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ve At The Troubadour – Carole King & James Taylor (Hear 2010)

오랜 우정을 나누어온 음악적 지우(知友)의 따듯한 시간

남녀 사이에 우정이 가능할까? 누구나 살면서 이런 질문을 두고 한 번쯤 친구와 고민을 해보았을 것이다. 사실 이 질문엔 정답이 없다고 나는 생각한다. 각자의 경험이 그 답을 결정한다고 할까? 나의 경우 우정이 가능할지는 몰라도 그 관계엔 한계가 있다는 쪽이었다. 즉, 회의론자에 가깝다는 뜻. 그러나 적어도 제임스 테일러(James Taylor)와 캐롤 킹(Carole King)에 대해서만큼은 남녀 사이에 우정, 그것도 깊은 우정이 가능함을 인정할 수 밖에 없을 것 같다. 게다가 이 두 사람은 사랑보다 우정이 더 오래간다는 것을 보여주기까지 한다. 서로를 알게 된지 40여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남매와 같은 우정을 나누고 있으니 말이다. 물론 여기에는 두 사람의 음악적 유대가 큰 역할을 하고 있다. 특히 이들의 초기 음악은 같은 기원을 두었다 싶을 정도로 통하는 면이 많았다. 서로가 서로에게 알터 에고(Alter Ego)였다고 할까?

그러니까 두 사람이 서로를 알게 된 것은 1969년 12월 무렵이었다. 당시 막 20대를 시작한 제임스 테일러는 비틀즈가 설립한 애플 레코드에서 첫 앨범 <James Taylor>(1968)를 발표했지만 (비틀즈의 해체에 따른 애플레코드의 혼란으로 인해) 그렇게 큰 주목을 받지 못한 상황이었다. 그래서 캘리포니아에 와서 워너 브라더스 레코드와 계약을 하고 새로운 마음으로 두 번째 앨범을 녹음하려고 했다. 그 때 캐롤 킹을 만나게 된 것이다. 그 무렵 20대 중반이었던 캐롤 킹은 남편 제리 고핀(Gerry Goffin)과 함께 드리프터스(Drifters), 리틀 에바(Little Eva), 스키터 데이비스(Skeeter Davis), 에브리 브라더스(Everly Brothers), 더스티 스프링필드(Dusty Springfields), 더 버즈(The Byrds) 등 60년대를 풍미한 여러 가수와 그룹들의 히트 곡을 쓴 작곡가로 유명세를 누리다가 이혼 후 독자적인 길을 모색하고 있었다. 이들의 첫 만남은 제임스 테일러의 두 번째 앨범 <Sweet Baby James>(1970)에 캐롤 킹이 피아노 연주자로 참여하고 두 달 후 제임스 테일러가 캐롤 킹의 첫 앨범 <Writer>(1970)에 기타와 백 보컬로 참여하는 형식으로 진행되었다. 그 가운데 제임스 테일러의 두 번째 앨범은 ‘Fire & Rain’등이 히트하며 커다란 성공을 거두었고 캐롤 킹의 첫 앨범은 완벽하다 싶을 정도로 무시되었다.

하지만 그런 중에 두 사람은 음악적으로 통하는 부분이 있음을 알게 되었던 모양이다. 그래서 1년 후에는 제임스 테일러의 세 번째 앨범 <Mud Slide Slim & The Blue Horizon>과 그 유명한 캐롤 킹의 두 번째 앨범 <Tapestry>를 동시에 녹음하는 모험을 감행했다. 이 두 앨범은 모두 1971년 1월에 녹음을 시작했는데 제임스 테일러와 캐롤 킹이 상대의 앨범에 세션으로 참여함은 물론 조니 미첼(Jini Michell, 백 보컬), 러셀 쿤켈(Russell Kunkel, 드럼), 대니 코르츠마(Danny Kortchmar, 기타) 등의 세션들이 두 앨범을 바삐 오가며 참여했다. 게다가 두 앨범은 캐롤 킹이 작곡한 ‘You’ve Got A Friend’를 각자의 버전으로 싣고 있어서 음악적으로 연결되었다는 느낌을 강하게 했다. 이 두 앨범은 모두 대단한 성공을 거두었다. 먼저 제임스 테일러는 ‘You’ve Got A Friend’로 빌보드 차트 정상에 등극했으며 이듬해 그래미 상에서 최우수 남자 보컬 상을 수상하기에 이르렀다. 그리고 캐롤 킹의 경우 ‘You’ve Got A Friend’, ‘It’s Too Late’. ‘Will You Still Love Me Tomorrow’, ‘I Feel The Earth Move’등의 곡을 빌보드 차트 정상에 올리며 이듬해 그래미 상에서 올 해의 앨범, 최우수 여성 보컬, 올 해의 노래 등 주요 상을 휩쓸었다. 그리고 앨범차트 정상을 15주 연속 차지하는 등 마이클 잭슨의 <Thriller>(1982)앨범이 나오기 전까지 깨지지 않을 기록을 양산했다.

그렇게 약 2년에 걸쳐 두 사람은 서로의 우정을 쌓으며 팝 역사에 기록될 뛰어난 음악적 결과물을 낳았다. 특히 71년 서로 도와가며 두 장의 앨범을 녹음한 것은 이상적인 음악적 우정의 관계로 회자될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음악적 교감이 단순히 첫 만남부터 완성된 것은 아니었다. 꾸준히 함께 연주하고 노래한 결과였다. 그 가운데 1970년 11월 캘리포니아의 LA에 위치한 트루바두르(Troubadour) 클럽에서 두 사람이 함께 한 공연은 두 달 후의 역사적 앨범 작업의 든든한 기초가 되었다. 아마 이 공연을 함께 하면서 서로의 다음 앨범에 대한 이야기가 오갔고 함께 작업할 계획을 세우게 되지 않았나 싶다. 그랬기에 이 공연이 두 사람에게는 잊을 수 없는 인생의 중요한 순간으로 기억되지 않았나 생각된다. 왜냐하면 지금 우리가 듣고 있는 앨범이 바로 1970년 트루바두르 클럽 공연을 새로이 되살리는 의미를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트루바두르 클럽은 1957년에 문을 연 이후 그 동안 제임스 테일러와 캐롤 킹을 비롯해 엘튼 존(Elton John), 린다 론스타드(Linda Londstadt), 이글스(Eagles), 알 스튜어트(Al Stewart) 등 포크 록 계열의 가수와 그룹이 다녀가며 포크 음악의 중심지 역할을 해왔다. 그러던 차에 2007년에 클럽의 개관 50주년을 맞아 지난 추억을 되살려 제임스 테일러와 캐롤 킹의 공연을 기획하게 된 것이다.

1970년 공연과 마찬가지로 11월에 열린 이 공연은 오랜 시간이 지나도 변하지 않는 두 사람의 우정, 영원을 향해 가는 음악적인 교감을 다시 한 번 확인하게 한다. 특히 이 공연은 두 사람의 첫 만남이 이루어진 제임스 테일러의 <Sweet Baby James>앨범 당시의 밴드 멤버가 그대로 참여하고 있어 더욱 의미가 깊다. 대니 코르츠마(기타), 르랜드 스클라(Leland Sklar, 베이스), 러셀 쿤켈(드럼)이 제임스 테일러(보컬, 기타)와 캐롤 킹(피아노, 보컬)과 함께 하고 있다. 또한 공연을 위해 두 사람이 선택한 곡들은 ‘Blossom’, ‘So Far Away’, ‘It’s Too Late’, ‘Country Road’, ‘Fire & Rain’, ‘I Feel The Earth Move’등 두 사람이 함께 했던 1970년과 1971년 사이의 곡들이 주를 이루고 있다. 어쩌면 1970년 공연에서도 이들 곡들이 노래되었을 지도 모르겠다. 그렇다면 완벽한 추억 여행인 셈이다.

공연은 제임스 테일러가 특유의 담담한 톤으로 기타를 연주하며‘Blossom’을 부르는 것으로 시작된다. 그리고 캐롤 킹이 피아노로 가슴을 뭉클하게 만드는 코드를 이어가며 ‘It’s Too Late’를 노래하는 등 서로 자신들의 히트 곡들을 노래하는 방식으로 이어진다. 사실 여기까지는 두 사람 모두 최근에 <One Man Band>(2007), <Living Room Tour>(2005) 등의 개인 공연 앨범을 발표했었기에 이들 앨범을 들어본 사람이라면 그리 색다르지 않을 지도 모른다. 그러나 공연의 후반을 장식하고 있는 함께 부르기는 이번 앨범만의 색다른 감동이 되리라 생각한다. 특히 ‘You’ve Got A Friend’의 함께 부르기는 특별하다. 이름만 부르면 달려와 함께 하겠다는 가사로 많은 사람들에게 위안을 주었던 노래가 실제로는 제임스 테일러와 캐롤 킹의 우정을 위한 것이 아니었을까 생각하게 만들 정도로 긴 여운을 남긴다.

한편 아무리 유명한 인물들이라도 이번 공연이 그들만의 추억 되살리기가 아닐까 생각하는 사람이 있을지 모르겠다. 하지만 그렇지 않다. 오히려 이 공연은 두 사람의 우정만큼이나 이들이 만들어낸 음악 또한 영원한 현재성을 띄고 있음을 확인하게 해준다. 이 글을 쓰고 있는 나 역시 1970년대 초반 막 세상에 태어난 아이였기에 이들의 음악을 직접 체험할 수 없었다. 그럼에도 두 사람의 노래를 들으며 나는 나의 고단한 삶을 위로 받고 두 사람의 아름다운 하나됨에 감동받는다. 이것은 비단 감상적인 나뿐만 아니라 앨범을 듣는 모든 사람들에게도 해당될 것이라 믿는다. 당장 공연의 분위기를 보아도 알 수 있다. 앨범의 곡과 곡 사이에는 두 사람이 자신들에 얽힌 추억을 이야기하는 것이 비교적 자세히 수록되어 있는데 그에 반응하는 객석의 분위기가 정말 화기애애하다. 이것은 이번 앨범에 함께 수록된 공연 DVD를 통해서도 확인할 수 있다. 소박한 분위기 속에서 진행되는 공연을 따라가다 보면 작은 행복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어쩌면 추억의 회상에서 시작되었을 지라도 이 공연은 분명 제임스 테일러와 캐롤 킹에게 새로운 현재로 작용하고 있다. 앨범 발매에 맞추어 ‘Troubadour Reunion’이라는 이름으로 많은 공연을 펼치고 있으니 말이다.

4 COMMENTS

  1. 이 음반의 호불호를 말하기 앞서..
    이런 이성의 지우를 만나서 유지하는 것 그 자체가 아름답고 부럽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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