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말 밤, EBS에서 보았던 영화. 어릴 적에도 보았고 프랑스에서도 한 두 번 보았던 영화인데 맘 잡고 보기는 이번이 처음인 듯. 국내에는 <석양의 무법자>라는 뜬금 없는 제목으로 소개되었다. 그런데 영화에서 멋진 석양이 배경으로 등장하는 일이 없다.
모처럼 영화를 다시 보면서 나는 이 영화가 단순한 서부 영화가 아님을 깨달았다. 영화는 곳곳에서 미국에 대한 비판적인 메시지를 보내고 있었다. 그러니까 미국의 서부 시대가 등을 맞대고 몇 발자국 걸은 후 뒤돌아 먼저 총을 뽑는 식으로 결투를 하지 않았다는 것을 드러내는 한편 (남북) 전쟁의 허상을 드러낸 것이다. 그리고 대포로 전쟁을 하는 장면은 총잡이들의 시대는 이미 흘러간 과거임을 생각하게 했다. <Once Upon In The West>를 볼 때도 그런 메시지를 읽을 수 있었는데 이것은 세르지오 레오네가 이탈리아인 감독이었기 때문에 가능했다고 본다. 즉, 그의 스파게티 웨스턴은 미국산 서부 영화의 아류가 아니라 미국에 대한 새로운 시선을 담고 있는 영화였던 것이다.
한편 알려졌다시피 이 영화는 우리 영화 <놈놈놈>이 기준으로 삼은 영화이기도 하다. 이미 제목부터 그렇지 않은가? 그리고 20만 달러가 묻힌 묘지를 찾아 세 남자가 우여곡절의 여정을 거쳐 삼인이 결투를 하는 서사의 큰 얼개도 <놈놈놈>에 변주되어 나타난다. 그것을 확인하는 것도 나름 재미가 있다.
그리고 비정의 서부 시대를 그린다지만 곳곳에 영화에나 가능한 마초적인 낭만이 엿보이기도 한다. 그 가운데 좋은 놈 블론디(클린트 이스트우드)와 나쁜 놈 엔젤 아이스(리 반 클리프)가 같이 묘지를 찾아 떠나 첫 밤을 야외에서 보낸 후 나쁜 놈의 부하들이 몰래 따라왔음을 깨달은 좋은 놈. 사람이 좀 많다는 나쁜 놈의 이야기에 좋은 놈이 하는 대답이 그렇다.
‘여섯 명까지는 괜찮아. 내 총엔 6발의 총알이 들어가거든.’
이런 허황된 낭만 때문에 서부영화를 보는 것은 아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