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라 핏제랄드에 대한 존경에서 나아가 자신의 음악적 밑그림을 그리다
엘라 핏제랄드, 빌리 할리데이, 사라 본. 아마 재즈에 관한 시험이 있다면 재즈 보컬의 3대 디바를 쓰는 문제가 꼭 출제되지 않을까 싶을 정도로 이 세 명의 여성 보컬들은 재즈 역사를 이야기할 때 빼놓을 수 없다. 이들이 자주 언급되는 것은 우리에게 남긴 음악이 뛰어나기 때문이지만 다른 한편으로 지금까지 강한 존재감으로 많은 후배 보컬들에게 영향을 끼치는 스타일리스트였기 때문이다.
지난 2007년 엘라 핏제랄드의 탄생 90주년을 기념하여 버브 레이블에서 제작한 헌정 앨범 <We All Love Ella: Celebrating the First Lady of Song>가 좋은 예일 것이다. 나탈리 콜, 다이아나 크롤, 다이안 리브스 같은 이 시대를 대표하는 유명 재즈 보컬부터 샤카 칸, 퀸 라티파, 리즈 라이트, 린다 론스타트, 글래디스 나이트 등의 R&B, 소울 보컬 등이 참여하여 엘라 핏제랄드에 대한 경의를 표한 것이다. 이것은 그만큼 엘라 핏제랄드의 영향이 지금까지 지속되고 있음을 말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앨범을 감상한 사람들은 쟁쟁한 스타급 보컬들 가운데 마지막을 낯선 인물이 장식하고 있는 것에 의아해 했을 것이다. 게다가 그녀는 앳된 목소리로 젊은 시절의 엘라 핏제랄드를 완벽하게 재현하고 있었다. 그녀가 바로 니키 야노프스키였다.
캐나다 퀘벡 출신의 니키 야노프스키는 1994년 생이다. 그러니까 엘라 핏제랄드 헌정 앨범에서 노래한 2007년에는 13세에 지나지 않았다. 그럼에도 재즈 보컬의 기본을 잘 따르는 것을 넘어 젊은 엘라 핏제랄드를 연상시키는 노래를 할 수 있었다는 것이 놀랍다. 그녀는 다섯 살 무렵부터 노래를 즐겼다고 한다. 그러나 재즈 보컬의 세계에 빠지게 된 것은 12세 무렵이었다. 엘라 핏제랄드의 노래를 듣게 된 것이 계기가 되었다. 그런데 천부적인 재능이란 이런 것을 두고 말하는 것일까? 엘라 핏제랄드의 노래를 듣자마자 그녀는 대가의 기교를 순식간에 자기 것으로 습득했다. 그리고 운까지 따라서 2007년 몬트리올 재즈 페스티벌 무대에 오르게 되었다. 많은 사람들을 놀라게 했던 신동의 공연은 CD와 DVD가 함께 묶인 패키지 앨범 <Ella……Of Thee I Swing>으로 발매되어 캐나다의 그래미상이라 불리는 주노상의 두 부분 후보에 오를 정도로 큰 인기를 얻었다. 이를 계기로 그녀는 미국과 일본 등으로 공연을 이어나갔고 2010년 뱅쿠버 동계올림픽 개, 폐회식에서 노래하고 주제가인 ‘I Believe’를 노래하기에 이르렀다. 특히 ‘I Believe’는 캐나다의 Hot 100 차트에서 단번에 1위에 오르는 인기를 얻었다.
지금 우리가 듣고 있는 앨범 <Nikki>는 그녀의 스튜디오 데뷔 앨범이다. 캐나다를 중심으로 화제와 인기를 얻고 있는 그녀의 현 위치로 보아서는 다소 늦은 데뷔 앨범이라 할 수 있겠다. 그러나 아직 나이가 16세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생각하면 재즈 보컬의 세계에 12세에 발을 들여놓은 이후 어느 정도 그녀의 노래와 창법이 숙성되기를 기다린 결과가 아닌가 싶다. 실제 이 앨범에서 그녀는 엘라 핏제랄드의 모방에 그치지 않고 자신의 노래와 음악을 들려준다. 물론 이번 앨범에서도 이 어린 보컬은 엘라 핏제랄드와의 관련성을 드러내는 것을 잊지 않았다. 앨범의 시작을 알리는‘Take The A Train’이나 ‘I Got Rhythm’, ‘On the Sunny Side of the Street’같은 노래를 들어보면 음색, 창법, 그리고 스캣 등에서 엘라 핏제랄드의 그림자를 강하게 느낄 수 있다. 게다가 ‘First Lady’는 제목에서부터 재즈 보컬의 영부인으로 통했던 엘라 핏제랄드에 대한 그녀의 경의를 엿보게 한다. 하지만 여기까지. 만약 당신이 엘라 핏제랄드를 모창에 가까울 정도로 완벽하게 재현하는 니키 야노프스키를 만나고 싶다면 라이브 앨범 <Ella……Of Thee I Swing>을 듣기 바란다. 이번 앨범의 경우 엘라 핏제랄드를 연상시키는 노래에서도 그녀는 대선배에 대한 경외심 외에 자신만의 음악적 취향, 젊음을 적절히 삽입하는 재치를 보인다. 예를 들어 ‘Take The A Train’의 경우 ‘뉴욕에 갈 때면 나는 극장에 가지, 나는 뉴욕이 좋아 티셔츠에 새겨진 문구도 뉴욕 또한 나를 좋다고 말하네’라는 그녀의 개인적인 경험을 반영한 가사를 넣어 할렘의 영광을 이야기하던 곡을 뉴욕의 찬가로 바꾸어 놓았다. 그리고 ‘On the Sunny Side of the Street’에서는 하드 록의 전설 레드 제플린의 ‘Fool In The Rain’의 인트로리프를 차용하여 재즈 외에 록에 대한 자신의 취향을 드러냈다.
엘라 핏제랄드와 재즈를 사랑하면서도 그 자리에 머무르지 않으려는 10대의 발랄한 정신은 다른 곡들에서 보다 적극적으로 드러난다. 예를 들면‘Cool My Heels’에서는 R&B를, 제시 해리스가 작곡한 ‘For Another Day’에서는 포크를, ‘God Blues The Child’에서는 블루스를, ‘Bienvenue Dans Ma Vie’에서는 프랑스 샹송을, ‘Never Make It On Time’이나 그녀를 유명하게 만든 곡 ‘I Believe’에서는 팝 발라드를 소화하는 그녀를 만나게 된다. 그래서 아직 16세 밖에 되지 않았지만 욕심이 참 많구나 생각하게 한다. 실제 그녀는 이렇게 다양한 스타일을 가로지르는 것에 대해 ‘자신을 모든 장르를 노래하는 보컬, Everything Singer’로 생각한다’는 말로 설명한다.
한편 자칫 백화점식 구성이라 앨범의 유기적인 면이 떨어질 위험이 있는데 의외로 앨범은 자연스럽게 스윙 재즈로 시작하여 팝 발라드로 끝난다. 여기에는 명 프로듀서 필 라몬과 노라 존스와의 작업으로 알려진 제시 해리스, 그리고 론 섹스스미스 등의 힘이 컸다. 특히 필 라몬은 니키 야노프스키의 다양한 음악적 욕심을 적절히 조절하여 그녀가 다양한 스타일을 가로지르는 와중에도 중심을 잃지 않도록 하는 조타수 역할을 해주었다.
따라서 이 앨범은 재즈 앨범인 동시에 팝 앨범이다. 아니 그냥 니키 야노프스키의 음악욕구를 총체적으로 구현한 앨범, 어쩌면 다섯 살부터 노래를 시작한 아직 어린 소녀의 꿈이 실현된 앨범이라고 할 수 있다. 그렇다고 이 앨범을 그녀의 음악적 완성을 담아낸 것으로 생각하고 싶지는 않다. 첫 (스튜디오) 앨범인 만큼 그녀의 음악적 출발을 담고 있는 앨범으로 바라보는 것이 더 적절하지 않나 싶다. 실제 뛰어난 보컬 능력에도 불구하고 16세라는 어린 나이가 주는 한계가 느껴질 수도 있다. 그래서 조금 더 삶의 경험이 목소리에 담길 필요가 있다고 말할 수도 있다. 아니면 한가지 스타일에 보다 집중하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할 수도 있다. 만약 당신이 그렇다면 다시 한 번 그녀가 16세라는 사실을 상기하자. 그리고 그녀가 앞으로 무한한 가능성을 지니고 있음을 생각하자. 아직 그녀의 음악적 삶이 그려질 도화지는 흰색의 여백으로 가득하다!
완성체가 된 연주자나 보컬의 음악을 듣는 재미만큼 한 연주자나 보컬이 세월에 따라 발전하는 과정을 지켜보는 재미도 트다. 그런 관심 속에 성공한 것이 엘라 핏제랄드였다. 그런 관심을 이제는 니키 야노프스키에게 주는 것은 어떨까? 마치 감상자인 내가 장기적인 안목을 지닌 제작자인 양 말이다. 적어도 나는 그녀가 이대로만 성장한다면 재즈의 전통, 익숙함을 현재의 신선함과 결합한 새로운 노래를 들려줄 것이라 생각하며 그녀의 내일을 기대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