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a Princesse et le Croque-Notes – Melanie Dahan (Sunnyside 2009)

재즈는 미국에서 태어났다. 이것은 부인할 수 없는 역사적 사실이다. 그리고 여전히 미국에서 활동했던 수많은 거장들의 음악들은 우리를 감동시키며 재즈는 미국 흑인의 음악임을 생각하게 해준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은 지금도‘재즈’하면 담배연기 자욱한 클럽에서 흑인들이 펼치는 점성질(粘性質)의 연주를 먼저 떠올린다. 나는 이러한 연상을 부정하고 싶지 않다. 그러나 뉴 올리언즈에서 재즈가 태어난 지도 어느덧 한 세기가 흘렀다. 그 긴 시간 속에서 재즈는 새로움을 추구하는 자신의 운명을 따라 수많은 변화를 겪었다. 어떻게 재즈가 변했는지에 대해서는 여러 설명이 가능할 것이다. 그러나 지난 100여 년간에 생긴 가장 큰 변화로 나는 재즈가 미국의 흑인음악에서 세계인들이 즐기는 음악이 되었다는 것을 말하고 싶다. 그렇다고 루이 암스트롱의 노래를 미국 외에 한국, 프랑스 등 다른 나라에서 인기를 얻은 것을 두고 하는 말은 아니다. 세계 각국에서 미국의 스타일을 그대로 수용하는 것을 넘어 스스로 자신들만의 방식으로 재즈를 생산하는 상황을 말하는 것이다. 그러니까 재즈가 세계의 음악이 된 데에는 양식의 보편화, 일반화가 아닌 다양화, 세분화가 작용했던 것이다.

이러한 다양화되고 세분화된 재즈가 가능했던 것은 재즈가 세계 각국의 음악적 전통을 흡수하기를 거부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 결과 우리는 미국 재즈, 프랑스 재즈, 이탈리아 재즈, 북유럽의 재즈를 말할 수 있게 되었고 따라서 재즈를 듣는 것은 이제 미국 문화를 접하는 것을 넘어 세계의 풍성한 문화를 접하는 것이 되었다. (물론 그 과정에서 특정 자기 나라의 재즈가 최고라는 식의 국수주의적인 태도는 경계해야 한다.)

우리가 지금 듣고 있는 프랑스 출신의 여성 보컬 멜라니 다안의 앨범 <La Princesse et Les Croque-Notes>이 그 좋은 예이다. 이 앨범은 프랑스 문화가 깃들어진 프랑스만의 재즈를 담고 있다. 그것은 무엇보다 이 앨범에서 노래된 곡들이 프랑스 샹송의 대표곡들이기 때문이다. 지금은 샹송이라는 말보다 바리에떼 프랑세즈(Variété française)라는 이름으로 영미 팝에 가까운 모습을 하고 있지만 70년대 후반까지 샹송은 프랑스의 낭만을 담은 음악으로 세계인들의 사랑을 받았다. 우리에게 알려진 샹송들도 대부분 이시기에 인기를 얻었던 곡들이다. 이 앨범에서 멜라니 다안이 노래하고 있는 곡들도 바리에떼 프랑세즈 이전의 샹송의 고전들이다.

하지만 기본적으로 재즈는 작곡자보다 연주자, 보컬의 자유의지가 더욱 존중되는 음악이기에 샹송을 노래했다는 것 자체가 큰 의미를 지니지 않을 수 있다. 수많은 연주자와 보컬들이 스탠더드라 불리는 콜 포터, 호기 카마이클 등의 곡들을 자신만의 방식으로 연주하고 노래하는 것, 또 최근 일반화되고 있는 유명 팝음악을 재즈로 연주하는 것을 생각하면 분명 그리 특별한 일은 아니다. 실제 샹송의 고전인 ‘Les Feuilles Mortes’나 ‘Que Reste-t-il de Nos Amours’같은 곡들은 각각 ‘Autumn Leaves’와 ‘I Wish You Love’라는 이름으로 재즈의 스탠더드 곡으로 자리잡았지 않은가?

그럼에도 내가 이 앨범을 프랑스 문화가 깃든 프랑스만의 재즈라 말하는 것은 샹송의 고전들에 접근하는 멜라니 다안의 방식에 있다. 사실 보통의 재즈적 해석은 원곡의 멜로디를 가져와 적당한 긴장을 부여한 코드 체계 위에 놓고 한번 연주하고 블루스적인 감각을 넣은 솔로를 한번 화려하게 펼치는 것으로 구성되곤 한다. 그 과정에서 원곡의 정서에 대한 배려는 두 번째 고려사항에 지나지 않는다. 그래서 가사와 상관 없는 분위기의 연주가 나올 수도 있다. 그러나 멜라니 다안의 노래는 다르다. 그녀는 자신을 드러내기 위해 노래하지 않는다. 그보다는 노래 자체에 내재되어 있는 시적인 정서를 드러내는데 집중한다.

게다가 앨범에서 그녀가 노래하는 조르쥬 브라상, 클로드 누가로, 레오 페레, 샤를르 아즈나부르, 피에르 바루, 베르나르 딤니 등의 곡들은 시를 읊조리다가 거기서 생긴 리듬과 멜로디를 악보로 옮겼다 싶을 정도로 멜로디와 가사가 동전의 앞뒤처럼 서로 깊은 관련을 맺고 있는 곡들이다. 즉, 보다 더 깊은 가사의 이해와 섬세한 표현이 요구된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결국 원곡을 오랜 시간 듣고 또 따라 부르며 노래와 하나가 되어야 한다. 실제 멜라니 다한은 이들 곡들이 인기를 누렸던 그녀의 부모 혹은 조부모의 시대에 다녀온 듯 그녀 스스로가 음유시인이 되어 노래한다. 그래서 단어 하나하나에 음색과 강약의 미묘한 변화를 주어 내적인 긴장과 리듬을 만들어 내는 그녀의 노래는 때로는 부드러운 속삭임(La Princesse et le Croque-Notes), 예술적인 시 낭송(La Mer à Boire, Les Poètes), 연극에서의 독백(Si Tu Me Payes un Verre) 처럼 다가온다.

하지만 그렇다고 그녀가 무조건적으로 ‘그때가 좋았지’하는 식으로 과거 지향적인 노래했다고 생각되지는 않는다. 그것은 올 해 29세밖에 되지 않는 젊은 보컬에게는 어울리지 않는 일이다. 그녀가 샹송의 고전을 노래한 것은 각 곡들이 담고 있는 시정(詩情)이 현재에도 새로운 울림을 만들 수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실제 그녀의 노래는 감상자를 프랑스 샹송이 가장 낭만적이었던 아름다운 시절로만 이끌지 않는다. 비록 샹송의 황금 시대를 그리고 있지만 그녀는 자신이 과거가 아닌 현재를 살고 있으며 역시 현재의 감상자를 위해 노래함을 잊지 않는다. 그래서 그녀의 노래는 현재의 싱싱한 에너지가 가득하다. 그리고 이 싱심함은 샹송의 고전들이 재즈 안으로 옮겨지면서 발생한 긴장에 기인한다.

사실 재즈에 대해 살짝 보수적인 관점을 지니고 있는 감상자라면 그녀의 노래가 재즈 보컬의 전형과는 거리가 있지 않나 생각할 지도 모른다. 하지만 원곡을 존중하여 프랑스 음유시인을 따른 듯한 그녀의 창법은 스캣, 비브라토 등의 기교를 내세우기보다 그 기교를 적재적소에서 효과적으로 활용할 줄 알았던 엘라 핏제랄드의 영향을 그리 어렵지 않게 발견할 수 있다. 그리고 멜로디와 가사의 시정을 표현하는 순간에도 부드러운 스윙감을 유지한다는 것에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그렇다. 그녀는 무엇보다 자신만의 개성을 지닌 재즈 보컬인 것이다. 그것도 2005년 프랑스 남부의 주앙 르 팽 재즈 페스티벌의 일환인 ‘Jazz à Juan’ 콩쿠르 결선에 오르고-참고로 이 당시 그녀와 경합하여 우승을 차지했던 인물이 나윤선이었다!-‘Les Couleurs Du Jazz’ 페스티벌에서 프랑스 재즈 보컬의 젊은 희망으로 지목 받기도 한 프랑스 재즈를 이끌 중요한 기대주인 것이다.

한편 이 앨범을 이야기할 때 피아노 연주자 죠바니 미라바시의 존재감을 빼놓아서는 안 된다. 케렌 안 같은 프랑스 대중 가수들의 코러스를 담당할 정도로 평소 바리에떼 프랑세즈에 관심이 많은 멜라니 다안이었지만 그녀가 샹송의 고전들을 현대적 감성으로 노래하기로 마음 먹었던 데에는 이 이탈리아 출신의 피아노 연주자의 힘이 컸다. 투쟁가, 혁명가들에서 정치적인 면을 탈색하고 순수한 음악적 성격을 드러내었던 앨범 <Avanti!>로 우리에게도 탁월한 멜로디스트로 알려진 그는 특히나 프랑스 샹송에 대해 깊은 애정을 갖고 있다. 그래서 2005년에는 샹송의 고전을 피아노 솔로로 새로이 연주한 앨범 <Cantopiano>를 녹음하기도 했고 남성 보컬 니콜라 레지아니와 함께 레오 페레를 주제로 한 앨범 Léo, en toute liberté>(2004)를 녹음하기도 했다.

이번 앨범에서도 그는 샹송에 대한 남다른 애정으로 멜라니 다안의 노래를 빛나게 해준다. 특히 그의 피아노 연주는 단순히 보컬의 반주에 머무르지 않는다. 멜로디를 드러내는 보컬과 적절한 거리, 긴장을 유지하며 곡에 서사적인 성격을 부여한다. 그리고 경우에 따라서는 보컬을 이어 자신만의 환상적인 멜로디로 곡의 서정미를 극대화 시키는 연주를 펼친다. 그러나 이 앨범에서 가장 중요한 그의 역할은 샹송의 고전들을 재즈적인 상황에 위치시키고 재즈의 역동적인 에너지를 부여하는데 있다. 그렇기에 그의 연주는 서정적이라 해서 내적으로 침잠하지 않는다. 트리오 멤버들과의 유기적인 호흡을 통해 전체 사운드를 입체적으로 만드는데 주력한다.

프랑스를 대표할만한 재즈 연주자와 보컬들은 참 많다. 그러나 우리처럼 프랑스 밖에 위치한 감상자에게 무엇이 프랑스적인 정서이며 프랑스적인 재즈인가를 느끼게 해줄 수 있는 연주자와 보컬은 또 드문 것 같다. 있다고 해도 대부분 에펠탑, 개선문처럼 외형적인 이미지, 밖으로 알려진 프랑스적인 정서의 표현에 머무르곤 했다. 그러나 멜라니 다안의 이번 앨범은 프랑스 안에 자리잡고 있는 프랑스적인 낭만, 시정을 현대적인 재즈 사운드를 통해 제대로 느끼게 해준다. 물론 대부분 프랑스어를 이해하지 못하는 한국 감상자에게 그녀의 노래는 다소 낯설게 다가올 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그녀가 노래하는 방식, 죠바니 미라바시 트리오와의 어울림 등을 반복해서 듣다 보면 분명 프랑스에 대한 동경을 새로이 품을 수 있을 것이다. 자! 그러면 이제 멜라니 다안이 안내하는 프랑스적인 너무나 프랑스적인 시정에 취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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