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 전에 이 영화를 볼 기회가 몇 차례 있었다. 그런데 예고편 같은 것을 보면 법정 장면이 많이 나와서 머리 복잡한 법정 드라마가 아닐까 싶어 보기를 주저했었다. 후에 자니 멘델이 영화 음악을 담당했다는 사실을 알고 영화를 궁금해 했다.
이 영화는 내용이 좋으면 시대를 초월해 감상자를 매혹시킬 수 있음을 증명한다. 영화를 보는 내내 나는 마음을 졸이며 그 안에 빠져들었던 것이다. 이 영화의 주된 내용은 실화에 바탕하고 있다. 퓰리처 상을 탄 에드 몽고메리 기자가 취재한 한 여인의 사형에 관한 기사에 바탕을 두고 있는데 아마도 그 기사가 큰 반향을 얻었던 모양이다. 그래서 영화는 여주인공(수잔 헤이워드)의 이름 바바라 그레이엄부터 기자의 이름 에드 몽고메리까지 실제의 이름을 그대로 가져다 사용했다. 그런데 당시 영화를 보는 관객들은 감독에게 그래도 혹시 영화니까 주인공을 살려주겠지? 하는 기대를 했을 것 같다. 하지만 감독은 그 기대를 저버리고 사실대로 주인공을 죽게 놔둔다. 오히려 가스실 사형장면을 너무나도 사실적으로 보여준다. 그리고 실제 그랬는지 모르지만 전화 한 통으로 사형시간이 오락가락하는 상황으로 주인공은 물론 감상자의 애간장을 타게 한다. 그 결과 영화를 보고 나면 현실의 냉혹함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한다. 만약 이영화가 다시 만들어진다면 어땠을까? 주인공이 사형을 당하더라도 조작을 담당한 형사, 무고한 사람을 죄인으로 몰아놓은 실제 범인들의 심리와 처벌 같은 것이 부각되지 않았을까? 그런데 그리 된다면 정말 영화니까~하는 생각을 하게 될 것 같다.
실제 영화에서 부각되는 것은 여론을 이끄는 언론의 무책임함-얼마 전 알게 된 방성자 사건에 대한 한국 언론의 태도가 생각났다-, 형사들의 짜맞추기 식 함정 수사에 대한 비판이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죄 있는 자는 끝까지 죄 있는 자가 되는 사회 분위기도 은연중에 비판적으로 묘사된다.
이 영화는 수잔 헤이워드를 위한 영화가 아닐까 싶다. 정말 그녀의 연기는 대단하다. 사형을 앞둔 여인의 불안과 자존감을 너무나도 사실적으로 표현했다. 두고두고 기억할만한 연기다.
이 영화는 재즈를 사운드트랙으로 하고 있다. 이미 사운드 트랙은 앨범으로 들어서 알고 있지만 실제 영화를 보니 뛰어남을 더 잘 알 수 있었다. 자니 멘델의 곡들은 재즈 특유의 긴장감으로 곳곳에서 적절한 효과를 연출한다. 그러나 무엇보다 흥미로웠던 것은 사운드트랙을 연주한 제리 멀리건, 아트 파머 등의 밴드 멤버들이 영화의 도입부가 되는 클럽 장면에 그대로 출연하여 연주를 한다는 것이다. 그 장면이 무척 이채롭다. 그리고 그 치하 클럽의 선율이 이후 몇 분간 지상의 여러 사건들의 배경음악으로 이어지는 처리는 상당히 인상적이었다.
재즈는 영화 속에서도 빛을 발한다. 주인공이 재즈를 무척 좋아하는 것으로 나오면서-실제 바바라 그레이엄이 재즈를 좋아했나?- 영화속 현실 곳곳에서 등장한다. 특히 감옥에서 간수가 듣고 있는 곡을 두고 ‘셜리 맨거 맞지?’ 라고 물어본다거나 제리 멀리건의 연주를 언급하는 것은 재즈를 좋아하는 사람으로서는 무척이나 신기한 일이었다. 어쩌면 당시로서는 당연한 것이었을 지도 모른다. 쿨 재즈와 하드 밥이 스윙 시대만큼의 인기를 얻지는 못했어도 아직 대중 음악의 중심 근처에 머물고 있었으니 말이다. 그러나 재즈가 변방으로 밀려난 지금에는 이런 장면들이 꿈처럼 느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