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und Up – Stone Jazz (신나라 2011)

장르와 공간을 가로지르는 상상력을 담고 있는 앨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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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즈는 세계의 음악이다. 미국에서 태어났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세계인들이 즐기는 음악, 세계의 모든 음악과 소통하는 음악이 되었다. 그렇다고 미국의 팝 음악이 전세계적으로 인기를 얻는 것처럼 미국에서 만들어진 재즈가 세계 곳곳에서 감상된다는 것을 말하는 것은 아니다. 내가 말하는 세계 음악으로서의 재즈는 미국뿐만 아니라 세계 여러 나라에서 재즈를 생산하고 있음을 의미한다.

미국 밖에서 만들어지고 있는 재즈들은 그 지역의 문화적 특성을 반영하여 독자적인 개성을 드러내고 있다. 그래서 우리는 노르웨이, 덴마크, 핀란드 등의 재즈를 들을 때는 북유럽 특유의 냉랭한 공간감에 빠지고 동유럽 재즈를 들을 때는 발칸반도의 복잡한 역사와 맞물린 유랑자적 슬픔을 느끼곤 한다. 이처럼 재즈가 세계의 음악이 되고 다양한 지역적 특성을 지니게 된 것은 미국의 재즈를 받아들인 세계 곳곳의 연주자들이 미국 재즈의 모방을 넘어 자신들이 가장 잘 할 수 있는 재즈를 추구하면서 시작되었다. 그 결과 클래식, 민속음악 등을 재즈와 결합시키게 되었던 것이다.

피아노 기타 연주와 편곡을 담당하는 이원수가 이끄는 스톤 재즈의 음악도 이런 차원에서 이해할 수 있다. 지금까지 스톤 재즈는 한국의 전통 음악과 재즈를 결합한 독특한 음악을 선보여왔다. 특히 리더 이원수의 솔로 프로젝트에서 그룹으로 모습을 바꾼 이후에는 차근차근 재즈의 자유로움 속에서 우리 음악과 서양 음악의 만남을 추구해왔다. 그 결과 민요(1집), 재즈(2집), 캐롤(3집), 팝(4집)의 유명 곡들이 스톤 재즈의 독특한 개성을 만나 새롭게 연주되었다. 그리고 우리가 듣고 있는 다섯 번째 앨범 <Bound Up>에서는 한국인들이 사랑하는 가요를 소재로 다시 한번 스톤 재즈만의 개성을 표현하고 있다.

그런데 이번 앨범은 그동안 스톤 재즈가 들려주었던 음악의 연장으로 볼 수 있으면서도 한층 더 발전된 음악적 의미를 지녔다는 점에서 조금 더 특별하게 앨범을 감상할 것을 요구한다. 사실 민요로 시작해 재즈와 팝을 거쳤으니 우리 가요를 소재로 삼게 된 것은 과정상 예측 가능한 일이었다. 그러나 이전 작업들이 민요에 현대성을 부여하거나 재즈와 팝에 한국적인 색채를 부여하는 것이었다면 가요를 소재로 한 이번 앨범은 우리 음악의 세계화나 재즈의 한국화라는 측면을 넘어선다. 스톤 재즈가 추구하는 음악적 정서적 지향점의 완성체를 담고 있다고 할까?

그것은 이번 앨범의 소재인 한국 가요가 이전의 민요나 팝, 스탠더드 재즈 곡과는 다른 음악적, 문화적 의미를 지니고 있기 때문이었다. 한국 최초로 한국인이 만든 가요인 ‘황성 옛터’부터‘목포의 눈물’,‘애수의 소야곡’,‘눈물 적은 두만강(두만강 보사)’,‘돌아와요 부산항에’,‘무시로’,‘봉선화 연정’,‘아파트’ 에 이르기까지 이번 앨범을 위해 스톤 재즈가 선택한 우리 가요들은 서양 대중 음악의 양식을 기반으로 하면서도 하루가 다르게 변화를 거듭했던 한국사 속에서 우리의 삶을 위로하고 즐겁게 했던 곡들이다. 그만큼 단순히 양악과 우리음악의 단편적인 구분을 뛰어넘는 유연한 접근을 요구하는 곡들이기도 하다.

그래서일까? 이번 앨범에서 스톤 재즈는 피아노 트리오에 해금, 피리, 첼로가 어우러졌던 기존 편성에 트럼펫과 아쟁을 추가했다. 그리고 양악기와 국악기가 긴장 속에서 조화를 유지하도록 밴드적 특성을 더욱 강화했다. 실제 베이스, 기타와 가야금이 호흡을 맞춰 스윙하며 피리와 트럼펫이 유니즌을 형성하고, 해금과 아쟁이 첼로와 하나가 되는 연주는 색다름을 넘어 그 자체로 짜릿한 감흥을 준다. 그리고 이러한 악기의 어울림이 만들어 낸 음악은 지도상에 표시된 한국의 국경선을 넘어 더 폭넓은 지역을 포용하는 가상의 민속적 공간(Imaginary Folklore)을 상상하게 한다. 이것은 국악을 서양 음악적인 틀에서 감상할 때, 재즈와 팝 음악을 한국적인 틀에서 감상할 때와는 분명히 다른 경험이다.

한편 이러한 색다른 사운드는 편성의 묘미 이전에 리더 이원수의 정교한 편곡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개인적으로 나는 이원수를 한국 재즈 계에서 타인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고 자신을 솔직하게 표현하는 연주자, 국악, 재즈, 월드 뮤직을 가로지르는 취향만큼이나 자유로운 상상력의 소유자라 생각한다. 이번 앨범에서도 그의 자유로운 상상력은 가볍게 취급되고 있는 우리 대중 가요를 음악적으로 진지하게 바라보게 한다. 특히 재즈의 명곡 ‘Take Five’에서 영감을 얻은 듯한 4분의 5박자의 ‘무시로’나 라틴 리듬을 만나 원곡과 다른 흥겨움을 획득한 ‘두만강 보사’, 피아노의 현대적 긴장감 속에 첼로와 해금이 어우러져 정서적 상승을 거듭하는 ‘미련’, 그리고 멜로디를 해체하고 여기에 한국적 서정을 불어넣은 피아노 솔로곡 ‘돌아와요 부산항에’로 이어지는 두 번째 CD의 후반 네 곡은 장르와 공간에 구애받지 않는 이원수의 자유로운 상상력의 구체적인 예가 될 만 하다.

앞서 나는 세계 각 지역의 연주자들이 독자적인 방식으로 그들만의 재즈를 만들면서 재즈가 미국을 고향으로 하면서도 거주지는 세계인 음악이 되었다고 했다. 하지만 연주자들의 노력이 독자적인 재즈를 만드는 것에서 멈추었다면 재즈는 세계화가 아니라 지역화의 길, 국수주의(國粹主義)의 길을 걸었을 것이다. 그래서 20세기 이후의 민속음악의 하나 정도가 되었을 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재즈 연주자들은 지역적인 특성을 반영하는 것을 넘어 이것을 다시 세계 모든 사람들이 감상할 수 있는 음악으로 발전시켰다. 나는 스톤 재즈의 음악이 그렇다고 생각한다. 스톤 재즈의 음악은 한국에서만 만들어질 수 있는 음악인 동시에 재즈를 매개로 세계인들이 공감할 수 있는 음악이다. 지역화와 세계화가 함께 어우러진 음악 즉, 글로벌(Global) 음악이 아닌 글로컬(Glocal) 음악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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