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EBS 한국 영화 특선> 시간에 본 영화. 특이한 내용일 것 같아서 일주일 전부터 기대했던 영화다. 실제 영화는 1960년대 우리 나라에도 이런 영화가 가능했다는 것이 신기하다 싶을 정도로 특별했다. 게다가 제작에 그치지 않고 개봉도 되었단다. 또한 외설죄로 감독이 벌금을 받은 최초의 영화라 한다. 하긴 당시로서 여배우의 후면 누드가 몇 초간 나오는 것이 거북했을 수도 있겠다. 그러나 영화가 외설죄를 받게 된 것은 전체에 흐르는 성적인 코드가 한몫 했으리라 본다.
영화의 줄거리는 간단하다. 치과에 치료를 받으러 온 주인공(신성일)이 묘한 성적 매력을 풍기는 한 여인(박수정) 옆에서 치료를 받다가 마취로 잠시 잠에 들었는데 그 꿈에서 영화 속 현실의 의사(박임)가 수염 난 변태 신사가 되어 여인을 성적으로 학대하고 여인을 주인공이 탈출시키려고 하지만 늘 실패하다가 꿈에서 깬다는 내용이다. 그러니까 정말 개꿈-춘몽 이야기인 것이다.
이 단순한 내용을 감독은 표현주의적인 방식의 몽타주를 통해 상당히 긴장감 있게 이어나간다. 특히 마취에 바지기 전 치과의 사물들에 대해 각 환자들이 보는 은유, 환유된 이미지들은 그들의 심리를 그대로 드러낸다. 예를 들어 이를 가는 그라인더는 톱니 날을 세우는 공업용 그라인더로 한 중년 노인에게 보여지고 실내를 밝히는 전구 세 개는 수선화 세 송이로 여인에게 보여지는 식이다. 관객 스스로 적극적 상상을 해야 이해되는 이러한 이미지의 나열은 영화를 낯설게 한다. 그리고 꿈속의 세트 또한 신비롭다. 나는 처음에 예산 문제로 인해 실제 도시에서 찍고 사막에서 찍어야 할 것을 세트 처리했다는 생각을 했는데 그것이 아니었다. 건물들이 모두 비스듬하고 순간 사막과 황야로 바뀌는 세트의 이미지들은 그 자체로 불안을 유발한다. 특히 마네킹과 미로 같은 구조로 이루어진 실내 공간은 독일 출신의 로버트 비네 감독의 1920년도 영화 <칼리가리 박사의 밀실>에서 모티브를 얻은 것이라 하는데 이 영화를 보지 못해 뭐라 하기는 그렇지만 스칠 이미지를 보면 확실히 그런 것 같기도 하다.
영화는 대사가 거의 없다. 그리고 모든 것이 움직임을 통해 이루어진다. 그래서 내용을 직접 상상해야 하는데 아마도 대부분 신사가 여인을 성적으로 고문하고 학대하는 이유에 대해 의문을 품으리라 생각된다. 내가 보기에 꿈속에서 신사는 주인공의 또 다른 자아 같다. 즉, 꿈에서 주인공은 현실에서 여성을 훔쳐보면서 생긴 성적인 욕망을 억제하려 하지만 그렇지 못하고 마는 것이다. 그래서 여인의 탈출은 성공하지 못하고 비극으로 끝나는 것이다. 또한 여인이 고문, 성적 학대를 거부하면서도 때로는 사도마조히즘적인 관계를 즐겨 쾌감의 모습을 보이는 것도 본능의 이면을 감독이 표현하려 했음을 생각하게 한다. 이것은 영화 홍보 문구로 나오는 ‘당신의 마음 속에도 이런 욕구가 도사리고 있다’, 나 ‘점잖은 인간의 가면아래 잠자듯 꿈틀거리는 애욕에의 이 집착을 정면으로 보시라’ 같은 문장을 보면 더 쉽게 이해된다. 주인공이 영화 속 현실에서 의사가 갑자기 혼절한 여인의 옷을 벗기고-숨을 편히 하기 위해-가슴을 누르는 것을 보다가 꿈에 빠졌다는 것도 이를 생각하게 한다. 주인공은 의사를 질투한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자신의 내적 욕망이었고.
이 영화에서 여주인공 박수정은 이후의 작품이 거의 없다. 유현목 감독의 다른 영화 <순교자>에 나왔다고 하는데 남성 중심의 영화임을 생각하면 그 영화에서 그녀의 비중은 크지 않았던 것으로 기억된다. 아무튼 육체를 그대로 드러내는 그녀의 연기는 당시로서는 과감한 용기가 아니었다면 힘들었을 것 같다.
한편 이 영화의 음악도 주목할만하다. 크레딧에는 김용환이 담당했다고 나오는데 그는 작곡보다 수퍼바이저 역할에 충실하지 않았나 싶다. 다양한 편성과 스타일의 음악이 흐르는데 당시 한국 영화 특유의 스트링 섹션 중심의 밋밋한 연주음악과는 다른 서구적인 모습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 가운데 비브라폰이 이끄는 연주는 바비 허처슨의 진보적인 긴장을 상상하게 했으며 빅 밴드를 만난 지미 스미스의 하드 밥 스타일의 오르간 연주를 상상하게 하는 음악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