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anding On The Rooftop – Madeleine Peyroux (Decca 2011)

한층 더 깊어진 음악적 진지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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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즈 연주자나 보컬들은 기본적으로 매번 새로움을 보여주어야 하는 일종의 강박적 의무감이 있습니다. 정체되어 있다는 느낌을 주면 안 되는 것이지요. 하지만 우리 같은 보통의 감상자들의 취향은 꼭 그렇진 않지요. 새것을 원하면서도 완전히 바뀐 무엇을 들고나오면 좋다 싫다를 이야기하기 전에 당황해서 아예 듣기를 거부하는 일도 발생합니다. 따라서 새로움을 추구해도 지난 과거를 완전히 부정하면 안됩니다. 결국 중요한 것은 익숙함 속에서 어떻게 새로움을 시도해야 하는 것이겠습니다. 하지만 아쉽게도 여기에는 확실한 조제법이 없습니다. 각각 직관으로 그 비율을 결정해야 할 따름입니다.

마들렌느 페루-처음 국내에 소개되었을 때 제가 그만 ‘페이루’라고 소개를 해서 지금도 페이루로 이야기되고 있네요. 죄송합니다. 제대로 된 발음은 페루입니다-도 이러한 의무, 운명에서 자유롭지 않습니다. 매번 새로움을 추구하면서도 그 안에서 그녀를 인식시키는 지속적인 개성을 유지해야 하지요. 이에 대해 그녀는 지금까지 무척이나 모범적인 모습으로 자신의 개성과 새로움의 의지를 보여주었습니다. 그리고 그것은 파격적이라기 보다는 점진적인 것이었습니다. 빌리 할리데이와의 유사성을 보이는 친근한 목소리로 스탠더드 곡들을 노래하는 보컬에서 도시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지친 영혼을 편안하게 위로하는 담백한 사운드의 조율자로서의 면모를 차근차근 보여주었던 것입니다. 이러한 과정은 재즈 보컬로서의 자기 정체성을 인정받고 다시 그 안에서 포크나 프랑스 샹송 등의 요소를 가미하여 재즈의 경계를 허무는 것으로 현실화되었습니다.

그 가운데 지난 앨범 <Bare Bones>는 우리 말로 ‘요점’ 혹은 ‘핵심’으로 이해되는 그 타이틀처럼 마들렌느 페루의 음악적 정수를 보여준 앨범이었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이 앨범을 통해 그녀는 자신이 재즈사에 위치하면서도 역사의 무게에 짓눌리지 않고 자신만의 음악을 추구하며 그것이 상당한 매력이 있음을 증명했습니다.

<Bare Bones>가 재즈로부터 자유로운 자신만의 개성을 편안하게 드러내고픈 마들렌느 페루의 의지를 성공적으로 그려냈다면 그로부터 2년 만에 선보이는 이번 새 앨범은 그 자유를 더욱 확장한 음악을 들려줍니다. 그것은 블루스를 비롯한 루츠(Roots) 음악적인 요소를 강화한 것에서 드러납니다. 혹시 그녀의 초기 두 앨범을 들어보신 분이라면 이번 앨범에서 그녀의 매력적인 목소리는 여전하면서도 음악의 색만큼은 많이 변했음을 느끼실 것입니다. 재즈의 기본, 전형을 가장 충실하게 따르려 했던 것에서 이제는 음악적 형식에서 상당히 자유로워졌지요. 그렇다고 이 앨범에 담긴 음악이 재즈가 아니라고 할 수도 없습니다. 루츠 음악적인 맛이 강하지만 재즈는 재즈인 것이지요. 결국 이 앨범에서 루츠 음악적인 요소가 강한 것은 그것을 목적으로 추구했기 때문이 아니라 익숙한 것을 활용하여 현대적인 새로움이 돋보이는 사운드를 추구하는 과정에서 나타난 결과라 하겠습니다. 실제 그녀는 이번 앨범을 ‘팬들이 무엇인가 다른 것을 듣고 싶어할 거라는 생각’에 변화를 시도했다고 합니다. 그렇다고 변화를 위한 변화를 생각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녀의 말에 따르면 ‘그녀의 마음 다른 한 곳에서 자라난 음악’을 현실화시킨 것이라 합니다. 즉, 음악은 새롭더라고 하더라도 마들렌느 페루가 변한 것은 아니라는 것이지요.

이러한 음악적 변화는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고 그들과 음악적 소통을 시도하는 과정을 통해 이루어졌습니다. 그 가운데 가장 중요한 만남은 제작자 크레이그 스트릿(Craig Street)과의 만남이었습니다. 지난 앨범까지 마들렌느 페루의 음악적 동반자 역할을 했던 래리 클라인도 매우 뛰어난 제작자였습니다만 크레이그 스트릿 또한 무시할 수 없는 역량을 지닌 제작자입니다. 그는 여러 개성 강한 문제작들을 제작했습니다. 그 가운데 우리가 알만한 것으로는 노라 존스의 <Come Away With Me>, 카산드라 윌슨의 <New Moon Daughter>같은 앨범이 있습니다. 이 두 장의 앨범만 해도 포크와 블루스가 재즈 이상의 중요한 역할을 담당했었죠. 그것이 이번 마들렌느 페이루의 다섯 번째 앨범에서도 다시 한번 영향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제작자가 바뀌면서 함께 하는 연주자들의 면모 또한 바뀌었습니다. 몽환적이고 공간적인 맛이 강한 앨범의 전체 질감에 가장 큰 역할을 한 마크 리봇(기타)을 비롯하여 제니 샤인만(바이올린), 미셀 은디지오 첼로(베이스) 같은 여성 연주자, 그리고 알랭 투생(피아노) 등의 재즈뿐만 아니라 컨트리와 포크, 블루스 등을 자유로이 오가는 활동을 해온 스타 연주자들이 그녀와 함께 했습니다. 그리고 작곡에서는 롤링 스톤즈의 드럼 연주자였던 빌 와이먼이 그녀와 함께 곡을 쓰기도 했습니다. 이처럼 새로운 인연들의 지원이 있었기에 자연스럽게 새로운 질감의 사운드가 만들어질 수 있었습니다.

새로운 제작 환경은 사운드의 정서적인 변화로도 이어집니다. 다시 말씀 드리지만 이전까지 그녀는 그녀의 노래는 도시를 살아가면서 우리가 느낄 수 있는 불안, 슬픔, 우울을 부드럽게 감싸고 위로하고 정화하는 성격이 강했습니다. 물론 이번 앨범도 이런 면이 없다고는 할 수 없습니다. 특히 빌 와이먼과 함께 만든 ‘The Kind You Can’t Afford’같은 곡은 펑키한 맛마저 주면서 마들렌느 페루의 새로운 매력을 엿보게 합니다. 이 외에 ‘Don’t Pick A Fight With A Poet’ ‘The Way Of All Things’같은 곡에서도 어두운 것을 긍정적으로 바꾸는 그녀의 매력을 느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정서적 위안을 넘어 그녀는 보다 사색적인 사운드로 삶에 대해 보다 진지하게 생각할 것을 요구합니다. 이것은 비틀즈의 원곡에 비해 천천히 그리고 반성(反省)적으로 노래한 ‘Martha My Dear’부터 감지됩니다. 그리고 진동하듯 단순 반복되는 기타를 배경으로 마들렌느 페루의 목소리가 부유(浮遊)하듯 흐르는 타이틀 곡 ‘Standing On The Rooftop’이나 블루스 음악의 전설인 로버트 존슨의 곡을 몽환적이며 다소 거친 질감으로 바꾼 ‘Love In Vain’같은 곡에서 그 절정에 이릅니다. 이 외에 W.H. 오덴의 시를 가사로 사용한‘Lay Your Sleeping Head, My Love’나 ‘Fickle Dove’, ‘Superhero’, ‘Ophelia’그리고 밥 딜런의 곡을 노래한 ‘I Threw It All Away’같은 곡들도 사색적인 분위기를 지니고 있습니다.

결과적으로 마들렌느 페루의 이번 다섯 번째 앨범은 그녀의 한층 깊어진 음악적 진지함을 맛보게 해주는 앨범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어찌 보면 이번 앨범이 그녀의 음악을 이미 잘 알고 좋아하는 감상자를 위한 것이라는 생각이 들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이것은 이번 앨범이 이전 앨범들과 구별되는 음악적 풍경을 지녔다는 뜻일 뿐입니다. 행여 이 앨범으로 마들렌느 페루를 처음 알게 되었다고 해도 걱정할 필요는 없습니다. 음악을 단순히 배경 음악으로만 두지 않고 음악이 제공하는 색다른 상상을 즐길 줄 안다면 이번 앨범 또한 심심하고 건조한 우리의 삶을 깊이 있고 촉촉한 것으로 바꾸는 것으로 다가올 테니 말입니다. 그것도 보다 깊은 맛으로 말입니다.

사실 전 네 번째 앨범 <Bare Bones>가 한동안 마들렌느 페루를 대표하는 앨범으로 자리잡으리라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이 다섯 번째 앨범으로 그녀는 자신의 음악이 계속 새로운 곳을 향해 발전하고 있음을 바로 보여주었네요. 그렇기에 이번 앨범에 그치지 않을 그녀의 자유로운 여정이 더 기대가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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