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감독 미켈란젤로 안토니오니의 이름을 나지막하게 소리 내어 말할 때마다 나는 감독이 젊은 시절 자신의 이름을 부담스러워하지 않았을까 생각이 들곤 한다. 결과론적인 느낌 때문일 수도 있지만 ‘미켈란젤로 안토니오니’ 하면 이름부터 거장의 냄새가 풍기지 않은가? 이런 이름이라면 조연출을 하지 않고 바로 감독을 해서 성공했을 거란 느낌이 든다.
이 영화를 보게 된 것은 음악을 허비 행콕이 담당했기 때문이다. 이 영화는 참 묘하다. 스릴러 풍의 모습을 하고 있으면서도 스릴러가 아니다. 게다가 속 시원한 결말을 보여주지도 않는다. 그것이 감독의 의도이기도 하다. 영화는 마음에 드는 사진을 찍기 위해서라면 노숙자 차림으로 수용소에 잠입하여 사진을 찍을 정도로 직업정신에는 투철하지만 살짝 오만한 기질이 있는 사진작가 토마스(데이빗 헤밍스)가 우연히 공원에서 제인(바네사 레드그레이브)의 불륜 데이트 장면을 몰래 촬영하면서 생긴 일을 다루고 있다. 이 사건들은 아침부터 다음 날 아침 사이에 일어나는데 처음에는 사진을 계기로 한 치정관계를 다룰 줄 알았는데 묘하게 사진 속에서 희미하게 무엇이 발견되면서 영화는 흥미로운 스릴러로 변한다. 그러나 답을 주지 않는다. 오히려 사진사가 찍었던 것, 분명 사실로 보이는 것이 현실의 의미 망에 포착되지 못하고 그냥 허구의 사건, 단순한 상상이었던 것처럼 취급 받게 하면서 끝이 난다. 마지막에 차 한 대에 몰려 타고 우르르 다니며 이상한 마임을 즐기는 젊은이들이 테니스 경기를 하는 듯한 마임을 하는 장면이 등장하는 것, 그 속에 토마스가 합류하는 것이 이를 잘 말한다. (이 젊은 집단은 영화 시작에도 나와 토마스에게 헌금을 요구했다.) 그래서 영화는 진실과 허구에 관한 생각을 하게 한다. 그 대상이 사진사라는 것이 그래서 더 의미심장하게 다가온다.
이 영화는 국내에 ‘욕망’이라는 영화와 전혀 상관 없는 이름으로 소개되었다. 왜 그랬는지 모르겠다. (심오하게 몇 단계 더 들어가면 연결될 지도 모르겠다.) 그냥 ‘Blow Up’이나 ‘(사진의)확대’로 소개되었다면 하는 생각이다. 아무튼 영화에서는 흥미로운 장면이 몇 나온다. 포스터에 보이는 저 장면. 사실 이 장면은 영화의 내용에 아주 중요한 장면은 아니다. 토마스가 패션 사진을 찍는 모습 중 하나이다. 글세 저런 포즈를 통해 모델의 안에 감추어진 면을 확대한다는 의미일까? 아무튼 그런 것이 아니더라도 모델의 사진을 찍는 모습은 상당히 관능적이다. 깔끔하게 정돈된 스튜디오에서 모델에게 이런저런 자세를 요구하며 사진을 찍는데 숨이 막힐 정도였다. 다음으로 영화에는 그렇게 중요하지 않은 단역으로 제인 버킨이 등장한다. 이 영화가 그녀의 첫 출연작이라지 아마? 아무튼 프랑스에서 세르쥬 갱스부르와 세기의 스타로 부상되기 바로 직전에 찍은 영화인 것 같다. 영화에서 그녀만 누드를 보여주는데 70년대 섹시 스타의 기질을 이 때부터 보여준 듯.
한편 허비 행콕의 음악은 영화의 흐름 자체에 대한 암시보다 토마스가 즐기는 음악의 하나로 나온다. 그는 LP로 재즈를 즐기는데 그것이 영화를 위해 허비 행콕이 만든 음악이었다. 그 외에 허비 행콕의 음악은 스튜디오에서의 관능적인 패션 사진 촬영을 위한 배경 음악 등 실제 영화 속 현실의 하나로 등장한다. 하지만 영화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은 전설의 록 그룹 ‘야드버즈’가 등장한다는 것이다. 주인공이 제인을 찾아 나서면서 들어간 공연장에서 야드버즈의 공연이 펼쳐지고 있었는데 이 공연에서 제프 벡이 기타를 치다가 앰프가 이상하자 기타를 부순다. 그런데 놀랍게도 그 옆에 지미 페이지가 기타가 아닌 베이스를 연주한다. 당시 지미 페이지는 공석이 된 베이스를 대신하기 위해 언제든지 탈퇴해도 좋다는 조건으로 잠시 기용되었다고 하는데 탈퇴 대신 후에 제프 벡과 트윈 기타 연주를 하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