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ertigo – Alfred Hitchcock (Universal 1958)

모처럼 여유가 잠시 생겨서 나중에 봐야지 하면서 보지 않고 쌓아둔 영화 DVD 더미를 뒤적여 이 영화를 발견했다. 오래된 고전 중의 하나인 알프레드 히치콕 감독의 <현기증>. 프랑스 소설가 피에르 보왈로와 토마스 나르세작의 <D’entre Les Morts 죽은 자들 사이로부터>를 원작으로 한 영화라고 한다.

사실 줄거리는 비교적 단순하다. 고소공포증이 있는 전직 형사가 계획된 살인의 증인으로 이용당했다가 후에 진실을 알게 되는 내용이다. 너무 단순한 정리인가? 조금 더 말하면-이후는 완전 스포일이다- 계획된 살인이 만들어지는 것이 다소 신비스러운 분위기 속에서 진행된다. 불행 끝에 자살한 할머니의 혼이 여주인공 매들린(킴 노박)을 자살로 이끌려 한다는 황당한 설정으로 남주인공 존 스카티 퍼거슨(제임스 스튜어트)을 계획에 끌어들이는 것이다. 실제 영화의 전반부는 감상자를 제임스 스튜어트의 시선을 따라 그 미궁의 사건을 파헤치도록 이끈다. 그러면서 그것의 비밀을 푸는 것이 이 영화의 내용이라고 믿게 만든다.

그러나 매들린이 죽으면서 이야기는 또 다른 후반부로 넘어간다. 그런데 히치콕은 자신의 영화적 긴장은 매들린이 자살에 이르는 전반부의 내용이 아니었다고 말하려는 듯 사건의 의문을 마실은 매들린 역할을 했던 쥬디 바튼(역시 킴 노박)을 통해 단번에 공개한다. 그래서 나는 영화의 후반부야말로 히치콕의 서스펜스가 돋보이는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미스테리가 풀리면서 서스펜스가 시작되는 것이다. 이것은 사건의 전모를 감상자가 알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다. 그렇기에 후반부에 강박적인 모습으로 변하는 스카티의 모습에 두려워하게 되고 그를 따라 이동했던 감상자의 시선이 쥬디로 옮겨져 그녀의 불안과 공포에 공감하게 되는 것이다.

다른 사람이 이 영화를 만들었다면 어땠을까? 아마 중간에 공개되는 살인의 전모를 끝까지 뒤로 밀고 나갈 것 같다. 분명 이것이 더 긴장감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 경우에는 영화의 전반부는 짧아져야 할 것이고 스카티의 캐릭터 또한 표변의 느낌보다는 보다 마초적이 면을 띄어야 할 것이다. 그러면서 영화는 신경증적인 긴장을 잃어 버릴 것이다. 즉, 히치콕다운 맛이 없어진다는 것. 실제 원작 소설은 사건의 전모를 뒤에 배치했다고 한다. 즉, 히치콕이 중간에 넣었다는 것인데 역시 그는 어떻게 하면 영화가 자신만의 분위기로 만들어지는 지 잘 알았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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