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크 모블리 (Hank Mobley : 1930.7.7 ~ 1986.5.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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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력에 비해 저평가된 하드 밥의 대표적 색소폰 연주자

색소폰 연주자 행크 모블리는 하드 밥 시대를 이야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인물 중 한 명이다. 또한 재즈 명가 블루 노트를 이야기할 때도 그를 빼놓을 수 없다. 하지만 그럼에도 그는 재즈사에서 저평가된 연주자의 하나로 이야기되곤 한다. 여기에는 색소폰 연주자로서 그의 색깔이 다소 모호한 것에 기인한다. 저명한 재즈 평론가 레너드 페더는 그를 테너 색소폰의 중량급 챔피언으로 불렀다. 이는 그의 색소폰에 대한 매우 명확한 설명이었다. 이 표현은 그의 색소폰이 콜 맨 호킨스로 시작되어 덱스터 고든, 소니 롤린스, 존 콜트레인 등으로 이어졌던 헤비급 연주자들만큼 공격적이고 무겁지 않았으며 그렇다고 레스터 영으로 시작되어 주트 심스, 스탄 겟츠 등으로 이어졌던 라이트급 연주자들처럼 마냥 가볍고 부드럽지도 않았음을 의미한다. 그러니까 비밥에서 쿨로 다시 쿨에서 하드 밥으로 이행하는 극과 극의 움직임을 보이는 당시의 재즈 환경에 그의 색소폰이 어울리지 않았다는 것이다.

실제 그의 음악은 헤비급 연주자들로 넘쳐나던 하드 밥에 속했지만 톤은 동료 연주자들에 비해 다소 약한 느낌을 준다. 그리고 코드의 혁신을 꾀하며 새로운 주법을 개발했던 선구자들에 비해 안정적이었고 멜로디 중심적인 면이 강하다. 간단히 말하자면 하드 밥과 쿨 재즈의 장점을 모두 갖추었다고 할 수 있겠다. 반대로 생각하면 다소 모호한 스타일이었다 할 수도 있을 것이고. 그래서일까? 한 때 마일스 데이비스는 존 콜트레인이 떠난 자리에 그를 앉혀 새로운 퀸텟을 구성하려고 시도했었다. 그래서 1961년 스튜디오 앨범 <Someday My Prince Will Come>을 녹음하고 <In Person: Live at the Blackhawk>이란 앨범으로 발매되기도 한 샌프란시스코의 블랙 호크 클럽에서의 공연에 색소폰 연주자를 불러 함께 했지만 이내 불만을 느껴 해고해버렸다. 사실 1961년이면 행크 모블리는 1년 전에 녹음한 <Soul Station>의 성공으로 그의 음악 인생에서 가장 큰 주목을 받고 있던 때였다. 그래서 마일스 데이비스가 그를 불렀던 것이었고. 하지만 그럼에도 행크 모블리의 연주는 마일스 데이비스가 생각한 하드 밥에는 어울리지 않았던 모양이다. 내가 보기엔 톤의 부드러움도 부드러움이지만 앞으로 더 나아가고자 했던 마일스 데이비스의 귀엔 그의 연주가 너무 안정지향적이어서 실망하지 않았나 싶다.

하지만 마일스 데이비스를 제외하고는 많은 유명 연주자들이 행크 모블리와 함께 하기를 즐겼다. 그의 부드러운 측면이 사이드맨으로서 조화를 이루기에 유리했을 지도 모르겠다. 아무튼 그래서 호레이스 실버, 디지 길레스피, 아트 블레이키, 케니 도햄, 케니 드류, 커티스 풀러, 지미 스미스, 케니 버렐, 그랜트 그린, 도날드 버드, 허비 행콕 같은 유명 연주자들이 그와 함께 하기를 즐겼다. 그리고 실제 그는 그룹 연주에 녹아드는 연주를 펼치곤 했다.

그렇다고 그가 리더로서의 역량을 지니지 못했다는 것은 아니다. 1955년경부터 하드 밥 시대가 끝날 무렵까지 그는 블루 노트 레이블을 중심으로 여러 장의 리더 앨범을 녹음했다. 그 가운데에는 <Soul Station>, <No Room For Square>, <Dippin’>같은 하드 밥 시대를 대표할 만한 앨범도 있다. 이들 앨범들에서 그는 하드 밥의 전형이라 할만한 연주를 들려주었다. 그러면서 다른 연주자들과 차별되는 간결하고 부드러운 그만의 개성을 드러내곤 했다.

이런 그의 연주를 듣다 보면 나는 왜 그가 그렇게 저평가 되었을까 하는 생각을 하곤 한다. 그는 과연 재능이 없었던 것일까? 이런 의심은 그의 앨범을 아무거나 하나만 들어봐도 아님을 알 수 있다. 그렇다면 재즈계에서 인간적인 평가가 좋지 못했던 것일까? 그래서 소외되었던 것일까? 이 또한 그가 위에서 언급했던 것처럼 하드 밥 시대의 주요 연주자들이 그를 찾았고 블루 노트의 두 제작자 알프레드 라이언과 프란시스 울프가 여러 앨범에 그를 사이드맨으로 기용했던 사실을 보면 사실이 아닌 것 같다. 적어도 그는 대중적인 측면에서만큼은 다른 누구보다 인기를 누릴 수 있었다고 나는 생각한다. 그의 연주 대부분은 동시대의 연주에 비해 훨씬 받아들이기 쉬운 매력이 있었으며 그렇다고 여운이 남지 않을 정도로 마냥 가볍지도 않았다. 정말 대중들이 좋아할만한 무게의 사운드를 들려주었다. 그럼에도 그가 인기를 얻지 못했던 것을 보면 그가 시대를 잘못 타고 났다는 생각밖에 할 수 없다. 실제 혹자는 그가 1930년이 아니라 1920년에 태어났다면 재즈사에서 더 중요한 인물로 남았을 거라 말하기도 한다.

그에 대한 저평가에 대해 나는 무엇보다 레너드 페더가 그를 두고 테너 색소폰에 있어서 중량급의 챔피언이라 한 말이 일종의 저주 같은 역할을 했다고 생각한다. 사실 레너드 페더는 어떤 쪽에도 속하지 않는 행크 모블리만의 개성을 강조하기 위해서 그런 표현을 사용했다. 하지만 다른 사람들은 이 표현을 이도 저도 아닌 그렇고 그런 것으로 받아들였던 것 같다. 그래서 제대로 감상하지 않고 그의 음악을 지나친 것은 아닌가 싶다. 심지어 대중적인 측면을 극대화 시킨 펑키한 연주마저도 그리 큰 호응을 얻지 못했다.

이런 중에 그는 프리 재즈와 퓨전 재즈가 등장하면서 자연스레 변방으로 밀려나게 되었다. 그리고 1975년 폐의 이상으로 연주를 멈추어야 했다. 그 이후 간혹 재즈계에 등장하기도 했지만 1986년 우리 나이 57세에 폐렴으로 세상을 떠났다. 그런데 놀랍게도 하드 밥 시대를 풍미했던 연주자임에도 그의 사망은 언론을 통해 곧바로 알려지지 않았다고 한다. 세상을 떠날 때까지도 그는 철저히 제대로 된 조명을 받지 못한 것이다. 그렇기에 재즈 시대를 풍미했지만 실력에 비해 저평가된 연주자들 가운데 행크 모블리야 말로 가장 인정을 받지 못한 연주자였다고 나는 생각한다.

어쩌면 행크 모블리는 재즈사를 빛낸 전설을 소개하는 이 코너에 어울리지 않는 인물이 아닌가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을 지도 모르겠다. 비중에 있어서 그가 제일 앞줄에 위치하지 않을 수는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그를 마치 인정받지 못한 은둔자 정도로 생각한다면 그것은 큰 오류다. 분명 그는 하드 밥 시대에서 누구보다 활발한 활동을 펼쳤다. 그리고 하드 밥이 튼튼히 그 명맥을 유지하는데 큰 힘이 되었다. 그러므로 그는 전설이 될 자격이 있다. 특히 매번 변화를 거듭하는 재즈처럼 비록 지나간 과거일 지라도 늘 새로운 마음으로 감상하고 평가를 해야 한다면 행크 모블리야 말로 새롭게 평가되어야 한다. 지금이 바로 그럴 때다. 

대표 앨범 

Soul Station (Blue Note 1960)

행크 모블리는 평생 30장이 조금 넘는 앨범을 녹음했다. 그 가운데 그를 대표하는 한 장을 꼽으라 한다면 단연코 이 앨범이어야 하지 않나 싶다. 그가 몸담았던 재즈 메신저스의 리더 아트 블레이키와 당시 가장 잘 나가던 리듬 섹션 연주자 윈튼 켈리, 폴 체임버스와 함께 한 이 앨범에서 그는 뜨겁지만 부드러우며, 열정적이지만 정돈된 멜로디를 드러내는 연주로 그만의 개성이 만개했음을 느끼게 해준다. 특히 ‘This I Dig of You’를 포함한 자작곡 네 곡은 긴장 속에서도 화사한 그의 매력을 잘 보여준다.

No Room For Squares (Blue Note 1963)

<Soul Station>의 성공에 힘입어 행크 모블리는 1961년 마일스 데이비스 그룹의 일원이 되었지만 1963년 리더가 생각한 음악적 방향을 제대로 소화하지 못한다는 평가 속에 활동을 마감해야 했다. 그룹 활동을 마감한 후 그는 이 앨범으로 1년 이상 하지 못했던 리더 앨범 녹음을 다시 재개 했다. 이 앨범에서 그는 그사이 한층 더 단단해지고 힘이 강해진 톤으로 연주를 펼치면서 사그라드는 듯 했던 그의 음악적 역량이 새롭게 발전되었음을 보여주었다. 특히 타이틀 곡은 당대의 주류였던 존 콜트레인의 영향을 수용한 듯 변모된 그의 모습이 가장 잘 드러난다.

Dippin’ (Blue Note 1965)

<No Room For Squares> 이후 행크 모블리는 다시 1년여간 앨범 활동을 쉬었다. 그리고 1965년 다시 의욕적으로 앨범을 녹음했다. 그 결과 한 해에 석 장의 앨범이 그의 이름으로 발매되었다. 이 앨범들은 모두 새롭게 빛나는 행크 모블리의 음악적 불꽃을 담고 있는데 따라서 모두 들어보길 권한다. 그래도 그 석장 가운데 이 앨범은 가벼이 스윙하는 능력, 화려한 솔로 중에서도 잃지 않는 멜로디적 감각 등에 있어 경지에 오른 행크 모블리를 가장 잘 담고 있다. 특히 ‘Recado Bossa Nova’는 그의 1960년대 후반을 대표하는 연주라 할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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