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원한 청춘을 꿈꾸었던 재즈계의 제임스 딘
쳇 베이커 하면 제일 먼저 ‘My Funny Valentine’이 떠오른다. 이 곡은 리차드 로저스, 로렌즈 하트 콤비가 1937년 뮤지컬 <Babes In Arms>를 위해 만든 것으로 이후 수많은 재즈 보컬과 연주자들이 노래하고 연주하는 스탠더드 재즈 곡이 되었다. 그러니까 이 곡이 쳇 베이커만의 곡이었다고 말할 수는 없다. 그럼에도 쳇 베이커 하면 이 곡이 떠오르고 다른 사람의 연주나 노래를 들을 때도 자꾸 쳇 베이커와 비교하게 된다. 이것은 그만큼 쳇 베이커가 이 곡을 많이 노래하고 연주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어떤 녹음이건 간에 그의 ‘My Funny Valentine’은 실연의 우울을 생각하게 한다. (따라서 제목만 보고 발렌타인 데이에 쳇 베이커의 ‘My Funny Valentine’을 배경 음악으로 정한다면 분위기가 싸해질 수 있다.) 특히 <The Last Great Concert>를 비롯한 그의 후기 앨범에 수록된 버전은 혼자만의 사랑에 지치고 힘든 한 남자의 고독을 떠올리게 한다.
그러나 이런 그의 고독한 이미지는 오히려 늘 곁에 그를 흠모하고 도와주고 싶어하는 여성이 따르게 만들었다. 그가 세상을 떠나기 1년 전인 1987년에 촬영된 다큐멘터리 영화 <Let’s Get Lost>만 해도 그의 첫 아내인 캐롤 베이커를 비롯하여 후에 쳇 베이커와 유사한 스타일의 노래를 부르게 되는 루스 영, 오랜 시간 그의 뒷바라지를 했던 다이안 바브라 등이 나온다. 그런데 쳇 베이커는 이 여성들이 쳇 베이커를 사랑한 만큼 그녀들을 사랑하지 않았다. 결혼? 물론 캐롤 베이커와는 결혼을 하고 세 명의 자녀를 두긴 했다. 그러나 그는 평생 집으로 돈을 보낸 적이 없었고 아이들의 성장에도 그리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그리고 다른 여성들의 경우 그녀들의 헌신적인 사랑과 지원에도 불구하고 그는 그녀들의 마음을 아프게만 했다. 즉, ‘My Funny Valentine’과는 정 반대의 애정관계를 유지했던 것이다. 그런데 흔히 제임스 딘과 비교되곤 하는 잘 생긴 외모 때문이었을까? 그의 나쁜 남자적인 모습은 그대로 보여지지 않았다. 대중들 특히 여성들은 그의 이런 모습을 시대에 살짝 무관심하고 자신만의 감상적 삶을 추구하는 ‘쿨’한 것으로 보았다. 그래서 다소 부족한 성량으로 부르는 그의 노래와 위태롭게 떨리곤 하는 불안한 트럼펫 연주에서 모성본능을 느끼곤 했다.
그렇다면 그의 삶에서 중요한 것은 무엇이었을까? 음악? 이 글을 읽는 당신의 기대를 배반하는 것 같아 미안하지만 내가 보기에 음악도 그에겐 중요하지 않았다. 중요했다면 그것은 그에게 돈을 가져다 준다는 것일 뿐. 그렇다고 또 돈 자체를 추구하지도 않았다. 그에게 제일 중요한 것은 바로 마약이었다. 대부분 그의 삶을 다룬 간략한 전기를 보면 마약에 중독된 삶을 살았다는 설명이 나온다. 그것도 삶의 고독감을 이기지 못하고 어쩔 수 없이 마약의 세계에 빠진 것처럼 미화되곤 한다. 하지만 그와 마약과의 관계는 단순히 한 줄로 설명될 수 없으며 그렇게 미화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바리톤 색소폰 연주자 제리 멀리건과 피아노 없는 쿼텟을 만들어 본격적인 인기를 얻기 전부터 그는 마약을 알았다. 그리고 평생을 그 속에서 살았다. 그러므로 대중들이 환호했던 현실에 냉소적인 듯한 모습은 사실 마약 속의 세계에만 머물고 싶었던 욕구의 역설적 표현이었는지도 모른다. 아무튼 그가 마약에 얼마나 미쳤었는가 하면 마약으로 인해 이탈리아에서 1년간 감옥생활을 해야 했으며 통일 되기 전의 서독에서는 추방을 당하기도 했다. 물론 중독에서 벗어나려는 노력을 하기도 했다. 그러나 그럴 때마다 다른 약에 중독되곤 했다. 그리고 그 중독의 정도도 심해 급하게 주유소 화장실에서 마약을 주사하다가 피를 흘리며 쓰러지기도 했다. 게다가 마약을 얻기 위해 길 위에서의 구걸 연주는 물론 도둑질을 하기도 했다. 그러니까 마약을 위해서라면 그는 자존심도 기꺼이 버릴 수 있었다. 그가 영화 <Let’s Get Lost>의 제작에 응했던 것도 마약을 위한 돈을 얻기 위해서였다.
이렇게 인간적인 삶만을 두고 본다면 그는 사랑이 아닌 지탄의 대상이 되어야 마땅했다. 그런데 바로 여기서 모순이 등장한다. 음악만을 두고 본다면 그는 고귀한 천사가 되어버리는 것이다. 사랑의 실패는 물론 소외감, 고독감 등 현실의 모든 쓰라린 감정을 다 이해하고 있다는 듯 그는 노래와 트럼펫 연주로 감상자를 위로하는 것이다. 글쎄. 그것이 마약의 효과라고 나는 생각하지 않는다. 그는 마약으로 피폐해진 상황에서 다시 마약을 하기 위해 되는대로 앨범 녹음을 하기도 했다. 그래서 평범 이하의 수준을 보이는 앨범들도 무수히 많다. 하지만 그럴 수 밖에 없는 하늘이 내린 상황이 있었던 듯 더할 나위 없이 아름다운 연주를 담은 앨범이 가끔씩 나오곤 했다. 그런 앨범이 모든 것을 따뜻하게 감싸는 듯한 위로의 정서를 준다는 것이니 꼭 마약이 그의 음악을 이끌었다고 볼 수는 없을 것 같다.
직업 연주자의 길로 들어서기 전에는 여러 시행착오 속에서 자신을 단련시켰지만 전문 연주자가 되고 마약에 빠진 이후 그는 그렇게 연습에 충실한 편이 아니었다. 또한 냉철하게 판단하면 그의 노래나 트럼펫 연주는 다른 대가들에 비해 아쉬운 점이 많다. 그 시대의 남성 보컬들처럼 크루너의 매력이 있는 것도 아니고 트럼펫 또한 특유의 시원한 활력을 느끼기가 힘들다. 그러나 섬세한 감성과 이것을 음악으로 옮기는 능력만큼은 매우 뛰어나다. 나는 이것이 그의 퇴폐적이고 피폐한 삶을 뒤로하고 지금까지 그의 음악이 사랑 받을 수 있었던 이유라고 생각한다.
한편 중 장년층에게도 매력으로 다가가는 부분이 물론 있기는 하지만 쳇 베이커의 음악 대부분은 청춘에게 향한다. 1950년대 초반의 음악은 원래 그 또한 청춘 시대였으니 같은 세대에 대한 공감이 강하게 드러나며 후기 음악은 어느덧 아련해진 청춘에 대한 그리움, 아쉬움과 함께 그래도 나는 청춘을 이해한다는 위로의 정서가 강하게 느껴진다. 실제 <Let’s Get Lost>에서의 쳇 베이커는 주름진 얼굴에도 불구하고 늘 젊은 세대와 어울리고 그들과 이야기를 나눈다. 어쩌면 평생 그는 자신의 20대를 살았는지도 모른다. 피터팬 증후군에 빠져 살았다고 할까? 그렇기에 제임스 딘처럼 이른 나이에 세상을 떠나지 않고 1988년까지 59년의 삶을 살 수 있었던 것인지도 모른다. 마약중독 역시 사라지는 청춘을 지속하고자 했던 부질없는 욕망의 결과일 지도 모르겠다.
‘My Funny Valentine’외에 쳇 베이커 하면 떠오르는 곡이 내겐 하나 더 있다. 그것은 트롬본 연주보다 작, 편곡자로 더 알려진 돈 세베스키가 라흐마니노프의 교향곡 2번 3악장을 차용하여 만들어 쳇 베이커에게 준 ‘You Can’t Go Home Again’이다. 이 곡의 제목처럼 그는 미국을 떠나 유럽 곳곳을 돌아다니는 유랑 생활을 했다. 그리고 결국 1988년 5월 13일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의 한 호텔에서 실족사했다.
Sings (Pacific Jazz 1956)
쳇 베이커에게 최고의 인기를 가져다 준 앨범. 이 앨범에서 그는 처음으로 전곡을 노래했는데 이것은 어떻게 하면 인기를 얻을 수 있을까를 고민한 끝에 스스로 내린 결정이었다고 한다. 그 선택만큼 앨범을 녹음하면서 그는 여러 차례 다시 노래하는 것을 주저하지 않았다. 그 결과 전통적인 보컬과는 다르지만 젊은 감수성을 자극하는 앨범이 만들어졌다. 이 때만큼은 그에게도 내일의 꿈과 희망이 있었다. 그의 풋풋함을 맛볼 수 있는 앨범.
You Can’t Go Home Again (A&M 1977)
미국과 유럽을 오가는 방랑자적인 활동을 하고 있을 무렵 녹음된 앨범. 사실 음악적으로만 본다면 이 앨범보다 1979년 덴마크 코펜하겐의 몽마르트 재즈 클럽 공연 실황 3부작을 선택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돈 세베스키가 그에게 준 앨범의 타이틀 곡이 이런 선택을 바꾸게 한다. 건조한 톤으로 쓸쓸하게 멜로디를 연주해 나가는 쳇 베이커의 연주를 듣노라면 이미 그가 이 곡 제목과도 같은 삶을 살게 되리라는 것을 운명적으로 예상하고 받아들였지 않았나 생각하게 된다.
The Last Great Concert (Enja 1988)
쳇 베이커가 세상을 떠나기 2주 전에 독일 하노버에서 가졌던 공연을 담고 있는 앨범이다. 이 앨범은 그의 마지막 콘서트 앨범이라는 점에서, 그래서 그의 비극적 삶의 끝을 생각하게 한다는 점에서도 의미가 있지만 음악적 내용 자체도 상당히 훌륭하다. 본능적으로 재즈사에 마지막 발자취를 남기려는 듯 그의 트럼펫 연주자 노래는 연주적인 측면과 감성적인 측면 모두에서 감상자를 감동으로 이끈다. 그것은 정말 장렬한 마지막 불꽃과도 같은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