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결 화려하고 정교해진 수파펑크록(Supafunkrock)
재즈는 늘 새로운 지점을 향해 나아가는 음악이다. 같은 것을 거부하는 것이 재즈의 운명이다. 그것이 100여 년의 짧은 역사 동안 클래식의 오랜 역사에 버금가는 다양한 사조를 있게 했다. 그런데 요즈음의 재즈를 보면 새로움에 대한 갈망은 있지만 성장 동력 자체는 다소 약해진 것 같다. 새로운 재즈가 나올 수 있는 경우의 수가 있다면 그것이 거의 끝에 이르렀다는 느낌이랄까? 특히 미국의 재즈는 종주국으로서의 전통 때문인지 몰라도 유럽에 비해 새로움에 대한 적응력이 다소 주춤해진 것 같다는 느낌도 든다. 국내만 해도 현재 미국에서 만들어진 재즈보다 유럽 등의 미국 밖에서 만들어진 재즈에 관심을 두는 감상자들이 상당히 많다. 연주자들 또한 미국보다 유럽 활동을 선호하곤 한다.
그렇다고 해도 미국 재즈가 정체되었다고 볼 수는 없을 것 같다. 몸집이 거대해서 움직임이 다소 느릴 뿐이지 새로운 시도가 없지는 않다. 특히 지난 시절의 탄탄한 전통은 새로움에 대한 부담을 넘어 새로운 재즈를 위한 동력으로 사용되기도 한다. 지금 우리가 듣고 있는 앨범의 주인공 트롬본 쇼티의 음악이 그렇다.
만약 당신이 트롬본 쇼티-본명은 트로이 앤드류-의 음악을 처음 접한다면 다소 당혹스러운 느낌을 받을 지도 모른다. 왜냐하면 재즈 외에 힙합, 록, 펑크, R&B 등이 다채로운 방식으로 혼재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기존의 재즈를 구분하는 범주에 쉽게 넣을 수 음악이란 생각을 할 것이다. 예를 들어 전통적인 재즈는 당연히 아니고, 스무드 재즈가 되기엔 질감이 거칠고 퓨전 재즈라 하기엔 사운드가 새로운 것이다. 그래서 트롬본 쇼티는 자신의 음악을 수파펑크록(Supafunkrock)이라 부른다.
그런데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 이렇게 재즈 외적인 요소의 혼재 속에서 재즈사의 가장 뒤편에 있는 뉴 올리언즈 재즈의 정신, 행진 악대 편성으로 뉴 올리언즈 곳곳을 돌면서 흥겨운 연주를 펼쳤던 지난 시절의 전통이 발견된다는 것이다. 이것은 단순히 올해 25세인 젊은 연주자가 뉴 올리언즈에서 태어났다는 것으로만 설명할 수 없다. 세계적으로 알려지기 전까지 그의 활동이 보다 직접적으로 뉴 올리언즈 재즈에 기반을 두고 있다는 것에서 이유를 찾아야 한다. 그는 뉴 올리언즈의 전통인 브라스 밴드를 들으며 성장했다. 그리고 나아가 6세부터 트롬본을 불면서 직접 뉴 올리언즈 재즈 연주자로서 활동하기도 했다. 버브 레이블에서의 첫 앨범 <Backatown>으로 세계적인 성공을 거두기 전까지 트럼펫을 연주하는 형 제임스 앤드류와 함께 여러 장의 뉴 올리언즈 재즈 앨범을 녹음했고 2004년부터 2008년까지 뉴 올리언즈의 음악과 문화를 기념하는 ‘New Orleans Jazz & Heritage Festival’ 무대에 서기도 했다. 지금 그와 함께 하고 있는 밴드인 올리언즈 애비뉴(Orleans Avenue)도 기본적으로 뉴 올리언즈 재즈를 지향한다.
그렇다면 어떻게 트롬본 쇼티는 뉴올리언즈 재즈와 여러 장르의 음악이 어우러진 총천연색의 음악을 만들 수 있었을까? 그것은 21세기를 살아가는 20대 젊은이의 음악 취향 때문이기도 하지만 우연 혹은 운명이 주선한 만남에서 이유를 찾을 수 있을 것 같다. 그는 형과 활동하는 가운데 19세였던 2005년 레니 크라비츠의 눈에 띄어 브라스 섹션의 일원으로 세계를 도는 활동을 했다. 그리고 이를 계기로 U2, 그린데이, 에릭 클랩튼 등과 만날 수 있었다.
이렇게 뉴올리언즈 재즈의 전통과 현대 대중 음악의 다양한 흐름의 영향을 받아 만든 첫 앨범 <Backatown>은 2011년 그래미상 최우수 컨템포러리 재즈 앨범 후보에 오를 정도로 큰 성공을 거두었다. 이번 앨범도 첫 앨범에 버금가는 인기를 얻게 되지 않을까 싶다. (실제 앨범은 지난 9월 13일 발매와 함께 빌보드 컨템포러리 재즈 차트 1위, 팝 앨범 차트 72위에 오른 이후 성공의 길을 걷고 있는 중이다.) 그것은 앨범이 첫 앨범의 성공 요인을 다시 한번 활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것은 펑크 재즈 그룹 갈락틱(Galactic)의 색소폰 연주자 벤 엘먼이 다시 한번 제작자로 나서고 올리언즈 애비뉴 밴드가 함께 하고 있다는 것에서부터 드러난다. 여기에 트롬본 쇼티가 앨범의 모든 곡을 쓰는 한편 트롬본 외에 트럼펫, 키보드, 오르간, 피아노, 드럼, 보컬에 이르는 전방위적 존재감을 보여준다는 것도 같다.
그러나 특유의 수파펑크록은 첫 앨범에 비해 한결 더 정교하고 화려하다. 펑키한 리듬을 배경으로 한 피프스 워드 웨비의 랩과 최근 뉴올리언즈 재즈의 부흥에 앞장서고 있는 리버스 브라스 밴드의 화려한 연주가 어우러진 첫 곡 ‘Buckjump’, 전설적인 그룹 올맨 브라더스의 기타 연주자 워렌 헤인즈의 거친 질감의 기타와 레니 크라비츠를 연상시키는 트롬본 쇼티가 어우러진 록 스타일의‘Encore’, 트롬본 쇼티와 올리언즈 애비뉴 밴드의 매력-뉴올리언즈 마칭 밴드 스타일을 현대적인 펑키 스타일에 녹아 낸-이 가장 돋보이는 ‘The Craziest Things’, 트롬본 쇼티의 혼자서 모든 악기를 연주한 ‘UNC’, R&B적인 색채가 강한 ‘Then There Was You’ 등의 곡들이 각각의 개성으로 모여 거대한 수파펑크록을 실감하게 해준다.
한편 첫 앨범에서 한결 나아간 수파펑크록이 가능했던 데에는 화려한 게스트 연주자의 참여가 다시 한번 큰 역할을 했다. 다시 말하지만 트롬본 쇼티는 다양한 성향의 연주자들과 함께 하기를 즐긴다. 그 가운데 이번 앨범은 최근 그가 만난 인연을 대거 포함하고 있다. 그 면모를 살펴보면 앞서 언급한 기타 연주자 워렌 헤인즈, 리버스 브라스 밴드, 래퍼 피프스 워드 웨비 외에 보컬이 아닌 베이스로 참여한 레니 크라비츠(Roses), 여성 보컬 레디시(Then There Was You), 드럼 연주자 스탠튼 무어(Lagniappe Part. 1 & 2), 네빌 브라더스(Nervis), 랩-보컬 키드 록(Mrs. Orleans), 그리고 기타 연주자 제프 벡(Do To Me)까지 상당히 화려하다. 이들 연주자와 보컬들을 트롬본 쇼티는 세계 각지에서 열린 페스티벌 무대에서 만났다. 예를 들어 제프 벡의 경우는 먼저 대 선배가 트롬본 쇼티의 공연을 보고 기타 연주자 레스 폴을 기리는 추모 공연에 초대하면서 인연을 맺을 수 있었다.
아무튼 트롬본 쇼티는 새로운 인연을 맺을 때마다 새로운 음악적 영향, 영감을 받았고 이것을 자신의 음악에 투영하기를 주저하지 않았다. 그것이 다채로운 게스트의 출연으로 이어진 것인데 그 결과 게스트의 화려함은 그대로 시대와 장르를 가로지르는 수파펑크록의 화려함으로 이어진다.
어쩌면 이번 앨범이 첫 앨범과 유사한 음악을 담고 있다고 해서 평범한 자기 복제를 담은 앨범으로 지레 짐작할 사람이 있을 지 모르겠다. 그들의 머리엔 아마도 소포모어(Sophomore) 징크스가 자리잡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새로움을 지향하는 것이 재즈 연주자의 숙명이기는 하지만 그 새로움이 표변(豹變)을 의미하지 않음을 생각할 필요가 있다. 기존의 매력을 이어가면서 새로운 방향으로 조금씩 나아가는 지혜 또한 필요한 것이다. 트롬본 쇼티의 이번 앨범이 그 좋은 예라고 나는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