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쾌한 빅 밴드 재즈로 즐기는 클래식
다른 장르의 음악도 그렇지만 재즈와 친해지기 위해서는 자주 듣는 것이 제일 좋은 방법이다. 많은 사람들은 재즈를 어려운 음악이라 생각한다. 실제 재즈에는 쉽게 듣기 어려운 부분이 있기는 하다. 하지만 적어도 국내에서‘재즈는 어려운 음악이다’라는 인식은 실제 재즈를 들은 사람들의 것이 아니라 제대로 재즈를 들어보지 못한 사람들의 막연한 선입견일 확률이 크다. 일반 대중 가요만큼은 아니더라도 재즈에 지금보다 더 많이 노출된다면 많은 사람들이 재즈를 재미있고 듣기 편한 일상의 음악으로 받아들일 것이라 나는 믿는다.
지금 우리가 듣고 있는 앨범 <Jazzic>의 주인공 재즈 파크 빅밴드는 그동안 공연을 통해 재즈를 일상화하기 위한 노력을 해왔다. 사실 연주자들의 생동감 있는 연주와 그들간의 긴밀한 호흡을 몸으로 느낄 수 있는 공연만큼 재즈의 묘미를 단번에 맛보게 하는 것은 없다. 재즈 파크 빅 밴드는 색소폰 연주자 이인관, 키보드 연주자 지나 등이 주축이 되어 2007년 1월에 결성된 이래 전국을 돌며 수 많은 공연을 펼쳤다. 특히 2009년에 대중 가수 유열과 함께 만든 공연 <Jazz Park Big Band와 유열이 함께하는 Sing Sing Sing>이 전국 문예회관협회 우수공연으로 선정되면서 부산, 대구, 광주, 제천, 해남 등 총 10곳의 전국 문예회관을 돌며 공연을 펼치기도 했다. 그리고 2010년에는 경기문화재단 소외계층 문화향유 기회제공을 위한 지원사업에 참여하여 많은 사람들에게 재즈를 경험할 기회를 제공하기도 했다.
이렇게 공연 중심의 활동을 하다 보니 5년여의 활동에 비해 빅 밴드가 녹음한 앨범은 그리 많지 않다. 2008년에 발매된 EP <Jazz Park Big Band>, 2009년에 발매된 크리스마스 앨범 <The First Christmas>가 전부다. 따라서 이번 앨범 <Jazzic>이야 말로 본격적으로 재즈 파크 빅 밴드의 음악적 진가를 드러내지 않나 싶다. 실제 이번 앨범은 많은 공연에서 얻은 경험으로 대중성과 음악성을 효과적으로 조율한 음악을 담고 있다.
<Jazzic>이라는 앨범 타이틀이나 수록 곡 리스트에서 느꼈겠지만 이번 앨범의 주제는 클래식을 재즈로 연주하는 것이다. 사실 지금까지 많은 연주자나 밴드들이 클래식을 재즈로 연주해왔기에 주제 자체는 그리 특별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이 주제가 여전히 신선한 흥미를 자극하는 것 또한 사실이다. 그렇다면 이 16인조 빅밴드는 클래식을 어떻게 재즈로 다루었을까? ‘클래식을 재즈적으로 즐기기’라고 나는 이번 앨범을 정의하고 싶다. 그러니까 클래식 원곡이 주는 무게, 부담감에서 벗어나 재즈 파크 빅 밴드만의 유쾌하고 흥겨운 스타일로 연주했다는 것이다. 이것은 재즈 파크 빅 밴드가 음악적인 도전만큼 잘 알려진 클래식 테마를 통해 재즈의 매력을 대중들에게 전달하겠다는 의도로 클래식 곡들을 다루었음을 의미한다.
그 결과 이 앨범은 밝고 가벼운 정서가 전체를 지배한다. 베토벤의 ‘5번 교향곡: 운명’의 운명의 문들 두드리는 장엄하고 무거운 소리조차도 재즈 파크 빅 밴드의 연주에서는 희망과 여유가 보장된 운명의 문 소리로 바뀌어 들린다. 브람스의 ‘Hungarian Dance’는 어떤가? 화려한 관악기 아래를 흐르는 리듬은 곡의 공간을 19세기의 헝가리에서 스윙의 낭만이 지배하는 2011년의 도시로 이동시킨다. 비제의 오페라 ‘카르멘’의 아리아인 ‘Habanera’도 마찬가지. 스페인 남부를 배경으로 한 집시의 정서는 대서양을 건너 라틴 재즈의 정서로 대체되었다. 또한 쇼팽의 ‘Nocturne’에 담긴 고요한 밤의 서정은 유쾌한 만남과 기분 좋은 대화가 있는 파티의 넉넉함으로 바뀌었다.
물론 원곡의 정서를 반영한 곡도 있다. 로드리고의 ‘En Aranjuez Con Tu Amor’나 바흐의 ‘6 Suite For Violin Cello Solo: Suite No.1 Prelude’같은 곡이 그렇다. 이들 곡들은 다른 곡들에 비해 우리가 알고 있는 원곡의 정서와 보다 밀접한 관련성을 보인다. 특히 원곡의 첼로 솔로를 최관식의 바리톤 색소폰으로 대체한 바흐의 ‘무반주 첼로 조곡’은 원곡의 향취를 그대로 느끼게 해준다. 하지만 질감만큼은 새롭다.
이렇게 클래식 원곡이 주는 부담에서 자유로운 연주를 할 수 있었던 것은 (당연한 이야기겠지만) 어디까지나 재즈를 중심에 두었기 때문이었다. 이것은 편곡에서 잘 확인된다. 앨범에 수록된 11곡은 총 9명이 편곡을 담당했다. 하지만 많은 편곡자에도 불구하고 앨범은 일관된 하나의 흐름을 보인다. 아무튼 이들의 편곡은 단순히 클래식 오케스트라의 연주를 관악기로 대체하는데 머무르지 않는다. 편안한 감상을 해치지 않는 선에서 재즈 특유의 긴장을 관악기들의 어우러짐 사이에 넣어 재즈 특유의 자유로움을 은연중에 느낄 수 있도록 해준다. 또한 솔로 연주자가 자신을 드러낼 수 있는 공간과 브라스 섹션의 매력을 느끼게 해주는 확장된 테마를 적절히 사용하기도 했다. 그런 중에 원곡의 주제를 곳곳에 다시 사용하여 전체 편곡이 파격과 안정 사이에서 균형을 취하고 있음을 확인하게 한다. 베이스와 드럼이 순차적으로 리듬을 쌓고 브라스 섹션이 주제를 주고 받고 이를 다시 재즈적으로 확장시키는 방식으로 연주된 파헬벨의 ‘Canon’같은 경우가 대표적이다.
한편 16인조만 해도 거대한 편성인데 재즈 파크 빅 밴드는 보다 풍성한 사운드를 위해 필요에 따라 다른 동료 연주자들을 초빙했다. 그 가운데 EP 앨범 <Jazz Park Big Band>에도 참여했던 가수 유열과 하모니카 연주자 전제덕이 특별한 게스트로 함께 했다. 그 중 전제덕은‘En Aranjuez Con Tu Amor’에서 다시 한번 빅 밴드와 하나가 되는 연주를 펼치고 유열은 ‘O Sole Mio’에서 특유의 부드럽고 편안한 목소리로 이 나폴리 민요를 멋지게 노래한다.
앨범을 들으면서 나는 음악성과 대중성이 적절히 안배된 이번 앨범에 담긴 음악은 공연을 통해 감상하면 더욱 재미있을 것이라는 생각을 했다. 몇 개의 그룹으로 나뉜 브라스 섹션이 절묘하게 교차하고 그 안에서 몸을 움직이게 만드는 흥겨운 정서를 만들어 내는 공연! 재즈를 떠나 함께 듣고 느끼고 즐기는 공연의 참 맛을 느끼게 되지 않을까? 물론 그러면서 재즈의 매력을 자연스레 느끼게 되리라. 따라서 나는 이 앨범이 감상자를 재즈 파크 빅 밴드의 생동감 있는 공연으로 이끄는 매개가 되리라 생각한다. 또한 빅 밴드의 공연을 먼저 본 감상자들에게는 현장의 즐거움을 상기하는 앨범이 될 것이라 확신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