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금 팔을 가진 사나이>에 이어 오토 프레밍거 감독의 영화를 한 편 더 보았다. 역시 솔 바스의 인상적인 타이틀-포스터 또한-로 시작하는 영화는 재즈를 사운드트랙으로 하고 있다. 듀크 엘링턴이 사운드트랙을 담당했는데 사실 이 영화에서 재즈는 그리 중요한 역할을 하지 않는다. 비록 주인공인 변호사 폴 비글러(제임스 스튜어트)가 재즈를 좋아해서 뉴 올리언즈부터 스윙에 이르는 재즈 앨범을 보유하고 종종 피아노 연주를 즐기는 것으로 나오지만 이 외에는 음악이 끼어들 자리가 많지 않다. 법정 영화이기 때문이다.
영화는 한 살인 사건을 두고 피고측과 검사 측이 대립하는 것을 내용으로 하고 있다. 물론 주인공이 변호사이므로 재판은 피고의 승리로 끝난다. (이걸 스포일러라고 할 수 있나?) 로버트 와이즈 감독의 <I Want To Live>에서도 확인할 수 있었지만 법정 영화에서 보여주는 재판의 모습은 진실의 규명에 있지 않다. 피고측과 검사 간의 승리 여부만 있을 뿐이다. 화려한 수사로 배심원들을 설득하는 것이 목적일 뿐 실제 그것이 진실인지는 그리 중요하지 않은 것 같다. 실제 이 영화는 재판에서 일어나는 다양한 심리전을 가감 없이 보여준다. 그리고 그 전에 재판에서 배심원을 설득하기 위해서는 피고가 어떤 자세를 취해야 하는지에 대한 논의를 보여주기도 한다. 그렇기에 영화는 주인공 폴 비글러를 정의에 불타는 사도로 표현하지 않는다. 일이 없다가 이번 사건으로 사무실 운영비를 해결하기를 꿈꾸는 능숙한 직업인으로 묘사될 뿐이다. 이것은 오늘의 법정 모습이기도 하니 오래 전부터 재판의 부조리는 있었던 모양이다. 그런데 나는 영화를 보면서 과거 배심원들은 유죄나 무죄만 판결할 수 있었나 하는 의문이 들었다. 무죄가 아니라 사형을 감형해 징역 몇 년으로 내릴 수 있지 않았을까? 지금은 그런 것 같지만 당시 배심원 제도의 운영 방식이 궁금해졌다.
한편 재즈에 관한 당시의 의식을 확인하는 장면이 하나 있다. 팜므 파탈적인 이미지를 지닌 피고인의 아내 로라 매니언(리 렘릭)이 폴 비글러의 사무실에 먼저 와서 변호사가 소장한 재즈 앨범을 듣는다. 그리고 늦게 도착한 변호사에게 뭐 이런 음악을 듣느냐는 식으로 이야기를 한다. 즉, 당시 재즈는 보통의 변호사가 듣는 음악은 아니었던 셈이다. 그런 대사에 맞추어 음악을 만든 듀크 엘링턴은 어떤 기분이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