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소와 트뤼포 감독의 데뷔작이다. 이 영화의 제목은 우리 말로 ‘400번의 구타’로 옮길 수 있다. 이 제목이 의미하는 것은 아이들은 약 400번은 맞아야 철이 든다라는 것이다. 실제 프랑스의 부모들은 아이들을 생각 외로 잘 때린다. 내가 프랑스에 살 때만 해도 길에서 아이를 호되게 때리는 부모를 심심치 않게 봤다. 그래도 지금은 일반적이라 할 수는 없을 것 같지만….
아무튼 이 영화는 학교에서나 집에서나 문제아인 앙뜨완 드와넬이 결국은 소년 감화원까지 가게 되는 이야기다. 하지만 그렇다고 나는 이 영화를 일종의 성장 영화로 보지 않는다. 많은 사람들은 이 영화를 성장 영화로 구분하는데 그것은 감독의 다른 영화 대문이 아닐까 싶다. 그러니까 앙뜨완 드와넬을 주인공으로 감독이 이후 네 편의 영화를 더 만들었던 것이다. 그것도 앙뜨완 드와넬의 성장에 따라. 게다가 주연 배우는 이번 영화에서 주연을 한 장 피에르 레오가 모두 맡았다. 즉, 그의 성장에 맞추어 시나리오가 나왔던 것이다. 그래서 이후 영화는 앙뜨완 드와넬이 사랑을 하고 일을 찾고 결혼을 하게 된다. 그러므로 이 첫 영화는 나름 성장 영화로 비추어질 수 있다.
그러나 이 영화만을 두고 본다면 이 영화는 일어버린 유년의 막막함, 절망에 대한 이야기다. 나는 감화원을 도망쳐 오랜 시간 달려 바닷가에 도착한 앙뜨완 드와넬이 절망적인 눈빛으로 스크린의 정면-관객을 바라보는 마지막 장면을 보면 가슴이 먹먹해진다. 보통의 시작으로 보면 확실히 앙뜨완 드와넬은 문제아다. 그러나 그는 따뜻한 사랑과 관심, 이해를 받지 못해 그리 되었다. 이 부분을 생각할 때마다 나는 소파 방정환 선생이 ‘어린이 날’을 만든 것이 참으로 위대한 일이었다고 생각된다.
방 하나짜리 아파트에 살면서 부엌에 간이 침대를 두고 자기 전에 쓰레기를 버려야 하는 앙뜨완 드와넬의 삶을 지금의 관점에서 보면 학대까지는 아니더라도 아동의 인권을 무시하는 것으로 보인다. 아무튼 그렇게 학교와 집에서 소외 되었기에 앙뜨완 드와넬의 삶은 아이와 어른의 중간에서 부유한다. 담배를 피고-이것은 어찌 보면 당시 프랑스 사회의 일반적인 풍경이었던 것 같기도 하다-가출하고 남의 물건을 훔치는 행동들의 아이의 비행으로 볼 수 있으면서도 어른의 세계에 일찍 편입하려는 애처로운 몸부림처럼 읽힌다.
영화를 보는 내내 나는 내 아이를 생각했다. 내 아이가 저 위치였다면…하는 생각을 하는 순간 슬퍼졌다. 어쩌면 이 영화는 아이가 아니라 어른에게 아이를 키우려면 저리 키우지 말라는 메시지를 전달하기 위해 제작된 것인 지도 모른다. 실제 영화의 상당 부분은 프랑소와 트뤼포의 자전적인 이야기라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