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교 6학년 때인가 중학교 1학년 때인가 보았던 영화다. 사실은 동시 상영관에서 후반부만 보았던 것 같다. 이 영화는 1970년대 뉴욕에서 캘리포니아까지 가는 크로스 컨트리 자동차 경주를 소재로 하고 있다. 그 경주의 이름은 ‘Cannonball Baker Sea-To-Shining-Sea Memorial Trophy Dash’. 보통 ‘Cannonball Baker’로 불리곤 했다고 한다. 시나리오를 쓴 브록 예이츠는 이 경주에 직접 참가한 경험이 있다고 한다. 그것이 영화로 만들어진 것이다.
영화는 여러 개성을 가진 경주자들이 목적지까지 가면서 좌충우돌 겪는 상황을 보여주는 코미디 형식을 취하고 있다. 그런데 출연자들이 무척 흥미롭다. 버트 레이놀즈가 주연 J.J역을 맞고 있으며 그의 곁에 70년대 섹스 심볼이었던 파라 포세트가 ‘이쁜이’로 나온다. 그리고 당시 007이었던 로저 무어가 로저 무어가 되고 싶은 세이모 골드 파브로 나온다. 여기에 랫 팩 멤버인 딘 마틴과 새미 데이비스 주니어가 콤비로 나오고 최첨단 컴퓨터 장비를 갖춘 자동차를 운전하는 일본인 레이서로 성룡-하지만 그는 중국어로 말한다-이 나온다. 그리고 단역으로 자니 윤도 나오고 피터 폰다가 카메오로도 나온다. 게다가 홍콩의 골든 하베스트 제작이다. 잘은 모르지만 당시 골든 하베스트는 성룡을 국제적으로 키우러 노력했고 그것이 이 영화로 이어진 것 같다.
영화는 개봉 당시에는 적지 않은 인기를 얻었다고 한다. (국내는 잘 모르겠다.) 그러나 지금 보니 그렇게 웃기진 않는다. 그냥 영어로 보아서 일지도….경주 자체를 조금 더 많이 보여줬으면 좋았을 텐데 각각의 참가자들의 면모를 소개하는 장면이 좀 많다. 그리고 경주자간의 충돌을 더 넣었어도 좋을 것 같다. 그런 중에도 J.J와 이쁜이의 대화, 캡틴 Chaos를 꿈꾸는 빅터의 연기. 그리고 로저 무어가 장면이 바뀔 때마다 다른 여자를 옆에 태우고 007역의 자신을 패러디 하는 연기-심지어 배경음악으로 007의 테마가 계속 사용되었다-가 재미있었다.
한편 영화적 재미는 지금으로선 덜하더라도 영화 자체는 70년대 후반의 정서를 담뿍 담고 있어 좋았다. 여기엔 음악이 한 몫 한다. 펑키함과 백인적 취향이 어우러진 듯한 사운드가 곳곳을 장식하는데 그것이 내겐 향수로 다가온다. 특히 70년대 허브 앨퍼트가 이끌었던 A&M 레이블의 사운드를 연상시키는 혼 연주가 나오길래 찾아보니 예상대로 A&M 레이블 소속이었던 척 맨지온이 테마를 연주했더라. 그 외에 루 롤즈가 사운드트랙에 참여했다.
내가 이 영화를 다시 보게 된 것은 위에서 말한 랫 팩(Rat Pack)때문이었다. 이 ‘쥐떼’는 프랑크 시나트라, 딘 마틴, 새미 데이비스 주니어, 조이 비숍 등으로 이루어진 배우 그룹을 말한다. 지금으로 치면 F4 정도? 이들은 험프리 보가트 이후 무리로 영화에 출연하면서 인기를 얻었는데 이 캐논볼이 랫 팩을 만날 수 있는 거의 마지막 영화였다. 그런데 기왕이면 새미 데이비스 주니어와 딘 마틴이 사운드트랙에서 노래를 같이 했으면 좋았겠는데 그렇지는 않았다.
그냥 맘 없이 보기엔 괜찮은 영화다. 시대에 대한 향수가 좀 있다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