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즈에 담아 낸 한국적 깊은 슬픔
재즈는 미국에서 만들어진 음악이다. 하지만 이제는 미국적인 정서를 담은 미국의 음악이 아닌 세계인이 즐기는 음악이 되었다. 실제 재즈는 세계 곳곳에서 연주되고 감상된다. 또 그러면서 다양한 세계의 전통 음악과 어우러져 독특한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특히 유럽은 자신들의 음악적 전통을 미국에서 건너온 재즈와 과감히 결합하면서 재즈가 다양한 모습으로 변용될 수 있음을 입증했다. 그리고 이것은 다시 미국은 물론 세계 곳곳으로 확산되어 재즈의 현재를 보다 풍성하고 신선하게 만드는 동력이 되었다.
색소폰 연주자 손성제를 중심으로 정수욱(기타), 이순용(베이스), 김동원(한국 전통 타악기, 보컬) 등이 함께 한 The Near East Quartet(이하 The NEQ)의 이 앨범도 마찬가지다. 이 앨범은 한국적 재즈의 이상적인 모습을 담고 있다. 이상적이라는 표현을 내가 사용하는 것은 The NEQ의 한국적 재즈가 단순히 재즈와 한국 전통 음악을 형식적인 차원에서 결합하려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사실 한 음악이 특정 지역의 색을 갖추기 위해서는 단순히 그 지역의 전통 음악을 기계적으로 결합하는 것으로는 부족하다. 그래서 The NEQ는 한국적 재즈를 정서의 차원에서 접근했다. 물론 재즈보다는 한국 전통 음악 쪽에서 활동해온 김동원의 참여에서 음악 형식의 결합을 생각할 수도 있지만 실상 그의 타악기와 보컬은 음악 형식보다 정서의 차원에서 우선적으로 작동하고 있다. 오히려 The NEQ가 음악을 상상하고 서로를 경청하고 자신을 드러내며 연주를 펼치는 방식은 재즈의 기본을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프리 재즈가 도래한 이후 많은 연주자들이 이국적인 것에 관심을 갖고 시선을 낯선 공간으로 돌렸던 것을 상기한다면 전혀 낯선 느낌을 주지 않는다. 게다가 손성제의 색소폰은 간혹 한국의 전통 관악기적인 느낌을 주기도 하지만 많은 부분 존 콜트레인 혹은 존 콜트레인의 영향을 받은 얀 가바렉을 연상시킨다. 그리고 정수욱의 기타, 이순용의 베이스도 표현방식을 두고 본다면 결코 동양적이라 할 수 없다. 그렇기에 이번 앨범에 담긴 The NEQ의 음악은 한국적인 정서를 추구하지만 세계적인 공감을 얻을 수 있는 보편성을 기반으로 하고 있다.
그렇다면 The NEQ가 재즈를 통해 표현하고자 했던 한국적인 정서란 무엇일까? 그것은 보통 한(恨)이라 불리곤 하는 깊은 슬픔이다. 특히 앨범에 담긴 한국적 슬픔의 정서는 고향을 잃은 상실감, 내일에 대한 불안을 안고 앞으로 나아가는 유랑의 정서와 깊은 관련을 맺고 있다. 앨범 표지 사진이 앨범의 화두를 효과적으로 설명한다. 일제 시대에 촬영된 것으로 보이는 사진 속에는 눈 내린 겨울의 어느 날, 세 명의 남자가 짐을 잔뜩 실은 말 두 필과 함께 이 쪽을 보고 있다. 사진 찍는 것이 어색한 듯한 그들의 얼굴에서 피곤이 드러난다. 사진 속 남성들의 옷차림과 카메라가 국내에 들어온 시기를 고려한다면 사진은 일제시대에 찍혔을 확률이 높다. 그렇다면 그들은 고향을 떠나 중국의 간도나 만주로 향하는 중이었을 것이다. 일제시대에 많은 한국인들이 일본의 폭정으로 인해 땅을 빼앗기고 식량을 빼앗겼다. 심한 경우 고향을 떠나 중국의 간도나 만주 등으로 이주해야 했다. 그곳이 희망의 땅이라는 보장은 없지만. 농경사회가 기본인 한국인들에게 고향을 떠난다는 것은 정체성의 상실을 의미했다. 따라서 고개를 넘기 전 뒤돌아 고향을 다시 한번 바라보는 그들은 진한 상실감, 내일에 대한 불안에 빠져 있었을 것이다.
이 앨범 표지는 음악만큼이나 공을 들여 손성제가 직접 찾아냈다. 즉 The NEQ가 작, 편곡 그리고 연주에서 슬픈 유랑의 정서를 화두로 삼고 있었다는 것이다. 실제 The NEQ의 음악은 회화적인 것에서 출발해 서사적인 것으로 나아간다. 담담하게 테마를 반복하고 확장하는 색소폰과 공간적 긴장을 유발하는 타악기와 비탄에 젖은 보컬이 어우러진 ‘Earth & Humanity’를 시작으로 강박적인 베이스 일렉트로닉스를 배경으로 색소폰과 기타가 속도감 있게 펼쳐지는‘Convenient Loss’를 지나 공간을 확장시키는 몽환적인 기타와 다양한 톤과 긴장을 유발하는 단속적(斷續的)인 타악기 리듬, 멜로디에 깊이와 두께를 더하는 베이스를 배경으로 슬픔을 안으로 감춘 듯 고통과 인내를 오가는 색소폰이 어우러지는 ‘Tomorrow’, ‘A Shattered Dream’, ‘Ou-Hu’를 거쳐 폭발할 듯한 혼돈을 보여주는 ‘Chaosmos’에서 절정에 올라 한국 고유의 정서인 ‘한(恨)’을 대표하는 전통곡 ‘500 Long Years’로 이어지는 흐름이 고향을 떠나는 슬픔, 내일에 대한 불안, 숙명에 대한 체념과 인내 등이 복합적으로 결합된 슬픈 여정을 상상하게 만든다.
분명 악기 구성, 연주(혹은 노래), 선곡 등에서 한국적인 색채가 강한 것은 사실이다. 게다가 외국 감상자들이 이 앨범을 들으며 한국적인 슬픔, 한(恨)을 느끼기란 그리 쉬운 일은 아닐 것이다. 그러나 적어도 그들에게 The NEQ의 음악은 지도상에 명확히 표기하기 어려운, 그저 아시아-Near East-의 어느 한 지역을 상상하게 하는 가상의 민속음악으로 다가올 것임은 분명하다. 그리고 꼭 일제시대의 한국인이 아니더라도 유랑할 수 밖에 없는 한 유랑자-감상자 자신일 수도 있다-와 그 슬픔을 상상하게 될 것이다. 지역과 사람에 따라 열린 감상을 가능한 것, 그것이 재즈가 아니던가? 따라서 나는 이 앨범을 통해 많은 외국 감상자들이 단순히 한국에서 건너 온 재즈를 이국적인 것으로 받아들이지 않고 다소 낯선 질감이지만 이내 독자적인 방식으로 공감하고 즐길 수 있는 재즈로 받아들이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