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탄 겟츠(Stan Getz 1927. 2. 2 – 1991.6.6)

sg

보사노바로만 기억되기엔 너무나 아쉬운 연주자

여름이 되면 듣지 않으려 해도 듣게 되는 음악이 있다. 바로 보사노바다. 브라질에서 태어난 이 음악은 이제 세계의 음악이 되었다. 바다 하면 사람들은 보사노바를 습관적으로 생각하게 된다. 확실히 느슨함과 긴장이 어우러진 보사노바의 미묘한 리듬은 백사장에 왔다 사라지는 파도를 닮은 면이 있다. (물론 다른 상상도 가능하다.)

보사노바가 세계적인 인기를 얻게 된 것에는 보사노바에 내재된 보편적 대중성 때문이었을 것이다. 특히 모든 혼돈을 무화시키는 듯한 특유의 평온하고 은밀한 분위기가 그렇다. (애초에 보사노바는 화려한 축제 중심의 삼바에 싫증난 브라질 젊은이 음악인들-조앙 질베르토, 안토니오 카를로스 조빔, 비니시우스 드 모라에스-이 실내에서 편하게 듣기 위한 목적으로 삼바 리듬을 순화하고 여기에 재즈적인 요소를 결합하여 만들었다) 하지만 이러한 매력이 세계에 알려지려면 특별한 계기가 필요한 법. 보사노바가 세계적으로 인기를 얻게 된 것에는 스탄 겟츠의 힘이 컸다.

1961년 스탄 겟츠는 먼저 브라질 공연을 다녀온 기타 연주자 찰리 버드로 브라질에서 막 인기를 얻고 있었던 보사노바에 관한 이야기를 들었다. 그래서 이 기타 연주자와 함께 1962년 앨범 <Jazz Samba>를 녹음했다. 이 앨범은 예상대로 대중적 성공(골드 디스크)을 거두며 그에게 1963년 그래미상 최우수 연주부문을 수상하게 해주었다. 이에 힘입어 그는 이듬해 안토니오 카를로스 조빔과 조앙 질베르토, 아스트러드 질베르토 부부와 함께 <Getz/Gilberto>(Verve 1963)를 녹음했는데 이 앨범은 전작을 뛰어넘는 성공을 거두며 스탄 겟츠를 단번에 보사노바의 대명사로 자리잡게 했다. 그리고 스탄 겟츠 또한 이러한 대중적 요구에 맞추어 여러 보사노바 앨범들을 녹음했다. 그래서 지금도 스탄 겟츠 하면 보사노바가 떠오르고 보사노바 하면 스탄 겟츠가 떠오른다. 그 가운데 <Getz/Gilberto>는 보사노바를 이야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고전으로 빛나고 있다.

보사노바의 선구자이기 때문일까? 아무튼 스탄 겟츠의 보사노바 연주를 듣다 보면 정말 보사노바를 위한 연주라는 생각이 절로 든다. 톤, 호흡, 부드러움이 보사노바를 위한 이상적인 두께, 깊이, 경도를 지녔다는 것이다. 스탄 겟츠만큼 유명하고 실력이 있다는 연주자라 해도 넘어서기 어려운 그만의 매력이라 하겠다. 실제 이후 많은 연주자들이 <Getz/Gilberto> 앨범을 뛰어 넘기 위한 앨범을 녹음했고 그 가운데에는 정말 좋은 결과를 만들어 낸 경우도 있었다. 하지만 <Getz/Gilberto>를 대신할 수 있겠다는 느낌은 주지 못했다.

분명 한 분야에서 최고의 평가를 받고 그 평가가 오랜 시간 지속된다는 것은 부러운 일이다. 하지만 스탄 겟츠의 삶을 두고 생각하면 나는 보사노바로 인해 그의 다양한 면모들, 음악적으로 더 관심을 받아야 할 측면들이 간과되고 저평가 되었다고 생각한다. 특히 보사노바로 스타가 된 이후 그의 활동에 대한 관심은 보사노바에 국한되는 경우가 많다. 만약 보사노바가 미국과 유럽의 대중 음악 장르의 하나로 자리잡으며 일반화되지 않았다면 스탄 겟츠는 마치 브라질 연주자처럼 평생 보사노바를 연주할 것을 요구 받았을 지도 모른다.

보사노바를 연주하기 전부터 그는 뛰어난 스타 연주자였다. 유명 연주자인 스탄 겟츠가 새로운 시도라는 명목으로 연주했기에 보사노바가 관심을 받고 인기를 얻었던 것이지 그리 알려지지 않은 연주자가 연주했다면 보사노바가 인기를 얻기까지는 더 오랜 시간이 걸렸을 것이다. 아무튼 1960년대를 맞이하기 전에 그는 레스터 영의 그림자가 느껴지는 따스하고 부드러운 톤으로 쿨 재즈 색소폰을 대표하는 연주자로 인기를 얻었다. 이러한 인기는 우디 허먼 오케스트라에 몸 담았을 때부터 시작되었다. 이 오케스트라에서 동료 색소폰 연주자 세르쥬 살로프, 주트 심스, 허비 스튜워드와 함께 ‘The Four Brothers’라는 별칭-실제 이들의 인기를 가져다 준 연주곡의 제목이기도 하다-을 얻으며 주목을 받게 된 것이다.

솔로로 독립한 이후에는 다른 연주자들처럼 여러 연주자들과 즉흥적으로 함께 하면서 연주자적인 역량을 키우고 그것을 통해 유명세를 높여 나갔다. 당시 그와 함께한 연주자들로는 디지 길레스피, 오스카 피터슨, 허브 엘리스, 로이 헤인즈 등이 있다.

보사노바 연주로 60년대를 보낸 이후 스탄 겟츠는 보사노바를 벗어난 연주를 이어갔다. 그리고 그 연주는 실력만큼이나 훌륭한 것이 많았다. 그 예로 빌 에반스와 함께 한 <Stan Getz & Bill Evans>(Verve 1973), 지미 로울스와 함께 한 <The Peacocks>(Columbia 1975) 같은 앨범을 들 수 있다. 특히 1987년 7월 6일 60세 생일을 맞아 덴마크 코펜하겐의 몽마르트 재즈 클럽에서 가졌던 공연을 정리한 두 장의 앨범 <Serenity>(EmArcy 1987), <Aniversary>(EmArcy 1989)는 스탄 겟츠를 이해할 때 꼭 들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1991년 세상을 떠나기 3개월 전에 녹음된 앨범 <People Time>(Verve 1992)도 지나치면 안 된다. 80년대부터 함께 한 피아노 연주자 케니 베이런과 듀오로 가졌던 공연을 담고 있는 이 앨범에 담긴 스탄 겟츠의 연주는 100%는 아니다. 이미 깊어진 간암을 의식했었는지 몰라도 위태로운 순간이 곳곳에서 보인다. 하지만 보사노바와는 또 다른 삶의 숙고적인 모습이 이러한 흔들림을 감동으로 받아들이게 한다. 그리고 나아가 스탄 겟츠를 단순히 보사노바 연주자로 기억하기에는 그의 음악적 유산이 거대함을 깨닫게 해준다.

1991년 여름 스탄 겟츠는 간암으로 세상을 떠났다. 그의 시신은 화장되어 캘리포니아 말리부 해안에 뿌려졌다. 글쎄 보사노바의 추억 때문이었을까? 과연 그것이 스탄 겟츠의 바람이었는지 궁금하다.

대표 앨범 

Getz/Gilberto (Verve 1963)

sg스탄 겟츠는 물론 보사노바를 대표하는 앨범이다. 이 앨범에서 스탄 겟츠의 색소폰은 하나의 보컬처럼 다가오며 보사노바 특유의 살롱적인 분위기를 효과적으로 표현한다. 하지만 엄밀하게 말하면 이 앨범의 성공은 스탄 겟츠 외에 안토니오 카를로스 조빔의 작곡과 호앙 질베르토, 아스트러드 질베르토 부부의 노래 때문이기도 했다. 특히 우연히 앨범에 참여하여 남편과 함께 노래한 아스트러드 질베르토는 이후 보사노바를 대표하는 보컬이 되었다.

Serenity (EmArcy 1987)

스탄 겟츠는 자신의 60번째 생일을 기념하며 생일 당일에 덴마크 코펜하겐 몽마르트 재즈 클럽에서 공연을 가졌다. 이 앨범은 그 공연을 정리하고 있다. 이 앨범에서 그는 전통적인 비밥의 어법을 반영한 밀도 높은 연주를 펼친다. 그럼에도 긴 호흡으로 멤버들과 여유롭게 조화를 이루었기에 모든 것이 말끔하게 잘 정돈된 느낌으로 다가온다. 60세지만 젊음의 세련미가 느껴지는 연주다. 기왕이면 이 공연의 두 번째 앨범인 <Aniversary>(EmArcy 1989)를 같이 듣기 바란다.

People Time (Verve 1992)

스탄 겟츠는 피아노 연주자 케니 베이런을 자신의‘음악적 반쪽’이라 부를 정도로 신뢰했다. 이 앨범은 스탄 겟츠가 세상을 떠나기 3개월 전에 있었던 듀오 공연을 담은 것이다. 이 앨범에서 스탄 겟츠의 색소폰은 간암으로 악화된 건강 상태가 반영된 듯 힘겹고 애처로운 부분이 많다. 그리고 케니 베이런의 피아노는 이를 잘 감싼다. 그 중 애잔한 분위기의‘First Time’은 3개월 뒤에 있을 스탄 겟츠의 사망과 맞물려 더욱더 진한 슬픔으로 다가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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