팝스, 디즈니 만화 영화 주제곡을 노래하다
재즈를 듣는 감상자의 입장에서는 다소 낡은 것으로 치부하고 잊기 쉬운 경향이 있지만 루이 암스트롱은 재즈 역사를 이야기할 때 매우 중요한 인물입니다. 만약 재즈와 관련 있는 사람들에게 재즈 역사상 중요한 인물 하나를 꼽으라 한다면 찰리 파커, 마일스 데이비스 등을 말하기 전에 루이 암스트롱이 제일 많이 언급되리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루이 암스트롱은 재즈 역사를 빛낸 인물 가운데 한 명이 아니라 그 자체로 하나의 장(章)이 될 수 있는 인물이기 때문이죠. 어떻게 그럴 수 있나구요? 먼저 뉴 올리언즈 재즈 시대에 처음 모습을 드러낸 그는 즉흥 연주의 모범을 제시했습니다. 그는 자유롭게 자신의 순간적 감흥에 따라 노래하듯 새로운 멜로디를 만들어 내면서 동시에 원 곡과 강한 관련성을 지닌 즉흥 연주를 들려주었습니다. 한편 그는 재즈 보컬 분야에서도 새로운 경지를 개척했습니다. 일상 생활에서라면 다소 듣기 거북할 수 있는 목소리로 스캣(Scat)하면서 그는 재즈 보컬은 단지 노래를 곱게 부르는 것을 넘어 목소리를 하나의 악기처럼 사용해야 함을 일깨워주었습니다.
하지만 그가 음악적인 측면에서만 자신의 흔적을 남겼다면 어쩌면 그는 지금만큼 추앙 받지 못했을 지도 모르겠습니다. 사실 그의 위대함은 이러한 음악적인 혁신성을 바탕으로 그 누구도 넘볼 수 없는 대중적 인기를 누렸다는데 있습니다. 실제 그는 재즈 외교관의 자격으로 세계 곳곳- 한국에서도 1961년 내한 공연이 있었습니다-을 다닐 만큼 큰 인기를 얻었습니다. 그래서 그에겐 ‘사치모(Satchmo)’라는 별명과 함께‘팝스(Pops)’라는 별명이 따라다닙니다. 흔히 루이 암스트롱 하면 그의 두툼한 입술에서 유래된‘사치모’가 제일 먼저 연상되긴 합니다만 저는‘팝스’라는 별명이야 말로 루이 암스트롱을 가장 잘 설명한다고 생각합니다. 이 별명은 그가 대중적으로 큰 인기를 얻었음을 말하는 한편 그가 재즈 외에 팝, 롹 등 모든 대중 음악의 탄생에 영향을 준 ‘대중 음악의 아버지’임을 말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대중적으로 너무나 친숙한 나머지 많은 분들은 무의식 중에 루이 암스트롱을 재즈 보컬, 재즈 연주자가 아니라 그냥 오래된 팝 가수, 팝 연주자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는 듯합니다. 그렇기에 루이 암스트롱을 통해 재즈의 매력을 알게 되었다고 하더라도 재즈에 맛을 알게 되면 쉽게 그를 잊곤 합니다. 그래서 루이 암스트롱의 인기는 재즈 감상자들보다 일반 팝 음악 감상자들에게서 더 크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한편 1961년 내한 공연 이후 코미디언 남보원씨나 가수 김상국씨 같은 분들이 루이 암스트롱의 걸쭉한 목소리를 흉내 냈을 정도로 국내에서도 적지 않은 명성을 우린 루이 암스트롱이지만 그의 노래에 대한 관심은 아마 1980년대 후반, 재즈가 새로운 관심을 받기 시작했을 무렵 한 맥주 광고에 그가 노래한 ‘What A Wonderful World’가 사용되면서부터가 아니었나 생각됩니다. 만화가 이현세씨를 모델로 한 광고였는데 황금빛 물결이 이는 보리 밭 풍경 아래로 흐르는 루이 암스트롱의 노래는 정말 인상적이었습니다. 그래서 지금까지 루이 암스트롱 하면 많은 사람들은 ‘What A Wonderful World’를 생각하곤 합니다.
그런데 어쩌면 2009년을 기점으로 루이 암스트롱 하면 제일 먼저 떠 오르는 곡의 순위가 바뀔 지도 모르겠습니다. 최근 ‘생각하면 생각대로 비비디 바비디 부~’라며 국민에게 마법을 걸고 있는 이동 통신사 광고에 등장하는 음악 ‘Bibbidi-Bobbidi-Boo’의 루이 암스트롱 버전이 새삼 주목을 받고 있기 때문입니다. ‘Bibbidi-Bobbidi-Boo’는 원래 디즈니 만화 영화 ‘신데렐라’의 주제가입니다. 하지만 장동건, 비 등의 연예인의 목소리로 처음 이 노래가 알려지다 보니 이 노래를 광고를 위해 만든 CM송 정도로 생각한 분들이 많은 것 같습니다. 심지어 제 주변에는 루이 암스트롱의 노래가 광고를 위해 인위적으로 만들어진 것으로 생각하는 사람도 있더군요. 아무튼 광고 덕분에 루이 암스트롱의 ‘Bibbidi-Bobbidi-Boo’가 새로운 관심을 받고 있는 것은 분명합니다. 그래서 저는 아직 ‘What A Wonderful World’의 아성을 넘기엔 아직 멀었지만 그래도 루이 암스트롱을 대표하는 곡으로 자리잡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지금 여러분이 듣고 계시는 앨범 <Disney Songs: The Satchmo Way>가 새삼 라이선스로 발매된 것도 바로 ‘Bibbidi-Bobbidi-Boo’에 대한 관심 때문입니다.
‘Bibbidi-Bobbidi-Boo’가 수록된 이 앨범은 1968년 월트 디즈니사가 기획한 것으로 <백설 공주>, <메리 포핀스>, <정글 북>, <신데렐라>, <피노키오> 등 디즈니 사의 주요 만화 영화의 주제가들을 루이 암스트롱의 노래로 담고 있습니다. 사실 재즈 스탠더드 곡들의 상당 수가 영화나 뮤지컬 음악에서 왔듯이 디즈니 만화 영화 주제가들 중 상당수. 예를 들어 ‘When I Fall In Love’같은 곡은 이전부터 꾸준히 재즈로 연주되어 왔었기에 이러한 시도 자체가 1968년 당시로서도 그다지 새로웠으리라고 저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거쉰 송북’, ‘콜 포터 송북’처럼 그냥 ‘디즈니 송북’ 이상의 의미를 지니지 않았을 겁니다. 하지만 이 평범할 수 있는 기획은 루이 암스트롱에 의해서 아주 그럴싸한 것으로 바뀌었습니다. 디즈니 만화 영화에 내재된 꿈, 희망, 행복, 웃음의 정서를 제대로 표현하는 데에는 루이 암스트롱만한 인물이 없으니까요. 사실 그가 대중적으로 인기를 얻은 데에는 걸걸한 목소리에서 나오는 그만의 유쾌한 정서의 힘이 가장 컸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그런 루이 암스트롱의 밝음은 분명 디즈니 만화 영화의 낭만적 이미지에 아주 잘 어울리는 것입니다.
앨범에 수록된 곡들 모두를 일일이 이야기하기는 어렵지만 그 가운데 <매리 포핀스>의 주제곡 ‘Chim Chim Cheree’는 꼭 언급해야겠습니다. ‘Bibbidi-Bobbidi-Boo’ 때문에 이 앨범이 라이선스화 되긴 했지만 이 앨범의 백미는 ‘Chim Chim Cheree’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차분하면서도 미소를 머금은 듯한 그의 보컬부터 목소리를 이어 새로운 멜로디를 만들어 내는 트럼펫에 이르기까지 루이 암스트롱의 매력을 한번에 느끼게 해줍니다. 또한 <피노키오>의 주제곡 ‘When You Wish Upon A Star’도 주목할 만합니다. 거친 목소리지만 그 안에 담긴 정서는 한 없이 부드럽고 포근해서 만화 영화를 넘어 올디스 팝, 재즈가 등장하곤 하는 로맨틱 코미디 영화의 한 장면을 상상하게 해줍니다.
그 밖에 다른 곡들에서도 매우 편안하고 가볍게 녹음한 것처럼 보이지만 루이 암스트롱의 음악적 매력은 여전히 빛을 발합니다. 그래서‘사치모의 방식’이라는 앨범 타이틀이 정당한 것이었음을 생각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편안하게 앨범을 들으며 유쾌하고 기분 좋은 분위기에 취하는 사이 루이 암스트롱의 매력을 체험하는 셈이 되겠군요. 그러면 지금부터 ‘팝스’의 노래에 흠뻑 빠져보시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