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 세계적으로 인기 있는 대중 음악 장르를 말한다면 R&B, 힙합이 되지 않을까 싶다. 이것은 영미 팝 음악은 물론 현재 우리가 편하게 가요라 부르는 우리 대중 음악만 보더라도 쉽게 확인된다. 차트 인기 곡들을 들어보면 대부분의 인기 곡들이 R&B나 힙합에 기반을 두고 있음을 알 수 있을 것이다.
따라서 블루그래스 음악은 한국의 많은 감상자들에게 다소 생소한 장르일 것이다. 설령 무엇인가 궁금해 하더라도 그것이 컨트리 음악의 일종이라는 사실을 접하게 되면 이내 관심을 거둘 지도 모른다. 사실 컨트리 음악은 80년대 초반까지 국내에서도 적지 않은 인기를 얻었던 음악이다. 그러나 흑인 음악이 대세를 이룬 지금은 세련되지 못한, 촌스러운(Country!) 미국의 농부 음악 정도로 치부되면서 그다지 큰 관심을 받지 못하고 있다. 그러므로 이 앨범을 구입하여 듣고 있는 당신 가운데 다수는 블루그래스 보컬이자 피들(바이올린) 연주자인 앨리슨 크라우스가 무척 낯설지도 모르겠다. 안다고 해봐야 지난 해 레드 제플린의 보컬 로버트 플랜트와 함께 했던 <Raising Sand> 앨범을 통해서였을 확률이 크다. 게다가 목소리까지 청아하고 신선하니 젊은 신인 보컬 정도로 생각할 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국내에서는 다소 낯설지라도 미국에서 그녀가 해온 활동과 그를 통해 얻은 성과는 우리의 상상을 초월한다. 블루그래스 음악은 물론 미국 대중 음악 전체를 두고 보아도 슈퍼스타라 할 수 있는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것이다.
이것은 무엇보다 그녀가 14세라는 어린 나이에 활동을 시작한 이후 지금까지 총 26개의 그래미상 트로피를 수상했다는 사실을 통해 알 수 있다. 이것은 게오르그 솔티 경(31개), 퀸시 존스(27개)에 이은 역대 세 번째이자 여성가운데에서는 첫 번째에 해당하는 수치이다. 최근 2009년 그래미 시상식에서도 로버트 플랜트와 함께 한 앨범 <Raising Sand>로 ‘올해의 앨범’을 비롯하여 총 다섯 개의 상을 수상했다. 그리고 1995년에 발매된 앨범 <Now That I’ve Found You: A Collection>을 시작으로 지난 해의 <Raising Sand>에 이르는 8장의 앨범-베스트, 정규, 라이브 앨범 포함- 모두가 골드이상의 앨범이 되었다. 그래서 지금까지 현재 1,1150만장 이상의 앨범이 판매되었다.
그 밖에 그녀는 그래미상 외에도 미국 컨트리 음악협회 상, 국제 블루그래스 음악 협회상, 영국 컨트리 음악 상등 여러 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그리고 니켈 크릭, 알란 잭슨, 레바 매킨 타이어 등의 앨범을 제작하여 제작자로서도 높은 성공을 거두었다. 또한 세션활동도 열심히 했는데 배드 컴퍼니, 피터 세테라, 크리스 크리스토퍼슨, 브랜다 리, 케니 로긴스, 마이클 맥도널드, 돌리 패튼, 케니 로저스, 린다 론스태드 등 컨트리 음악을 중심으로 록, 소울 등에서 유명한 다양한 보컬 혹은 그룹의 앨범에 참여했다.
이 정도만 해도 현재 그녀가 미국 대중 음악계에서 얼마나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지 알 수 있을 것이다. 그렇기에 꼭 미국에서 인기 있다고 국내에서도 인기를 얻어야 한다고 할 수 없다고 해도 국내에서 그녀의 인지도가 미약하다는 것은 다소 의아한 일이다. 하지만 이것은 그녀의 음악이 한국인의 취향에 맞지 않다거나 해서 생긴 결과가 아니다. 다소 편중된 팝 음악 소비로 그녀의 음악이 소개될 기회가 그리 많지 않았기 때문이다. 실제 그녀의 음악은 블루그래스 음악을 단순히 목가적인 분위기의 백인 시골 음악 정도로 생각하는 사람, 흑인 음악에 길들여진 사람조차도 빠질만한 매력이 있다. 그리고 미국의 시골이라는 다소 낯선 풍경에만 어울리는 것이 아니라 흑인음악으로 채워진 도시에도 어울릴 정도로 세련된 면이 있다. 이것은 블루그래스 음악이 컨트리 음악의 하위 장르이긴 하지만 그 탄생 비경 안에는 재즈, 블루스의 영향도 담겨 있음을 생각하면 보다 쉽게 이해될 수 있겠다. 즉, 그녀의 블루그래스 음악은 그저 과거의 보존을 위한 음악이 아니라 현재 편하게 들을 수 있는 음악인 것이다. 그렇기에 큰 인기를 얻을 수 있었던 것이다.
이번 앨범 <The Essential>은 그간 앨리슨 크라우스가 선보인 음악을 정리한 앨범이다. 사실 20년 이상을 활동해온 아티스트의 음악을 한 장의 CD로 정리한다는 것은 가능하지도 않은 일이며 어쩌면 해서는 안될 일일지도 모른다. 그렇기에 이런 종류의 앨범은 완벽함을 추구하기보다 몇 개의 가능한 방향가운데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 예를 들면 앨범 별로 한 곡의 히트 곡을 골라 차례대로 싣는다거나 음악적 특성을 생각해 질적인 차원에서 음악을 정리하는 것이 있다. 이번 앨범의 경우 후자에 가깝다. 그래서 이 앨범은 그녀가 발표한 앨범들 모두가 언급되지 않는다. 물론 그녀가 발표했던 모든 앨범들이 화제가 되었고 또 상업적으로 큰 성공을 거두었던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이 앨범은 그 가운데서 말 그대로 ‘정수’를 선별하여 담고 있다. 그래서 앨범 수록곡은 1990년도 앨범 <I’ve Got That Old Feeling>부터 지난 해 발매된 <Raising Sand>를 아우르고 있지만 그렇다고 모든 앨범의 히트곡을 담고 있지 않다. 게다가 엄밀히 본다면 최근 10년, 그러니까 모든 앨범이 골드 레코드 이상의 판매고를 기록하며 블루그래스 음악을 현재의 음악으로 되살렸던 기간의 음악을 정리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나아가 수록곡들은 발표시기가 아니라 정서적 흐름에 따라 배열되며 하나의 완성된 앨범을 지향하고 있다. 실제 2007년도 앨범 <A Hundred Miles or More: A Collection>에 수록된‘Simple Love’를 시작으로 2004년도 앨범 <Lonely Runs Both Ways>의 수록곡 ‘A Living Prayer’로 마무리되는 14곡의 흐름은 정규 앨범 이상으로 자연스럽다.
한편 이 자연스러운 흐름은 그녀의 목소리가 40이 가까운 지금도 소녀의 느낌을 잃지 않았음을 확인하게 해준다. 이를 위해 1990년도 녹음인 ‘Wish I Still Had You’와 2007년도 녹음인 ‘Sister Rosetta Goes Before Us’를 비교해보기 바란다. 심지어 그녀의 목소리가 나이가 들수록 청아하고 부드러워지고 있는 듯한 인상마저 받게 될 것이다. 또한 이번 앨범은 그녀의 음악이 순수함에 대한 동경, 목가적인 이미지로 가득 차 있음을 확인시켜 준다. 그리고 이 소박하고 전원적인 정서가 터질 듯 공간을 메우려는 욕망으로 가득한 음악에만 익숙한 도시인들의 피로, 외로움을 위로할 수 있음을 경험하게 해준다. 그래서 블루그래스라는 장르가 무조건 고루한 장르임이 아님을, 아니 장르에 대한 선입견이 얼마나 무서운 것이고 나아가 좋은 음악은 그 장르에 상관 없이 감상자의 가슴을 울릴 수 있음을 생각하게 해준다.
사실 베스트 앨범은 꾸준히 자신의 음악을 좋아해준 애호가들을 위한 보너스적인 성격이 강하다. 그렇게 본다면 한국에서의 지명도가 상대적으로 낮은 앨리슨 크라우스의 이번 앨범이 한국에 소개된다는 것은 다소 앞뒤가 바뀐 느낌을 준다. 그러나 다르게 생각하면 이번 앨범이 이미 블루그래스 음악 쪽에서는 거장의 반열에 올라선 그녀의 존재를 한국 감상자들에게 본격적으로 인식시키는 계기가 되리라고 본다. 그래서 많은 감상자들이 그녀의 음악에 고유한 휴식과 여유의 정서에 만족하리라 생각한다. 적어도 지금 이 앨범을 듣고 있는 당신은 그럴 것이라 확신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