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Open-Ended Fantasy – Nina Vidal (Village Again 2010)

사람과 사람 사이에 궁합이 있는 것처럼 음악도 때와 장소에 따라 맞는 음악이 따로 있는 것 같다. 쉬운 예로 상가(喪家)에서 빠른 템포의 댄스 음악을 들을 수 없지 않던가? 이별에 괴로워하는 친구에게 사랑의 기쁨을 이야기하는 밝고 경쾌한 노래를 선물할 수도 없다. 그러면 아무리 그 음악이 좋아도 제대로 된 평가를 받을 수 없을 것이다. 이런 생각을 더 확장해 보면 누구는 이런 음악을 좋아하고 다른 누구는 그 음악을 싫어하는 것, 그러니까 사람마다 음악적 취향이 다른 것 또한 음악과 사람 사이에도 궁합이 있음을 생각하게 한다. 한국에서는 그리 특별하지 않은 반응을 얻었는데 중국이나 일본에서 그 이상의 인기를 얻는 가수가 있는 것이 좋은 예이다. 마찬가지로 영미, 유럽 등에서는 전혀 인기가 없는데 유난히 국내에서 인기를 얻는 가수, 노래, 앨범도 때, 장소, 사람과 음악 사이에 일종의 운명적인 연결이 정해져 있음을 말한다.

지금 우리가 듣고 있는 앨범의 주인공 니나 비달도 그런 경우에 해당한다. 이 싱어송라이터는 뉴욕에서 태어났다. 그리고 뉴욕 대학에서 음악을 전공하고 뉴욕을 중심으로 음악인으로서의 성공을 꿈꾸었다. 그래서 오픈 마이크 세션 중에서 제작자 카테(Caté)를 만나 EP 앨범 <Do It Again>을 녹음하기도 했다. 하지만 EP 앨범은 물론 그녀의 활동은 미국 내에서 그렇게 주목을 받지 못했다. 아무래도 자신을 선보일 수 있는 기회를 제대로 확보하지 못한 결과였다.

그녀의 음악적 진가를 빛난 곳은 뜻밖에도 일본이었다. 2004년 그녀의 노래를 들은 일본 빌리지 어게인 레이블의 제작자가 계약을 제안한 것이다. 그 결과 4년 후인 2008년 그녀는 자신의 이름을 내건 첫 앨범 <Nina Vidal>을 일본에서 발표할 수 있었다. 이 앨범은 발매 후 6일만에 일본 아이튠에서 가장 많이 다운로드 된 앨범이 되는 등 기대 이상의 반응을 얻었다. 그 결과 앨범 수록 곡 중 다섯 곡이 그 해의 가장 많이 다운로드 된 10곡 안에 포함되었으며 이를 기반으로 첫 앨범은 2008년 최고의 컨템포러리 재즈 앨범으로 기록되었다.

두 번째 앨범 <The Open-Ended Fantasy>도 이에 못지 않은 인기를 얻었다. 지난 2010년 발매되자마자 앨범은 곧바로 일본 컨템포러리 재즈 차트에 1위에 올랐다. 그리고 싱글 차트에서도 1위에 오른 ‘Cigarette & Wine’ 외에 네 곡이 10위안에 동시에 오르는 등 다시 한번 일본 감상자들의 사랑을 받았다.

이렇게 니나 비달의 음악이 일본에서 유난히 큰 인기를 얻은 것은 왜일까? 사실 음악적으로만 본다면 그녀의 음악은 그리 특별하지 않다. 모든 것이 잘 고려되고 안배된 사운드, R&B, 소울, 팝, 컨템포러리 재즈를 가로지르며 도시적인 분위기의 라운지 뮤직 스타일의 사운드를 지닌 앨범들은 많다. 하지만 같은 재료라도 그것이 어떤 비율로 함께 조리되는가에 따라 요리의 맛이 달라지듯이 니나 비달의 음악은 익숙하고 친근하면서도 미세한 부분에서 독자적인 차이와 개성을 드러낸다.

그것은 무엇보다 앨범의 색을 결정하는 그녀의 목소리에서 느낄 수 있다. 샤데이와 아니타 베이커의 부드러움에 리즈 라이트의 담백함을 결합하면 이처럼 부드러운 결이 있는 벨벳 풍의 목소리가 소리가 나올까? 실제 그녀의 페이스 북 자기 소개를 보면 좋아하는 사람들 가운데 이들 보컬들의 이름이 언급되어 있다. 게다가 진성과 가성의 중간 어디쯤에 위치한 듯한 톤으로 노래하는 창법은 신비를 넘어 이국적인 느낌마저 준다. 도시와는 거리가 있는 순수함을 간직한 꾸밈 없는 시골 소녀를 연상시킨다고 할까? 그래서 ‘Inside Outside’를 시작으로‘Cigarette & Wine’, ‘Games’등 비교적 리듬이 강하게 드러나는 곡에서도 그녀는 결코 과하게 기교를 부리지 않는다. 리듬의 굴곡을 매끄럽게 다듬기라도 하려는 양 특유의 차분함을 유지하며 담백하게 노래할 뿐이다. 또한 그녀는 자신의 보컬이 도드라지지 않고 사운드의 일부로 자리잡기 바라는 것 같다. 이를 위해서는 브라스 섹션이 온화한 빛을 내는 ‘Good Love’나 해변의 기분 좋은 한 때를 그리게 하는 ‘Little Bit’같은 곡을 들어보자. 분명 그녀의 차분한 보컬이 중심에 위치하지만 아닌 사운드가 주는 풍경-햇살 좋은 날이나 여유로운 해변 같은-이 먼저 연상될 것이다. 그리고 나아가 그 풍경에 나 자신을 위치시키며 작은 위안의 느낌을 얻게 될 것이다.

바로 이것이 니나 비달만의 매력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그녀의 차분한 노래가 있었기에 R&B, 팝, 컨템포러리 재즈가 어우러진 사운드가 도시의 풍경을 감각적으로 묘사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그 속을 살고 있는 개인의 낭만, 슬픔, 피로 등의 정서를 공감하고 감쌀 수 있었던 것이다. 이것은 스트링 쿼텟이 가세한 ‘Starry Night’나 다른 연주자의 도움 없이 니나 비달 혼자 피아노를 치며 노래한 ‘Believe Again’등 어쿠스틱 질감이 강조된 앨범 후반부의 곡들에서 보다 더 분명해진다. 이들 곡들은 분명 도시에 살면서 느낄 수 있는 외로움, 우울을 그리면서도 그 안에 버거운 삶을 견디게 해주는 낭만적이고 긍정적인 치유의 정서를 동시에 담고 있다. 여기엔 역시 그녀의 보컬이 절대적 역할을 담당한다.

한편 니나 비달이 보컬 능력만 있는 것은 아니다. 그녀는 작곡과 편곡, 그리고 밴드를 이끄는 면에 있어서도 상당한 능력을 지녔다. 특히 앨범 전반부의 도시적인 느낌의 사운드와 그녀의 순수한 보컬이 대조를 이루면서도 절묘하게 어울릴 수 있었던 것은 편곡의 힘이 컸다고 본다. (그녀의 음악적 지우가 된 카테의 조력도 있지 말자.) 보다 더 쉽게 이해하기 위해서는 폴 매카트니의 윙스 시절 히트 곡 ‘My Love’와 스팅의 ‘Fragile’의 리메이크를 들어보기 바란다. 원곡의 느낌을 유지하면서도 각 곡을 니나 비달식 순수함과 담백함으로 새롭게 꾸몄음을 쉽게 발견할 것이다. 이 외에 타이틀 곡 ‘The Open-Ended Fantasy’를 노래 없이 피아노 연주로만 채운 것에서는 그녀가 단순한 보컬이 아니라 사운드의 전반적인 부분을 관리하는 뮤지션임을 생각하게 해준다.

앨범이 비교적 리듬감이 있는 곡들로 시작되어 단순화되고 담백화된 곡들이 이어져 결국에는 그녀 혼자 피아노를 연주하며 노래한 곡으로 마무리 되는 것을 보면 이 모든 것이 치밀하게 기획되었다는 생각이 든다. 그러니까 타인의 시선을 의식하는 삶에서 자기 내면의 여유에 집중하는 삶으로 이끌기 위한 곡들의 배열이 아니었냐 하는 것이다. 실제 앨범의 전 곡을 순서를 따라 듣다 보면 반짝이는 도시의 화려한 네온사인이 꺼지는 대신 나의 내면을 비추는 촛불이 켜진 곳으로의 시공간적 이동을 상상하게 된다. 도시 속에서 나만의 공간, 나만의 시간 갖기. 니나 비달의 고향에서 멀리 떨어진 일본 감상자들이 그녀의 노래에 특별한 사랑과 관심을 보낸 것은 이 때문이 아닐까?

이것은 도시에 살고 있는 한국의 감상자들에게도 통할 것이라 생각한다. 우리 또한 도시에 살면서 알 수 없는 외로움, 그리움을 느끼며 보다 개인적이고 은밀한 공간을 그리곤 하니 말이다.

따라서 기왕이면 이 앨범은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순서대로 한번에 듣기를 권한다. ‘Cigarette & Wine’이나’Fragile’처럼 유난히 인상적인 곡을 따로 들어도 나쁠 것은 없다. 그리고 꼭 집중해서 감상하지 않고 그냥 배경에 자리잡고 조용히 흐르게 두어도 괜찮다. 하지만 한 두 곡에 집중하기 보다는 앨범 전체의 흐름에 더 관심을 두고 차분히 감상한다면 니나 비달이라는 낯선 싱어송라이터가 우리에게 보내는 친근하고 따듯한 메시지, 위로가 더 쉽게 들릴 것이다.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