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rt & Soul – Kenny G (Concord 2010)

좋았던 시절의 매력을 현재에 되살리다.

1980년대를 거쳐 1990년대 중반까지 케니 G의 인기는 대단했다. 팝스(Pops)라 불렸던 루이 암스트롱만큼이나 커다란 인기를 누렸던 것이다. 최근의 노라 존스가 상당한 인기를 얻고 있다지만 케니 G의 인기는 이 또한 능가했던 것 같다. 당시 그가 발표하는 앨범들 대부분은 커다란 상업적 성공을 거두었다. 그의 대표작으로 남아 있는 1992년도 앨범 <Breathless>만 해도 천오백만 장 이상이 판매되었으며 기타 다른 앨범들도 수 백반장의 판매고를 가뿐히 올렸다. 현재까지 그의 모든 앨범 판매량이 칠천오백만 장을 넘는다고 하니 이것은 분명 여느 팝 스타들도 하기 어려운 성공이라 하겠다. 그가 팝 스타에 버금가는 인기를 누릴 수 있었던 것은 다른 연주자들과 구별되는 그만의 색소폰 음색과 친근한 멜로디, 달콤한 사운드, 그리고 그 안에 담긴 도시적인 낭만 때문이었다.

하지만 현재 케니 G의 인기는 확실히 90년대 중반만은 못하다. 그의 음악이 그렇게 큰 변화를 보인 것도 아니고 또 반대로 질적으로 떨어진 것도 아닌데도 말이다. 누구는 그의 음악이 진부해졌기 때문이라고 말할 지도 모른다. 커다란 틀에서는 나도 이 의견에 찬성한다. 그의 인기가 예전 같지 못한 것은 음악이 좋지 않아서가 아니라 너무나도 익숙해졌기 때문이다. 게다가 내가 보기에 최근 그는 자기 자신보다 감상자를 더 의식한 음악을 해왔다. 이전보다 더욱 달콤하고 더욱 편한 음악을 요구하는 감상자들의 요구에 맞추어 색다른 시도라는 이름 하에 역설적이게도 자신을 소외시킨 앨범을 선보여왔다는 것이다. <Classics In The Key Of G>(1999)처럼 재즈 스탠더드 곡을 연주하거나 <At Last The Duets Album>(2004)처럼 유명 팝 곡들을 연주하거나 아니면 <Rhythm & Romance>(2008)처럼 라틴 음악을 연주한 앨범들이 대표적인 경우다. 이 앨범들은 꼭 상업적인 측면을 생각하지 않아도 보다 폭넓은 감상자를 위한 것이었다. 또 케니 G의 색소폰과 잘 알려진 유명 곡이 만난다는 점에서 신선한 면도 있었다. 하지만 이들 앨범은 달콤하긴 하지만 케니 G만의 매력이 다소 희생된 결과를 낳았다. 그래서 앨범마다 수백만 장이 판매되었던 이전 앨범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낮은 호응을 얻게 되었다고 생각한다. 특히 가장 최근 앨범인 <Rhythm & Romance>는 골드 레코드(50만장이상의 판매)도 기록하지 못했다.

그러나 내리막길이 있다면 다시 오르막길이 있는 법. 이번 케니 G의 13번째 스튜디오 앨범은 다시 한번 그의 찬란한 지난 날을 되살리지 않을까 싶다. 그 시절의 음악 조제법으로 앨범을 만들었기 때문이다. 그 조제법이란 작곡에서 출발한다. 언급했다시피 지난 10여 년간 그는 주로 이미 널리 알려진 곡들을 주로 연주해왔다. 그러다보니 오히려 알려진 곡들의 이미지에 그의 연주가 종속되는 역효과가 발생했다. 아무리 그만의 방식으로 연주를 한다고 해도 편안한 감상을 지향하는 만큼 원곡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었던 것이다. 그런데 이번 앨범에서는 2002년도 앨범 <Paradise> 이후 다시 케니 G 본인의 곡, 엄밀히 말하면 오랜 시간 그의 음악적 동반자 역할을 해 온 제작자 월터 아파나시에프와 함께 만든 곡들로 앨범을 채웠다. 그리고 그 곡들은 처음 듣더라도 어느 정도 다음의 흐름을 예측할 수 있을 정도로 친숙한 멜로디를 중심에 두고 있다. 케니 G식 클리세라고 할 수 있을까? 그러나 그의 멜로디는 친숙하지만 그렇다고 진부함의 위험에 빠지지는 않는다. 일반 재즈 연주자들처럼 즉흥 연주를 화려하게 펼치는 것은 아니지만 케니 G는 자신의 색소폰에 내재된 본연의 맛, 마치 노래하는 것 같은 연주로 진부함에서 벗어난다. 그렇다. 재즈가 아니라는 논쟁이 있기도 했지만 어쨌건 그의 매력은 노래하는 듯한 연주에 있었다.

한편 앨범에 담긴 곡들은 그의 음악적 근간을 이루는 R&B 음악을 적극 반영하고 있으며 편곡 또한 R&B 특유의 무게감 있는 사운드가 색소폰을 부드럽고 포근하게 감싸는 방식-90년대 그의 인기를 보장했던-으로 이루어져 있다. 실제 케니 G는 이 앨범이 일종의 근원을 담고 있다고 밝힌다. 그에 따르면 시애틀에서 고등학교를 다닐 때 그는 다양한 인종의 친구들과 함께 R&B를 들었고 그 와중에 말로 표현하기 어려운 특별한 감정을 느꼈었는데 이 앨범이 그 특별한 느낌을 표현하고 있다고 한다. 이를 확인하기 위해 먼저 앨범에서 싱글 곡으로 밀고 있는 ‘Fall Again’을 들어보자. 이 곡에는 성인 취향의 R&B 싱어송라이터 로빈 씨크가 노래를 하고 있다. 보이즈 투 멘, 머라이어 캐리, 희트니 휴스턴 등으로 대변되는 90년대 R&B를 기억하는 감상자라면 이 곡의 멜로디와 사운드가 그 시절을 향하고 있음을 쉽게 느낄 수 있을 것이다. 또 다른 보컬 곡 ‘No Place Like Home’은 어떠한가? 1996년 <The Moment>앨범에 이어 베이비 페이스가 다시 한번 달콤한 참여를 한 이 곡 또한 케니 G의 90년대를 상기시킨다. 이 뿐만이 아니다. 앨범의 마지막 곡 ‘After Hours’나 ‘One Breath’, ‘My Devotion’같은 곡들 또한 ‘Silhouette’, ‘Going Home’ 시절을 떠올린다.

그렇다면 케니 G의 이번 앨범은 좋았던 시절을 향수하고 그리워하는 앨범, 그래서 그의 오랜 팬들만을 위한 앨범일까? 그렇지는 않다. 케니 G가 이 앨범에서 10여 년 전의 처방전을 다시 사용한 것은 복고의 차원이 아니라 그것이 2010년 오늘에도 유효하다는 확신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또한 그는 과거의 방식을 답습하는 차원에 멈추지 않고 새로이 변용하기도 했다. 그것은 주로 밝고 산뜻한 정서를 추구하는 곡에서 잘 느껴진다. 그 대표적인 경우가 ‘G-Walkin’’이다. 경쾌한 리듬을 배경으로 그의 선배 그로버 워싱턴 주니어의 영향을 상기시키는 이 곡은 그의 초기 시절과 관련을 맺고 있으면서도 스무드 재즈의 현재를 적극 반영하고 있다. 타이틀 곡 ‘Heart & Soul’, ‘Letter From Home’, ‘The Promise’ 등의 곡도 케니 G의 과거만큼이나 스무드 재즈의 현재와 단단한 관련성을 보인다.

살다 보면 노력한 만큼 일이 잘 풀리지 않을 때가 있다. 그러면 우리는 고민을 한다. 무엇이 문제일까? 그 때 모든 것이 순탄했던 시절을 상기하고 시간이 지체되더라도 그 시점에서 새로운 시작을 해보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변화도 좋지만 그 전에 매력을 유지하는 것도 필요하니 말이다. 케니 G의 이번 앨범이 그런 경우가 아닐까? 물론 예전만 못하기는 하지만 여전히 케니 G는 팝 스타에 버금가는 세계적 인기를 누리고 있다. 그러나 모든 것은 자기 하기 나름이고 도한 자기가 만족해야 타인들도 만족할 수 있는 법이 아니겠는가? 따라서 Kenny G의 이번 앨범은 그동안 인기와 상관 없이 위축되었던 그의 음악적 매력을 되살린 앨범으로 기억되리라 생각한다. 또 그렇기에 대중적으로도 큰 호응을 얻을 수 있으리라고 본다.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