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나 들을 수 있는 편안한 크리스마스 앨범
한 해가 저물어감을 알리는 12월은 어쩌면 아쉽고 쓸쓸한 달일 지도 모릅니다. 흘러가는 시간 앞에서, 무엇인가 인생의 한 장이 마무리된다는 느낌 앞에서 기분 좋을 사람은 없을 테니 말이죠. 하지만 크리스마스가 있어 12월은 아쉬움만큼 사랑과 감사의 마음으로 가득하게 되죠. 종교와 상관 없이 12월이 되면 사람들은 크리스마스를 생각하며 살아갑니다. 그래서 사랑하는 가족, 연인을 위한 선물을 준비하고 어떻게 하면 이 소중한 사람들과 멋진 시간을 보낼 수 있을까 계획을 하게 되죠. 물론 그 사이 그렇지 못한 불우한 이웃을 생각하기도 하구요.
크리스마스를 크리스마스답게 보내기 위해서는 장식이 필요합니다. 사랑의 메시지를 담은 크리스마스 카드, 이 카드를 받을 대상, 크리스마스 트리, 달콤한 케이크, 작은 크리스마스 트리 같은 것 말이죠. 아! 그리고 캐롤을 빼놓을 수 없을 것입니다. 일 년 내내 우리의 건조한 일상을 부드럽게 감싸주었듯 크리스마스에도 음악은 소박한 우리의 축제를 더욱 따스하고 사랑스럽게 해주는 역할을 합니다. 그런데 음악이 시대를 반영한다고는 하지만 요즈음 새로이 발매되는 여러 크리스마스 캐롤 앨범들은 크리스마스만의 낭만, 가족과 연인과 함께 하는 사랑스러운 분위기를 담기보다는 장르적인 한계, 세대의 한계를 벗어나지 못하는 경우가 많은 것 같습니다. 그러니까 온 가족이 편안하게 크리스마스의 행복을 나눌 때 부담 없이 들을 수 있는 캐롤을 들려주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지금까지 워낙 많은 캐롤 앨범이 발매되었기에 그 가운데서 자기만의 개성을 강조하려고 한 끝에 생긴 결과라 생각합니다. 그러나 많은 감상자들은 평소 좋아하던 뮤지션의 캐롤을 듣는 재미만큼이나 크리스마스 본연의 분위기를 잘 반영하고 있는 여유롭고 편안한 캐롤을 듣고 싶어합니다. 그럴 때 캐서린 맥피의 크리스마스 앨범을 곁에 두는 것도 좋은 선택이 아닐까 생각됩니다.
그녀는 2006년도 아메리칸 아이돌 시즌 5에서 2위를 차지하게 되면서 전문 가수로서의 활동을 시작했습니다. (배우로서도 나름 성공적인 활동을 하고 있지요.) 그리고 그 활동은 10대부터 그 부모님 세대를 아우를 수 있을 정도로 폭 넓은 것이었습니다. 하긴 아메리칸 아이돌에서 경쟁할 때부터 그녀는 ‘Someone to Watch Over Me’, ‘Come Rain or Come Shine’, ‘Black Horse and the Cherry Tree’ 같은 미국 팝(재즈)의 고전들을 노래했으니 세대를 아우르는 그녀의 음악적 특성은 이 때부터 어느정도 예견되었던 것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실제 두 장의 앨범을 녹음하는 중에 그녀는 ‘Over The Rainbow’, ‘Can’t Help Falling In Love’-안드레아 보첼리와 듀엣으로-등의 곡들을 노래하기도 했습니다. 캐롤을 노래한 것도 이번이 처음이 아닙니다. 2007년과 2009년에 각각‘O Come All Ye Faithful’, ‘I’ll Be Home for Christmas’를 싱글로 선보이면서 세대를 아우르는 그녀의 음악적 역량을 드러내기도 했습니다.
지금 우리가 듣고 있는 캐서린 맥피의 이번 크리스마스 앨범은 남녀노소가 부담 없이 들을 수 있는, 말 그대로 가족용 캐롤 앨범이 아닐까 생각됩니다. 가장 보편적인 어법으로 크리스마스의 편안한 낭만을 표현하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무엇보다 그리 거칠지 않는 록 밴드에 약간의 스트링 오케스트라가 가세하는 사운드에서 잘 느낄 수 있습니다. 이 사운드를 통해 그녀는 과거와 현재가 어우러진 특별한 크리스마스로 우리를 데려갑니다. 사실 크리스마스가 되면 사람들은 적당히 복고적인 취향을 보이지 않던가요? ‘Jingle Bells’가 대표적인 경우가 아닐까 생각됩니다. 이 곡에 사용된 울렁이는 오르간 사운드는 가볍게 몸을 흔들 수 있는 유쾌한 추억이 담긴 크리스마스를 상상하게 합니다. 메들리로 노래된 ‘O Little Town Of Bethlehem/Away In A Manger’는 어떻던가요? 종교적이지는 않지만 경건하고 차분한 크리스마스의 분위기를 연출하지 않습니까? 한편 스무드 재즈 트럼펫 연주자 크리스 보티가 게스트로 참여한 앨범의 첫 곡 ‘Have Yourself Merry Little Christmas’나 스트링 오케스트라가 흐르는 ‘White Christmas’을 들으면 하얀 눈이 내리는 크리스마스의 평온한 풍경을 절로 상상하게 됩니다.
사실 이러한 이미지들은 크리스마스 캐롤을 들을 때마다 만날 수 있었던 익숙한 것입니다. 그러나 이 익숙한 이미지들은 결코 진부하거나 싫증나는 이미지가 아니지요. 매년 반복되어도 질리지 않는, 크리스마스 하면 제일 먼저 기대하고 바라게 되는 이미지가 아니던가요? 게다가 익숙함 속에서 그녀는 곳곳에 신선함을 느끼게 해줍니다. 예를 들면 ‘It’s Not Christmas Without You’는 캐서린 맥피가 직접 작곡에 참여한 곡으로 이 곡에서 그녀는 캐롤 사이에서 평소 그녀의 음악적 분위기를 자연스레 드러냅니다. 또한 ‘Who Would Imagine A King’의 경우 1996년 휘트니 휴스턴이 영화 <The Preacher’s Wife>에 직접 출연하여 노래하여 인기를 얻었던 곡이기도 한데 이 곡을 그녀는 선배와의 비교를 의식하지 않고 차분하게 노래하여 이전에 고전들을 다시 불렀을 때처럼 자신만의 노래로 바꾸어버렸습니다. 원래 록 가수 빌리 스콰이어가 만들고 노래했던‘Christmas Is the Time (to Say I Love You)’를 타이틀 곡으로 했다는 것도 앨범을 특별한 크리스마스 앨범으로 바라보게 합니다. 원 곡의 분위기를 어느 정도 반영한 가벼운 록 스타일로 노래하면서 캐서린 맥피는 이 앨범은 나만의 크리스마스 앨범임을 밝힙니다.
한편 제가 생각하는 이 앨범의 가장 큰 매력은 템포에 있습니다. 앨범에 수록된 11곡의 노래들은 발라드 풍의 느린 템포가 주를 이룹니다. ‘Jingle Bells’, ‘What Are You Doing New Year’s Eve’, ‘It`s Beginning To Look A Lot Like Christmas’처럼 조금 빠르다고 해도 미디엄 템포를 넘어가지 않습니다. 반대로 느리다고 해서 결코 안으로 가라앉지도 않습니다. 담백한 노래를 통해 평온함을 유지할 뿐입니다. 그래서 앨범은 왁자지껄한 파티보다는 그저 함께 있는 것만으로도 따스하고 행복한 크리스마스에 어울립니다. 사랑을 확인하고 나누는 크리스마스 본연의 의미에 충실한 앨범이라고 할 수 있겠네요.
물론 현재적인 느낌이 강한 바른 리듬과 전자적인 사운드가 가미된 크리스마스 앨범을 기대한 감상자라면 이번 앨범이 다소 심심하게 느껴질 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일체의 자극을 배제한 편안하고 따스한 캐서린 맥피의 노래를 듣다 보면 크리스마스는 밖에서 밤을 흔들며 보내는 것이 아니라 사랑하는 사람과 조용히 함께 하는 것임을, 또 그것이 생각보다 훨씬 낭만적임을 느끼게 될 것입니다. 적어도 가족 모두가 부담 없이 들을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크리스마스의 행복을 느끼게 되지 않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