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int Of Contact – 이원술 (W Music 2012)

거대한 상상력으로 만들어 낸 독특한 지형도

LWS

베이스 연주자 이원술은 한국 재즈에 관심을 갖고 있는 사람들에게는 그리 낯선 이름이 아니다. 적어도 나는 그렇다. 지난 해만해도 트리오 젠틀 레인, 정재열, 배장은 오정수 듀오 등의 앨범에서 그의 연주를 들을 수 있었다. 모든 앨범에서 전체 밴드와 조화를 이루면서 은근히 자신의 소리를 냈던 것으로 기억한다. 하지만 이 베이스 연주자의 첫 앨범은 그 동안 내가 그를 제대로 알지 못했던 것은 아닌가 회의하게 해주었다. 이전까지 그룹의 일원이나 사이드 맨으로 참여한 앨범으로는 예상할 수 없었던 음악을 들려주기 때문이다. 물론 리더 앨범이니 이전과는 다른 강한 존재감을 들어낼 수 있음을 모르는 바 아니다. 그럼에도 그 존재감이 기대 이상의 낯섦으로 다가온다면 내가 아예 그를 처음부터 제대로 보지 못했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닐까?

그렇다고 이 앨범에서 이원술의 베이스가 무조건 전면에 나서서 화려한 솔로를 펼친다고 생각하진 말자. (그런 부분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그보다는 자신을 절제하면서 각 연주자들의 위치를 효율적으로 배분하는 리더로서의 역할에 보다 충실하고 있으니까. 그래서 그의 베이스를 포함하여 총 9명의 연주자가 함께 하고 있지만 각 곡들은 언제나 쿼텟 혹은 퀸텟 정도의 소규모 콤보의 느낌으로 다가온다. 각 연주자들의 겹침과 펼쳐짐이 경제적으로 이루어진 결과이다.

하지만 이원술이 리더로서 단순히 연주의 흐름을 부드럽게 하고 사운드를 매끄럽게 하는 것을 목적으로 했다면 나는 이 앨범에 그리 놀라지 않았을 것이다. 당신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사실 연주자들의 긴밀한 호흡만으로도 감상의 큰 재미를 느낄 수 있기는 하다. 하지만 우리가 주목해야 할 부분은 어떻게 연주자들의 역할을 치밀하게 나누고 또 구성했는가 이다. 그러니까 무엇에 근거하여 섬세한 편곡과 지휘가 이루어졌냐는 것인데 나는 이번 앨범의 타이틀에서 이를 찾고 싶다.‘접점(接點)’이라는 타이틀처럼 이 앨범에서 이원술은 거대한 상상력으로 상이한 공간을 가로지르고 위태로운 경계선을 기꺼이 걸으며 만들어낸 그만의 색다른 지형도(地形圖)를 보여준다. 첫 곡 ‘Nexus(연결)’을 비롯하여 ‘Borderline’, ‘Centerpiece’, ‘Point Of Contact’등 다양한 관계에 대한 상상을 자극하는 제목의 곡들이 주를 이룬 것도 이 때문이리라.

이러한 새로운 지형도를 그리기 위해 이원술은 보통의 콤보-기타, 피아노, 베이스, 드럼으로 구성된-와 함께 바이올린, 첼로, 플루트, 클라리넷 등 재즈보다는 클래식적인 성향을 더 많이 지닌 악기들을 편성에 넣었다. 그리고 이 두 악기군(群)이 각각 포스트 밥과 클래식의 실내악적 울림을 만들어 내면서 질적인 긴장 관계를 형성하도록 했다. 이 앨범의 묘미는 바로 여기에 있다. 실제 현악기들의 현대적인 사운드와 한충완의 피아노나 오정수(Jean Oh)의 기타를 중심에 둔 역동적인 포스트 밥 사운드가 만들어 내는 강렬한 대비는 생경함에서 출발해 짜릿한 쾌감을 선사한다. 평온한 일상을 흔들어 그 이면을 발견할 때 느끼게 되는 전율이랄까?

그런데 이원술은 이에 만족하지 않고 과감하게 여기서 다시 한 발 더 나아간다. 연주자들과 그들의 악기에서 생성된 상이한 질감을 솜씨 좋게 조리하여 절묘한 어울림-융합이 아닌 결합이 주는-을 연출한 것이다. ‘Nexus’와 함께 이어 들으면 그 맛이 더 색다른 ‘Ataraxia’나 작곡보다는 간단한 아이디어에 기초해 연주자들의 자유로운 즉흥연주로 이루어진 The Flow Of Soul’같은 곡이 좋은 예이다. 이들 곡들은 상이한 질감의 연주들이 자신의 색을 유지하면서도 서로 어울릴 수 있음을 보여준다. 모두 섞인 검은색이 아니라 모두가 사이 좋게 공존하는 무지개를 생각하면 이해가 쉬울 것 같다.

한편 앨범의 마지막에 자리잡은 ‘The Way’는 이원술이 이번 앨범에서 보여주고자 했던 긴장과 조화의 관계를 가장 이상적으로 표현하고 있지 않나 생각한다. 이 곡은 단단히 자리잡은 베이스를 중심으로 주요 악기들이 자신의 존재감을 순차적으로 드러내면서도 그 이질적인 흐름 속에 절묘한 조화를 느끼게 해준다. 그리고 이것이 전부가 아니라 앞으로 더욱 더 새로운 방향을 위해 그가 매진할 것임을 기대하게 한다.

수학은 접점(接點)을 두 개의 곡선이나 평면이 교차할 때 만들어지는 것으로 정의하고 있다. 즉, 충돌을 감수해야 만남이 이루어진다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이 앨범을 한편으로는 이원술이 우리에게 내미는 손이라고 말하고 싶다. 강한 개성을 지닌 연주자들을 긴장 속에 어울렸듯이 그 음악은 다시 우리와 만남을 시도한다. 그 손이 당신에게 어렵게 느껴지는가 아니면 나의 경우처럼 환희로 느껴지는가는 그리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것은 이원술이 음악을 통해 내민 손에 우리는 어떤 방식으로건 반응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게 보면 이 앨범은 이원술과 우리가 만나는 ‘Point Of Contact’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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