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은 사람들은 이 영화를 와인에 대한 흥미 때문에 본다. 하지만 나는 이 영화를 재즈 때문에 보았다.
영화는 아무런 이룬 것도 없다는 무력감 속에서 중년으로 넘어가는 주인공이 결혼을 앞둔 친구와 1주일간의 여행을 떠나 그 와중에 새로운 사람을 만나는 과정을 무척이나 평범하게 그리고 있다. 그런데 그 이야기가 무척이나 재미있다. 담담해서 좋다고나 할까? 물론 그 이야기의 한 가운데 와인이 자리잡고 있는 것도 재미의 큰 부분이다. 이성 앞에서 와인에 대해 아는 척을 하고픈 사람이라면 영화의 대사를 줄줄이 외우려 할 지도 모른다. 그러나 내가 보기에 와인의 매력은 와인을 통해 맛을 공감하며 서로를 이해하게 되는 사람이 있어야 그 맛이 더 좋아지지 않나 싶다. 주인공이 친구와 달리 쉽사리 원나잇 스탠드에 빠지지 않는 것도 와인처럼 숙성된 인간관계를 바라기 때문이라고 생각된다. 물론 숙성은 그냥 둔다고 해서 되는 것은 아니다. 공기와 온도 등에 세심한 배려를 해야 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포도 자체가 좋아야 함을 잊지 말자!)
한편 영화는 와인이 소재인 만큼 캘리포니아 산타 바바라의 산타 이네즈 밸리의 포도밭을 자주 보여주는데 그것이 감상자에게는 비현실적인 휴양 공간의 느낌으로 다가오는 것 같다. 바쁘고 복잡한 사건이 없는 평화로운 시골의 느낌! 그래서인지 낮 장면은 물론이고 밤 장면마저도 기분 좋은 훈풍의 느낌이 있어 영화를 보는 내내 마음이 편안했다. 그러면서 프랑스 브르고뉴 지방의 본에 가서 와인을 시음할 때나 샹베리 지방 근처 포도 밭을 걸어갈 때를 추억했다.
한편 와인만큼이나 재즈도 영화의 매력을 높이는 역할을 한다. 영화 속 현실에서는 다양한 음악이 등장한다. 그런데 빌 에반스나 클래식 연주도 있지만 주로 백인 취향의 음악이 주를 이룬다. 그러나 영화를 영화이게 만드는 배경 음악은 전적으로 재즈다. 롤프 켄트가 만든 재즈는 영화의 일상적인 분위기와 너무나도 훌륭하게 어울린다. 그리고 와인이 일상을 특별하게 하는 것처럼 재즈 또한 일상을 특별하게 함을 생각하게 해준다. 재즈와 와인의 관계를 나는 그냥 피상적인-마케팅을 위한 것이라고 생각했었는데 이 영화에서 와인과 재즈의 어울림을 경험하면서 그 관계가 나름 경제적이거나 인위적인 차원을 넘는 것임을 생각하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