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년 만에 발매되는 라이브 앨범: 메트로폴 오케스트라와의 기막힌 조화
다른 장르도 그렇겠지만 재즈를 이해하는 데는 직접 연주를 듣고 보는 것이 효과적이다. 연주나 보컬의 기교를 확인하는 것을 넘어 모든 것이 일사불란(一絲不亂)하게 돌아가는 현장의 분위기에 취하다 보면 절로 재즈가 귀가 아닌 몸 안으로 들어옴을 느낄 수 있다. 그래서 재즈 애호가 중에는 앨범 감상보다 공연을 선호하는 사람이 많다. 이에 부응해 스튜디오 앨범보다 공연에서 더 큰 매력을 발산하는 연주자나 보컬이 있다. 물론 그 앨범도 그 자체의 뛰어난 매력을 지녔지만 말이다. 알 자로가 그 대표적인 인물이다. 그는 공연에서 관객들에게 롤러코스터 같은 짜릿함을 제공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노래를 넘은 쇼 같다고나 할까? 그렇다고 그가 무대에서 춤이나 만담 같은 노래와는 별도의 볼거리를 제공한다는 것은 아니다. 오로지 자신의 목소리만으로 공연을 거대한 규모의 액션 영화 같은 분위기를 연출하는 것이다.
이러한 그의 매력은 그가 뛰어난 노래 실력을 지녔기에 가능했지만 장르적인 규정 안에 머무르기를 거부하는 것 또한 중요한 이유로 자리잡고 있지 않나 싶다. 그는 기본적으로 재즈 보컬로 분류되지만 노래 스타일은 R&B와 팝을 아우른다. 이것은 그가 재즈는 물론 R&B와 팝 분야의 최우수 보컬 부분 그래미 상을 수상한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미국 대중 음악 역사상 지금까지 깨지지 않은 유일한 일인데 특히 1982년에는 팝과 재즈 보컬상을 동시에 수상하기도 했다. 이에 걸맞게 그의 레퍼토리 또한 특정 장르에 머무르지 않는다. 그저 알 자로 자신이 좋아하고 그래서 노래하고 싶은 곡이면 스타일과 상관 없이 다 노래한다고 할 정도로 하나의 틀 안에 넣기 어렵다.
그런데 공연에서 강렬한 아우라를 발산하는 알 자로답게 50년이 넘는 기간 동안 수많은 공연을 펼쳤지만 정작 이를 기록한 라이브 앨범은 단 석 장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은 무척 기이한 일이다. 게다가 그 석장 가운데 1994년 작 <Tenderness>는 스튜디오에 초청된 청중을 불러 놓고 라이브 형식으로 녹음한 것이었다. (거꾸로 생각하면 이렇게 스튜디오 앨범 대신 유사 라이브 앨범을 녹음하게 된 것은 그만큼 공연에서 보여지는 알 자로의 매력이 대단했기 때문이라 볼 수 있겠다.) 그렇기에 앨범으로 공연에서의 그를 확인하기란 그리 쉬운 일은 아니었다. 그러므로 지금 우리가 듣고 있는 앨범 <Al Jarreau & The Metroplole Orchest>은 18년 만에 발매되는 라이브 앨범이라는 점에서 알 자로의 앨범들 가운데 특별한 관심을 기울일 만 하다.
그렇다면 어떻게 모처럼만에 라이브 앨범을 발매하게 되었을까? 공연의 특별함이 그 이유였다. 앨범은 지난 2011년 4월 8일과 9일, 네덜란드의 덴 보슈에 위치한 안 드 파라드(Aan De Parade) 극장에서 있었던 메트로폴 오케스트라와의 협연을 담고 있다. 메트로폴 오케스트라는 1945년 창단된 이후 장르를 가로지르는 폭 넓은 활동으로 세계에서 손 꼽힐만한 특별한 위치에 올라 있다. 특히 재즈의 빅 밴드와 클래식 오케스트라가 결합한 듯한 50명이 넘는 구성은 오케스트라가 안드레아 보첼리, 엘라 핏제랄드, 스탄 겟츠, 팻 메시니, 이반 린스, 스티브 바이, 디노 살루지 등 장르와 상관 없는 수 많은 보컬 혹은 연주자들과 다양한 협연을 가능하게 했다. 게다가 지난 2005년부터는 뛰어난 작, 편곡으로 유명한 지닌 빈스 멘도사가 지휘를 맡으면서 더욱 활발한 활동을 해오고 있다. 이번 공연에서 알 자로가 노래한 곡들도 모두 빈스 멘도사가 편곡을 했다. 그러므로 이 공연은 알 자로의 뒤에서 공연을 화려하게 하기 위해 오케스트라를 사용하는 것과는 다른 의미, 즉 개성을 지닌 보컬과 연주자의 만남 같은 의미를 지닌다. 이에 걸맞게 공연은 보컬과 오케스트라의 이상적인 어울림을 보여준다.
먼저 알 자로는 70이 넘은 나이임에도 여전히 최고의 보컬 능력을 드러낸다. 사실 그는 2010년 여름 공연을 앞두고 호흡기 이상과 부정맥(不整脈)으로 인해 위기를 맞고 병원에 입원하는 등 고령화로 인한 건강 문제를 겪고 있었다. (최근에는 폐렴으로 공연을 취소했다는 소식도 들려온다.) 하지만 이 2011년 4월의 공연만큼은 이러한 건강에 대한 우려를 잊게 한다. 나비처럼 가뿐하게 리듬을 타면서(‘Spain’) 멜로디를 선명하게 드러내는(‘Jacaranda Bougainvillea’) 한편 이를 기반으로 악기에 가까운 스캣을 구사하는 것(‘Agua De Beber’)까지 수십 년간 관객을 감동시킨 알 자로의 모습 그대로다.
공연에서 알 자로가 노래한 곡들은 모두 그의 기존 앨범에 수록되었던 곡들이다. 공연의 시작을 알리는 ‘Cold Duck’등 그의 스튜디오 앨범으로서는 최근에 녹음한 2004년도 앨범 <Accentuate the Positive>에 수록된 네 곡을 비롯한 2000년대 앨범 석 장에서 7곡이 선택되었으며 그 외에 ‘After All’, ‘Spain’, ‘We’re In This Love Together’등 알 자로를 대표하는 곡들이 노래되었다. 그렇다고 이번 앨범이 같은 노래가 상투적으로 반복되었다는 느낌을 준다고 생각하면 안 된다. 평소보다 과감해지고 자유로워지는 공연답게 모든 곡들은 익숙하면서도 새로운 모습으로 다가온다. 바로 여기에서 메트로폴 오케스트라의 역량이 발휘된다. 53명으로 이루어진 대형 오케스트라답지 않게 오케스트라는 유연한 움직임으로 알 자로의 노래와 다양한 어울림을 보여준다. 알 자로가 시적인 서정을 담아 발라드 ‘Midnight Sun’이나 ‘After All’을 노래할 때는 스트링 섹션이 보컬을 어루만지며 클래식적인 분위기를 연출하고 열정을 담아 ‘I’m Beginning To See The Light’이나 ‘Scootcha-Booty’같은 곡을 노래할 때면 완벽한 빅 밴드가 되어 풍성한 울림을 들려준다. 또‘Spain’이나 ‘Agua De Beber’처럼 라틴 성향의 노래에서는 화려한 리듬으로 곡을 이국적으로 만든다. 이뿐만이 아니다. 여러 개로 나뉘어진 작은 섹션들이 서로 교차하며 사운드의 아기자기함을 더하는 한편 알 자로의 노래에 멜로디나 리듬의 측면 모두에서 밀착되거나 대위적인 거리를 두는 등 적극적으로 알 자로와 호흡한다. 또한 대 편성 연주에만 머무르지 않고 곡에 따라 레오 얀슨(테너 색소폰), 마크 숄튼(소프라노 색소폰), 로널드 쿨(키보드), 바르트 반 리에(트롬본) 등의 솔로 연주를 배치해 소 편성 연주가 가지는 장점 또한 놓치지 않았다. 이렇게 스타일을 가로지르고 여기에 섬세한 편곡을 기반으로 입체적인 사운드를 만들어 낸 것은 확실히 빈스 멘도사와 메트로폴 오케스트라였기에 가능한 것이었다.
따라서 이 앨범은 기존 알 자로의 노래에 지속적인 관심을 가졌던 감상자들에게 더욱 더 신선하고 새로운 느낌으로 다가오리라 생각한다. 분명 많이 들어서 친숙한 곡이지만 그것이 완전히 다른 옷을 입고 있음을 확인하면서 음악을 듣는 즐거움은 이런 것이구나 하고 탄성을 지르지 않을까 싶다. 물론 그 전에 알 자로의 노래에 감동할 것임은 기본이다. 조금 더 욕심 있는 감상자라면 이런 공연을 직접 몸으로 확인하고픈 욕망을 갖게 될 것이다. 특히 지난 2003년에 있었던 서울 공연을 본 감상자라면 더할 것이다. 그러고 보니 어느덧 그의 서울 공연 이후 10년이 지났다. 부디 그가 아직 건강할 때 그의 공연을 다시 볼 수 있기를 바래본다. 그 전까지는 이 앨범이 진통제 역할을 하게 될 것이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