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욕망하는 이상적 시공간을 그리게 하는 사운드
소음 가득한 도시를 걷다 보면 우리는 그 세계에서 벗어나고픈 욕망을 강하게 느끼게 된다. 하지만 그 벗어남이 꼭 고요한 침묵의 세계는 아닌 것 같다. 정적 속에 있으면 우리들은 오히려 외로움과 불안을 느끼는 듯 하다. 그렇기에 우리들은 복잡하고 어지러운 현실을 잊기 위해 이어폰을 끼고 음악을 듣는 것은 아닐까? 카페나 바 등에서 듣게 되는 음악도 어쩌면 정겨운 대화가 잠시 멈출 때 만들어지는 어색한 침묵을 가리기 위해서일 지도 모른다. 오늘날 음악이 감상의 대상이 아니라 우리 일상의 배경을 장식하는 도구의 역할이 강하게 된 것도 이 때문이리라.
음악이라면 기본적으로 일상을 장식하는 기능을 지니고 있지만 그 중에 라운지 음악은 우리 삶의 배경 음악으로서의 기능을 우선시한다. 그렇다고 음악적으로 꼭 지켜야 할 장르적 규칙을 지닌 것은 아니다. 실제 라운지 음악이라는 개념이 정립되었던 1950,60년대에는 프랑크 시나트라나, 딘 마틴 같은 크루너의 노래들이나 달콤한 멜로디 중심의 피아노 연주-칵테일 음악이라고도 불리는-를 라운지 음악이라 부르곤 했다. 하지만 요즈음은 보사노바, 탕고, 재즈, 프렌치 팝, 일렉트로니카 등 다채로운 음악을 적절히 섞은 음악, 그래서 익숙함과 새로움이 공존하는 음악이 라운지 음악으로 분류되고 있다. 또한 이 라운지 음악은 다양한 장르들이 혼재되어 있는 만큼 감상자로 하여금 이 곳이 아닌 다른 곳을 상상하는 한편 그런 중에도 그 상상이 도시라는 공간에 머무르게 하는 힘이 있다.
그렇다면 왜 하필 ‘라운지 음악’일까? 이것은 호텔 라운지 바 같은 곳에서 사람들이 나누는 가벼운 담소를 해치지 않으며 그 곳의 분위기를 편하게 해주는 음악으로 라운지 음악이 등장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나는 그 어떠한 이국적 단어보다도 ‘라운지’라는 단어가 오늘을 사는 우리들의 배경 음악을 설명하는데 가장 잘 어울린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호텔 라운지야 말로 도시 안에서 가장 이국적인 상상을 보장하고 일상을 벗어나고픈 우리의 욕망을 반영한 공간이기 때문이다. 호텔은 각양각색의 여행자들이 교차하는 곳이다. 그래서 도시에 위치해 있으면서도 호텔은 늘 그 도시가 아닌 다른 곳을 향하는 이국적인 의미를 지닌다. 도시를 떠나지 못하는 거주자들은 호텔 라운지에서 잠시 머무는 것만으로 이국적인 여행의 정서를 느낄 수 있다. (직접 떠나지 못하는 것이 슬프긴 하지만) 그러니 현실을 살짝 부유(浮游)하게 하고 도시적이면서도 이국적인 상상을 자극하는 음악을 ‘라운지’음악으로 부르는 것이 당연하지 않겠는가?
안드레아스 스트로흐(베이스, 보컬)을 리더로 미리암 스크로반(보컬, 타악기), 클라우디우 게오르규(건반), 로버트 코프(드럼, 타악기)로 구성된‘4 To The Bar’는 라운지 음악의 모범을 보여주는 그룹이다. 1990년에 결성된 이 독일 출신의 4인조 그룹은 그동안 4장의 앨범을 통해 바, 클럽 등의 도시적 공간에 어울리는 음악을 지향하면서도 정서적으로는 이국적 여행을 자극하는 음악을 선보여왔다. 그리고 이것은 지금 우리가 듣고 있는 다섯 번째 스튜디오 앨범 <Your Heart Is Too Slow>에서도 그대로 지속된다. 특히 이번 앨범은 음악적 균질성(均質性), 세련미, 정서적 매력 등에서 이전 넉 장의 앨범보다 한층 뛰어난 모습을 보인다.
이번 앨범에서 네 멤버는 재즈를 중심으로 삼바, 보사노바, 프렌치 팝, 엘릭트로니카 등을 자유롭게 가로지른다. 하지만 그렇다고 이들이 곡에 따라 스타일을 바꾼다는 것은 아니다. 이 다양한 스타일을 다양한 비율로 곡 하나에 응축시키고 있다는 것이다. 그렇기에 이들의 곡들은 재즈로 분류하기에는 다소 가볍고, 원초적인 라틴 음악으로 정의하기에는 너무나 도시적이며, 일반 팝 음악으로 분류하기에는 이국적인 맛이 강하다.
그런데 이러한 다양한 스타일의 혼재는 그룹의 음악을 익숙하면서도 신선한 것으로 받아들이게 한다. 기존에 듣던 음악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 듯하면서도 섬세한 부분에서는 다르게 다가오기에 감상자를 색다른 상상으로 이끈다. 그 색다른 상상은 내가 살고 있는 이 시간, 이 공간과 유사하면서도 다른 시공간의 상상을 말한다. 도시적이지만 내가 살고 있는 곳이 아니라 다른 도시, 여행자의 신분이기에 모든 것이 자유롭게 다가오는 낯선 도시를 상상하게 하는 것이다. 또한 지금은 복고적 맛이 강한 (스윙) 재즈의 이미지를 차용함으로써 우리가 살고 있는 현재와 과거가 혼재하는 시간, 실제 현실보다는 낭만적일 것 같은 시간을 상상하게 한다.
이러한 특별한 시공간적 감각은‘From Rome To Brasillia, From Oslo To Lima’란 가사가 나오는 타이틀 곡을 시작으로 영어와 프랑스어 버전으로 각각 노래되어 떠남을 자극하는‘Fly Away’, 스트레스를 완화시킨다는 설탕을 넣은 차를 통해 긴장의 완화를 유도하는‘Sugar In The Tea’, 구김 없는 삶을 그리게 하는 ‘Sunny Day’,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새삼 생각해 보게 만드는 ‘My Favorite Things’,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를 생각하게 하는 ‘Forever & Ever’와 ‘A Minute In My Life’같은 곡들의 제목을 통해서도 쉽게 인식된다.
한편 아무리 음악적인 메시지가 강렬하고 매력적이라 해도 그것이 실제 연주와 노래를 통해 제대로 구현되지 못했다면 아무런 소용이 없을 터. 하지만 라틴 리듬과 가벼이 흔들리는 스윙 재즈 리듬을 완벽히 소화하는 안드레아스 스트로흐와 로버트 코프의 안정적인 리듬 섹션, 사운드의 질감을 결정하는 클라우디우 게오르규의 다양한 건반 연주, 그리고 부드럽고 따스하며 때로는 몽환적이기까지 한 미리암 스크로반의 노래, 그리고 게스트로 참여한 유크라우스의 트럼펫과 위르겐 슈와브의 기타가 어우러진 사운드는 그들이 머리 속에 그렸을 음악적 이미지를 명확하게 구현한다. 또한 편곡에 있어서 일체의 슬픔마저 낙관적 긍정으로 받아들이게 하는 미디엄 템포의 적극적인 사용, 제작에 있어서 키보드 외에 어쿠스틱 악기를 주로 사용했음에도 도시적인 일렉트로니카 음악의 질감을 연출한 것도 그룹이 자신들의 음악적 방향, 이미지를 명확히 인식하고 이에 따라 모든 것을 선택했음을 생각하게 한다.
어쩌면 이 앨범에서 4 To The Bar가 제시하고 있는 시공간은 어지러운 도시의 삶을 영위하면서 우리가 강렬하게 욕망하고 있는 이상적인 시공간일 지도 모르겠다. 일을 하지만 지금보다는 여유로우며 매일 일상의 활력을 불어넣는 색다른 사건이 발생하는 그런 시공간 말이다. 우리가 오늘을 희생하면서 피곤을 무릅쓰고 열심히 일하는 것이 바로 이 시공간을 얻기 위해서가 아닌가? 그 희망의 시공간의 청사진을 4 To The Bar는 담백하면서도 세련된 연주와 달콤한 노래를 통해 우리에게 제시하는 것이다. 그렇기에 당신은 이 앨범을 통해 바, 클럽, 카페 등의 도시적 쉼터에서 출발해 이국적인 도시에서 도시로 여행하고 시간을 가로지른 끝에 당신만의 완벽한 행복이 있는 시공간 속에서 달콤해하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