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ël Noël Noël – Michel Legrand (Verve 2011)

기분 좋은 사람들과 함께 하는 이상적인 크리스마스를 그리는 앨범

ML

해마다 새로운 크리스마스 앨범들이 발매된다. 그 앨범들은 각각 크리스마스를 보다 사랑스럽게 보다 낭만적으로 보다 따뜻하게 연출해 주겠다고 한다. 그런데 이처럼 같은 목적으로 익히 알려진 곡들을 연주하거나 노래한 것이지만 각각의 앨범들은 저마다 다른 모습, 다른 개성으로 감상자를 유혹한다. 그래도 이들 앨범들은 크게 두 가지로 나눌 수 있을 것 같다.

먼저 오늘의 우리가 즐겨 듣는 현재의 음악을 그대로 반영한 캐롤을 담은 앨범을 생각할 수 있다. 스무드 재즈, R&B, 일렉트로니카 등의 첨단의 사운드로 채색된 캐롤이 이에 해당한다. 이 캐롤은 2012년을 앞두고 있는 도시적이고 세련된 현재를 그대로 반영한다. 특히 청춘들의 크리스마스 파티를 그리게 한다.

한편으로 조금은 복고적인 사운드를 지닌 캐롤을 생각할 수 있다. 이 캐롤은 어쩌면 우리 상상 속에서나 존재하는 크리스마스 풍경을 상상하게 만든다. 그 풍경은 눈이 내리는 날 따뜻한 실내에서 가족이 함께 하는 크리스마스다. 형형색색의 등이 반짝이는 크리스마스 트리 주변에서 아이들은 산타클로스 할아버지가 줄 선물을 기다리고 어른들은 가벼운 담소로 한 해를 정리하는 사랑스러운 분위기의 크리스마스. 아무래도 크리스마스가 외국 명절이라 그런지 이런 가족적인 분위기의 크리스마스를 보내는 사람들은 많지 않을 것이다. 이 무렵 개봉되는 영화에서나 볼 수 있을까? 하지만 직접 경험하기 어려운 것이기에 더욱 더 이런 크리스마스를 꿈꾸지 않을까 싶다.

지금 우리가 듣고 있는 미셀 르그랑의 앨범은 두 번째의 크리스마스 풍경을 그리게 하는 크리스마스 캐롤을 들려준다. 즉, 영화에서나 볼 수 있는 순수하고 이상적인 크리스마스 풍경을 담고 있다는 것이다. 이것은 앨범의 주인인 미셀 르그랑이 영화 음악의 대가라는 것에 기인한다고 볼 수 있다. 2012년으로 80세가 되는 이 노장 작곡가는 <쉘브르의 우산>(1963), <The Thomas Crown Affair>(1968) <Summer of 42>(1971), <사랑과 슬픔의 볼레로>(1980) <007: Never Say Never Again>(1983) 등 200여편 이상의 영화 음악을 담당했다. 그러면서 ‘The Windmills of Your Mind’, ‘The Summer Knows’, ‘What are You Doing the Rest of Your Life?’ ‘I Will Wait For You’ 등의 명곡을 만들었다. 그러니 이 앨범이 영화적 상상력을 자극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 아니겠는가?

그의 매력은 예측 가능할 정도로 익숙하고 편한 멜로디를 기반으로 악기들의 섬세한 조화를 통해 감성을 자극하는 사운드를 만들어 내는데 있다. 이번 앨범에서도 마찬가지다. 그는 크리스마스 캐롤의 고전들을 마치 그가 작곡한 곡이 아닐까 생각할 정도로 그다운 분위기로 바꿨다. 그것은 무엇보다 우아함이 돋보이는 심포니 오케스트라와 스윙 재즈의 흥겨움을 간직한 빅 밴드의 효과적인 사용에서 드러난다. 소편성이 아닌 대편성의 사운드는 연주자들의 긴밀한 호흡이 무엇보다 요구된다. 그렇기에 저절로 여럿이 함께 하는 풍경을 그리게 한다. 그저 함께 있는 것만으로도 따스하고 유쾌한 풍경 말이다.

한편 미셀 르그랑은 혼자가 아니라 여럿이 함께 하는 크리스마스의 의미를 강조하기 위해 빅 밴드와 심포니 오케스트라로 구축한 세계에 현 재즈 보컬의 대표주자 제이미 컬럼, 마들렌느 페루를 비롯하여 미카, 루퍼스 웨인라이트, 이기 팝(!), 에밀리 시몽, 칼라 브뤼니, 아요, 이멜다 메이 등 영국, 미국, 프랑스의 유명 보컬들을 초대했다. 이들은 미셀 르그랑의 의도대로 크리스마스 캐롤을 추억을 그리듯 향수를 가득 담아 노래한다. 그래서 제이미 컬럼이 노래한 ‘Let It Snow’에서는 눈 썰매를 타는 어린 아이들의 모습이, 테디 톰슨과 루퍼스 웨인라이트가 함께 한 ‘White Christmas’는 눈 내리는 크리스마스 이브의 밤에 따뜻한 실내에 모인 가족의 풍경이, 마들렌느 페루가 노래한 ‘Have Yourself A Merry Christmas’는 빌리 할리데이가 활동했던 1940, 50년대의 크리스마스가, 그리고 이기 팝이 노래한 ‘Little Drummer Boy’는 드럼 연주자를 꿈꾸었던 이기 팝의 어린 시절이, 아요가 노래한 ‘Santa Claus Is Coming To Town’ 경쾌한 산타 클로스의 행차가 그려진다.

그래도 앨범의 백미는 이번 앨범을 위해 미셀 르그랑이 작곡한 ‘Noël d’espoir’가 아닐까 싶다. 우리 말로 ‘희망의 크리스마스’로 해석되는 이 곡은 앨범의 타이틀 곡이자 미셀 르그랑이 이번 앨범을 통해 전달하고픈 크리스마스를 상징한다고 생각되는데 그답게 한 명이 아닌 여러 보컬이 함께 했다. 사운드 또한 빅 밴드의 웅장함과 바람처럼 공간을 스며드는 심포니 오케스트라가 서로 대화하듯 어울리면서‘희망’은 여럿이 함께 할 때 만들어짐을 느끼게 해준다. 한편 이 곡은 프랑스어로 노래되었다. 그래서 프랑스어가 가능한 보컬들이 기용되었는데 칼라 브뤼니와 에밀리 시몽은 원래 프랑스 보컬이고 마들렌느 페루는 어린 시절 파리에 살았던 적이 있으며 루퍼스 웨인라이트는 프랑스어를 쓰는 캐나다 몬트리올에서 유년 시절을 보냈으니 프랑스어로 노래하는 것이 어색하지 않지만 이기 팝이 여기에 함께 했다는 것은 다소 의외가 아닐까 싶다. 반항아적인 기질이 프랑스어의 부드러움 때문에 뒤로 물러섰다는 느낌을 주는데 실은 그가 프랑스어로 노래한 것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이미 2009년에 선보였던 자신의 앨범 <Préliminaires>에서 프랑스 샹송의 고전 ‘Les Feuilles Mortes 고엽’을 노래한 적이 있다. 그럼에도 그는 루퍼스 웨인라이트의 유창한 프랑스어 실력을 부러워했다고 한다.

‘Noël d’espoir’외에도 앨범엔 프랑스어로 노래된 곡이 더 있다. ‘Jingle Bells’이‘Vive Le Vent 바람아 불어라’이란 제목으로 바뀌어 미카에 의해 프랑스어로 노래되었고 나아가 현 프랑스의 영부인이기도 한 칼라 브뤼니가 담백한 톤으로 프랑스 크리스마스 캐롤의 고전 ‘Jolis Sapins’을 노래했다. 이렇게 프랑스어 캐롤이 널리 알려진 영어 캐롤과 자리를 같이 한 것은 앨범이 기본적으로 프랑스 감상자를 위해 기획되었기 때문이다. (어쩌면 이미 파리 오페라 근처에 위치한 프렝땅이나 갤러리 라파이에트 백화점에는 화려한 크리스마스 장식과 함께 이 앨범의 수록곡들이 흐르고 있을 지도 모른다.) 물론 그렇다고 프랑스 외의 청취자들을 배려하지 않았다는 것은 아니다. 주목할 것은 프랑스어 노래가 포함되면서 제 3자에 해당하는 우리에겐 앨범이 보다 독특한 크리스마스 앨범으로 다가온다는 것이다.

크리스마스가 가까워지면 사람들은 가슴속에 무엇인가 기대하게 된다. 그것은 우연 같은 운명적 만남일 수도 있고 평소 갖고 싶었던 것을 선물 받는 것일 수도 있다. 하지만 크리스마스라고 해서 그렇게 특별한 일이 일어나는 일은 매우 드물다. 매년 12월 26일 무렵이면 막연한 설렘은 그저 설렘이상은 아니었음을 확인하게 될 뿐이다. 하지만 다시 생각해보면 크리스마스가 기대만큼 아쉬움 속에서 허무하게 지나가는 것은 주변을 제대로 돌아보지 않았기 때문은 아닐까 싶다. 주변에 함께할 사람들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따스하고 행복한 크리스마스가 아닐까? 연인 혹은 가족과 함께 특별한 이벤트는 없더라도 함께 분위기 좋은 캐롤을 들을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희망 가득한 크리스마스가 아닐까? 노장 미셀 르그랑은 이번 크리스마스 앨범을 통해 우리에게 말한다. 자신이 준비한 음악을 들으며 지난 한 해를 돌아보고 가족과 함께 하는 정겨운 시간을 보내라고. 그러면 새로운 한 해를 희망 속에 시작할 수 있다고.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