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변과 행복을 나누고 싶게 만드는 소박한 크리스마스 앨범
매년 말이면 각양각색의 크리스마스 앨범들이 쏟아지듯 발매된다. 이들 앨범들은 모두 크리스마스를 즐겁게 재미있게 그리고 따뜻하게 꾸며주리라 말한다. 그래서일까? 대부분의 캐롤 앨범들은 대부분 유사한 느낌을 준다. 향수를 자극하는 스탠더드 재즈 스타일의 캐롤이나 오늘의 팝 적인 감각을 살린 일렉트로 사운드가 지배하는 캐롤이 주를 이룬다. 그래서 새로 발매되었다고 해도 지난 해, 그 지난 해에 발매되었던 캐롤 앨범들과 그리 달라 보이지 않는다.
사실 크리스마스 앨범은 기본적으로 크리스마스 트리, 산타클로스 할아버지처럼 일종의 소품처럼 공간을 꾸미는 역할을 하면 된다. 창 밖에는 흰 눈이 내리고 실내에는 화려하게 장식된 크리스마스 트리 주변에서 연인 혹은 가족이 사랑의 선물을 전달하는 낭만적인 풍경을 그리게 하면 그만이다. 그런데 가끔은 이 전형적인 크리스마스에서 벗어나고플 때가 있다. 아니 실제 우리의 12월 25일은 언급한 것처럼 그리 낭만적이지 않게 흘러가는 것이 대부분이지 않던가? 그래서 가끔은 캐롤이 전달하는 낭만적이고 이상적인 이미지에 나의 크리스마스는 왜 그리 멋지지 않을까 하는 소외감을 느낄 때가 있다.
그럴 때 나를 위로할 수 있는 크리스마스 캐롤은 없을까? 매년 겨울이면 발매되는 천편일률적인 앨범들과 다른 캐롤 앨범은 없을까? 지금 우리가 듣고 있는 앨범 <Christmas Rules>가 그 답의 하나가 아닐까 생각한다. 이 앨범은 크리스마스 앨범 제작의 기본을 충실히 따르면서도 지금까지 우리가 들었던 것과는 다른 캐롤을 들려준다. 이것은 앨범에 참여한 아티스트들의 면모에서부터 확인할 수 있다. 사실 크리스마스 캐롤 앨범은 특정 기간을 위한 것인 만큼 경쟁이 심하다. 그래서 세대를 아우르는 폭 넓은 인기를 얻고 있는 유명 아티스트들이 주로 캐롤 앨범을 녹음한다. 컴필레이션 앨범도 마찬가지 시대를 대표하는 유명 아티스트들이 주로 앨범에 이름을 올린다.
그러나 지금 우리가 듣고 있는 앨범은 자신만의 개성으로 마니아 층을 확보한 인디 음악 계열의 아티스트들로 이루어졌다. 한번 앨범에 참여한 아티스트들의 면모를 살펴보라. 폴 매카트니(Paul McCartney), 루퍼스 웨인라이트(Rufus Wainwright), 어마 토마스(Irma Thomas) 정도를 제외하면 국내는 물론 세계적으로 그리 알려지지 않은 인디 음악을 찾아서 듣는 사람들에게만 알려졌을 밴드와 싱어송라이터들 일색이다. 글쎄 최근 주목 받고 있는 인디 팝/록 밴드 펀(Fun) 정도를 예외에 추가할 수 있을까? 여기에‘Sleigh Ride’, ‘The Christmas Son’, ‘What Are You Doing New Year’s Eve’, ‘Auld Lang Syne’처럼 널리 알려진 캐롤 곡들과 함께 상대적으로 스탠더드 리스트에서 벗어난 캐롤 곡들이 많이 노래되었다는 것도 이 앨범을 일반적인 캐롤 앨범들과 구분하게 한다.
앨범은 펀의 ‘Sleigh Ride’로 기분 좋게 시작된다. 신디사이저를 사용하여 팝적인 감각을 극대화한 이 곡은 차가운 바람에도 아랑곳 하지 않고 눈썰매를 타는 사람들, 그러니까 크리스마스 시즌의 전형적인 풍경의 하나를 그리게 한다. 이어지는 더 신스(The Shins)가 노래한 ‘Wonderful Christmas’는 비치 보이스(Beach Boys)의 서핀 사운드-이 곡이 폴 매카트니가 만들었다는 것은 감상에 색다른 재미를 부여한다-를 연상시키며 우리를 복고적인 공간으로 이끈다. 이러한 아름다운 시절에 대한 즐거운 반추(反芻)는 아름다운 보컬 하모니를 들려주는 인디 록 밴드 에이지스앤드에이지스(Agesandages)가 노래한 ‘We Need A Little Christmas’에서 다시 반복된다. 한편 루퍼스 웨인라이트가 쉐런 반 이튼(Sharon Van Etten)과 듀오로 노래한 ‘It’s Cold Outside’는 과거 루이 암스트롱이 벨마 미들턴 같은 여성 보컬과 함께 했던 스타일을 그대로 따른 것이다. 이어지는 폴 매카트니의 ‘Christmas Song’이나 프리저베이션 홀 재즈 밴드(Preservation Hall Jazz Band)와 함께 한 어마 토마스의 ‘May Ev’ry Day Be Christmas’역시 스탠더드 재즈곡의 형식을 따름으로서 우리를 과거로 이끈다. 얼터너티브 포크 싱어 홀리 고라이틀리(Holly Golightly)가 노래한 ‘That’s What I Want For Christmas’또한 오르간 반주와 담백한 리듬에서 복고적인 향취를 자아낸다.
이 정도는 우리가 캐롤에서 기대하는 눈 내리는 크리스마스 풍경을 그리게 한다. (비치 보이스의 그림자가 있어도 복고적인 맛이 이를 상쇄한다.) 그런데 앨범은 여기서 나아가 그 반대의 풍경, 그러니까 눈이 내리지 않는 크리스마스 또한 그리게 한다. 이 앨범의 진정한 특별함은 바로 여기에 있다. 사실 겨울 내내 따뜻한 지역도 있지 않던가? 우리 또한 눈은커녕 온화한 크리스마스를 수 없이 보내지 않았던가? 텍사스 출신의 인디 록 밴드 하트리스 바스타즈(Heartless Bastards)의 ‘Blue Christmas’, 엘레너 프라이드버거(Eleanor Friedberger)가 라틴 라운지 스타일로 노래한 ‘Santa Bring My Back To Me’, 아예 라틴 음악을 지향하는 이 라 밤바(Y La Bamba)의 ‘Señor Santa’같은 곡은 이러한 크리스마스를 그리게 한다. 과연 이들 음악에서 눈 내리는 겨울을 생각할 수 있을까? 온화한 햇살이 비치는 남쪽의 크리스마스가 절로 연상되지 않는가?
이 외에 바이올린을 연주하며 노래하는 싱어송라이터 앤드류 버드(Andrew Bird)의 ‘Auld Lang Syne’이나 인디 포크 밴드 푸르트 배츠(Fruit Bats)의 ‘It’s Beginning To Look Like Christmas’, 현대적인 블루그래스 음악을 들려주는 펀치 브라더즈(Punch Brothers)의 ‘O Come O Come Emmanuel’, 시애틀 출신의 인디 포크 그룹 디 헤드 앤 더 하트(The Head & The Heart)가 노래한 ‘What Are You Doing New Year’s Eve’, 인디 포크 밴드 블랙 프래리(Black Prairie)의 ‘Man With The Bag’등의 곡 역시 우리가 생각하는 전형적인 크리스마스와는 다른 풍경을 제시한다. 나아가 컨트리 계열의 팝 듀오 더 시빌 워즈(The Civil Wars)의 ‘I Heard The Bells On Christmas Day’와 미국 남부와 멕시코 접경지역을 음악적 공간으로 설정한 칼렉시코(Calexico)의 ‘Green Grows The Holly’는 다소 우울하고 어두운 크리스마스를 그리게까지 한다. 글쎄. 크리스마스를 홀로 보내야 하는 사람들을 위한 곡이라 할 수 있을까? .
이렇게 두 개의 풍경으로 수록 곡들을 구분하긴 했지만 실제로는 이 두 상반된 이미지는 대립하지 않고 서로 교차를 거듭한다. 그런데 놀랍게도 냉온(冷溫)을 오가는 그 변화가 전혀 어색하지 않다. 포크, 록, 블루그래스, 라틴, 컨트리, 팝, 소울, 재즈 등을 아우르는 다양한 성향의 아티스트들이 모였음에도 다른 어느 컴필레이션 앨범들보다 서로 잘 조화를 이루며 흐른다. 마치 앨범에 참여한 전 아티스트들이 한 자리에 모여 서로의 녹음을 지켜보며 그에 맞추어 자신들의 곡을 녹음하기라도 한 듯 유기적인 면을 보인다. 여기엔 앨범을 기획하고 제작한 두 명의 프로듀서 사라 마타라조(Sara Matarazzo)와 크리스 펑크(Chris Funk)의 탁월한 감식안이 큰 역할을 했을 것이다. 아무튼 이런 이유로 앨범은 자연스레 크리스마스를 하나의 풍경으로만 보지 않게 한다. 우리만의 크리스마스, 우리만의 겨울이 아니라 타인의 크리스마스, 타인의 겨울을 바라보게 한다. 그렇다고 크리스마스를 타인과 비교하게 한다고 생각하지는 말자. 다양한 지역과 사람들을 그리는 중에 어떤 날씨이건, 어떤 사람들이건 모두 크리스마스를 같이 즐기고 있음을 생각하게 한다는 뜻이니 말이다. 나아가 크리스마스를 제대로 누리지 못한다고 생각되는 사람들에게는 우리의 행복을 조금이라도 나눠주고 싶게끔 만든다는 것이다. 따라서 이 앨범의 타이틀이 의미하는 ‘최고의 크리스마스’는 바로 이러한 나와 함께 주변을 살피고 배려하는, 화려함보다는 소박함이 돋보이는 크리스마스가 아닐까 싶다.
PS: 이 앨범은 미국 내에서는 <Holiday Rules>라는 타이틀로 발매되었다. 아무래도 크리스마스 하루가 아닌 그 시즌의 개념을 더욱 강조하기 위해 타이틀을 다르게 한 모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