Quiet Nights – Diana Krall (Verve 2009)

달콤하디 달콤한 사랑의 밤을 노래한 앨범

다이아나 크롤은 누가 뭐라 해도 현재 가장 인기 있는 재즈 보컬임에 틀림없다. 실제 그녀의 1998년도 앨범 <When I Look In Your Eyes>는 그녀에게 그래미상 올해의 재즈 보컬 상과 또한 올해의 앨범 후보에 오르는 영광을 가져다 주었다. 그리고 2001년도 앨범 <Look Of Love>는 세계적으로 수백만장이나 판매되면서 그녀를 명실상부한 최고의 인기 재즈 보컬로 자리매김하게 해주었다.

그렇게 재즈 보컬로서 찬란한 인생의 정점에 올랐을 무렵 그녀는 삶에 있어 행복한 사건 두 가지를 겪었다. 하나는 엘비스 코스텔로와의 결혼이었고 다른 하나는 그 사이에 2세를 출산한 것이다. 그리고 그녀는 이 행복한 사건을 그대로 음악으로 표현했다. 그래서 2004년에는 엘비스 코스텔로와 함께 곡을 쓰면서 작곡가로서의 또 다른 내면을 <The Girl In The Other Room>을 통해 드러냈으며 2006년에는 2세를 출산한 기쁨을 화려한 스윙 빅밴드 사운드가 빛나는 <From This Moment On>을 통해 표현했다. 이들 두 장의 앨범 역시 막강한 대중적 호응을 얻어냈다.

자. 이제 삶에 있어 행복한 사건들은 지나갔다. 이제부터 불행의 시작이 아니라 삶을 마칠 때까지 가족의 소중함을 느끼며 행복한 삶을 유지하는 일만 남았다는 뜻이다. 그렇다면 이런 상황에서 어떤 음악을 할 수 있을까? 다시 한번 자신의 삶을 그대로 반영한다면 행복한 노래를 부르면 된다. 그녀의 음악을 사랑하는 사람들은 아마도 그녀가 행복한 노래를 계속 부르기를 원할 것이다. 글을 쓰고 있는 나 역시 삶의 모든 괴로움을 녹여버리는 행복한 노래야 말로 그녀에게 가장 잘 어울리는 것이라 생각한다. 다행히 다이아나 크롤 자신도 행복한 노래가 어울린다고 생각한 모양이다. 이번 앨범에서도 그녀는 자신의 행복한 생활을 반영하여 달콤하디 달콤한 사랑의 노래를 들려준다.

그런데 그녀의 앨범들을 차근차근 들어온 감상자라면 아마도 이번 앨범에서 앨범 <Look Of Love>를 많이 연상할 것 같다. 실제 이 앨범은 제작부터 <Look Of Love>와 많은 부분이 닮았다. 제일 먼저 편곡자이자 오케스트라 지휘자인 클라우스 오거만(Claus Ogerman)이 다시 참여했다는 것이 눈에 띈다. 그는 <Look Of Love>에서 앨범의 성공에 절대적인 영향을 끼쳤다고 할 수 있을 정도로 뛰어난 편곡 솜씨를 자랑했는데 이번 앨범에서도 매혹적인 오케스트라 편곡으로 부드러운 훈풍 같은 사운드를 만들어 내는데 성공했다. 보사노바 계열의 부드럽고 잔잔한 리듬이 적극 활용되었다는 것 또한 유사하다. 심지어는 미국 팝 음악을 대표하는 작곡가 버트 바카라의 곡을 한 곡(Walk On By) 노래한 것마저 이 앨범에서 2001년도 앨범을 생각하게 한다. 말하자면 이번 앨범은 가장 찬란한 위치에 올랐던 2001년도를 회상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래서 나는 삶의 중요한 사건들을 보낸 다이아나 크롤이 음악적으로 정점이었던 때로 돌아가 다시 새로운 정점을 향해 출발하려는 의도로 이번 앨범을 녹음하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그렇다고 나는 이번 앨범이 2001년도의 성공공식을 복제하듯이 적용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사실 이번 앨범이 지난 2001년도 앨범과 유사한 분위기를 띄게 된 것은 그녀의 2008년 브라질 공연의 영향이 크다. 공연을 위해 리오 데 자네이로에 머무는 동안 그녀는 곳곳에서 일상처럼 들리는 보사노바 곡들을 들었다고 한다. 그러면서 이번 앨범에서 “Girl From Ipanema’, ‘So Nice’, ‘Este Seu Olhar’, ‘Quiet Nights’등의 보사노바 스탠더드 곡을 노래할 생각을 했다고 한다. 그런 과정에서 다이아나 크롤-혹은 공동 제작자인 토미 리푸마가 편곡가 클라우스 오거만을 떠올린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왜냐하면 그는 보사노바가 미국에서 처음 인기를 얻었을 무렵부터 안토니오 카를로스 조빔, 호앙 질베르토, 스탄 겟츠 등과 함께 하며 편곡가로 명성을 얻었기 때문이다. 앨범 <Look Of Love>에 보사노바의 향기가 가미되었던 것도 바로 이 때문이었다.

하지만 보사노바에서 영감을 받았다고는 해도 이번 앨범에서 클라우스 오거만의 편곡은 보사노바 리듬을 겉으로 확연하게 드러내려 하지 않았다. 또한 ‘I’ve Grown Accustomed To Your Face’나 ‘Guess I’ll Hang My Tears Out To Dry’처럼 보사노바 리듬이 사용되지 않는 재즈 스탠더드 곡에서도 그는 리듬을 최대한 부드럽게 순화시키고 템포 또한 느리게 가져가는 편곡을 시도했다. 그 결과 앨범은 싱그러운 활력이 넘쳤던 <Look Of Love>에 비해 훨씬 더 잔잔하고 포근한 느낌으로 다가온다. 그런데 이러한 부드러운 편곡이 사용된 데에는 앨범이 보사노바 자체를 주제로 한 것이 아니라 조용한 밤(Quiet Nights)의 정서를 주제로 하고 있기 때문이었다고 생각된다. 실제 앨범은 강가에서 연인이 사랑을 속삭이고-이 풍경에서 고흐의 그림 중 하나를 연상해도 좋겠다-한줄기 신선한 바람처럼 어디선가 달콤한 노래가 조용히 들려오는 별이 빛나는 밤을 상상하게 한다. 연인의 사랑이 부드러운 밤에 녹아 드는 풍경, 그저 분위기 좋은 카페에서 와인 한 잔을 앞에 두고 밀어를 나누는 도시적인 로맨스와는 다른 자연 친화적 풍경 말이다. 그렇기에 풍성한 만큼 여백을 많이 담고 있는 오케스트라와 최대한 자극을 줄인 리듬이 사용되었던 것이다.

그러다 보니 다이아나 크롤의 창법에도 변화가 생겼다. 즉, 다른 어느 때보다 힘을 빼고 최대한 편안하게 노래한다는 것이다. 물론 이전 그녀의 노래들도 충분히 달콤했다. 하지만 이번 앨범에 비하면 이전 노래들은 아무래도 리듬을 보다 적극적으로 타면서 노래하다 보니 다소 직선적인 면이 강했다. 힘을 주어 선이 확실하게 노래했다고 나 할까? 예를 들어 앨범의 두 번째 곡 ‘Too Marvelous For Words’가 이전의 <Love Scenes>나 <When I Look In Your Eyes>나 지난 <From This Moment On>같은 앨범에 수록되었다면 설령 비슷한 편성이라 하더라도 훨씬 더 또렷하고 힘있는 분위기로 노래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이번 앨범에서 그녀는 마치 사랑하는 사람의 귀에다 ‘사랑해’라고 부끄럽게 속삭이듯 최대한 긴장을 이완시킨 상태에서 노래한다. 그래서 그녀의 목소리에 내재된 특유의 결이 한층 더 부드럽게 느껴진다. 그리고 나는 이러한 그녀의 부드러움을 현재 그녀가 누리고 있는 행복에서 나온 것이라 생각한다.

한편 섬세한 편곡이나 리듬의 미묘한 운용, 창법의 변화 등에 대한 나의 이야기에도 불구하고 이번 앨범을 그저 <Look Of Love>의 반복이라고 쉽게 결론을 내리는 사람이 있을 지 모르겠다. 설령 그렇다고 해도 나는 이 앨범을 싫어할 수 없을 것이라 생각한다. 오케스트라가 불면 날아갈 듯한 솜사탕처럼 다가오고 다이아나 크롤의 노래가 첫사랑과의 달콤한 키스처럼 다가오는데 뭐라고 불평을 할 수 있을까? 진달래는 매년 봄마다 먼 산에 피지만 그 분홍빛은 언제나 우리를 설레게 하지 않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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