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슬픔, 상실감을 희망과 긍정으로 바꾸는 노래들
지금 내가 글을 쓰고 있는 20011년 2월 12일 현재 빌보드 앨범차트에는 우리가 듣고 있는 에이모스 리의 네 번째 앨범 <Mission Bell>이 1위에 올라 있다. 그것도 차트에 진입하자마자 차트 1위에 오른 것이다. 이 외에 디지털 앨범 차트에서도 1위에 올라 있다. 이렇게 발매와 함께 앨범 차트 1위에 오를 수 있었던 것은 아마도 앨범 발매 전에 먼저 싱글로 공개되었던 ‘Windows Are Rolled Down’이 현재까지도 성인 취향의 음악을 중심으로 하는 AAA 라디오 차트 9위에 올라 있는 등 여러 음악 방송에서 꾸준한 사랑을 받았기 때문이라고 생각된다.
아무튼 빌보드 앨범차트 1위에 오른 것은 에이모스 리에겐 첫 번째. 그 전까지는 2008년도 앨범 <Last Days at the Lodge>가 앨범차트 16위에 오른 것이 최고였다. 그렇기에 에이모스 리는 드디어(!) 정상에 올랐다는 기쁨에 젖어 눈물을 흘렸을까? 그럴지도 모른다. 하지만 만약 그가 눈물을 흘렸다면 단순히 차트 정상에 올랐기 때문이 아니라 노래를 통해 표현하고 싶었던 자신의 마음이 감상자에게 통했다는 느낌 때문일 것이다. 감상자가 에이모스 리의 감성에 공감했기에 앨범차트 1위에 올랐다고 생각하면 결국 그 말이 그 말일 수 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에이모스 리에게 이번 네 번째 앨범은 너무나도 각별한 것이기 때문이다.
한층 깊어진 정서
2005년 첫 앨범 <Amos Lee>를 발표하면서 에이모스 리는 롤링스톤지(誌)로부터 ‘주목해야 할 10인’의 하나로 지목되는 등 단번에 실력파 싱어송라이터로 인정 받았다. 나 또한 첫 앨범에 담긴 포크를 중심으로 도시의 일상을 살아가는 소시민적인 정서가 묻어나는 담백한 사운드에 빠졌던 기억이 난다. 이러한 매력은 두 번째 앨범 <Supply & Demand>(2006), <Last Days at the Lodge>(2008)로 이어졌다. 그 결과 그의 삶은 공연의 연속으로 채워졌다. 그렇게 바쁜 일상을 보냈던 것이 그에겐 부담이 되었던 모양이다. 특히 이곳 저곳을 다니며 공연을 이어가는 와중에 두 번째 세 번째 앨범을 녹음한 것이 마음에 들지 않았던 것 같다. 물론 그의 두 번째, 세 번째 앨범 또한 포크 계열의 소박함과 도시를 사는 소시민의 정서가 잘 어울려진 좋은 음악을 담은 것이었다. 그러나 그는 쫓기는 듯한 상황에서 앨범을 제작했기에 어딘가 부족한 면이 많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래서 약 1년 반 동안 집에서 조용히 혼자서 보내는 시간을 가졌다. 그렇다고 완벽한 공백기를 가졌다는 것은 아니다. 다만 자신을 돌아보고 그가 살고 있는 현재를 살펴볼 수 있는 시간을 충분히 갖고 그런 여유와 침묵의 시간 속에서 얻어낸 경험들, 감성 들을 노래로 만들어 나갔다는 것이다.
그렇기에 이번 앨범에 수록된 곡들은 각각 하나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그 이야기들은 상실, 후회, 그리고 이러한 슬픈 감정의 극복에 관한 이야기들이다. 예를 들어 앨범의 인기를 견인한 첫 번째 싱글 곡 ‘Windows Are Rolled Down’같은 곡은 사랑하던 여인이 자신의 꿈을 위해 그의 곁을 떠났던 일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하지만 그는 무조건 슬픔에 빠지지 않고 그녀의 성공을 빌어준다.‘Stay With Me’같은 곡은 몸이 아파 공연을 볼 수 없는 그의 팬의 집을 방문해 몇 곡을 연주하며 받았던 따뜻한 느낌-절망이 아닌 감사의 마음을 담아낸 곡이다. 이것은 죽음과 사투를 벌이고 있는 어린 환자들이 있는 병원을 방문한 후 그 어린 환자들에게서 그가 받았던 경외감, 존재에 대한 의문을 담아낸 ‘Out Of The Cold’로 이어진다. 그 밖에 타인과 경쟁하며 긴장된 삶을 살아야 하는 도시인의 비애(悲哀)를 노래한 ‘Violin’, 샌프란시스코에서 개와 함께 산책을 하는 중에 만났던 모든 것이 명확해 지는 듯한 느낌을 노래한 ‘Learned A Lot’, 할아버지의 장례식에 가는 중에 그럼에도 평온히 돌아가는 듯한 세상의 모습에서 느꼈던 알 수 없는 역설을 담아 낸 ‘Jesus’등의 곡들이 그가 일상을 살며 느꼈던 작은 깨달음, 슬픔, 감사 등을 이야기하고 있다.
음악적으로 확장된 사운드
한편 일년 반의 휴식은 그에게 정서적 깊이뿐만 아니라 음악적 깊이 또한 가져다 주었다. 그동안 그는 자신의 음악을‘포크-소울’로 정의해왔다. 이것은 필라델피아 출신의 그가 만들어 내는 음악에 대한 가장 적절한 설명이었다. 실제 많은 사람들이 그의 음악을 닐 영과 빌 위더스 사이를 오간다고 했다. 이번 앨범도 마찬가지다. 그러나 이전 그의 세 앨범을 들었던 감상자라면 이번 앨범이 전작들의 사운드와 같은 선상에 있으면서도 그것의 반복이 아닌 확장을 시도하고 있음을 쉽게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이 앨범에서 그는 포크-소울의 결합을 넘어 팝, 컨트리, R&B, 록, 가스펠, 블루스 등의 미국 음악의 근간을 이루는 음악들을 자유롭게 가로지른다. 닐 영, 빌 위더스 뿐만 아니라 밴 모리슨, 밥 딜런, 부르스 스프링스틴, 제임스 테일러, 스탠리 브라더스 등이 평화롭게 공존하는 지점을 향한다고 할까? 그래서인지 이 가로지름은 마치 하나의 여행처럼 다가온다.
게다가 이 다양한 장르들은 정서적인 차원에서 하나로 융화된 모습으로 나타난다. 예를 들면 앨범의 첫 곡으로 앨범 타이틀인 ‘Mission Bell’을 가사로 담고 있는 ‘El Camino’가 포크적인 분위기로 구원의 벨을 찾아 떠나는 여행의 시작을 알리면 떠난 여자 친구의 행복을 기원하는 ‘Windows Are Rolled Down’이 포크에 록 적인 맛을 더한 사운드로 운명을 받아들이는 분위기를 연출하는 것이다. 그리고‘Flower’는 포크 록에 소울을 가미하여 구원의 종소리를 마음 속 꽃의 이미지로 바꾸며 ‘Hello Again’은 라틴 스타일이 결합된 미국 남부 스타일의 사운드로 흔한 이별의 반복이 주는 신파를 효과적으로 표현한다. 또한 이 신파는 ‘Cup Of Sorrow’의 가스펠적인 사운드로 긍정의 정서로 변화한다. 이어서 그 여행은 석양이 지는 황량한 길을 새로운 희망을 찾아 걷는 여행자를 그리게 하는 ‘Behind Me Now’의 블루스 색채가 강한 사운드로 마무리 되는가 싶더니 5초의 침묵 후에‘El Camino’가 새롭게 시작-이번에는 윌리 넬슨이 함께 한다-되며 여행을 끝없는 반복의 길로 만들어 버린다. 그러나 다시 시작하는 여행길은 혼자가 아닌 친구와 함께 하는 여행 길이 될 것이다.
이처럼 수록곡들이 지닌 각각의 이야기들은 다양한 장르가 교차된 사운드를 통해 극적으로 표현된다. 그리고 이 곡들은 한 자리에 모여 앨범 <Mission Bell>을 절망, 슬픔을 딛고 희망으로 나아가는 삶의 여행을 위한 안내자로 만들어 낸다. 그렇기에 대부분의 감상자들은 앨범의 다채로운 사운드를 인식하기 전에 앨범이 주는 삶의 위로, 그러니까 살아 있음에 감사하게 하고 소소한 일상을 긍정하게 하는 것에 감동하게 될 것이다. 특히 당신이 도시의 바쁜 삶에 지치고 힘들어 하는 중이라면 앨범이 주는 감동, 위로의 정도는 더욱 클 것이다.
동료들의 지원으로 높아진 완성도
한편 이처럼 완성도 높은 앨범이 나오게 된 데에는 이번 앨범의 제작을 담당한 조이 번스의 힘을 무시할 수 없다. 조 번스는 얼터너티브 컨트리 음악-컨트리에 루츠(Roots)록, 블루그래스, 포크, 록 등을 결합한 음악-그룹 칼렉시코의 주요 멤버로 에이모스 리의 정서적 깊이를 확장된 사운드 안에 담게 하는데 큰 역할을 했다. 어쩌면 그가 아니었다면 다양한 스타일이 조화를 이루는 사운드는 만들어지지 않았을 지도 모른다. 존 번스 외에 컨트리 싱어 윌리 넬슨과 포크 록 싱어 루신다 윌리엄스가 각각‘El Camino(Reprise)’와‘Clear Blues Eyes’에서 에이모스 리와 듀엣으로 노래하며 앨범을 빛냈다. 그리고 아이언 앤 와인의 샘 빔, 프리실라 안, 피에타 브라운 등이 백그라운드 보컬로 지원해주었다. 그러므로 어쩌면 이번 앨범은 각 곡들이 에이모스 리 혼자서 조용한 시간을 갖는 가운데 만들어졌다지만 결국 그 곡들이 지닌 이야기의 현실화는 음악적 취향과 마음을 공유하는 친구들과 함께 하는 것을 통해 이루어졌다고 할 수 있겠다. 이처럼 개인의 삶과 그 느낌에서 출발하여 음악적으로 동료들과 공유하는 과정을 거쳤기에 이전의 세 앨범에 비해 일반 감상자와 더 깊은 소통을 할 수 있게 된 것은 아닐까?
사람은 살면서 몇 차례에 걸쳐 성숙의 순간을 맞는다. 그것은 마치 깨달음처럼 갑작스레 비약의 모습으로 다가오곤 한다. 한 사람의 음악적 삶에도 그러한 성숙, 비약의 순간이 있다면 에이모스 리의 경우는 이번 네 번째 앨범을 만들 때가 아니었나 싶다. 이 앨범은 성숙과 비약의 순간은 자신의 삶을 진실되게 바라보고 내면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일 때, 그리고 자신의 모든 음악적 경험을 하나로 모을 때 오는 것임을 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