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은 영원함을 보여주는 시대의 크루너
얼마 전 토니 베넷의 새 앨범이 나왔다. <Duets II>라는 제목으로 발매된 앨범은 현 팝 음악을 대표하는 여러 보컬들과 듀엣으로 노래한 곡들을 담고 있다. 존 메이어, 레이디 가가, 에이미 와인하우스, 마이클 부블레, K.D 랭, 쉐릴 크로우, 조쉬 그로번, 노라 존스, 머라이어 캐리, 윌리 넬슨, 안드레아 보첼리 등 장르는 물론 세대를 가로지르는 다양한 보컬들이 토니 베넷과 호흡을 맞추었다.
이 앨범은 그의 85세 생일을 기념하기 위해 만들어졌다. 2006년에는 그의 80세 생일을 맞아 <Duets>이 제작되기도 했다. 그렇다고 이 듀엣 앨범들을 단순히 동료들의 헌사와 손자, 손녀 뻘인 어린 후배들의 재롱으로 채워진 생일 잔치용 앨범으로 생각하면 안 된다. 그보다는 이 노장이 여전히 세대를 아우르며 현재를 살고 있음을 알아야 한다. 실제 그의 노래는 자신의 젊은 시절을 추억하며 삶의 황혼을 보내는 나이 지긋한 감상자들을 넘어 힙합, R&B, 일렉트로니카 음악에 경도된 젊은이들의 지지를 받고 있다. 그렇다고 토니 베넷이 시대의 흐름을 따른다고 자신의 음악에 이런저런 변화를 주었다는 것도 아니다. 이를 위해 그가 1962년 그러니까 36세였을 때 불렀던 ‘I Left My Heart In San Francisco’와 이번 <Duet II>앨범에 수록된 곡을 비교 감상해 보기 바란다. 사운드의 측면에서 전혀 변한 것이 없음을 발견할 것이다. 변한 것이 있다면 세월의 흐름 속에 더욱 깊어진 토니 베넷 자신의 목소리뿐이다.
토니 베넷의 삶은 자신의 음악에 대한 강한 믿음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말해 준다. 1949년 유명 코미디언이자 배우였던 밥 호프의 눈에 띄어 1950년 콜럼비아 레코드와 계약하게 되면서 활동을 시작한 그는 한 세대를 앞선 프랑크 시나트라의 뒤를 잇는 크루너-매력적인 중저음을 지닌 보컬-라는 평가를 받으며 1960년대 중반까지 최고의 인기를 누렸다. 1950년대 중반 팝 음악에 불어 닥친 록앤롤의 선풍적인 인기도 토니 베넷을 무너뜨리지 못했다. 오히려 그는 토요일 밤의 TV 버라이어티 쇼 ‘토니 베넷 쇼’를 진행하며 자신의 인기를 공고히 했다.
그의 인기는 1962년에 ‘I Left My Heart in San Francisco’를 노래하면서 절정에 달했다. 사실 이 곡은 빌보드 차트 19위 밖에 오르지 못했다. 하지만 이 곡과 이 곡을 타이틀로 한 앨범 모두 골드 레코드를 기록했으며 이를 통해 토니 베넷은 그 해 그래미 상 시상식에서 올 해의 앨범과 최우수 남성 보컬 부분을 수상할 수 있었다. 하지만 1964년 비틀즈를 중심으로 한 브리티시 인베이젼이 시작되고 이를 통해 록이 팝과 재즈를 밀어내고 대중 음악의 한 가운데 서게 되면서 서서히 그는 하락세를 걷기 시작했다. 급기야 1969년에 스탠더드 곡들을 노래하는 대신 비틀즈, 버트 바카락, 스티비 원더 등 당시의 히트 곡을 노래한 앨범 <Tony Sings the Great Hits of Today!>을 녹음하기에 이르렀다. 하지만 이런 시도조차 토니 베넷을 다시 팝의 중심에 서게 하지 못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문제는 곡이 아니라 사운드였다. 당대의 히트 곡을 노래했다지만 그 내용은 단순한 피아노 반주에 토니 베넷이 노래한 것이 전부였으니 말이다. 록에 빠진 당시의 젊은이들에게 이 단순, 담백한 사운드는 그저 심심하게 느껴졌을 것이다.
이러한 인기의 하락에도 그는 꾸준히 앨범을 녹음했다. 하지만 1972년에는 결국 콜럼비아 레코드사와 결별할 수밖에 없었다. 이후 잠깐 MGM 레이블을 거쳐 자신이 직접 임프로브라는 레이블을 만들어 빌 에반스와의 멋진 듀오 앨범 <The Tony Bennett/Bill Evans Album>(1975), <Together Again>(1976)을 녹음하기도 했지만 이 또한 상업적 성공과는 거리가 멀었다. 결국 1970년대 말엽에는 매니저, 음반사도 없이 라스 베가스를 중심으로만 활동해야 할 정도로 쇠락의 시기를 맞아야 했다. 여기에 마약 중독은 그의 음악 인생이 이제 끝났음을 생각하게 했다. 실제 마약 중독에 빠져 있을 때 토니 베넷은 그의 아들들에게 ‘난 이제 어찌 해야 할 지 모르겠다. 사람들이 더 이상 내 음악을 듣고 싶어하는 것 같지 않구나’라고 말했다고 한다.
이런 그가 재기에 성공하게 된 것은 아들 대니 베넷의 힘이 컸다. 그 자신도 음악을 했지만 일찌감치 자신의 능력은 사업에 있다고 간파한 그는 아버지의 매니저가 되어 대학이나 소극장 공연을 꾸준히 기획하며 아버지의 이미지를 화려한 라스 베가스 쇼에서 벗어나 새로운 세대를 향한 보컬로 바꾸기를 시도했다. 또한‘데이비드 레터맨 쇼’에 아버지를 지속적으로 출연시키는 한편 MTV의 다양한 프로그램에도 아버지를 다른 젊은 록, 팝 보컬들과 함께 서게 했다. 물론 이 상황에서도 토니 베넷은 여전히 전통적인 방식으로 스탠더드 곡들을 노래했다. 하지만 기이하게도 젊은이들이 토니 베넷의 노래에 호응하기 시작했다. 그들에게 토니 베넷의 노래는 철 지난 노래가 아니라 우아하고 고급스러운 현재의 음악으로 다가왔다. 여기에는 젊은 세대가 토니 베넷이 노래하는 스탠더드 곡들이 지닌 역사를 전혀 몰랐기에 가능했다. 토니 베넷에 따르면 마음에 드는 스탠더드 곡들이 나올 때마다 젊은 감상자들은 ‘이거 누가 쓴 곡이지?’라는 반응을 보였다고 한다. 그러면서 자연스레 토니 베넷에 주목하게 된 것이다.
젊은 세대들로부터의 인기에 힘입어 토니 베넷은 다시 콜럼비아 레코드와 계약하고 앨범 활동을 시작했다. 그 결과 프랑크 시나트라를 위한 헌정 앨범 <Perfectly Frank>(1992)와 프레드 아스테어를 위한 헌정 앨범 <Steppin’ Out>(1993)의 성공으로 그래미 상 최우수 전통 팝 보컬 부문을 수상하게 되었다. 새로운 토니 베넷의 성공은 1994년 MTV의 언플러그드 라이브를 통해 정점을 찍었다. 공연 중 ‘나는 늘 언플러그드로 노래했다’고 말해 화제를 모았던 이 공연은 젊은이들의 커다란 호응을 받았다. 그래서 공연을 담은 앨범 <MTV Unplugged: Tony Bennett>은 플래티넘 앨범을 기록하며 그 해 그래미 상에서 올해의 앨범으로 선정되었다. 그리고 토니 베넷은 3년 연속 최우수 전통 팝 보컬 부문을 수상하게 되었다.
지금도 토니 베넷은 전 세대를 아우르는 활동을 하고 있다. 이번에 선보인 <Duet II>는 그의 현재를 그대로 대변한다. 수십 년에 걸쳐 수천 번은 불러서 지겨울 법도 한데 그는 계속 스탠더드 곡들을 노래한다. 여기에는 토니 베넷이 스탠더드 곡들과 어쿠스틱 사운드에 대해 강한 자부심을 지니고 있었기 때문이다. 비록 고난의 시절을 보내기도 했지만 좋은 음악은 시간을 가로지른다는 믿음이 있었기에 오늘의 토니 베넷이 있을 수 있었던 것이다.
대표 앨범
I Left My Heart in San Francisco (Columbia 1962)
토니 베넷을 대표하는 곡을 꼽으라 한다면 ‘I Left My Heart in San Francisco’를 제일 먼저 언급해야 한다. 이 곡으로 토니 베넷은 대중적인 측면과 음악적인 측면 모두에 있어서 최고의 평가를 이끌어냈다. 이 곡 외에도 앨범은 그에 의해 스탠더드 곡으로 자리잡게 된 ‘The Best Is Yet to Come’등 테너를 넘어 바리톤에 가까운 토니 베넷의 묵직한 저음이 주는 매력을 느낄 수 있는 곡들을 담고 있다. 그의 음악적인 지우 랄프 샤론의 편곡도 앨범의 매력을 돋보이는 요인.
The Complete Tony Bennett/Bill Evans Recordings (Fantasy 2009)
1972년 콜럼비아 레이블과 결별한 토니 베넷은 자신이 직접 임프로브라는 레이블을 설립했다. 그래서 몇 장의 앨범을 제작했지만 적절한 유통을 찾을 수 없어 제대로 빛을 보지 못했다. 그 가운데에는 빌 에반스와의 협연도 있었다. 이 앨범은 두 사람이 함께 했던 <The Tony Bennett/Bill Evans Album>(1975), <Together Again>(1976)을 합본한 것이다. 이 앨범에서 두 사람은 보컬과 반주자 가 아니라 서로를 경청하는 진정한 듀오의 모습을 보여준다.
Duets II (Sony 2011)
토니 베넷이 자신의 85세 생일을 맞이하여 이 시대를 대표하는 여러 보컬과 함께 듀엣으로 노래한 곡들을 모아 놓은 앨범이다. 이 앨범 말고 2006년에 발매된 <Duets>을 들어도 상관 없다. 이 앨범은 토니 베넷보다 한참 어린 가수들이 그와 함께 했다는 것 외에 시간이 흘러도 토니 베넷의 음악적 본질을 변하지 않음을 확인하게 한다는 데에서 의미가 있다. 나아가 그의 푸근한 목소리와 노래는 이런 기획이 단지 상업적인 의도만을 띄고 있지 않음을 확인하게 해준다. 클래스는 영원함을 느끼게 하는 앨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