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녀(蟲女) – 김기영 (한립물산 1972)

지난 주에 이어 이번 주 EBS 한국 영화 특선에서 김기영 감독의 영화를 방영했다. <충녀>. 처음에는 <하녀>와 연관을 지어 ‘충성심 강한 여자, 순종적인 여자 忠女’ 정도로 예상하고 있었는데 그것이 아니라 ‘벌레 같은 여자’였다. 당시 신문에 실린 영화 광고를 보라. 하지만 그렇다고 카프카의 <변신>같은 이야기는 아니다.ㅎㅎ

영화는 <하녀>와 마찬가지로 누군가에게 이야기를 듣는 듯한 구성, 앞과 뒤에 영화의 주된 서사를 실제 발생하기는 매우 어려운 일, 정신병자들의 세계처럼 만들어 버리는 액자식 구성을 취하고 있다. 그 안에 담긴 내용은 어머니가 첩인, 그래서 일렉트라 컴플렉스가 강한 한 여자-윤여정-가 경제적인 이유로 술집에 나가자마자 50대의 남자-남궁원-을 만나 그의 첩으로 들어가 본처-전계현-과 갈등하게 되면서 겪는 심리적인 문제와 치정극으로 이루어져 있다. 이러한 이야기를 풀어가면서 감독은 <하녀>와 마찬가지로 쥐를 등장시키고 피아노를 등장시킨다. 여기서 쥐는 일종의 번식의 상징으로 나오고 있으며 피아노는 <하녀> 때보다는 중요도가 덜하지만 안정적인 중산층의 상징물로 나온다. 그리고 주인공의 딸이 피아노로 연주하는 곡은 늘 ‘로망스’이다. 한편 첩과 본처는 여러 부분에서 대립적인 면을 보인다. 남자를 12시간씩 공유하면서 생기는 시간의 대립부터 가진 자와 그렇지 못하고 경제적으로 종속된 자, 남편 위에 군림하는 자, 남자의 사랑을 끊임 없이 요구하며 남자 아래 위치하는 자. 50대의 중년과 19세의 청춘. 이러한 대립이 그대로 극의 갈등으로 이어지는데 여기서 감독은 본격적으로 그로테스크한 상상력을 밀고 나가 섬찟한 아기와 쥐를 등장시켜 공포영화적 분위기를 극대화한다. (참고로 이 영화는 제 5회 시체스 국제 판타지 영화에서 남우주연상을 받았다.)

한편 영화 곳곳에서 감독은 대놓고 영화를 다양하게 이해하는 실마리가 될 법한 대사들을 마구 집어 넣는다. 초반의 학교에서 청춘에 대해 이야기하고 이 때 나온 청춘의 정의가 후반에 죽음을 앞에 둔 윤여정의 대사로 다시 나오는 것부터 남자 주인공의 아들이 채식, 육식을 거부하고 꿀만 먹는다거나, 두 마리의 흰쥐가 갈수록 새끼를 낳는 것, 주인공이 아내 앞에서는 성불구라는 것, 처녀에 대한 남자들의 성적 로망, 동식물과 인간의 성적 능력에 대한 생물학적인 대화들 등이 그렇다.

한편 여러 해석이 가능하겠지만 나는 이 영화에서도 김기영 감독이 상당히 보수적인 생각으로 영화를 만들지 않았나 생각한다. 적어도 겉으로는 말이다. 그것은 남자를 두고 첩과 본처가 다툼을 벌이는 상황부터가 그렇다. 또한 운수업 사장으로 남자의 모든 건강을 측정하고 심지어 첩에게서 아이를 갖지 못하도록 강제로 불임 수술을 남편에게 시키는 본처 앞에서 남자 주인공이 성불구 증상을 보이지만 순종적이고 의존적인 첩에게는 성적으로 혈기 왕성한 모습을 보이는 것도 사라지는 남성적 권위에 대한 불안에 기인한 것으로 보인다. 게다가 <하녀>에서처럼 주인공 남자는 두 여자 사이에서 자기 목소리를 제대로 내지도 못한다. 한편 <하녀>에서처럼 <충녀>에서도 두 여자 사이의 싸움에서 뚜렷한 승자가 발생하지 않는다. 얼핏 모든 미스테리의 진실이 밝혀져 첩의 무고함이 밝혀지는 것 같지만 그녀가 남자를 따라 자살을 함으로써 그러한 결과도 아무것도 아닌 것이 되어버린다. 이 경우 오히려 본처의 승리-비록 경찰에 잡혀가긴 하겠지만-로 보이는데 그런 경우 남성성의 위기, 순수한 사랑의 종말 등의 메시지는 더욱 강렬해 진다. 그래서 영화 앞 뒤에 배치된 정신병동 장면들이 주는 남자는 여자 잘 만나야 하고 만나면 바람 피면 안 된다는 이야기가 단순한 검열 회피용이 아니었다는 생각을 하게 한다. (정말 그게 아니었다면 앞 뒤의 액자는 다양한 감상을 방해하는 꼴이 된다.) 그래도 영화가 여러 면에서 시대를 앞서가는 상상력을 담고 있었음은 부인할 수 없겠다.

한편 <충녀>에서도 영화 음악이 인상적이었다. 특히 도시적인 분위기를 강화하기 위해 스티비 원더의 ‘My Cherie Amor’의 빅밴드 재즈 버전이 흐르는 것, 알 수 없는 한국 여성의 보컬 곡이 흐르는 것이 인상적이었다. 그러나 <하녀>만큼 서사를 이끄는 역할을 하지는 못했다. 또한 영화는 70년대 초반의 서울 모습을 조금이나마 엿보게 해준다. 그런 점은 나만의 만족을 불러 일으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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