와 블루스, 포크, 팝을 정교하게 결합한 곡들이 주를 이루었다. 그리고 이것은 무척이나 신선하게 다가왔다. 하지만 이 앨범의 매력은 장르적 가로지름이 아니라 곡에 담긴 정서에 있다. 앨범에서 그녀는 특유의 스모니 보이스로 22세의 여성이라 믿기 어려운 성숙한 감정을 표현했다. 그것은 세상의 이런저런 고통, 흔히 말하는 산전수전(山戰水戰)을 겪은, “그립고 아쉬움에 가슴 조이던 머언 먼 젊음의 뒤안길에서 인제는 돌아와 거울 앞에 선” 중년 여인의 정서를 닮은 것이었다. 그래서 고통의 정서를 담고 있는 것 같으면서도 그녀의 노래는 이를 넘어선 치유와 위로의 힘이 느껴졌다.
첫 앨범의 인상적인 성과 이후 그녀는 제작자 래리 클라인을 만나 두 번째 앨범 <My One & Only Thrill>을 녹음했다. 당시 마들렌느 페루, 허비 행콕 등의 최근 앨범을 성공적으로 제작했던 이 명 제작자와의 만남이 없었다면 그녀는 개성만큼 소수를 위한 보컬로 남았을 지도 모른다. 하지만 연주자나 보컬의 장점을 극대화 할 줄 알았던 래리 클라인은 이번에도 멜로디 가드로의 매력을 잡아내어 앨범이 개인적이면서도 보편적 공감을 얻을 수 있도록 했다. 그 결과 깊은 슬픔과 이에 대한 체념에 가까운 담담함의 정서가 돋보이는 앨범이 만들어졌다. 특히 앨범의 절반 이상을 지배하는 슬픔의 정서는 빌리 할리데이나 이에 영향을 받은 애비 링컨의 슬픔에 비교할 수 있을 정도로 인상적이었다. 다만 선배들의 노래가 슬픔의 심연으로 감상자를 빠트리게 했다면 그녀의 노래는 슬픔에서 다시 희망을 꿈꿀 수 있게 한다는 점이 달랐다. (그 좋은 예가 앨범의 마지막에 배치된 Over The Rainbow다) 그 결과 앨범은 미국뿐만 아니라 프랑스와 독일 등 유럽에서도 큰 성공을 거두었다.
두 번째 앨범의 성공으로 인해 그녀는 약 2년간 세계를 돌며 공연할 수 있었다. (한국에서도 그녀의 공연이 있었다.) 바쁜 공연이 이어졌던 만큼 그녀는 휴식의 필요를 느꼈다. 그래서 2년여의 공연 활동 끝에 모로코, 포르투갈, 아르헨티나, 브라질 등으로 이어지는 여행을 떠났다. 그런데 2010년 여름 모로코의 마라케시를 향해 늦은 밤 사막을 가로지르는 중에 그녀는 언어와 문화는 달라도 여행 중에 그녀가 접했던 여러 음악들이 정서적인 면에서 서로 공통된 부분이 있음을 깨달았다. 이 발견은 포르투갈의 리스본을 거쳐, 아르헨티나의 부에노스 아이레스, 그리고 브라질의 여러 해변을 여행하면서 더욱 확실해졌다. 여행지의 일상을 구성하는 평범한 사람들을 바라보고 그들의 삶에 배경으로 흐르는 음악을 들을수록 비록 저마다 다른 방식으로 하루 하루를 살고 다른 스타일의 음악을 듣지만 기쁨과 슬픔의 정서는 통하는 부분이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그녀는 다른 사람들은 사진으로 남겼을 여행에서 보고 느낀 것을 음악으로 남기기로 했다.
여행을 통해 만들어 낸 새로운 위안 노래들
그것이 이번에 새로 발매된 앨범 <The Absence>이다. 이 앨범에서 그녀는 여행지에서 들었던 탕고, 보사노바, 삼바, 파두 등의 음악을 자기 식대로 활용하면서 여행 중에 자신이 겪었던 일들, 느낌 등을 담백하게 표현했다. 그러면서 그녀의 음악적 기본을 이루는 슬픔과 이를 극복하는 희망의 정서를 담아 앨범이 그녀의 것임을 명확히 했다. 그래서 앨범은 저절로 멜로디 가르도의 여행기에 귀를 기울이게 하는 한편 그녀처럼 나 또한 일상에 부재(Absence!) 표시를 남기고 떠나고 싶게 만든다.
지금까지 살펴본 멜로디 가르도의 삶은 음악이 얼마나 놀라운 치유의 능력이 있으며 또 그것이 한 개인의 삶을 어떻게 바꿀 수 있는지 보여준다. 그리고 음악 이전에 어려움에 절망하는 대신 그 어려움을 받아들이고 다시 희망을 꿈꾼다면 새로운 방향으로 운명이 길을 바꿀 수 있음을 깨닫게 해준다. 그러므로 삶이 힘들고 무겁게 느껴질 때 멜로디 가르도의 노래를 듣는다면 그 근심이 치유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