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즈와 클래식의 만남은 이제는 진부하다 싶을 정도로 자주 시도되어 왔다. 하지만 그럼에도 여전히 감상자의 흥미를 자극한다. 그것은 아무래도 두 음악이 이루는 극명한 대조 관계 때문이다. 클래식은 악보 중심, 작곡가 중심의 음악이고 재즈는 연주자의 연주가 중심이 된 음악이니 실제 이 둘을 결합하는 것은 생각만큼 쉬운 일이 아니다.
지금까지 클래식과 재즈의 만남은 두 가지 방식으로 진행되어왔다. 하나는 클래식의 유명 테마를 재즈로 연주하는 것. 그런데 이것은 단순히 재즈의 연주 소재 확장 이상을 넘어가지 않으니 진정한 만남이라 하긴 어렵다. 다음으로 재즈 연주자들이 클래식 성향의 곡을 직접 쓰는 것이 있다. 조지 거쉰이 1924년에 썼던 ‘Rhapsody In Blue’같은 곡을 생각하면 쉬울 것 같다. 그런데 이 경우엔 곡에 따라 재즈보다는 아예 클래식에 경도된 결과가 나올 수 있어 그 조화로운 지점을 찾는 것이 관건이다. 그래서 많은 시도-1950년대 후반에는 아예 서드 스트림(Third Stream)이라는 특별한 흐름도 있었지만-도 불구하고 그리 성공적인 결과물은 그리 많지 않았다.
이렇게 클래식과 재즈를 효과적으로 결합한 음악이 많지 않은 것은 어쩌면 형식적인 측면에서 접근을 했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오히려 정신적인 측면, 정서적인 측면에서 접근한다면 훨씬 더 클래식적이며 재즈적인 음악이 나오기 쉽지 않을까? 지금 우리가 듣고 있는 칙 코리아의 앨범 <The Continents>가 그 좋은 예라고 나는 생각한다.
앨범에는‘재즈 퀸텟과 챔버 오케스트라를 위한 협주곡’라고 적혀 있지만 원래 ‘The Continents’는 ‘피아노 협주곡 2번’의 이름으로 지난 2006년에 만들어졌다. 비엔나 모차르트야르(Wiener Mozartjahr)가 모차르트의 탄생 250주년을 기념 사업이었던 ‘Spirit Of Mozart’의 하나로 칙 코리아에게 작곡을 의뢰한 것이 계기였다. (참고로 칙 코리아의 ‘피아노 협주곡 1번’은 지난 2000년에 앨범으로 발매되었다.) 그 결과 아프리카부터 남극에 이르는 6개의 대륙을 소재로 한 6개의 곡으로 이루어진 피아노 협주곡이 2006년 7월 비엔나 국립 오페라 극장에서 초연될 수 있었다. 이후 칙 코리아는 유럽 각지를 돌며 공연을 했는데 좋은 성과에도 불구하고 아쉽게도 공연을 녹음할 기회를 얻지 못했다. 그러다가 몇 년의 시간이 흐른 후에 이렇게 다시 스튜디오에서 앨범을 녹음하게 된 것이다.
하지만 이번 앨범에 담긴 연주를 정말 보통의 클래식처럼 악보를 그대로 다시 연주한 것, 그러니까 지난 2006년의 연주를 다시 재현한 것으로 생각하면 안 된다. 곡이 ‘피아노 협주곡’에서 ‘재즈 퀸텟과 챔버 오케스트라를 위한 협주곡’으로 살짝 변경된 것에서부터 이를 감지할 수 있다. 사실 2006년 초연 당시에도 그는 재즈 쿼텟이 챔버 오케스트라와 호흡을 맞추도록 했었다. 그러므로 비록 트롬본의 스티브 데이비스가 추가된 퀸텟이 챔버 오케스트라와 함께 하고 있지만 연주의 기본적인 흐름은 크게 다를 바 없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여기서 칙 코리아가 기본적으로 재즈 연주자임을 생각하자. 그는 재즈 연주자답게 곡을 작곡하면서도 연주자의 자율성을 보장하는 것을 잊지 않았다. 이를 위해 모든 연주가 재즈와 라틴 음악적인 맛이 강한 리듬을 바탕으로 진행되도록 했다. 그리고 스티븐 머큐리오라는 지휘자가 오케스트라를 이끌고 있지만 지휘자가 자신의 생각을 곡에 부여하지 않고 단순한 가이드 역할을 하도록 했다. 그나마 연주의 중요한 부분은 피아노가 이끌도록 했다. 재즈 빅 밴드가 피아노를 연주하는 지휘자에 의해 이끌어졌던 것처럼 말이다. 그 결과 정해진 악보가 존재하지만 연주자 당사자-특히 재즈 연주자의 개성이 곡에 큰 영향을 미치게 되었다.
그래서 초연 당시의 연주가 어땠는지, 악보가 어느 수준까지 연주를 규정하고 있는지 알 수는 없지만 6곡은 챔버 오케스트라보다 퀸텟의 역동적인 연주가 보다 돋보인다. ‘America’같은 곡은 아예 온전한 재즈 곡처럼 다가온다. 그 밖에 첫 곡 ‘Africa’에 담긴 재즈의 고향인 검은 대륙의 야성적 색채나 ‘Europe’에서의 장구한 서사의 표현, ‘Asia’에서의 (서양적 관점에서의) 이국적인 정서, ‘Antarctica’ 등은 화려한 리듬 연주와 칙 코리아의 피아노는 물론 팀 갈란드(색소폰, 클라리넷, 플루트), 스티브 데이비스(트롬본)의 자유로운 솔로 연주가 없었다면 분명 그만큼 효과적이지 못했을 것이다. 따라서 모차르트 탄생 250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만들어진 곡이라 해서 보다 정통적인 클래식의 맛을 기대했던 감상자들은 앨범에 편재하는 재즈적인 색채에 당혹해 할 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2006년 기념 사업이 ‘Spirit Of Mozart’였음을 생각하면 이는 충분히 이해될 수 있는 일이다. 그러니까 칙 코리아는 모차르트의 음악 정신을 연주의 즐거움에 두었던 것이다.
한편 이번 앨범에는 협주곡 ‘The Continents’외에 퀸텟이 즉흥적으로 스탠더드 곡을 연주한 것과 칙 코리아의 피아노 솔로 연주를 담은 CD가 함께 수록되어 있다. 그런데 이것은 단순한 부록 음원이 아니다. 앨범에 담긴 ‘The Continents’가 초연 당시의 곡과 다를뿐더러 시간의 흐름 속에 새로이 발전하고 있음을 말하는 증거이다. 마치 재즈처럼 말이다.
오케스트라와 함께 ‘The Continents’를 녹음한 이후 칙 코리아는 퀸텟 연주를 녹음 한 이후 협주곡에 어울리는 피아노 카덴자(클래식에서의 즉흥적인 솔로 연주)를 녹음하다가 이미 녹음된‘The Continents’에 무엇인가 부족한 면이 있음을 느꼈다고 한다. 글쎄. 곡이 조금 더 자유로운 맛이 나기를 바랐던 것일까? 아무튼 그래서 그는 자유 즉흥 피아노 솔로 연주를 펼치며 곡에 부족하다고 생각되었던 부분을 차분히 메웠다. 이 모든 것이 순간적인 결정에 의해 이루어진 것이기에 연주 중간에 당시 녹음을 담당하고 있던 버니 커쉬에게 이제 녹음을 하자는 칙 코리아의 말과 이에 (다행히) 이미 녹음 중이었다는 엔지니어의 대답이 들린다.
이렇게 6개의 곡으로 이루어진 챔버 오케스트라와 재즈 퀸텟의 협주곡 외에 피아노 솔로 연주가 함께 해야 칙 코리아가 그렸던 ‘The Continents’가 완성된다는 이야기에 정통 클래식 애호가들은 이런 생각을 할 지도 모르겠다. ‘그렇다면 애초에 실패한 작곡이 아닌가? 아니면 적어도 다시 협주곡을 녹음했어야 하지 않은가?”하고 말이다. 사실 나는 그냥 첫 번째 CD, 그러니까 녹음된 ‘The Continents’만 들어도 칙 코리아가 의도한 재즈의 역동성이 살아 있는 클래식의 맛을 충분히 느낄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럼에도 칙 코리아가 피아노 솔로 연주를 추가한 것은 그가 천상 자유로운 재즈 연주자이기 때문이라 생각하고 싶다. 실제 칙 코리아는 이 앨범을 위한 소개 글에서 ‘The Continents’가 그만의 음악적 결점이 있을 수 있다고 하면서 그럼에도 원래 의도했던 대로 연주의 정신(Spirit Of Play)을 따라 만들어진 것에 만족한다고 밝혔다. 그러므로 이번 앨범을 클래식과 재즈의 단순한 결합이 아니라 클래식적인 형식을 넘어 연주자적 자유를 추구하는 칙 코리아의 천성(天性)에 집중한다면 색다른 감흥을 느끼리라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