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통의 삶에 대한 행복한 찬가
아무리 어려운 일이라도 그 일이 작동되는 법칙, 흔히 말하는 요령을 알게 되면 그 일은 이내 쉬운 일로 변한다. 우리의 삶도 그렇다. 집은 물론, 학교, 직장에서 적절히 처신하면 큰 문제 없이 하루하루를 이어갈 수 있다. 하지만 편하다고 늘 비슷비슷한 하루를 이어나간다면 이내 그 삶은 단조롭고 재미없는 것이 되어버릴 것이다. 우리가 흔히 말하는 건조한 일상으로 채워진 삶 말이다. 결국 우리는 적당히 오르막과 내리막이 있는 삶, 나 스스로 삶의 주인이 되어 하루하루를 새롭게 만드는 삶을 꿈꾸게 된다.
음악도 마찬가지. 노력이건 우연이건 하나의 앨범이 성공한 이후 그 앨범의 스타일에 머무는 뮤지션들이 많이 있다. 이 경우 큰 성공은 못해도 고정적인 팬들은 유지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 팬들이 나이 들어가는 것에 맞추어 결국은 역사 속으로 사라질 것이다. 그러나 적절히 자신의 음악을 새로운 방향으로 이끄는 뮤지션들은 늘 새로운 팬들을 창출하면서 현재의 인기를 누릴 수 있다. 물론 여기엔 위험이 따르긴 한다. 그러나 음악을 하는 것이 상업적인 측면 외에 예술적인 욕망이 기저에 자리잡고 있다면 이런 위험은 감수할 줄 알아야 한다.
지금 우리가 듣고 있는 앨범의 주인공 손드레 레르케의 이번 앨범을 들었을 때 나는 그가 과거의 성공에 연연하지 않고 현재의 자신에 집중하는 음악을 하고 있다는 인상을 받았다. 왜냐하면 첫 앨범은 물론 지난 네 번째 앨범과도 다른 사운드를 들려주고 있기 때문이다.
사실 어떤 숨겨진 개인사가 있는지는 모르지만 지금까지 손드레 레르케의 음악 인생은 편안한 성공의 연속이었다. 1982년 9월 5일 노르웨이의 베르겐에서 태어난 그는 8세부터 기타를 배우기 시작했다. 이 때 그의 기타 선생은 클래식 외에 세련된 리듬의 브라질 음악을 연주하는 법을 함께 가르쳤다고 한다. 그렇게 기타를 배우고 14세가 되었을 때 그는 처음으로‘Locust Girl’이라는 곡을 작곡하고 클럽에서 공연을 하기 시작했다. 그 와중에 HP 군데르센에게 발굴되어 그의 소개로 사이키델릭 록, 올드 팝, 브라질 뮤직 등을 들으며 다양한 음악에 대한 감수성을 키워나갔다. 그리고 16세에 버진 노르웨이사와 계약을 맺게 되었다.
이후 그의 활동은 더욱 더 순조로웠다. 2001년에 공개된 첫 앨범 <Face Down>은 노르웨이에서 큰 성공을 거두고 미국에 알려져 롤링스톤즈지(誌)로부터 2002년도 베스트 앨범 50에 선정되었으며 이를 계기로 평소 그가 우상처럼 여겼던 아하(A-Ha)와 엘비스 코스텔로와 공연을 할 수 있었다. 이후에 발매된 석 장의 정규 앨범들도 평단의 호평과 대중의 사랑을 받았다. 그 가운데 2004년에 발매된 두 번째 앨범 <Two Way Monologue>는 손드레 레르케를 대표하는 앨범으로 꼽히고 있다. 한편 2007년에는 정규 앨범 활동 외에 피터 헤지스 감독의 의뢰로 스티브 카렐과 줄리에트 비노슈가 주연한 영화 <Dan In Real Life>의 음악을 담당하기도 했다.
이런 그의 음악 인생은 확실히 많은 연주자들이 고생을 거듭하다가 기회를 얻는 것과는 다른 순조로운 성공의 연속이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그의 성공이 운이었다거나 부풀려진 것이라 생각하면 안 된다. 그는 늘 처음의 성공 요인을 그대로 반복하지 않고 조금씩 자신의 음악을 새로이 바꿔 나갔다. 그래서 첫 앨범 <Faces Down>과 두 번째 앨범 <Two Way Monologue>에서는 달콤한 목소리와 어쿠스틱 포크적인 맛이 살아 있는 챔버 팝을 지향하더니 2006년도에 발매된 세 번째 앨범 <Dupper Sessions>에서는 50,60년대 팝을 연상시키는 레트로한 취향에 스탠더드 재즈의 낭만까지 가미한 사운드로 모습을 바꿨다. 다시 2007년도 앨범 <Phantom Punch>에서는 180도 방향을 바꾸어 거친 질감의 일렉트릭 기타가 전면에 나서는 록 사운드를 들려주었다. 이처럼 앨범마다 변화를 거듭했어도 그의 앨범들은 모두 거부감 없이 노력한 만큼의 성과를 거두었다. 이것은 그가 다양한 음악적 취향을 지니고 있으며 그것을 자신만의 방식으로 소화할 수 있기에 가능한 것이었다. 그리고 여러 변화 가운데서도 자신의 장점-삶에 대해 소박하고 긍정적인 시선이 느껴지는 사운드-을 잘 인식하고 그것은 그대로 고수했다는 것도 이유라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이번 그의 다섯 번째 정규 앨범인 <Heart Beat Radio>는 어떤 모습을 하고 있을까? 이번 앨범에서도 그는 변화를 시도했다. 전작인 <Phantom Punch>보다는 부드러우면서 그 이전 앨범들보다는 록적인 맛이 더 강한 사운드를 들려준다. 그래서 한편으로는 지난 앨범에서 시도했던 사운드의 종합을 시도한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갖게 한다. 포크적인 담백함을 일렉트릭 사운드 안에 담아내기. 그런데 그 종합의 기준은 음악적인 면보다는 정서적인 면이 있는 듯하다. 즉, 어떻게 하면 손드레 레르케 특유의 밝고 화창한 사운드를 만들 수 있을까를 생각한 끝에 나온 결과라는 것이다. 여기에는 <Dan In Real Life>의 사운드트랙의 영향이 크지 않았나 생각된다. 감독의 의뢰를 받아 가족의 따듯한 사랑과 행복이 담긴 영화의 음악을 담당하면서 자신의 음악이 지닌 매력이 어떤 것인지 실감하지 않았을까 하는 것이다. 실제 행운을 기원하는 ‘Good Luck’부터 그의 팝적인 매력의 정점을 보여주는 ‘I Cannot Let You Go’와 ‘Like Lazenby’, 나른하고 몽환적이기까지 한 ‘Pioneer’, 사랑스러운 멜로디가 귀에 들어오는 ‘Words & Music’, 우울할 수 있는 분위기를 낭만적으로 바꾼 ‘I Guess It’s Gonna Rain Today’그리고 편안한 하루의 마감을 바라는 ‘Goodnight’까지 앨범의 모든 수록곡은 희망과 행복의 이미지로 가득하다.
그런데 이번 앨범의 긍정성은 이전처럼 단순히 어쿠스틱 기타 중심의 소박한 편성을 통해서 드러나지 않는다. 스트링과 혼 섹션까지 동원하는 등 편성이 이전보다 조금은 풍성해졌다. 그러나 악기들을 적재적소에 배치하는 세밀한 편곡은 결코 복잡하다는 느낌을 주지 않는다. 모든 것이 명쾌하고 확실한 삶을 지향하듯 담백한 여유로 다가온다.
결국 손드레 레르케의 이번 앨범은 지금까지 그가 선보인 앨범 가운데 음악적으로나 정서적으로 완성도가 가장 높은 앨범이다. 그래서일까? 나는 앨범 타이틀 곡 ‘Heart Beat Radio’에서 ‘이 노래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말해 달라’고 노래하는 것이 평범하게 느껴지지 않는다. 이번 앨범에 상당한 자신감을 드러낸 것이 아닐까? 이번 앨범에 담긴 자신의 노래를 들으면 그 순간만큼은 모든 것이 편안해 지고 조금은 더 희망을 더 품을 수 있음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닐까?
누구나 삶에 대해 어느 정도 불만을 느끼며 살아간다. 그리고 때로는 이러한 아쉬움이 불안과 괴로움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하지만 그런 것이 보통의 삶이 아니던가? 손드레 레르케는 이런 삶을 위로하고 약간의 변화를 시도하면 충분히 행복할 수 있음을 노래한다. 따라서 이 앨범을 듣고 있으면 잠시나마 일체의 부정적인 생각이 긍정적으로 바뀌는 것, 삶에 새로운 빛이 비춰지는 것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그러므로 나는 손드레 레르케의 질문에 주저 없이 답한다. ‘그래 당신 노래 괜찮아. 아주 좋은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