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즈의 역사를 이야기할 때 많은 사람들은 ‘혁명의 역사’라는 표현을 사용하곤 한다. 그것은 100년 정도의 시간 동안 재즈가 숨가쁘게 변화에 변화를 거듭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재즈는 늘 새로움을 추구하는 음악이란 말도 듣는다. ‘혁명의 역사’, ‘새로움을 추구하는 음악’으로 재즈와 그 역사를 바라보는 것은 분명 그럴만하다. 하지만 이런 관점을 유지하다 보면 재즈가 직선적으로 발전을 해왔다고 생각하게 되는 것에는 문제가 있다. 즉, 새로움을 추구하는 재즈에서의 혁명을 낡은 것을 폐기하고 새로운 것이 도래하는 것으로 오해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재즈에서의 혁명은 정치에서의 정권교체와는 다르다. 그보다는 중심 취향의 변화로 보는 것이 정확하다. 그래서 지난 취향은 다소 인기가 떨어지더라도 사라지지 않고 꾸준한 생명력으로 독자적인 역사를 만들어 나간다. 이처럼 완전한 단절보다는 과거를 보듬어 안으며 미래를 향해 확장하는 재즈의 역사였기에 오늘날 재즈가 그토록 다채로운 모습을 띌 수 있었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은 지나간 것은 낡은 것으로 생각한다. 그래서 오래된 스타일의 재즈를 좋아한다면 재즈의 보수주의자로 쉽게 생각하곤 한다. 하지만 혁명이라 부를 정도로 과거에 등을 돌린 듯한 그 새로운 재즈도 사실은 낡았다 싶은 과거의 재즈에 빚을 지고 있음을 생각해야 한다. 재즈의 과거를 보존해야 하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프리저베이션 홀
프리저베이션 홀 재즈 밴드는 그 이름에서 느낄 수 있듯이 현재보다는 재즈의 과거로 시선을 향하고 있는 밴드다. 이들이 바라보는 재즈의 과거는 멀리 한 세기 전까지 올라간다. 즉, 뉴 올리언즈 재즈를 추억하고 그 흥겨운 분위기를 재현하는데 힘쓰고 있다.
이 밴드를 이야기 하기 위해서는 뉴 올리언즈에 위치한 프리저베이션 홀을 먼저 언급해야 한다. 프리저베이션 홀은 1961년 당시 미술 중개인이었던 래리 보렌스타인에 의해 문을 열었다. 하지만 그 때까지만 해도 이 공간은 갤러리로 운영되었다. 그러다가 보다 많은 관람자의 갤러리 방문을 유도하기 위해 뉴 올리언즈 재즈 연주자들의 공연이 기획되기 시작했는데 그 결과 그림보다 음악을 감상하기 위해 오는 사람이 많아지면서 성격이 변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튜바 연주자였던 알란 자피가 클럽을 운영하게 되면서 공연 공간으로 완전히 탈바꿈하게 되었다.
개장했을 때부터 프리저베이션 홀은 뉴 올리언즈 재즈의 보존을 기치로 걸었다. 그것은 홀이 뉴 올리언즈의 한가운데 위치하고 있기 때문이기도 했지만 1960년대 재즈의 상황 탓도 있다. 당시 재즈는 비밥 혁명을 필두로 갈수록 연주의 자유도를 높여 온 끝에 프리 재즈의 시대를 맞고 있었다. 그 결과 연주자의 자유도가 높아진 만큼 대중과의 소통 가능성은 낮아지게 되었다. 그래서 당시 새로이 떠 오른 롹앤롤에게 인기를 빼앗기고 말았다. 이로 인해 몇몇 중요 연주자들은 음악 및 경제적 이유로 미국을 떠나 유럽으로 건너가는 상황을 맞이하기에 이르렀다. 이러한 재즈의 상황은 많은 재즈 애호가들에겐 일종의 위기로 다가왔고 그래서 재즈에 대해 보수적인 입장을 취하게 만들었다. 프리저베이션 홀 도 이러한 시대적 흐름에서 만들어졌다 할 수 있다.
1961년 설립 이후 프리저베이션 홀은 원래 녹음된 자료가 많지 않은 뉴 올리언즈 재즈를 무대에 올리며 이 오래된 재즈가 여전히 현재의 음악으로 대중적 매력을 지니고 있음을 알리며 뉴 올리언즈 재즈의 새로운 부흥을 이끌었다. 그리고 이것은 지금까지도 꾸준히 지속되고 있다.
프리저베이션 홀 재즈 밴드
그동안 뉴 올리언즈 재즈에서 시작해 ‘Pops’라는 별명까지 얻으며 큰 사랑을 받았던 루이 암스트롱을 비롯하여 버디 볼든, 젤리 롤 모튼, 벙크 존슨 등 재즈 역사를 장식한 여러 유명 연주자들이 프리저베이션 홀의 무대를 장식했다. 하지만 이러한 유명 연주자들과 상관 없이 프리저베이션 홀은 자체의 뉴 올리언즈 재즈 밴드를 운영해왔는데 그것이 바로 프리저베이션 홀 재즈 밴드다. 하지만 프리저베이션 홀 재즈 밴드가 처음부터 하나의 밴드를 목적으로 했던 것은 아니었다. 프리저베이션 홀 무대에서 공연을 함께 하면서 자연스레 밴드의 성격을 지니게 되었다. 프리저베이션 홀에서의 인기에 힘입어 알란 자피는 1963년부터 순회 공연을 기획했다. 그리고 뉴 올리언즈 재즈 특유의 자유분방한 흥겨움으로 가득한 공연은 거듭 인기를 얻어 미국 전역을 도는 것으로 시작해 해외를 순회하기에 이르렀다.
지금까지 꾸준한 활동을 하는 동안 많은 연주자들이 밴드를 거쳐갔다. 그 가운데 대표적인 인물을 몇 언급한다면 윌리 험프리(클라리넷) 퍼시 험프리(트럼펫) 형제. 빌리 피어스(피아노) 디 디 피어스(트럼펫) 부부, 스윗 엠마 바렛(피아노) 루이스 넬슨(트롬본) 등을 꼽을 수 있다. 하지만 뉴 올리언즈 재즈가 밴드 전체의 자유 즉흥 연주를 특징으로 하고 있었듯이 프리저베이션 재즈 밴드는 어느 특정 연주자가 돋보이는 경우가 드물었다. 그래서인지 위에 언급한 연주자들은 밴드를 떠나서는 지명도가 그리 높지 않았다. 어쩌면 이처럼 연주자 개인보다는 밴드 전체의 자유로운 조화를 중심에 두었기에 지금까지 밴드가 존속될 수 있지 않았나 싶다.
앨범보다는 무대에서 빛을 발하는 흥겨움
프리저베이션 홀 재즈 밴드는 지금까지 여러 장의 앨범을 발표했다. 그리고 그 앨범들은 뉴 올리언즈 재즈를 좋아하고 이에 깊은 향수를 느끼고 있는 애호가들의 사랑을 담뿍 받았다. 최근에는 스코트 핏제랄드의 소설을 원작에 브래드 피트가 주연을 맡았던 영화 <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에서 뉴 올리언즈 시대를 복원한 이들의 음악을 들을 수 있었다. 그러나 역시 이들의 음악은 직접 공연을 통해서 보아야 한다. 그것은 뉴 올리언즈 재즈의 특성 때문이기도 하다. 뉴 올리언즈 재즈는 통상 중규모 정도의 멤버들이 흥겨운 리듬을 바탕으로 자유롭게 서로 연주를 주고 받는 형식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파티나 거리 행진 등에서 연주되면서 큰 인기를 얻었다. 그렇기에 단순하면서도 흥겨운 뉴 올리언즈 재즈는 아무도 없는 스튜디오 녹음보다 여러 사람을 앞에 둔 공연 현장에서 더욱 빛을 발한다. 이 초기 재즈의 사운드가 지금까지도 많은 사랑을 받고 있는 것도 특유의 흥겨움, 그리고 지난 시대를 반추하게 만드는 낭만 때문이다. 연주자들이야 뉴 올리언즈 재즈를 지키기 위해 연주할 지라도 관객들은 그 연주에서 손가락 하나라도 까딱일만한 흥겨움을 우선적으로 원하지 않던가? 그렇기에 눈앞에 펼쳐지는 공연이 앨범 보다 더 깊은 감동을 줌은 당연하다.