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편의 버라이어티 쇼 같은 공연
크리스 보티는 누구인가? 그는 어떤 음악을 하는가? 라고 재즈 관련 글을 쓰는 사람들에게 물어본다면 대부분‘크리스 보티는 스무드 재즈 트럼펫 연주자이다. 그는 팝적인 감각이 가미된 세련된 사운드로 도시적 정서를 표현한다.’정도로 그를 소개할 것 같다. 나 또한 마찬가지다. 지금까지 나는 여러 리뷰를 통해 그를 스무드 재즈를 대표하는 트럼펫 연주자로 소개해왔다.
그런데 몇 해전부터 나는 과연 그를 스무드 재즈 연주자로 그를 소개하는 것이 정당한가 하는 고민을 해왔다. 그가 더 이상 자신을 스무드 재즈 안에 위치시키기를 거부하고 있다는 인상을 받았기 때문이다. 실제 이제 그는 스무드 재즈의 대표 주자를 넘어 보다 폭 넓은 음악을 아우르는 대중적인 스타의 자리로 이동하는데 성공했다는 느낌이다. 이것은 그의 2004년도 앨범 <When I Fall In Love>부터 시작되었다. 이 앨범에서 그는 그간의 전자적인 사운드에서 탈피하여 대형 오케스트라가 함께 하는 어쿠스틱 사운드를 선보였다. 그리고 재즈 스탠더드 곡들과 함께 안드레아 보첼리의 노래로 알려진 ‘Time To Say Goodbye’같은 클래식 계열의 곡이나 영화 음악 등을 연주하며 재즈 애호가를 넘어 누구나 편하게 들을 수 있는 음악을 지향하기 시작했다. 그 결과 앨범은 빌보드 재즈 앨범 차트에서 16주간 1위에 오르는 등 상업적으로 커다란 성공을 거두었다. 그러나 이 때만해도 과거 클리포드 브라운이나 찰리 파커 등의 유명 재즈 연주자가 오케스트라와 협연했던 적이 있기에 크리스 보티가 재즈 밖으로 나아가려 한다는 생각은 하지 못했다.
그가 보다 대중적으로 인정 받는 스타를 꿈꾸고 있음은 2005년도 앨범 <To Love Again>에서 명확하게 드러났다. 역시 대형 오케스트라와 함께 한 이 앨범에서 그는 그가 성장하는데 도움을 준 스팅을 비롯하여 글래디스 나잇, 폴라 콜, 질 스콧, 마이클 부블레 등의 게스트와 함께 하면서 자신의 음악의 대중적인 면을 더욱 부각시켰다. 그러면서 그의 음악은 재즈를 넘어 크로스오버적인 성향을 띄기 시작했다. 이것은 2007년에 발매된 <Italia>에서도 그대로 반복되었다. 역시 이 두 장의 앨범 또한 대중적으로 커다란 성공을 거두며 그를 팝 스타에 버금가는 정도의 인기를 가져다 주었다. 그래서 나는 90년대 넘어 대중적인 인기를 얻었던 색소폰 연주자 케니 지 이후 가장 인기 있는 재즈 연주자로 크리스 보티를 꼽고 싶다.
대중적으로 높은 인기를 얻으면서 그는 대형 공연을 종종 기획했다. 그 공연들은 출연진과 연주의 화려함으로 관객들로부터 높은 찬사를 받곤 했다. 지난 2006년에 발매된 DVD 타이틀 <Live>를 보면 그의 공연이 얼마나 멋있는지 확인할 수 있다. 그리고 지금 우리가 듣고 있는 이 앨범 또한 크리스 보티의 공연이 지닌 매력을 실감하게 해주리라 생각된다.
이 앨범은 지난 2008년 9월 18일과 19일 양일에 걸쳐 보스톤의 히스토릭 심포니 홀에서 있었던 공연을 담고 있다. 이 공연에서 그는 키스 록하트가 지휘하는 보스톤 팝스 오케스트라와 빌리 차일드(피아노)를 중심으로 빌리 킬슨(드럼) 마크 휘필드(기타), 로버트 허스트(베이스) 등의 일급 연주자들로 구성된 워킹 밴드를 대동했다. 그리고 게스트 또한 어지간한 인맥이 아니면 모으기 힘들 정도로 다채롭다. 더욱이 재즈가 아닌 다른 장르의 스타들이라는 것이 놀랍다. 그의 공연에 종종 등장하는 스팅과 크리스 보티처럼 스팅의 밴드 멤버이기도 했던 기타 연주자 도미닉 밀러 정도는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겠는데 아메리칸 아이돌 출신의 가수 캐서린 맥피, 포크록 싱어송라이터 존 메이어, 그리고 전설적인 록 그룹 에어로스미스의 보컬 스티븐 타일러까지 참여한 것이다. 여기에 클래식 쪽에서도 보컬 조쉬 그로반, 바이올린 연주자 루시아 미카렐리, 그리고 첼로 연주자 요요 마 등이 참여하면서 공연을 더욱 화려하게 해주었다.
이처럼 여러 장르의 스타들이 참여했기에 연주된 곡들 또한 다양하다. ‘When I Fallin In Love’, ‘Glad To Be Unhappy’같은 스탠더드 재즈 곡들과 함께‘Ave Maria’, Time To Say Goodbye’같은 클래식 곡, ‘Cinema Paradiso’, ‘Emmanuel’같은 영화 음악, 그리고 레너드 코헨의 ‘Halleujah’, 스팅의 ‘Seven Days’같은 팝/록 계열의 곡 등이 연주되었다.
이처럼 다양한 장르를 가로지르는 화려한 출연진과 레퍼토리를 자랑하기에 공연은 크리스 보티라는 한 연주자의 공연이라기 보다는 거대한 버라이어티 쇼 같은 느낌마저 준다. 실제 매 곡마다 연주나 게스트가 변하는 공연은 처음부터 끝까지 듣는 내내 지루함을 느끼지 못하게 한다. 아니 영상 없이 음악만 듣는 것이지만 공연을 보는 듯한 착각마저 느끼게 한다.
버라이어티 쇼의 느낌이 강하다고 해서 사운드에 일관성이 없다는 것은 아니다. 개성 강한 스타들이 함께 하지만 크리스 보티는 그들에 의존하는 대신 그들을 통해 자신의 음악을 구현한다. 생각해 보라. 록계의 악동 스티븐 타일러가 그 거친 목소리로 ‘Smile’을 그리 낭만적으로 노래할 줄 누가 상상했겠는가? 존 메이어는 어떤가? 그가 노래한‘Glad To Be Unhappy’는 최근 인기를 얻고 있는 젊은 재즈 보컬에 비교해도 뒤지지 않을 정도로 재즈적 매력을 발산한다. 클래식 연주자와의 협연도 마찬가지다.‘Cinema Paradiso’에서의 요요 마나‘Emmanuel’에서의 루시아 미카렐리의 연주는 클래식의 엄격함보다는 크리스 보티의 애상적인 트럼펫에 조응 하는 정서 중심의 연주에 집중한다.
한편 크리스 보티는 크로스오버적인 면이 전면에 드러나긴 해도 자신의 음악이 재즈를 기반으로 하고 있음을 숨기지 않는다. 이것은 게스트 없이 혼자서 연주를 이끈 곡들을 들어보면 쉽게 확인된다. 기본적으로 그의 트럼펫은 맑은 톤으로 보컬을 대신하듯 과도한 장식을 배제하여 멜로디의 아름다움을 강조하는데 주력한다. 그러나 그 와중에서도 다른 연주자들과의 긴밀한 호흡을 유지하며 연주자로서의 매력을 뽐내곤 하는데‘When I Fall In Love’가 그 대표적인 경우라 하겠다. 그의 오늘을 가져다 준 곡 가운데 하나인 이 곡을 연주하면서 그는 빌리 차일드, 빌리 킬슨 등과 재즈의 순간적인 감흥에 충실한 연주를 펼친다. 나아가‘Flamenco Sketches’에서는 자신의 뮤트 트럼펫이 마일스 데이비스의 전통을 따르고 있음을 밝힌다.
결국 이 공연은 크리스 보티의 현재를 그대로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 그 현재는 대중성, 화려한 인맥, 공연 자체의 화려함, 그리고 크로스 오버적인 성향 가운데서도 잃지 않은 재즈적인 열정 등이 아우러진 것이다. 그런데 생각해 보면 현재 크리스 보티가 걷고 있는 길은 케니 지가 아니라 스팅의 길이 아닐까 생각된다. 스팅은 록으로 시작했지만 현재 재즈를 거쳐 클래식, 월드 뮤직 등을 아우르는 음악을 들려주고 있지 않던가? 게다가 대중적 스타의 자리에서 떠나지 않으면서도 음악적으로 결코 가볍다거나 상업적이라는 느낌을 주지 않고 있지 않던가? 아마도 스팅의 밴드에서 활동하면서 크리스 보티는 스팅의 이러한 면들을 보고 배우지 않았을까 싶다. 그러므로 만약 높아진 그의 인기 탓에 그의 음악이 아예 팝적인 방향으로 흐른 것이 아니냐 지레 판단한 감상자가 있다면 이 앨범을 들어보기 바란다. 아마도 생각이 바뀔 것이다. 대중적이라는 것이 꼭 음악적으로 무엇인가를 희생해야만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님을, 달콤한 것이 가벼운 것만은 아님을 크리스 보티의 연주는 말하고 있다.
일단 외모가..오~ ^^
처음엔 오히려 그 외모때문에 좋아하진 않았던 것 같습니다.
선입견이 생긴거겠지요.
선입견을 배제하려고 노력하고 다시 들어봐야 겠습니다..
잘 생겼죠. 그래서 인기가 더 있는 것 같기도 합니다. 일단 외모보고 음악을 듣거나 공연을 볼 생각을 하지 않았을까요? 그 다음에 음악의 대중적인 매력으로 끝까지 사로잡는 거죠.ㅎㅎ
아하..어떻게 보면 전략적이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