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의 중견 배우 쟝 피에르 바크리와 (당시) 젊은 배우 에밀리에 데껜느가 주연한 영화.
프랑스식 로맨스, 멜로 영화란 이런 것일까 하는 생각을 하게 만드는 영화였다. 영화는 아내 혹은 오랜 시간 함께 한 동거인이 아무런 말도 없이 떠나가 외로운 중년 남성 자끄와 20대 초반의 여성 로라의 잠깐의 인연을 그리고 있다. 확실히 프랑스는 이런 나이차 많은 관계가 그리 특별하지 않은 것 같다. 내가 프랑스에 살 때도 이런 관계가 내 앞에서 벌어지기도 했다. 그러나 나이 차이는 경험, 취향의 차이에서 장애로 나타남을 이 영화는 보여준다. 그것은 집 주인과 갈 곳 잃은 젊은 가정부라는 관계부터, 두 사람의 음악적 취향, 그리고 그 음악을 듣는 방법, 해변에서의 태도 등으로 나타난다. 그리고 사랑의 관계 또한 갈 곳이 없는 로라가 자끄에게 먼저 적극 애정 공세를 펼치지만 자끄는 끝난 인연에 마음을 끊지 못하고 있다거나 반대로 후에 로라가 쉽게 다른 인연을 찾아 떠나고 자끄는 마음을 다잡지 못한다거나 하는 것에서 세대의 차이를 느끼게 해준다.
이 영화에는 음악을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흥미로운 몇 장면을 보여준다. 먼저 가정부를 정말 구해야겠다 싶을 정도로 어지러운 자끄의 집 거실, 소파에서 잠을 자고 있는 자끄의 등 뒤 TV에서 미셀 페트루치아니의 피아노 연주 장면이 나온다. 이를 통해 자연스레 자끄가 재즈를 좋아함을 드러낸다. 실제 그 이후 자끄가 파리의 유명 재즈 클럽 뒥 데 롱바르드에 가서 트리오 HUM의 공연을 보는 장면이 나온다. 르네 위트레제, 피에르 미슐로, 다니엘 위매르가 직접 공연하는 잠깐의 장면은 정말 내게는 진귀하게 다가왔다. 이 때 트리오가 연주한 곡은 ‘Theme Pour Un Ami’. 트리오의 1979년도 앨범에 원래 수록되었던 것으로 후에 스케치 레이블에서 발매한 3장짜리 합본 반 <Trio HUM>에 수록되어 있는 곡이다. 이 앨범이 2002년에 발매되었으니 이 뒥 데 롱바르드 공연은 그 앨범을 중심으로 활발한 활동을 펼칠 때의 모습이다.
한편 자끄의 영화 속 직업은 음악 엔지니어다. 한 때 내가 일해보고 싶었던 파리 19구에 위치한 Studio Plus XXX에서 일하는 것으로 나온다. 그런데 그가 주력하는 장르는 클래식과 재즈인 듯 녹음 장면은 물론 그가 듣는 음악도 모두 재즈가 나온다. 미셀 페트루치아니, Trio HUM, 스티브 그로스만 등의 음악이 클래식과 함께 그가 즐기는 음악, 반면에 로라가 즐기는 음악은 프랑스 대중 음악이다. K Special같은 랩퍼의 음악부터 여러 팝 스타일의 프랑스 대중 음악이 등장한다. 그러다 보니 타이틀 음악을 제외하고는 음악이 영화 속 분위기를 조성하기 위한 목적으로 사용되는 일이 없다. 설령 이를 위한 것이라 해도 철저히 자끄나 로라가 영화 속 현실에서 듣는 음악으로 나온다. 일상의 배경 음악으로 그들의 영화 같은 일상을 꾸미는 것이다. 그것이 흥미롭다.
사실 영화 자체는 재미가 있기는 하지만 아주 인상적이라 할 수 없다. 쟝 피에르 바크리의 연기가 돋보이기는 하지만 평범한 프랑스 멜로 영화의 하나를 벗어나지 않는다. 그러나 음악, 그 음악 때문에 한 번 정도 보면 좋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