빌리 할리데이 (Billie Holiday 1915. 4. 7 ~ 1959. 7. 17)

삶이 만들어 낸 비극적 목소리

임권택 감독의 1993년에 만든 영화 <서편제>에는 예술을 위해 삶을 희생시키는 사람들이 등장한다. 특히 창을 할 때 기교를 넘어선 ‘한(恨)’의 정서를 얻기 위해 잘 보이는 눈을 멀게 하는 장면은 예술의 완성이 얼마나 어려운 것인지 알려주는 것이었다. 게다가 눈이 먼 여주인공 송화의 가슴 속 한(恨)이 깊어져 사람들의 심금(心琴)을 울릴수록 그녀의 삶이 더욱 피폐해지는 내용은 예술과 삶이 같이 갈 수 없음-같이 좋은 쪽으로 나아갈 수 없음-을 생각하게 했다.

그래서일까? 돌아가신 나의 외할머니는 여자는 목소리가 고와야 한다고 말씀하시곤 했다. 목소리가 굵고 탁하면 박복하고 고된 삶을 살 확률이 많다는 것이다. 그런 말씀을 할머니는‘술집 여자처럼’이란 말로 마무리하시곤 했다. 할머니가 그런 생각을 하신 것은 할머니 세대의 술집 여성들이 제대로이건 흉내이건 간에 판소리 창법으로 노래를 했기 때문이 아니었나 싶다. 그래서 허스키한 목소리의 여성들은 술집에서 일할 수 밖에 없을 정도로 고된 삶을 산다는 결론을 내리게 되었던 것 같다. 물론 지금의 상황은 다르다. 허스키한 목소리는 하나의 개성이자 매력이 되었다. 특히 재즈에서 많은 보컬들은 허스키까지는 아니더라도 스모키한 목소리를 갖고 싶어한다. 또한 허스키한 목소리로 노래한다고 해서 힘든 삶을 살지도 않는다.

하지만 빌리 할리데이의 노래를 들을 때마다 나는 할머니의 말씀이 틀리지 않았구나 하는 생각을 하곤 한다. 왜냐하면 그녀의 음악은 삶을 희생한 끝에 나온 것이었기 때문이다. 그녀와 같은 시간을 살아간 많은 흑인 재즈인들이 힘들고 고된 삶을 살았지만 그 가운데서도 그녀의 삶은 더욱 비참했다. 그리고 비참해질수록 그녀의 목소리는 더욱 갈라졌고 노래는 슬퍼졌다. 또한 그럴수록 사람들은 그녀의 노래에 감동했다. 이 무슨 새디즘적인 취향이던가?

정말 그녀의 삶은 <서편제>의 여주인공 송화만큼이나 불행했다. 1915년 4월 7일 10대의 부모 사이에서 태어난 그녀는 10살의 나이에 백인 남성에게 성폭행을 당했지만 시대를 지배하고 있던 인종차별로 인해 오히려 감화원에 수감되어야 했으며 2년의 수감 생활 끝에 출소한 후 다시 성폭행을 당해야 했다. 그리고 가난한 삶에 이끌려 14세의 어린 나이에 뉴욕 할렘의 거리에서 몸을 팔아야 했다. 또 이로 인해 다시 한번 감옥에 가야 했다. 운 좋게 가수가 되면서 거리 생활을 청산할 수 있었지만 평생 인종 차별을 감내해야 했다. 그 차별은 이런 것이었다. 그녀는 백인 밴드와 공연을 해야 할 때는 흑인의 얼굴을 가리기 위해 분홍색 물감을 칠해야 했으며 흑인 밴드와 공연을 할 때는 흑인에 비해 피부가 희다는 이유로 검은 물감을 칠해야 했다. 또한 환호성 속에 무대에서 내려오면 백인 밴드 멤버들과 식사를 같이 할 수 없었으며 혼자서 흑인을 받아주는 호텔을 찾아 밤거리를 누벼야 했다. 심지어 무대에 오를 때조차도 클럽의 뒷문을 이용해야 했다. 사랑? 그 또한 비극적이었다. 그녀의 첫 남편 제임스 먼로는 바람둥이에 아편중독자였으며 두 번째 남편 존 레비는 그녀의 모든 수입을 갈취했다. 세 번째 남편 루이스 맥케이 또한 다를 바 없었다. 이렇게 불행한 삶을 잊기 위해 그녀는 마약을 복용했다. 이로 인해 다시 그녀는 감옥에 가야 했으며 이후 마약 복용자란 이유로 뉴욕의 클럽 공연 허가를 받지 못했다. 그렇게 삶이 힘들어질수록 마약에 대한 의존도는 더욱 높아졌고 그 결과 1959년 7월 17일 44세의 이른 나이에 인종차별로 인해 제대로 치료를 받지 못한 채 삶을 마감해야 했다.

살펴본 대로 그녀는 성숙이 아니라 파멸을 향해가는 삶을 살았다. 하지만 그럴수록 그녀의 노래는 더욱 깊은 맛을 냈다. 특히 짙은 허스키 목소리가 그랬다. 빌리 할리데이 하면 제일 먼저 떠오르는 허스키한 목소리는 무분별한 마약 복용, 음주로 인해 만들어졌다. 그러니까 그녀의 비극적 삶이 만들어낸 목소리라 하겠다. 실제 초기 그녀의 목소리는 후기처럼 거칠거나 탁하지 않았다. 게다가 말년의 어두움과는 다른 밝음이 있었다. 비극적인 자신의 현실을 감추려 그랬는지 모르지만 일종의 희망을 느낄 수 있었다. 지금 내가 이리 힘들게 살지만 언젠가는 행복해지리라는 희망. 그 희망만큼 인종차별의 환경 속에서도 그녀는 자존감을 지키려 노력했다. 그녀의 별명‘숙녀 Lady Day’는 그런 과정에서 만들어진 것이었다. 또한 무대에서 노래하는 것 자체가 그녀에게는 자존을 지키는 행위였다. 무대에서 내려오는 순간 아무것도 아닌 ‘검둥이’취급을 받아야 했지만 무대에서만큼은 백인을 포함한 많은 사람들이 그녀의 노래에 감동했다. 그러므로 비극적인 삶 속에서 그녀의 유일한 행복은 노래하는 것이었다.

삶이 그랬던 것처럼 그녀는 빠르고 흥겨운 노래보다는 느리고 슬픈 발라드로 감상자를 사로잡았다. 그 가운데 ‘Strange Fruits’는 그녀를 대표하는 노래로 꼽힌다. 탈출하다가 주인에게 붙잡혀 죽임을 당한 후 나무에 매달려 이상한 과일처럼 흔들리는 흑인 노예의 시체를 이야기하는 이 노래를 그녀는 마치 자신의 이야기인 듯 눈물을 흘려가며 불렀다. 사람들은 그녀가 이 곡을 노래할 때마다 숨을 죽이고 경청하곤 했다. 하지만 그녀는 사람들이 노래에 담긴 메시지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다며 불평하곤 했다.

그녀의 노래는 ‘Lover Man’을 거쳐 ‘I’m A Fool To Want You’에 이르는 동안 갈수록 어둡고 우울해졌다. 그와 함께 그녀의 노래에는 삶을 극복하려는 의지 대신 삶에 대한 체념의 정서가 자리잡게 되었다. 이제는 어쩔 수 없다는 느낌, 그냥 받아들이고 감내하는 것 외에는 방법이 없다는 느낌. 특히 세상을 떠나기 1년 전에 녹음된 앨범<Lady In Satin>은 의지와는 다른 삶을 살았던 그녀의 한(恨)을 다양한 실연의 노래를 통해 표현하고 있다.

사실 빌리 할리데이가 엘라 핏제랄드, 사라 본과 함께 재즈사를 빛낸 3대 디바로 추앙 받는 것은 삶을 그대로 노래에 투영한 듯한 깊은 정서 때문만은 아니다. 다른 보컬들처럼 그녀 또한 기교적인 측면에서 많은 업적을 남겼다. 하지만 그녀의 삶과 슬픈 노래들은 그러한 음악적인 평가를 불가능하게 만든다. 이성적인 판단을 내리기 전에 분위기로 감상자를 사로잡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를 우울에서 헤어나오지 못하게 하는 것이다. 이런 이유로 나는 빌리 할리데이의 노래를 즐겨 듣지 않는다. 들을 때마다 감동하게 되지만 그만큼 우울에 빠지는 것이 싫다. 그리고 비록 그녀와 동시대를 살지 않았지만 그녀의 체념 가득한 노래를 들을 때마다 그녀의 슬픔을 공감하고 도와주지 못했다는 미안한 마음도 든다. 그렇기에 그녀의 노래를 낭만적인 배경음악처럼 생각하는 사람들을 보면 대단한 것 같다. 하긴 그녀의 시대에도‘Strange Fruits’을 그저 분위기 좋은 발라드로만 생각했던 사람들이 있었으니 뭐라고 할 일만은 아니다. 반면 우울할 때 그녀의 노래는 상처받은 마음의 틈 사이로 부드럽게 들어와 좋은 위안을 준다. 나 같은 사람도 있으니 힘을 내라고 하는 것 같다. 그렇기에 나는 그녀가 우리의 모든 슬픔을 짊어졌던 순교자였다고 생각한다. 그렇기에 지금까지 그녀의 노래가 사랑 받고 있는 것이 아닐까?

이 글을 쓰고 있는 오늘은 2010년 7월 17일. 대한민국의 헌법이 만들어진 날이다. 그러나 재즈사에서는 빌리 할리데이가 세상을 떠난 지 51주년이 되는 날이기도 하다. 의도한 것은 아닌데 이렇게 그녀를 생각하게 되었다. 가뜩이나 장마비가 내리는데 그녀의 노래를 모처럼 들어봐야겠다.

대표 앨범

Lady Sings The Blues (Verve 1956)

빌리 할리데이의 대표작들은 주로 후기에 몰려 있다. 그 가운데 이 앨범을 먼저 추천한다. 빌리 할리데이에게 블루스는 흑인 음악의 근간과도 같은 것이었다. 실제 그녀의 노래에는 블루스의 정서가 깊게 배어 있다. 이 앨범은 그녀의 블루스를 확인하게 해준다. 게다가 2007년에 CD로 재발매 되면서 그녀의 대표곡이라 할 수 있는 ‘Strange Fruits’이 수록되어 더욱 들어볼 필요가 있다.

Songs for Distingué Lovers (Verve 1957)

말년에 빌리 할리데이의 목소리는 노래할 수 없을 정도로 쉬어 버렸다. 특히 이 앨범을 녹음할 무렵에는 목소리뿐만 아니라 몸 전체가 정상이 아니었다. 그러나 빌리 할리데이는 최악의 몸 상태를 그대로 앨범에 투영해 재즈의 고전을 노래했다. 그 결과 어두운 정서가 앨범을 지배하게 되었는데 이것은 일년 후에 녹음하게 될 그녀의 대표작 <Lady In Satin>을 예견하는 것이었다.

Lady In Satin (Columbia 1958)

빌리 할리데이의 앨범 가운데 제일 먼저 들어야 하는 명작이다. 우리에게 친숙한 ‘I’m A Fool To Want You’도 이 앨범에 담겨 있다. 레이 엘리스가 지휘하는 스트링 오케스트라가 함께 한 이 앨범은 원래 감미로운 사랑의 앨범으로 기획되었다. 그러나 불행한 삶에 찌들대로 찌들어버린 빌리 할리데이의 거친 목소리가 앨범을 실연의 분위기로 바꾸어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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