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녀 – 김기영 감독 (김기영 프로덕션 1960)

지난 주에 예고된 대로 김기영 감독의 <하녀>가 EBS를 통해 방영되었다. 상당히 피곤한 몸을 이끌고 영화를 보았다. 이 영화는 어느덧 하나의 전설이 되었다. 그래서 보기 전에 이미 주워들은 미사(美辭)들이 너무 많아 영화를 영화로 보기 어려울 수도 있다. (대부분의 고전들이 이러한 면이 있다.) 그러나 이 영화는 미사의 거품을 제거하고 또 제거한다고 해도 분명 뛰어난 영화로 평가 받을만 하다. 일단 분명한 영화문법부터 매력적이다. 지금 보면 다소 연극적이다 싶을 수 있는 폐쇄적인 2층 양옥식 세트가 주는 심리적인 효과, 쥐, 쥐약, 번개, 피아노, 재봉틀 등 모든 소품들에 담긴 섬세한 상징적 의미, 카메라의 이동 등이 영화의 서사에 가장 최적인 모습을 보인다. 특히 음악은 정말 대단했다. 사실 나는 우리 고전 영화를 보면서 음악에 제일 불만을 느끼곤 했다. 촬영과 더빙으로 서사의 대부분이 해결되면 제작비용과 일정 등으로 이후의 작업에는 그리 큰 관심을 쓰지 않았다고 생각될 정도로 오래된 영화의 음악들은 주로 울렁이는 스트링 앙상블의 음악이 존재감을 최소로 한 채 자리잡곤 했다. 그러나 이 영화에서는 피아노가 중요한 역할을 하는 만큼, 표현주의적인 배경음악과 극중의 실제 음악이 상당한 심리적 효과를 만들어 낸다.

이 영화를 두고 많은 사람들은 당시 중산층 가정의 불안을 이야기하곤 한다. 나 역시 이에 동조한다. 그러나 영화 속 가정은 그렇게 잘 사는 집안이 아니었다. 피아노 강사인 남편의 수입은 생각보다 많지 않았으며 안정적이지 못했다. (지금도 그런데 60년대 예술 쪽 직업이 얼마나 돈을 벌 수 있었을까?) 그래서 아내가 재봉틀로 일을 해서 생활비를 충당한다. 2층 양옥집 또한 두 사람이 함께 모은 돈으로 지은 것이고 아직 그로 인한 경제적 부담을 벗어나지 못했다. 그러니까 영화 속 가정은 온전한 중산층이 아니라 이제 막 떠오른 신을 중산층이라 할 수 있겠다. 그래서 나는 그 중산층이란 것이 당시 실재하는 중산층이 아니라 사람들이 희망으로 그렸던 중산층이 아닐까 생각한다. 부부가 노력하면 이룰 수 있으리라 믿었던. 이것은 60년대 자본주의 한국이 꿈꾸었던 것으로 확대 해석할 수도 있을 것 같다. 반면 하녀는 원래 여공이었다. 그런 그녀가 말 그대로 하녀로 중산층 가정에 들어온다. 그러나 그녀는 자신의 욕망에 충실한 인물이고 오래된 윤리규범에서 비교적 자유로운 생각을 지닌 인물이다. 이것을 두고 당시 막 부상하고 있었던 노동자의 힘, 여성의 목소리 상승으로 바라볼 수도 있을 것 같다. 그렇기에 남자 주인이 결국 그녀에게 아무런 저항도 할 수 없는 무능력자가 되었던 것이 아닐까?

뭐 다 좋다. 이러한 해석들은 이미 수 차례 영화 전문가들이 해왔던 것이다. 그런데 나는 여기에 한가지 덧붙이고 싶다. 어쩌면 이미 덧붙여진 것일 지도 모른다. 이 영화는 그 내용의 기괴함, 당시 사회 통념으로 받아들이기 어려울 정도의 모습을 완화하기 위해서였던 듯 모든 것이 남자의 상상이었다는 식으로 마지막에 남주인공이 관객을 향해 바람을 피우면 안 된다는 교훈적인 이야기를 하며 끝이 난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은 이러한 결말을 당시의 상황에 맞춘 의도적인 결말로 김기영 감독이 보여주고 싶었던 실제 내용은 그 추가적인 분위기의 장면을 빼놓고 생각하는 것 같다. 그러나 나는 이 마지막 장면을 보면서 어쩌면 김기영 감독이 실제 영화 마지막의 ‘바람피지 마라’류의 생각을 했던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 그랬기에 그 패가망신의 경우를 과도하고 극단적으로 상상하면서 그토록 그로테스크한 장면들이 만들어지지 않았겠느냐는 것이다. 실제 영화 속 불행은 바람을 피운 남자 혼자가 아니라 가정 자체의 몰락으로 이어지지 않던가?

그것이 아니라면 적어도 나는 김기영 감독이 자본주의 사회가 발전할 수록 전통적인 남성의 가부장적인 위치가 위협받는 현실을 인식하고 그에 대해 불안을 느꼈던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그런 위기를 표현하기 위해 지금 보아도 너무 했다 싶을 정도로 남자 주인공을 무기력하게 놓았던 것은 아닐까? 그 무기력함의 절정은 하녀와 남자주인공인 동반 자살을 선택해놓고도 하녀가 그의 다리에 붙어서 떨어지지 않으려 매달려 있는 장면이었다. 그렇게 계단을 내려오는 남성의 모습은 정말 공포 그 자체였다. 한편 어쩌면 여성의 사회참여를 인정해도 영화 속 안주인 정도로 남자를 보조하는 정도로 한정하는 것이 좋다고 생각했을지 모르겠다. 나아가 그것조차 안주인을 재봉틀 일을 하느라 가정 일을 제대로 하지 못하는 사람으로 그려 그런 가정이 결국 망하게 된다는 식으로 이야기를 이끌어간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배우들의 연기는 어색한 부분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대부분 훌륭했다. 물론 하녀 역을 열연한 이은심의 연기는 정말 인상적이었다. 김진규의 무기력한 모습도 생각 이상으로 괜찮았다. 많은 비중은 아니지만 사건의 폭발을 유도했던 엄앵란의 반전 같은 역할도 좋았다. (사실 그녀의 사랑 고백에 왜 하녀가 덩달아 반응했는지는 아직도 이해되지 않는다. 플롯의 맹점이 아니었나 싶기도 하다.)

영화의 모든 장면 하나하나가 상당히 섬세한 연출력에 의해 깊은 인상을 남기지만 그 가운데 나는 피아노가 있는 거실 창을 사이에 두고 창 밖에서 하녀가 바라보고 안에는 피아노 교습의 다정한 풍경이 연출되는 장면, 실내에서 비에 젖은 하녀가 창 밖에 있는 모습을 발견하는 장면은 오래 기억에 남을 것 같다. 밖에서 보면 중산층의 안정이 보이고 안에서 보면 하녀라는 침입자가 보이는……

다음 주 EBS 영화는 <충녀>라고 한다. 그것도 봐야겠다. 그나저나 <하녀>를 다시 더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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