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마스 재즈 앨범의 고전
매년 겨울이면 반복되는 일이지만 전혀 지겹지 않게 다가오는 일이 있습니다. 바로 크리스마스죠. 크리스마스는 이제 종교와 상관 없이 추운 겨울날 사랑을 나누고 즐거운 파티를 함께 하는 날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이 크리스마스를 잘 보냈다고 말할 수 있기 위해서는 몇 가지 필수 사항들이 있습니다. 먼저 앞으로 영원히 함께 하고픈 연인 아니면 늘 나를 후원하고 격려해 주는 가족, 그리고 맘 통하는 친구가 있어야 합니다. 사실 이들만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다른 것은 그다지 필요가 없을 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크리스마스라는 특별한 날의 분위기를 느끼기 위해서는 분명 몇 가지 장식이 있어야 합니다. 예를 들면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줄, 빨간색 리본으로 장식한 작은 선물 상자 같은 것 말입니다. 여기에 세상을 포근하게 뒤덮는 흰 눈이 있어야 하고, 또 사람 많은 거리 한 쪽에서 딸랑딸랑 종소리로 사랑을 호소하는 구세군 냄비가 있어야 할 것 같습니다. 그리고 산타 할아버지 복장을 한 아르바이트 생과-진짜라면 얼마나 좋을까마는- 알록달록한 크리스마스 장식도 필요합니다. 기왕이면 낭만적인 사랑을 이야기하는 영화까지 볼 수 있다면 좋겠네요. 많은 사람들이 선물 교환, 식사, 영화 관람으로 크리스마스를 보내는 것도 이 때문이 아닐까 싶습니다.
하지만 여기에 한 가지 빠진 것이 있습니다. 바로 음악이죠. 크리스마스에는 누가 뭐래도 캐롤이 있어야 합니다. 보통 12월 초부터 들리는 크리스마스 캐롤은 우리에게 사랑을 나눠야 할 때가 왔다고 알립니다. 그리고 그 동안 꽁꽁 숨겨놓은 우리의 따스함을 세상에 드러낼 것을 요구합니다.
크리스마스를 이야기하고 사랑을 느끼게 하는 캐롤을 노래하고 연주한 앨범은 참 많습니다. 나름 이 분야도 하나의 전문 분야를 형성해 매년 이맘때가 되면 많은 캐롤 앨범들이 쏟아져 나오곤 합니다. 재즈도 마찬가지입니다. 어떤 앨범을 선택해야 좋을 지 모를 정도로 많은 수의 크리스마스 재즈 앨범이 발매되었고 또 발매되고 있습니다.
하지만 재즈를 이야기할 때 스탠더드라 불리는 명곡, 명반이 있는 것처럼 이 크리스마스 재즈 앨범에서도 스탠더드라 할 수 있는 명반이 있습니다. 바로 지금 우리가 함께 듣고 있는 빈스 과랄디 트리오의 <A Charlie Brown Christmas> 앨범입니다. 1965년 첫 선을 보인 이후 이 앨범은 재즈 애호가라면 한번쯤을 들어야 할 크리스마스 재즈 앨범, 꼭 재즈 애호가가 아니더라도 음악을 통해 편안하고 사랑스러운 크리스마스 분위기를 느끼고 싶어하는 감상자라면 꼭 한번 들어야 할 앨범으로 자리잡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왜 이 앨범이 그리 오랜 시간 동안 크리스마스 재즈 앨범의 전형으로 자리잡으며 오랜 시간 인기를 얻고 있는 것일까요? 그것은 먼저 이 앨범의 음악이 만화 “피너츠 Peanuts”를 위해 만들어졌기 때문일 것입니다. 사실 제게는 “피너츠”라는 이름보다 스누피로 더 친숙한 이 만화는 어린이 캐릭터들로 어린이들의 세상을 그리고 있으면서도 어른들에게 이런저런 생각을 하게 만드는 만화로 큰 인기를 얻어왔습니다. 그리고 이 인기에 힘입어 이 신문 연재 만화는 TV용 특집 애니메이션으로 수 차례 제작되어왔는데요. 이 찰리 브라운의 TV용 특집 애니메이션의 음악은 늘 피아노 연주자 빈스 과랄디가 담당했습니다. 이 앨범 또한 그 가운데 한 장입니다. 그러니까 이 앨범은 여느 크리스마스 캐롤 앨범과 같으면서도 만화 속 세계, 더구나 어린이들만 존재하는 환상적 현실을 위한 캐롤 앨범이라는 점에서 차이를 보입니다. 그렇기에 앨범의 수록곡들 또한 일반적인 크리스마스 캐롤 앨범과 다소 다릅니다. 제가 어릴 적만 해도 “소나무야”라는 제목-실은 전나무지만-으로 음악 교과서에 실려 있었던 “O Tannenbaum”같은 독일 노래를 시작으로 베토벤의 곡 “Für Elise”, 그리고 “Greensleeves”같은 전통 곡까지 우리가 알고 있는 캐롤 외의 곡들이 겨울 느낌 나는 연주로 실려 있습니다. 또한 빈스 과랄디가 작곡한, 어느덧 캐롤의 스탠더드 곡이 되어 많은 캐롤 앨범에 실리고 있는 “Christmastime Is Here”와 TV 용 찰리 브라운 특집을 위해 빈스 과랄디가 제작자 멘델손에게 전화기 너머로 처음 연주했다는 “Linus & Lucy”등이 이 앨범이 일반적인 크리스마스 앨범과 다른 공간을 지향함을 말해줍니다.
이처럼 만화 속 세계를 위한 남다른 선곡으로 꾸며진 앨범이기에 이 앨범은 감상자를 유년 시절로 인도합니다. 어릴 적 산타 할아버지의 존재를 믿으며 선물을 받기 위해 착한 일을 해야 한다고 생각했던 그 시절 말입니다. 그러니까 연인과 달콤한 사랑의 밀어, 키스를 위한 음악이기 보다는-그러지 말란 법은 없습니다만- 함께 있다는 사실에 기분이 좋아져 미소를 나누게 만드는 음악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실제 이 앨범에 담긴 빈스 과랄디는 비록 그 역시 어른이기는 했지만 과도한 장식을 사용하지 않고 미디엄 템포의 잔잔한 리듬 섹션 위로 유쾌하고 감칠맛 나는 멜로디를 이어나가는 연주로 눈처럼 순수하고 맑은 동심을 표현하는데 주력할 뿐입니다. 게다가 어린이들의 노래가 가미된 몇 곡은 보다 직접적으로 어린이의 세계를 상상하게 해주네요.
워낙 인기가 있는지라 이 앨범은 지금까지 몇 차례 재발매 되어왔습니다. 그 가운데 지금 우리가 듣고 있는 앨범은 이 앨범의 발매 40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지난 2006년 새로이 발매된 것으로 미 공개 Alternative Take가 4곡이 포함되어 있네요. 한편 이 앨범에 담긴 만화적 공간, 순수한 정서에 반한 많은 연주자들이 이 앨범에서 출발해 새로운 찰리 브라운 크리스마스 앨범을 내놓기도 했습니다. 실제 이 앨범이 발매되던 2006년에는 데이비드 베노잇을 중심으로 스무드 재즈 연주자들이 함께 만든 <40 Years: A Charlie Brown Christmas>가 발매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여러 유사한 앨범을 들어도 이 앨범만큼 크리스마스적인 앨범은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것은 아마도 반짝이는 히트곡보다 오래 지속되는 스탠더드 곡을 남기고 싶어했던 빈스 과랄디의 소망이 음악에 투영되었기 때문일 것입니다. 실제 그는 연주자로서 그다지 큰 주목을 받지 못하고 역사 속으로 사라졌지만 그의 크리스마스 음악만큼은 영원한 스탠더드로서의 자리를 잡았습니다. 이제는 시간의 흐름 속에서 사운드가 다소 투박하게 느껴지지만 여전히 그 안에 담긴 맑고 깨끗한 맛은 그대로입니다. 그래서 매년 새로 발매되는 크리스마스 앨범을 듣다가도 다시 이 앨범을 꺼내 듣게 되는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지금 당신은 처음이라면 처음이라서 신선하고 오래되었다면 오래된 만큼 친숙하게 다가오는 크리스마스 앨범, 사랑하는 사람들과 함께 들으면 더욱 편안하고 또 혼자 들으면 외로움을 잊게 만드는 따뜻한 사랑이 느껴지는 크리스마스 앨범을 듣고 계십니다.
지난 몇년간 연말 연례행사처럼 이 앨범의 초반 앨피를 비딩하고 패배하는 세리모니를 반복합니다. 올해의 아이템은 닷새후에 마감인데 이미 7명이 비드하고 22불까지 올라가 있군요. 역시 올해도 틀렸구나싶은 강한 촉이 옵니다. 나이가 늘어가면 쓸데없는 로망도 하나하나 내려 놓는 것이 순리를 따르는 것이겠지요?ㅎ
그래도.. 언젠가 반드시 엘피를 구해 틱틱거리는 잡음사이로 주행하는 카트리지를 구경하며 이불을 뒤집어 쓰고싶은 흐린 오후입니다. 수록곡을 듣고 있노라면 눈 위에 연탄재를 굴려 눈사람을 만들던 추억이 막 솟아나오는데.. 역시 저는 미국인은 아닌가봐요ㅎ
LP를 중심으로 음악을 듣고 계신 듯 합니다.
이불을 뒤집어 쓰고 음악을 듣는 것 참 행복한 일이죠.
거기에 이 앨범은 최고의 조합 중 하나구요.
이 앨범 LP로 꼭 구하시길 바랍니다.
회사 다닐때 동료가 이 음반을 선물해줬는데, 표지하고는 다르게 수준높은(?) ㅎㅎ 음악을 듣고 살짝 놀란 기억이 납니다.
기억이 가물거리긴 한데…찰리 브라운, 루시, 라이너스..아마 담요 들고 다니는 아이지 싶은데..스누피하고요. 삽화같은 만화 읽고 예사롭지 않은 캐릭터라고 생각했지만, 음악도 그러네요.
이 글 읽고 10년만에 CD듣고 있습니다.^^
저는 스누피 애니메이션을 제대로 본적은 없습니다. 몇해전에 어느 채널에서 했던 것 같은데 어라? 하면서 잠시 본 적이 전부에요. 그래도 제가 어릴 때는 지금의 피카추만큼이나 여기저기서 자주 볼 수 있어서 친근하네요. 스누피로 어린이 자수라고 해야할까요? 아무튼 천에 실을 꼽아서 만드는 무엇도 해본 적이 있습니다. ㅎ
어맛! 이렇게.. 낯선청춘님의 색다른 면을 알게 되는군요. 헤헤..
스누피 3D 극장판 나왔더라고요.ㅋㅋ
그러나. 스누피의 진정한 면모랄까요..사색적인 면을 느끼고 싶으시다면, 피너츠라는 만화 컷이 훌륭하다고 봅니다.
기든스가 집필한 사회학개론에도 등장하는 셀럽!^^
스누피는 만화에서의 그 폰트까지 다 전체 분위기를 형성하는 것 같아요. 그래서 3d는 좀..아니지 않나..싶습니다. 기든스가 사회학개론을? 했더니 앤서니 기든스군요. 재즈를 쓴 개리 기든스도 있거든요.ㅎ
ㅎㅎㅎㅎㅎㅎ 빵터짐..아놔… ㅋㅋ
미안합니다. 풀네임을 적어야했는데…
간만에 크게 웃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