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Big Sleep – Howard Hawks (Warner Bros 1946)

찰리 헤이든에 관한 에세이를 쓰기 위해 오랜만에 영화를 다시 보았다. 찰리 헤이든이 10대시절 이 영화를 인상 깊게 보았고 이후 Quartet West의 음악에 이 시대 할리우드 영화의 정서를 불어넣었기 때문이다.

영화는 유명한 추리 소설 작가 레이몬드 챈들러의 첫 장편을 옮긴 것으로 험프리 보가트가 그 유명한 필립 말로우 탐정으로 나온다. (그래서 국내엔 ‘명탐정 필립’으로 소개되었다. 그냥 ‘깊은 잠’으로 소개하기엔 영화의 성격이 잘 드러나지 않았기 때문일까?) 영화 속 필립 말로우는 하드보일드 문학이 요구하는 전형을 그대로 잘 반영하고 있다. 자기 일에 냉철하리만큼 충실하며 약간은 냉소적이면서도 유머도 있는, 그리고 이런 점들이 성적 매력이 되어 여인들의 가슴을 뛰게 하는 성격을 지닌 인물로 나온다. 그렇기에 로렌 바콜이 연기한 비비안 루트리지가 다소 개연성 없이 그를 사랑하게 되는 것조차 이해하게 만든다.

전반적으로 영화는 탐정의 뛰어난 추리나 사건의 비밀을 풀어나가는 긴장을 보여주지 않는다. 그보다는 지금의 액션 영화식의 진행을 보인다. 즉, 생각이 전에 행동이 먼저고 그러다 보니 여러 사람과 부딪히고 그러는 중에 하나씩 앞의 장벽을 해결해 나가는 과정이 내용의 주를 이룬다는 것이다. 그래서인지 영화는 시간의 흐름에 따라 많다 싶을 정도의 인물이 등장하고 그때마다 그들이 필립 말로우의 상대역이다 싶을 정도로 비중이 커진다. (이것이 하드보일드 문학의 특징 아니던가?) 그래서 모든 사람들이 죽고 체포되어도 시원한 느낌을 받기 힘들다. 악의 근원이 분산되었기 때문이다. 그래도 영화가 지금까지 재미있는 것은 영화 속 인물들 상당수가 무조건 선, 무조건 악이 아니라 적절한 자기 이유로 생동감 있게 움직이기 때문이다.

한편 소설을 영화로 만들면서 소설에서는 가능했던 장면들이 영화에서는 성적, 윤리적 이유로 가볍게 또는 우회적으로 처리된 것은 전체 흐름의 한계로 명확히 작용한다. 예를 들어 사건을 의뢰한 스텐우드 장군의 둘째 딸-마사 비커스라는 배우가 연기했는데 언비보다 훨씬 매력적이다-이 소설에서는 포르노 사진을 찍고 사건에 보다 깊숙하게 개입된 것으로 나오는데 영화에서는 비중이 작게 나온다. 단순 문제아 정도? 그러면서 포르노 관련 이야기가 제대로 이야기되지 않으면서 사건이 다소 이해가 가지 않는 상황이 발생하기도 한다. (이를 보완해서 1978년 로버트 미첨이 필립 말로우로 나온 리 메이크판이 만들어졌지만 성공하진 못했다.)

PS: 영화에는 총 싸움 외에 치고 받는 액션 장면이 약간 나온다. 그런데 그것이 참 지금 보기엔 어설프다. 주먹으로 배를 몇 번 치고 대사는 무서울 정도로 때렸다는 식으로 나온다. 아예 가벼운 한 방에 기절하는 경우도 있다. 그러고 보면 우리 한국 영화만 그랬던 것은 아니었다. 어설픈 싸움 장면을 보며 저런!하며 웃었는데 사실 당시에는 그 정도만으로 박진감 넘치고 충분한 긴장을 느끼게 했던 것이다. 건달의 낭만이란 그 정도의 싸움에서 나왔던 것은 아닐까? 죽임 이전에 승패를 나누고 승복하는 것에 만족하는 싸움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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